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의 이익’이란 이름으로 누구도 차별 받지 않길 바라며
[시선] 국가인권위원회 ‘2021. 8. 27.자 20진정0314600 결정’에 대한 소고
김범준 변호사(법무법인 덕수, 월간변론 편집위원)
“코로나 확진자 발생, 역학조사 후 동선공개”, 올 초까지만 해도 하루에도 몇 번씩 휴대전화를 울려대던 문자 메시지 내용이다. 건조한 단어들의 나열에 불과하지만, 해당 문자메시지에서 방역수칙을 위반한 사회구성원에 대한 국가의 강력한 처벌의지가 느껴지는 것이 기분 탓은 아닐 거다.
올 초까지만 하더라도 우리의 소위 K-방역은 코로나 확진자의 동선을 공개하는 방법을 택했다. 시계를 작년 5월로 되돌려보면, 방역 당국은 코로나 확진자의 동선과 더불어 연령대, 성별, 거주지, 직장명까지 공개했다. 대한민국은 코로나 확진자의 과도한 정보 공개의 필요성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것이 “효율적”이고 “효과적”이며 “방역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고 응답했다.
대단히 효율적인 K-방역은 작년 5월경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2020. 5. xx. 확진판정(OO OO번 확진자), OO대 남성, OO OOOO 거주, 5. 3. 이태원 방문 사실’의 내용을 공개하고, 블로그를 통해 상기인의 근무지명(OO백화점 O층 OOO 근무)을 비롯한 동선 일부(세무서 및 은행 방문 사실 등)를 추가로 공개했다.
그런데 당시 2020. 5. xx. 코로나 확진자 중 OO시 거주자는 단 1명이었고, 구체적인 직장명까지 공개되면서 상기인은 쉽게 특정될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상기인이 방문한 클럽이 성소수자들이 다니는 클럽이라는 정보가 결합하면서, 상기인은 방역수칙 위반에 대한 비판을 넘어서 자신의 성적지향성에 대한 사회적 주목과 비난의 대상이 되어야 했다.
근대화를 설명하는 개념 중에 ‘공헌적 권리(Contributory Rights)’라는 것이 있다. 근대국가가 개별 시민이 국가 프로젝트에 기여하는 정도에 따라 차등적으로 시민권을 부여함으로써 근대화를 견인했다는 이론이다. K-방역이 국가적 방역 프로젝트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일부 사람들을 방역 정책의 적으로 삼고, 동선 공개를 통해 사생활의 자유와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침해하고, 가차 없이 시민권(citizenship)을 박탈해버리는 것을 보며, 공헌적 권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인공지능이 논의되는 시대에 K-방역에서 케케묵은 근대성의 흔적을 찾게 되는 것이 실로 경악스럽다.
많이 늦은 감이 있지만, 지난 8월 국가인권위원회는 위 사건과 관련하여, “OO시장에게, 코로나19 확진자 동선 공개와 관련하여 필요 이상의 과도한 정보공개로 인해 대상자의 인격권 및 사생활의 자유가 침해되는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할 것을 권고”하였다.
우리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 때로 많은 것을 희생하고 감내한다. 허나 우리의 희생이 곧 시민권의 포기로 이해되지 않길 바란다. 또한 ‘공공의 이익’이라는 이름으로 누군가가 배제되고 차별받지 않길 바란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이번 결정을 진심으로 환영한다.
- 11.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