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는 죄가 될 수 없다”
대법원 2021. 3. 25. 선고 2016도14995 판결에 대한 소고
서채완 변호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공익인권변론센터 상근 변호사)
억울하게 생을 달리한 누군가를 추모한다는 것은 단순히 슬퍼하고 기억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는다. 국가로부터 비롯된 억울한 죽음에 대한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정권의 부당한 행보에 대해 비판하는 것은 엄연한 ‘추모’의 영역이다.
세월호참사 1주기 추모제를 기억한다. 우리는 2014년 4월 16일 세월호참사로 희생된 304분을 추모하기 위해 광장에 모였다. 우리는 광장에서 304분의 희생을 기억하며 참사를 대하는 정부의 부당한 행태를 비판하고, 세월호참사 진상규명을 촉구하기 위해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우리의 정당한 추모행동에 경찰은 경찰의 6중 차벽, 최루액이 섞인 물대포 살수, 연행과 체포로 응답했다. 추모제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수사를 받고 기소되었다.
당시 세월호참사 국민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았던 박래군(현 인권재단사람 소장), 김혜진(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집행위원) 두 활동가도 기소되었다. 세월호참사 1주기 추모제가 신고범위를 일탈하였고, 추모제에서 경찰과의 일부 충돌이 발생했기 때문에 두 활동가가 집회주최자로서 처벌되어야한다는 내용이었다. 나아가 박래군 활동가는 추모행동 중 발언을 이유로 한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죄로도 기소되었다. 1심 법원과 2심 법원은 2016년 두 활동가에게 유죄를 선고했고, 결국 이 사건은 대법원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대법원은 2심 법원의 판결 이후 약 4년 6개월만인 지난 3월 25일에 최종 판결을 선고했다. 대법원은 박래군 활동가의 명예훼손죄 부분만을 무죄취지로 파기환송했다. 두 활동가에게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죄,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 및 특수공용물건손상죄가 모두 성립한다고 본 것이다.
이러한 대법원 판결은 추모행동에 대한 편협한 시각에서 비롯된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은 학문, 예술, 체육, 종교, 의식, 친목, 오락, 관혼상제 및 국경행사에 관한 집회를 신고대상 집회로 보지 않는다(제15조). 이는 모일 수밖에 없는 집회이자, 집회의 목적과 내용이 평화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추모제는 예술 또는 의식에 관한 집회에 해당한다.
즉 세월호참사 1주기 추모제는 의식에 관한 집회로서, 신고 의무 등이 부과되는 집회가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세월호참사 1주기 추모제에서 시민들이 진상규명 등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쳤다는 이유로 의식에 관한 집회가 아니라는 서울고등법원 판단을 유지했다. 대법원에 판단에 따르면 정권을 비판하는 구호를 외치는 집회는 추모제가 될 수 없다
피해자들과 연대하기 위한 추모행동의 정당성 부정
세월호참사 1주기 추모제를 신고 의무 등이 부과되는 집회라 보더라도 두 활동가를 처벌하는 것은 국제인권규범에 어긋난다. 유엔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위원회(이하 위원회)는 집회의 자유에 관한 일반논평 제37호에서 신고의무를 위반한 것이 집회를 불법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며, 우발적인 집회에 대해 신고의무를 적용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즉 경찰의 차벽 설치 등의 부당한 공권력 행사로 인해 일부 참가자들이 신고범위를 일탈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우발적 집회로서 신고의무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위원회는 또한 일부 참가자의 행위를 이유로 집회 그 자체를 규제하거나 주최자 등 다른 사람을 처벌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즉 일부 시민들이 부당한 공권력 행사에 저항하는 취지에서 경찰과 충돌한 것을 이유로 두 활동가를 처벌하는 것은 국제인권규범에 어긋난다.
대법원은 두 활동가가 경찰과의 충돌을 선동하였기 때문에, 경찰과 충돌한 시민들과 ‘공모공동정범’으로서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 및 특수공용물건손상죄의 죄책을 부담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추모제에 참가한 시민들의 부당한 공권력 행사에 대한 저항을 선동된 행위라 볼 수 없다. 뿐만 아니라, “함께 싸우자”, “국민의 함성을 들려주어야 할 때이다” 등과 같은 두 활동가의 일상적 발언을 선동이라 보는 것도 무리다.
무엇보다 대법원은 충돌을 야기한 경찰의 차벽설치, 행진경로 차단, 최루액이 섞인 물대포 살수 등 위헌·위법한 공권력 행사에 대해서는 어떠한 평가도 내리지 않았다. 비판의식 없이 시민들의 저항권 행사를 폭력행위로 간주한 서울고등법원의 판단을 유지했다. 결국 국가폭력을 외면한 채 모든 책임을 시민들에게 전가한 것이다.
대법원은 김혜진 활동가에게 집행유예를 조건으로 부과한 120시간의 사회봉사명령도 유지했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이상, 명예훼손죄 부분에 한하여 사건이 파기환송된 박래군 활동가에게도 곧 집행유예의 조건으로 사회봉사명령이 부과될 예정이다.
사회봉사명령 부과의 기준이 되는 보호관찰 및 사회봉사명령 등에 관한 예규에 따르면 사회봉사명령은 원칙적으로 자신을 비하하는 사람이거나, 고립된 사람, 교통법규를 위반하거나 재산 범죄를 범한 사람을 대상으로 부과된다. 두 활동가에게 부과하지 않았어도 될 사회봉사를 명령한 것이다.
사회봉사명령은 그 취지가 ‘속죄’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두 활동가에게 세월호참사 1주기 추모제를 주관한 것에 대한 속죄를 강요하는 것이다. 이는 두 활동가뿐만 아니라 세월호참사 1주기 추모제의 정당성 그 자체를 범죄로 보아 모욕하는 것과 다름없다.
두 활동가에게 유죄를 선고한 대법원 판결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 세월호참사 1주기 추모제를 헌신적으로 주관한 두 활동가에 대한 유죄를 선고한 것과 더불어 세월호참사 희생자와 피해자들과 연대하기 위한 시민들의 추모행동의 정당성을 부정했다는 점에서 더욱 유감스럽다.
2021. 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