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한 통에 담긴, 민변과 공익인권변론센터가 걸어온 길
[시선] “늦은 수임료, 이제야 조금이라도 냅니다”…안진걸 소장의 편지
어제를 동여맨 편지를 받았다.
늘 그대 뒤를 따르던 길 문득 사라지고
길 아닌 것들도 사라지고
여기저기서 어린 날
우리와 놀아주던 돌들이 얼굴을 가리고 박혀 있다.
– 황동규, <조그만 사랑 노래> 중-
‘어제를 동여맨 편지’는 황동규 시인의 <조그만 사랑 노래>에 나오는 표현입니다. ‘동여매다’는 감거나 둘러 묶는 것을 이르는 말로, 어제를 동여맨 편지는 어제와 오늘의 단절을 상징합니다. 혹자는 이 시가 창작된 1970년대의 시대 상황을 반영하여 민주주의를 잃어버린 현실로 해석하기도 하지요.
시인이 상실감에 젖어 시를 써 내려가던 1970년대와 비교하면 오늘 우리에게 민주주의는 조금 더 가까운 것이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맞기까지 우리에게도 무수히 많은 잃어버린 날들이 있었습니다. 홀로인 듯한 어둠 속에서 길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함께 촛불을 밝히던 사람들 덕분이겠지요.
최근 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 앞으로 편지가 하나 도착했습니다. 2008년부터 지금까지 민변과 센터의 공익활동을 꾸준히 응원해주셨던 민생경제연구소 안진걸 소장님의 편지였습니다. 편지에 적힌 ‘너무 늦은 수임료를 보낸다’는 인사는 민변과 공익인권변론센터가 걸어온 과거를 함축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편지 말미에는 민변과 공익인권변론센터의 앞으로의 활동에 대한 따뜻한 응원도 담겨 있었습니다. 편지를 읽으며 느꼈던 감사의 마음을 독자분들과 공유하고 싶어, 이번 공익인권변론센터의 시선은 안진걸 소장님의 편지를 소개해드리는 것으로 마치고자 합니다.
“너무 늦은 수임료를 이제서야 조금이라도 내게 되었습니다.”
민변 변호사님들께, 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 후원자님들께. 안녕하세요. 민생경제연구소 소장과 상지대 초빙교수로 일하는 안진걸이라고 합니다. 이번에 제가 참 부끄럽고 많이 부족하지만, 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에 1천만 원을 기부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저는 참여연대, 희망제작소, 민생경제연구소 등에서 일해오면서 민변과 민변 변호사님들께 정말 많은 도움과 조력을 받아왔습니다. 법률을 통한 사회운동, 공익적 법 제·개정 운동은 물론이거니와 제가 형사 피고인이 되었을 때 제일 먼저 우리 민변과 참여연대에 소속된 변호사님들이 달려와 주셔서 저를 공익적으로 무상으로 변론해주셨습니다.
2008년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묻지마 수입에 반대하는 범국민적 촛불항쟁, 2010년 FTA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국회 앞 집회, 2015년 고 백남기 어르신과 함께 참여했던 민중대회, 2016년 최악의 정치인들을 퇴출하고자 했던 총선시민네트워크 활동, 2016년 촛불시민혁명 당시 기부금 모집 활동, 2020년 나경원 국민의힘 당 전 의원의 고소 등으로 피고인이나 피의자가 되었을 때, 저를 변호해주신 민변과 참여연대 소속 변호사님들이 계셨기에 제가 효과적으로 법률적 대응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또 이명박 정권과 경찰이 2008년 촛불항쟁 당시 제기한 거액의 민사소송, 나경원 국민의힘당 전 의원이 제기한 민사소송에서도 저는 민변과 참여연대 소속 변호사님들의 도움을 받았거나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그때도, 지금까지도 너무나 고마운 마음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그때마다 소정의 수임료를 내는 것이 도리이고 기본이었지만, 가난한 시민단체 실무진으로서 저는 한 번도 제대로 수임료를 내본 적이 없습니다. 그렇게 우리 사회의 진보와 개혁, 그리고 민주주의와 인권을 실현하는 일, 또한 사회경제적 약자들을 옹호하는 일에 앞장선 민변 변호사님들이 5년 전에 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를 만들어서 지금도 열심히 무상으로 공익변론에 최선을 다하시는 것을 보면서 저도 그동안 받은 공익변론에 비하면 턱없이 모자라고 너무 늦은 수임료이지만 이제야 수임료의 아주 작은 일부라도 내자고 마음을 먹게 되었습니다. 민변과 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가 지금도 그렇게 향후에도 그렇고 공익변론, 무상변론을 진행하시는데 아주 작은 도움이라도 되면 좋겠다는 소박한 마음입니다. 앞으로 저도 또 열심히 돈을 벌어서, 또 시민들과 함께 기부금액도 모아서 우리 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에 계속 작은 후원이라도 응원을 계속 보내고 싶습니다. 민변과 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가 꾸준히 좋은 활동을 많이 하시고 나날이 더욱더 발전하시기를 빕니다. 안진걸 드림.
- 7.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