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인권위 ‘농업 이주노동자 생존권·주거권 보장을 위한 개선방안 마련 권고’에 대한 고찰_위험 가설건축물에 1인당 월세 40만원… 안 될 일입니다(월간변론 107호)

2023-10-03 145

2020년 12월 캄보디아 여성 노동자 속헹씨가 경기도 포천에 있는 채소 농장 비닐하우스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 있었다. 한겨울에 난방장치가 작동하지 않은 사이 일어난 참변이었다.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가설건축물(컨테이너, 조립식 패널, 비닐하우스 내 가설 건축물 등)을 ‘기숙사’라 부르며 이곳에서 거주하고 있었는데, 이 사망사건으로 이주노동자들의 충격적인 주거 실태가 세상에 조금 알려졌다.

사람이 비닐하우스 안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싶은데, 놀랍게도 고용노동부는 이러한 주거 환경을 묵인해왔다. 고용노동부는 ‘외국인근로자 숙식정보 제공 및 비용징수 관련 업무지침’에서 이같은 임시 주거시설에 대해서도 숙박비 징수 상한을 정해둬 사실상 이주노동자들이 가설건축물안에서 주거하는 것을 인정했다. 심지어 이 지침은 숙식비에 관해 “적법한 절차를 거친 경우” 사전에 공제할 수 있다고 함에 따라 노동자들의 임금에서 숙식비를 공제하는 것을 가능케 했다.

어차피 지불해야 할 숙식비를 임금에서 공제하는 것이 뭐가 문제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우리 근로기준법은 제43조 제1항에서 “임금은 통화(通貨)로 직접 근로자에게 그 전액을 지급하여야 한다”고 해 임금의 ‘직접지급 원칙’을 천명하고 있다. 이는 임금이 확실하게 근로자 본인의 수중에 들어가게 해 그의 자유로운 처분에 맡기고 나아가 근로자의 생활을 보호하고자 함이다(대법원 1988. 12. 13. 선고 87다카2803 전원합의체 판결).

문제는 이뿐이 아니다. 이 고용노동부 지침은 숙식비의 상한을 정하고 있는데, 숙식 비용과 직접 관련이 없는 월 통상임금을 기준으로 상한액을 정하고 있다. 숙식을 모두 제공하는 경우, 월 통상임금의 13%를, 숙소만 제공하는 경우 월 통상임금이 8%를 각 상한으로 임금에서 공제할 수 있는 것이다.

지침이 이렇다 보니, 4명이 비닐하우스 안에 있는 컨테이너에 방 1개, 화장실 1개, 부엌 1개 공간에서 거주하는데 한 사람당 40만 원 정도의 돈을 공제 당해 한 달에 160만 원의 월세를 내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속헹씨 사망사건 2년… 대체 무엇이 바뀌었나

고 누온 속헹씨의 사망 이후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1월부터 비닐하우스 내 컨테이너, 조립식 패널 등 불법 가건물을 숙소로 사용하는 경우 고용 허가를 내주지 않는 등의 지침을 마련했지만, 현실은 바뀌지 않고 있다. 위 사진은 포천이주노동자 센터가 최근 방문한 포천시 소재 채소 농장의 이주노동자들이 거주 하고 있는 가건물 기숙사.
▲  고 누온 속헹씨의 사망 이후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1월부터 비닐하우스 내 컨테이너, 조립식 패널 등 불법 가건물을 숙소로 사용하는 경우 고용 허가를 내주지 않는 등의 지침을 마련했지만, 현실은 바뀌지 않고 있다. 위 사진은 포천이주노동자 센터가 최근 방문한 포천시 소재 채소 농장의 이주노동자들이 거주 하고 있는 가건물 기숙사.
ⓒ 포천이주노동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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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 속헹씨 사망사건이 있은 지 이제 2년이 다 돼 간다. 과연 그동안 이주노동자들의 주거 환경은 얼마나 개선됐을까? 고용노동부가 2021년에 실시한 주거환경연구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농업 분야에서 근무장소(농장 안/농지 위)에 숙소가 있다는 응답이 대다수(사용자 75.1%, 노동자 88.1%)로, 숙소 형태도 주택, 오피스텔, 숙박시설(모텔 등)의 주거형 숙소보다는 여전히 비주거형 숙소가 70% 이상(사용주 77.6%, 노동자 71.4%)인 것으로 확인됐다.

고용노동부는 속헹씨 사망 사건 이후 부랴부랴 비닐하우스 내 가설건축물을 금지하겠다고 했었다. 그러나 비닐하우스 밖 컨테이너 등은 여전히 가능하게 했다. 결국 근본적인 해결은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 보니 이주노동자들의 주거 환경은 실질적으로 크게 나아진 것이 없다.

이에 따라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9월 16일 고용노동부장관에게 농업 이주노동자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받으며 건강하고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공공기숙사 설치와 합리적인 숙식비 기준 마련 등 지원대책을 강구하라고 권고했다. 당시 인귄위는 가설건축물의 여부뿐 아니라 위치까지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른 산업에 비해 농촌 분야는 여성 이주노동자들의 비중이 높은데, 사업주가 제공한 숙소가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농장 한가운데 가설건축물로 설치된 경우가 많아, 여성 이주노동자들은 야간에 인적도 드물고 다른 불빛도 없는 곳에서 생활하는 것에 불안과 공포를 느끼고 있는 경우가 많다.

더구나 상당수의 기숙사들은 위생 시설도 열악하여 화장실이나 욕실에 잠금장치가 없거나, 외부 공중화장실을 사용해야 하거나, 간이 형태로 욕실이 설치돼 있어 여성 이주노동자들의 건강과 안전에 취약점을 보였다.

마을 공동체가 작동할 수 있는 지역에 기숙사가 위치하면 안전 문제가 발생하였을 때 경찰에 신고하기 어렵더라도 마을 공동체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가설건축물 여부뿐만 아니라 기숙사의 위치 역시 중요한 고려 요소라 할 수 있다.”

뻔한 말이지만… 이주노동자도 사람이다

또한 인귄위는 사업주가 임금에서 숙식비 명목의 금액을 공제하는 것과 관련해서도 ‘근로기준법상 임금 직접지급의 원칙에 반한다’는 점을 지적하며 신속히 시정돼야 한다고 밝혔다.

나아가 고용노동부의 ‘외국인근로자 숙식정보제공 및 비용징수 관련 업무지침’의 ‘그 밖의 임시 주거시설’에 해당하는 비닐하우스 내 컨테이너 등은 사실상 기숙사로 인정하기 어렵고, 여전히 숙식비 공제와 관련하여 여전히 폐해가 확인되고 있으므로, 위 지침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고 농업 이주노동자의 생존권 및 주거권 보장을 위한 개선방안이 필요하다고 봤다.

구체적으로 국가인권위는 공공기숙사 설치 등 지원대책을 강구하고, 숙식비 공제를 가능하게 한 위 업무지침을 폐지하고 실제 이주노동자에게 제공되는 주거환경에 대한 정확한 실태조사를 통해 합리적인 숙식비 기준을 마련할 것을 권고했다.

최근 이주노동자 단체는 2020년 이주노동자 사망사건이 있은 지 2년이 다 돼 감에도 이주노동자들의 주거환경은 여전히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은 점을 지적하며 지난 9월 국가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너무 당연하고 뻔한 말이지만, 이주노동자도 사람이다. 특히 이주노동자들은 내국인 노동자들이 기피하는 곳에 노동력을 제공한다. 이들이 없으면 우리 사회는 돌아가지 않는다. 사람으로서, 우리 사회구성원으로서 건강하게 일할 권리가 있다. 정부는 보다 적극적으로 이주노동자들의 주거환경 개선을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김소리 변호사(법률사무소 물결, 월간변론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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