[시선] 정부의 2023. 3. 7.자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해법안’에 대한 고찰_’사람’을 생각하지 않는 나라는 얼마나 끔찍한가 (월간변론 110호)
한 검사가 말했다. “저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참 울림이 있는 말이었겠다 싶다. 이 사람은 대통령이 되었다. 그런데 대통령이란 헌법기관은 누구보다 사람에게 충성해야 하는 자리이다. 우리나라는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이 주권자인 나라이기 때문이다.
2023년 3월 6일, 정부는 피해자를 배제한 미래를 선언했다. 강제동원 피해자가 가해자로부터 마땅히 받아야 할 사과와 배상을 대통령은 “미래지향적 결단”이라며 전면 포기했다. 대통령은 전범기업의 가해로 수십 년간 고통을 감내하며 살아온 피해자보다 ‘일본과의 경제적 이해’를 지향해야 할 목표로 선택했다. 마치 학교폭력 피해자가 가해자로부터 받아야 할 사과와 보상을 학교가 대신한 뒤 가해자를 용서한 격이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 나라는 얼마나 공정한가. 159명의 사랑하는 이를 잃은 유가족보다 대통령이 임명한 장관을 보호하는 것이 중요한 나라. 학교폭력 피해자의 고통보다 가해자의 아버지가 검사인지가 중요한 나라. 강제동원 피해자의 존엄성보다 ‘일본과의 경제적 이해’가 중요한 나라. 피해자를 외면하는 나라가 정말 공정한 나라인가.
국제인권기준은 인권을 유린당한 피해자의 입장을 중심에 둘 것을 강조한다. 이러한 입장에서 국제인권기준은 가해자의 사죄와 배상을 피해자의 권리이자 국가의 의무라고 규정하고 있다. 나아가 헌법재판소는 헌법으로부터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당한 자국민들이 배상청구권을 실현하도록 협력하고 보호하여야 할 국가의 의무를 명시적으로 인정하고 있다(헌법재판소 2011. 8. 30. 선고 2006헌마788 결정).
정부가 3월 6일 발표한 해법은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피해자로서 당연히 행사할 수 있는 가해자에 대한 배상청구권 실현을 좌절시킨 것으로 국제인권기준과 헌법에 명백히 위배된다.
초대 헌법재판관 중 한 명으로 기본권 침해의 보루 역할을 한 변정수 재판관은 권력에 의한 기본권 침해를 외면한 다른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에게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
“헌법정신의 왜곡은 그것이 가사 주관적인 애국적 동기에 의한 것일지라도 가장 경계해야 할 헌법 파괴 행위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 대통령은 이번 해법이 나라를 위한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듯하다. 아니다. 변정수 재판관이 지적하였듯이 이번 해법은 주관적인 애국적 동기에 의한 헌법 정신의 왜곡이자 헌법 파괴 행위이다.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관계자들은 하루빨리 해법을 철회하고 강제동원 피해자에게 사죄하길 바란다.
서채완 변호사(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 월간변론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