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자회견문
학교도서관에 대한 검열, 성교육 도서 대규모 폐기 사태를 초래한 경기도교육청 강력 규탄한다
경기도 내 학교도서관에서 2,528권의 성교육·성평등·페미니즘 관련 도서가 폐기되었다. 2023년 11월 경기도교육청이 각 학교에 “부적절한 논란 내용이 포함된 도서에 대해 협의해 조치하라”는 두 차례의 공문을 발송하고, 2024년 2월에도 ‘(폐기)처리된 도서 집계 목록’을 제출하라는 공문을 보낸 결과다. 경기도교육청은 성교육 도서에 대한 처리 결과에 ‘제적 및 폐기’와 ‘열람제한’ 단 두 가지만을 기재하도록 해놓고도, 성교육 도서에 대한 폐기를 압박한 것이 아니며 각 학교에서 자체 판단한 내용이라고 발뺌하고 있다. 이번 국가인권위원회 공동진정인으로 참여한 한 시민의 말처럼 ‘부끄러움은 왜 시민들만의 몫이어야 하는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시대착오적인 발상’, ‘어리석은 과거로 회귀하는 행위’, ‘시민이 아닌 민원인을 위한 행정’
폐기된 성교육 도서의 규모에 경기도민뿐만 아니라 대다수 시민들은 황당함을 감출 길이 없다. 성에 대한 학생들의 구체적인 인식과 실태에 기반해서 성교육을 강화하고 확대해도 모자란 시기에 성교육 도서를 폐기하도록 종용한 경기도교육청의 행위는 말 그대로 ‘시대에 역행하는 반교육적 행위’다. 더 참담한 것은 지금의 사태가 성교육 도서를 ‘유해도서’ 혹은 ‘음란도서’라고 낙인찍는 일부 보수단체의 극단적인 민원에 경기도교육청이 적극 동조한 결과라는 점이다. 성에 대한 불합리한 편견,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불식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할 교육청은 오히려 그러한 편견과 혐오를 조장하고 교육현장에서 보장되어야 할 주체들의 권리를 훼손하고 있는 것이다.
성교육 도서에 대한 경기도교육청의 폐기 압박은 첫째로 학생의 교육받을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한다. 헌법과 교육기본법, 경기도 학생인권조례에 따라 교육 현장에서 학생은 누구나 차별과 편견 없이 교육을 받을 수 있어야 하며, 이는 교육의 기회를 균등하게 보장받고 차별 없이 교육에 참여할 권리뿐만 아니라 교육 내용에 있어서도 어떠한 차별과 편견이 담기지 않는 내용을 교육받을 권리를 포함한다. 학교도서관의 성교육 도서는 정규 교육과정 외에도 학생들이 자신의 몸과 주체성에 대한 긍정과 인정, 타인과 평등하고 안전하게 관계맺는 방식,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아니라 다름을 존중하고 공존할 수 있는 다양성과 포용의 가치 등을 학습하는 중요한 통로다. 경기도교육청은 학교도서관과 성교육 도서를 그런 열린 통로로 만드는 ‘부적절한 논란’으로 만들어버렸다. “책의 내용에 대해 공론화하고 토론하는 장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책 읽을 권리와 자유를 침해하고, 생각하고 토론할 권리를 억압하는 행동은 반교육적 행위”라는 한 교사의 비판, “읽고 싶은 책을 볼 권리를 뺏지 마세요”라고 외치는 학생의 목소리를 새겨야 할 이유다.
또한 경기도교육청의 행위는 학생의 권리와 동시에 교사 및 사서교사의 노동권 또한 심각하게 저해한다. 교육현장에서 교사는 교육과 관련한 결정에 있어 외부의 부당한 압력 없이 헌법과 법령이 정한 기준에 따라 자신의 업무를 수행할 권리를 기본권으로서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한다. 집요하고 부당한 민원과 압박으로부터 교사를 보호하고, 교사가 학교도서관 장서에 전문성을 가지고 학생들의 수준과 조건에 따라 필요한 배움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에 힘 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로 교육청의 책임이다. 하지만 경기도 교육청은 차별과 편견이 없도록 다양성을 확보하는 방안을 찾기보다 손쉬운 검열을 택함으로써 교사가 안전하고 존엄하게 노동할 권리 또한 침해했다. “가리고 숨기는 것이 아니라 알려주고 판단할 수 있게 돕는 것이 교육”이라고 생각하는 교사, “학생들 한 명 한 명 그대로가 그저 빛나고 소중하다는 것을 가르치고 싶”다는 교사들의 바람이 교육현장에서 사라지는 것은 과연 누구에게 이로운 교육이란 말인가.
무엇보다 폐기된 2,528권의 성평등․성교육 도서는 바로 국제인권규범과 교육현장의 주체들이 필수적이라고 이야기하는 ‘포괄적 성교육’을 실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여성, 아동, 청소년, 성소수자에 대한 불합리한 혐오 선동에 제대로 대처하지도 못하거나 동조하면서, 학생들이 학교에서 평등하고 안전한 성교육을 받을 수 있다고 자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우리는 경기도교육청의 이번 행위를 묵과한다면 다시 또 다른 기준으로 그 어떤 도서든 겸열의 대상에 오르내리고 ‘금서’로 지목되며 공공의 장소에서 퇴출될 수 있다는 깊은 우려 속에서 572명의 공동진정인들과 함께 국가인권위원회에 차별 시정을 요구하는 진정을 제기한다. 우리는 경기도교육청이 차별적이고 부당한 민원을 이유로 학교도서관에서 정당한 이유없이 성교육 도서가 폐기, 열람제한되지 않도록 지침을 마련하고, 학생 및 교사의 권리를 보장하는 등 필요한 모든 조치를 다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한다. 교육현장에서 평등과 자유를 제거하려는 시도는 절대 용납될 수 없다. 지금이라도 부끄러움의 몫을 깨닫고 시정에 나서는 것이 경기도교육청이 다할 수 있는 최선의 책임이다.
2024년 6월 12일
전교조 경기지부, 경기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차별금지법제정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