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기고] 우리가 함께하는 이유 : 제2회 민변 국제인권기행 후기

2024-03-22 176

우리가 함께하는 이유 : 제2회 민변 국제인권기행 후기

장범식

부족한 글솜씨로 당시의 느낌을 그대로 전달할 수 없는 게 아쉽습니다. 그래도 참여자분들에게는 기억을 되살리는, 참여하고 싶은 분에게는 소개의 글이 되기를 희망하면서 짧게 제가 느낀 기행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첫날: 어색하기도 반갑기도 한 만남

첫날 공항에서 같은 비행기로 대만으로 출발할 일행을 만났습니다. 처음 인사를 나누는 분도 있었고, 오랜만에 만나는 분도 있었습니다. 의외였던 건 한 자릿수의 나이를 가진 참여자들이었습니다. 어린 참여자들은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았습니다.

대만에 도착하자 다른 항공편으로 먼저 도착한 분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아직 외국에 온 느낌을 받지는 못했지만 뭔가 “민변 모임”에 왔구나라는 느낌은 확실히 받을 수 있었습니다. 대만에서는 10대 참여자들도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함께 저녁식사를 하고, 타이베이시의 101타워 전망대에 올라갔습니다. 맛있는 딤섬을 먹고 전망대에서 평소와 다른 야경을 보면서 즐거운 기행을 기대하게 되었습니다.

 

둘째날: 인권을 위해 싸우는 사람들

이번 기행에는 2번의 간담회가 있었습니다.

오전에는 국제엠네스티 대만지부와의 간담회가 있었습니다. 대만의 역사적인 순간들에 대한 설명과 국제엠네스티 대만지부의 과거와 현재의 활동, 특히 사형제와 성소수자 이슈, 홍콩 이슈에 대해 들을 수 있었습니다.

 

소개와 설명 및 질의응답을 주도적으로 해주신 Liu Lee Chun Ta, “치타(Cheetah)”님은 한국에서 집회에 참여했다가 기소되어서 벌금형을 선고받은 적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대만에서 해바라기 운동 당시 국회를 점령하고 시위를 한 일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셨습니다. 해바라기 운동은 2014년 3월 18일부터 4월 10일까지 23일 동안 대만의 대학생과 사회운동세력이 대만의 국회인 입법원을 점령한 일입니다. 해바라기 운동을 주도하였다는 이유로 대만 정부에 의해 ‘선동죄’ 혐의로 기소되어 재판받은 223명은 2017년 3월말 ‘자발적 집회에 의한 시민불복종’으로 보아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치타”님도 그 중 1명이었습니다(박수). 당시 전기를 끊고 물을 끊는 등 점거를 멈추기 위한 여러 행위가 있었지만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문제가 해결되었고, 온라인을 통해 소식을 전하는 방법으로 점거활동을 이어갔습니다. 해바라기 운동은 대만에서 정권 교체가 이뤄질 수 있었던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촛불혁명과 비교되기도 하는 해바라기 운동에 대해 들으면서 “함께함”의 중요성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대만반려권익추인연맹(台灣伴侶權益推動聯盟, 약칭 반려맹)과의 만남도 인상적이이었습니다. 시우웬(許秀雯, Victoria Hsu) 변호사님은 반려맹의 창립회장으로 결혼 평등, 트랜스젠더 인권 차별금지 증진의 경험을 공유하였고, 여러 질문에 답변을 해주셨습니다. 아시아 최초의 “동성혼 법제화”, “성별정정에 있어서 수술을 요구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판결” 등 여러 중요한 사례를 이끌어 낸 반려맹의 활동을 들으면서 세상을 바꾸기 위한 변호사의 모습에 대한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별한 승소 비법이 있었던 건 아닐지 질문했지만 “나는 단 하루도 쉬지 않았다.”, “단지 소송만으로 변화를 이끌 수는 없고 변화를 위한 모든 방법을 고민하고 실행해야 한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제 단편적인 질문에 “꼼수”는 없으니 “정도”를 걸으라는 진리를 전달해 주셨습니다. 단단하고 큰 바위를 깨뜨리는 방법은 “레이저”를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끝없이 “물방울”을 부딪히는 것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되새기게 되었습니다(정말 그 방법밖에 없는 것이냐고 반문하고 싶기는 했습니다).

대만이 성소수자에 열려있을 것이라는 저의 막연한 생각과는 달리 대만은 성소수자에게 우호적인 사회가 아니었습니다. 대만 정부가 동성혼을 2019년 법제화한 것은 치열한 싸움과 부단한 노력의 산물이었습니다.

 

셋째날: 일정은 우리가 정하는 것

3일차에는 대만의 국립인권박물관 투어, 유명관광지인 지우펀 거리 관광, 스펀역 천등날리기 체험, 탄광촌이었던 황금박물관 방문이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오전에 방문한 국립인권박물관은 군사법원과 구치소가 있었던 곳입니다. 군사법원에서는 정치범에 대한 재판이 진행되었고 정치범에 대한 구금이 있었습니다. 이곳에 잡혀온 정치범은 변호인의 조력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졸속적인 재판을 받았습니다. 박물관에 있는 해태 조각은 정면을 보지 않고 있었습니다. 공식적 견해는 아니지만 군사법원에서 이루어지는 불공정한 재판을 보고 싶지 않아 고개를 돌리고 있게 조각했다고 생각한다는 가이드의 설명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이루어지는 여러 재판을 해태는 어떻게 바라볼지 궁금했습니다.

오전부터 내리는 비가 점점 굵어졌습니다. 황금박물관에 갈 때는 우의를 입고 이동해야 했습니다. 다음 장소인 지우펀에 갔을 때는 혼잡한 시장골목을 비를 맞으면서 다니기 어려웠습니다. 결국 풍등날리기는 포기하고 저녁식사를 하러 갔습니다.

일정이 여러 번 변경되었지만 모두의 의견을 반영한 일정 변경 자체에는 불만이 없었습니다. 일정은 정해진 대로 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정하는 것이니까요. 당일 일정도 일찍 끝났고 바쁜 일정으로 서로 이야기를 나눌 시간도 부족했기에 호텔로비에서 간단하게 편의점에서 산 주전부리를 먹으면서 편안히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다들 오전부터 비를 맞고 경사로를 긴 시간 걸어 다니느라 피곤했지만 즐겁게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오후 10시경 호텔 로비를 이용할 수 있는 시간이 끝나자 끝나지 않은 서로의 이야기를 나눌 다른 공간이 필요했습니다. 다행히 숙소 근처에 늦게까지 영업을 하는 포장마차를 찾아 못다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안주는 메뉴 요정님께서 주문을 해주셨는데 모두 맛있어서 감탄을 했습니다. 대만에 와서 느낀 점을 공유하고 서로에 대해서도 알아가는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육아로 편히 쉬지 못하던 분도 잠시 나와 휴식을 취했습니다.

 

넷째날: 따로 또 같이

4일차에는 여러 이유로 공식일정을 따르지 않는 팀이 있었습니다. 공식일정은 고궁박물관을 갔다가 기암괴석으로 유명한 예류해양국립공원 가는 것이었는데, 대만의 228 사건을 기념하는 집회에 참여하고자 하는 팀도 있었고, 시내 관광을 선택한 팀도 있었습니다.

대만의 228 사건은 1947년 대만에서 벌어진 국민정부에 대한 반정부 봉기와 이에 대응해 국민정부에서 비무장 반정부 시민들을 학살한 사건입니다. 사망자가 약 28,000명으로 추산되는 가슴 아픈 사건이었습니다.

저는 대만 시내에서 228 사건을 기념하는 집회현장을 보았습니다(저는 집회에 참여하지는 않았습니다). 집회 참여자가 모두 검은 옷을 입고 질서정연하게 행진을 한 뒤 발언을 하는 모습이 그 주변 많은 관광객과 시민들이 축제를 즐기는 모습과 사뭇 대조적이었습니다.

따로 기행을 즐기던 일행은 오후 3시쯤 서문정에 위치한 망고빙수집으로 모였습니다. 망고빙수를 먹고 주변에서 지인에게 줄 선물도 구입했습니다. 공식일정이 끝나고 숙소에 돌아온 뒤 단합의 밤을 진행하기 위해 어제 간 포장마차를 다시 찾았습니다. 전날보다 좀 이른 시간에 갔더니 이미 만석이라 좀 기다려야 했습니다. 다시 메뉴 요정님의 주문으로 맛있는 안주를 먹으며 시원한 대만의 병맥주를 마셨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무척 즐거웠다는 건 기억납니다.

 

마지막날: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어느덧 마지막 날이 되었습니다.

4박 5일이라는 시간이 길다고 생각했는데 지나고 나니(지파이도 못 먹고, 곱창국수도 못 먹고, 대만 드라마에 나온 명소와 반려맹의 “애니”가 운영한다는 카페도 못 갔는데) 금방 지나갔습니다. 오전에 역사박물관에 갔다가 점심에 대만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한식으로 했습니다. 대만에서 불고기에 순두부찌개를 먹는 건 즐거웠습니다.

외국에 나가는 게 떠날 때는 즐겁지만 금세 집이 그리워지게 마련인데 이번 기행은 지금도 아쉬운 마음이 더 있습니다. 좀 더 친해질 수 있었는데, 좀 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는데 하는 마음이요.

코로나로 만나지 못하다 이제 만나게 되었는데 저는 아직 만남에 주저하고 있었습니다. 온라인이 더 좋아한다는 착각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기행에서 느낀 저는 사람을 좋아하는 수줍은 사람이었습니다.

조금 더 제 마음을 일행분들께 전달하지 못한게 아쉽습니다. 함께한 시간이 좋았고 다시 함께 하고 싶다고요. 좋은 추억을 만들어주신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 정말로 꼭 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