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조끼 입고 있는 분들은 매장 못 들어갑니다.”
“화장실 가려면 노조 조끼 벗고 가세요. 안 그럼 못가요.”드라마 <송곳>(원작 최규석)에서는, 사측이 노조 활동을 막기 위해 노조 조끼를 입은 직원들에게 사적 제재를 가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심지어 해당 드라마에서는 노측이 자신들의 노조 조끼가 위생상 문제없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조끼 오염도를 감정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도대체 노조 조끼가 무엇이길래 사측은 이리도 과민한 반응을 보이는 것일까.
노조 조끼에 대한 신경증적인 반응은 비단 사측만의 것은 아닌 듯하다. A는 2022. 1. 5. “불법파견 엄중 처벌! 모든 해고 금지! 노조할 권리 쟁취! 비정규직 철폐!” 등의 구호가 기재된 몸자보가 붙은 노조 조끼를 입고 판결문을 받기 위하여 서울남부지방법원에 방문했다.
그런데 서울남부지방법원 보안관리대원들은 「법원보안관리대 운영 및 근무내규」 제9조 제5항이 ‘청사 내 집회 및 시위와 관련된 물품을 휴대하거나 관련 복장(리본, 구호가 새겨진 조끼 등)을 착용한 경우에는 청사 출입을 차단한다’고 규정하고 있다는 이유로 A의 법원 출입을 제한하였다. 결국 A는 보안관리대원들과 30분간 실랑이를 벌인 끝에 가방으로 조끼의 글귀를 가리고, 직원들의 감시를 받으며 판결문을 발급받아야 했다고 한다.
법원 보안관리대원이 노조 조끼를 이유로 A의 법원 출입을 통제한 데에서는 유감스럽게도 단순한 내규를 넘어서는, 노동자와 노조, 노동운동에 대한 막연한 경계와 혐오가 느껴진다. 노동운동은 무질서하고 폭력적이며, 노조 조끼는 폭력성을 드러내는 상징처럼 이해된다.
그러나 노동조합 조직과 활동, 쟁의행위는 노동조합법에서 보호하고 있는 노동자의 당연한 권리이며, 폭력이나 파괴행위가 수반되는 쟁의행위는 노동조합법이 금지하고 있는 쟁의행위의 태양이다. 결국 노동조합 활동과 쟁의행위는 분명히 폭력·파괴행위와 다른 것으로서 구별되어야 함이 마땅함에도, 양자를 등치시켜 이해하는 노조에 대한 일련의 왜곡된 인식이 이번 사태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다행히도 국가인권위원회는 2022. 6. 7. 서울남부지방법원장에게, 위 보안관리대원들을 대상으로 「법원보안관리대 운영 및 근무내규」를 제정 취지에 맞게 적용함으로써 청사 내 집회 및 시위 가능성이 없는 민원인을 과잉 제지하지 않도록 직무교육을 실시할 것을 권고하였다.
국가인권위원회는 “A와 같이 법원 방문 목적이 분명하고 청사 내에서의 집회 및 시위 가능성이 없거나 낮아 A가 청사에 출입하더라도 법원의 기능이나 안녕이 침해될 우려가 있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에서, A가 집회 및 시위와 관련한 복장을 착용하였다는 이유만으로 청사 출입을 차단한 것은 헌법 제10조에서 보장하는 A의 일반적 행동자유권을 침해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시하였다.
실제로 다수 노동자들이 노조활동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사측으로부터 해고를 당하거나 각종 불이익 처분을 받고 있다. 노조 조끼는 노동조합법이 보장하는 적법한 노동운동의 한 수단이자, 노동자 사이의 적극적인 연대를 드러내는 정체성이다. 노동자가 노조 조끼를 착용했다는 이유로 잠재적인 범죄자 취급을 받아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노조 조끼는 위험한 물건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