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성명] 해외입양의 불법행위에 관한 법원의 반쪽짜리 판결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
서울중앙지법 민사18부(재판장 박준민 부장판사)는 16일 원고 신송혁(이하 ‘원고’라고 함)이 국가와 사회복지법인 홀트아동복지회(이하 ‘홀트’라 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2019가합502520)에서 홀트에게 1억 원 배상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이번 판결은 입양기관이 해외입양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불법행위를 자행하였고, 그로 인해 입양인에게 회복할 수 없는 손해가 발생하였다는 것을 인정하였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대한민국은 부모의 양육이 어려워 국가의 보호가 필요한 아동에 대하여 국내복지 체계를 구축하여 보호하는 대신 해외로 입양 보내는 손쉬운 방법을 채택했다. 1974년부터 1988년까지 매해 5천에서 8천명 사이의 아동을 해외로 입양 보냈고, 우리나라는 국제사회에서 ‘아동 수출국’이라는 오명을 얻었다. 이 과정에서 부모가 있는 아동까지 고아로 처리해 허위 기아호적을 창설한 후 해외입양을 보내는 ‘고아호적’ 관행이 자리 잡았다. 고아로 처리하면 친생 부모의 동의를 생략할 수 있어 한층 더 신속하고 편리하게 입양절차를 진행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원고의 경우에도 부모가 존재하였음에도 입양서류 상 고아로 처리되어 미국으로 입양 보내졌다.
한편 대한민국은 유사 사례를 찾아볼 수 없는 ‘대리입양’ 제도를 도입하여 양부모에 대한 심사를 국내에서는 할 수 없게 만들었다. 아동 양육에 부적절한 가정에 입양된 결과 해외 입양아동의 생명과 신체에 위해가 야기되었던 사례가 끊임없이 발생하였다. 원고도 첫 번째 입양가정에서 학대 피해와 파양을, 두 번째 입양가정에서 재차 학대 피해를 경험하였다. 학대와 유기 피해뿐만 아니라 원고는 대한민국과 입양기관, 입양부모의 방임으로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지 못한 결과 2016년에 미국에서 한국으로 추방되었고,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37년 만에 낯선 언어와 문화, 생활터전에 던져졌다.
본 소송에서 홀트와 대한민국은 당시 법과 규정에 따라 합법적으로 입양 절차를 진행하였을 뿐 위법한 행위를 한 바 없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재판부는 홀트에 대하여 원고의 법정후견인으로서 미국에서 입양절차가 최종적으로 완료될 때까지 원고에 대한 보호의무를 ‘실질적’으로 이행하였어야 하는데, 원고가 미국으로 출국한 시점 이후부터는 어떠한 보호의무도 이행하지 않았다고 판단하였다. 또한 구 입양특례법(1990. 12. 31. 법률 제4300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구 입양특례법’이라 함)의 취지상 홀트에게는 원고의 국적취득을 확인할 의무가 존재한다고 인정하였고, 본 사건에서 홀트는 이러한 원고에 대한 국적취득 확인의무를 위반하였다고 판단했다. 이번 판결은 해외입양기관의 법정후견인으로서의 실질적인 보호의무와 국적취득확인의무를 명확하게 확인하고 이를 위반한 입양기관의 불법행위를 인정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존재한다. 하지만 아래와 같은 법원의 판단에 있어서는 잘못된 사실 인정과 법리 오해가 존재하므로 심각한 유감을 표명한다.
첫째, 홀트의 고아호적 창설행위에 대하여 위법성을 인정하지 않은 점은 납득하기 어렵다. 재판부는 무적자의 정의에 대하여 구 호적법(1978. 12. 6. 법률 제3147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구 호적법’이라 함) 제20조의 “부 또는 모의 호적에 입적할 자를 제외하고 호적의 기재가 없는 자”라는 규정을 ‘부 또는 모가 호적에 입적하려는 의사가 없었던 경우’로 확대하여 해석 하고 있다. 이러한 해석 하에 당시 원고의 부모는 원고에 대한 출생신고를 하지 않았고 양육의사를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므로 원고의 경우 무적자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부모가 존재하고 부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라 하더라도 부모에게 양육의사만 존재하지 않는다면 고아호적을 만들 수 있다는 것으로 법에 명시되지 않은 ‘양육의사’의 존부를 무적자의 정의 요건으로 추가하고 있는 것이다. 허위 고아호적 관행은 공문서 상에 친생부모 관련 정보를 고의적으로 누락시킴으로서 입양인의 친생부모를 알 권리를 원천적으로 침해한다. 법원은 이와 같은 고아호적 관행의 중대한 위법성을 판결을 통해 확인했어야 했다.
원고의 법정후견인의 지위를 가졌던 홀트는 피후견인인 원고의 이익을 위해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를 가지고 후견업무와 입양업무를 수행했어야 한다. 당시 홀트는 원고의 아동카드를 통해 친모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으므로 원고의 부모를 찾아서 가족관계의 실질에 부합하게 출생신고가 이루어지도록 한 후 해외입양을 추진했어야 함에도 그러지 않았다. 입양절차에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을 단축하고, 친부모와의 관계 단절을 원하는 입양 부모의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허위 고아호적을 창설하였던 것이다. 이와 같은 홀트의 행위에 대해 위법성을 인정하지 않은 법원의 판결은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
둘째, 미국법원의 입양명령이 내려진 시점 이후부터는 홀트의 사후관리의무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법원의 판단에 대해 심각하게 유감을 표한다.
당시 보건사회부는 입양사업지침을 시달하여 입양아동의 입양 수령국 국적취득시까지 입양알선기관의 사후관리의무가 존속함을 강조하였고, 그 취지에 따라 1995. 1. 5. 제정된 구 입양촉진 및 절차에 관한 특례법에서는 입양기관의 사후관리의무가 입양수령국의 ‘국적취득’ 시까지라는 점을 법률로 명시하였다. 이와 같은 근거를 도외시하고, 홀트의 사후관리의무 기간을 축소하여 인정한 것은 심히 부당하다.
셋째, 1심 재판부는 홀트가 국외입양수수료로 분만비, 판공비 등을 지출하거나 부동산을 취득하였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사실 인정을 하면서도 홀트가 입양을 통해 부당한 재정적 이익을 취득한 사실을 인정할 증거가 없고 설령 부당한 이득을 취하였다고 하더라도 그로 인해 원고에게 손해가 발생하였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입양을 통해 재정적 이익을 취하는 것은 아동매매에 해당하는 것으로 원고를 포함한 해외입양인의 인격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것이다. 입양 실비 외 추가 수수료를 받아왔다는 점이 국가기록원의 문서 등 증거자료에 의해 확인됨에도 불구하고 그와 같은 중대한 위법행위를 인정하지 않은 법원의 판단에 심히 유감을 표한다.
넷째, 무엇보다 해외입양제도를 반인권적으로 작동하게 한 최종 책임자인 대한민국의 책임을 전면 부인한 판결에 대해 심각한 유감을 표명한다. 법원은 국가는 아동의 입양에 관한 요건과 절차에 필요한 사항을 정하는 일반적 의무만을 부담한다고 판시하며 국가의 불법행위를 부인하였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자국 국민을 보호하고 그들의 기본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보장할 의무가 있고, 단순히 제도를 설계할 일반·추상적인 의무만을 부담한다고 볼 수 없다. 법원의 판결대로라면 국가가 제도만을 설계해두고 실제로는 개별 국민을 보호할 책임을 방기하였을 때 국가는 아무런 법적 책임을 지지 않게 된다는 결론에 이르는 것인바, 이러한 결론은 매우 부당하다.
또한, 대법원은 대한민국 헌법 전문, 제2조 제2항, 제10조에 따라 도출되는 국민에 대한 피고 대한민국의 보호의무가 국민의 생명, 신체, 재산 등에 대하여 절박하고 중대한 위험상태가 발생한 경우 국가로서 부담하는 의무를 의미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대법원 2005. 6. 10. 선고 2002다53995 판결). 헌법재판소도 대한민국이 헌법 제10조에 따라 국민에 대해 가지는 보호의무가 개인의 방어권일 뿐만 아니라, 국민이 제3자에 의하여 인간의 존엄성을 위협받을 때 부담하는 보호의무를 의미한다고 설시한 바 있다(헌법재판소 2011. 8. 30. 선고 2006헌마788 결정). 이처럼 법원은 국민에게 생명, 신체, 재산 등에 대한 위험상태 등 기본권 침해상황이 발생했는지 여부를 기준으로 국가의 보호의무 성립을 판단하는 법리를 확립하고 있다. 원고에 대하여 이루어진 위법한 해외입양, 두 입양 가정에서의 학대와 파양, 시민권 미취득과 그로 말미암은 강제추방 등 일련의 과정에서 원고의 안전, 생명, 인간의 존엄성은 지속적으로 중대하게 침해되었다. 이러한 피해를 입은 원고에게 국가의 개별적·구체적 보호의무를 인정하지 않은 점은 납득하기 어렵다.
다섯째, 구 입양특례법상 정부는 입양알선기관에 대한 감독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법원은 후견인으로서의 보호의무 및 국적취득확인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홀트의 불법행위책임은 인정하면서, 이와 같은 홀트의 불법행위에 대해서 관리· 감독권을 행사하지 않은 국가의 책임은 인정하지 않았다. 입양기관에 대한 사업지침을 하달하는 등 조치를 이행하였고, 그 조치를 미흡한 것으로 평가할 수는 있어도 불법행위에 이르렀다고 볼 수는 없다는 이해하기 어려운 판결을 내렸다. 형식적인 지침만을 하달하고서 뻔히 이루어지는 입양기관의 불법행위를 좌시하고 방기한 것이 과연 감독권을 행사한 것이라고 볼 수 있는가. 그렇다면 과연 국가기관에 감독권을 주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 것인가.
여섯째, 대리입양제도는 입양부모가 아동을 직접 대면하지 않고도 입양절차를 대리하여 추진할 수 있도록 하여, 입양부모의 적격 심사를 할 수 없고 입양아동과 입양가정의 적응상태도 파악할 수 없어 졸속으로 해외입양을 진행하게 하는 제도이다. 이와 같은 대리입양제도는 그 자체로 아동의 행복추구권과 인격권을 침해하는 위헌적인 제도임에도 불구하고 대리입양제도를 규정한 구 입양특례법 제9조, 제12조, 제13조의 내용이 위헌이 아니라고 본 법원의 판단은 심히 유감이다.
대한민국은 아동 해외 수출에 앞장섰을 뿐, 입양아동에 대해 보호의무 및 사후관리의무를 이행하지 않았고, 최소한의 관리·감독의무를 하지도 않았다. 아동의 해외수출을 통해 달러를 벌어들인 국가는, 무고한 해외 입양아동이 겪어야 했던 삶 전체를 점철했던 고통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가지지 않았고, 또 알고도 모른 척 했다. 이러한 구조적인 문제를 완전히 간과하고 단순히 입양기관의 책임만을 인정한 법원의 판결을 강력히 규탄한다.
2023. 5. 18.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아동청소년인권위원회, 공익인권변론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