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에 있어 대법원의 ‘사회통념상 합리성 법리’의 폐기를 환영한다. 그러나 대법원의 집단적 동의권의 남용 이론에 대해서는 심히 우려를 표명한다.
대법원은 5월 11일, 사용자가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면서 근로자의 집단적 동의를 받지 못한 경우, 노동조합이나 근로자들이 집단적 동의권을 남용하였다고 볼 만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해당 취업규칙의 작성 또는 변경에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 유효성을 인정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대법원 2017다35588, 35595(병합) 전원합의체 판결). 종래 대법원은 이른바 ‘사회통념상 합리성 법리’ 하에 취업규칙의 불이익 변경에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그에 관한 근로자의 집단적 동의가 없다고 하여 그 효력을 부정할 수는 없다고 판단해 왔는데, 이를 명시적으로 폐기한 것이다.
그동안 법원이 일본 최고재판소 판례의 ‘합리적 변경 법리’를 그대로 받아들였고, 근로기준법에 명문의 규정이 있는 우리나라에서 받아들이기 힘든 해석론을 채택했다는 비판이 많았다. 특히 일본은 노동계약법 제10조에서 위 법리를 명문으로 규정하였으나 우리나라는 위 법리를 명문으로 규정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했다.
사회통념상 합리성 법리로 인해 야기된 불명확성은 그 폐해가 심각했다. 무엇보다 무엇이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는 것인지에 대해 사전에 예측하는 것이 곤란했다. 사회통념상 합리성 유무는 다른 근로조건의 개선 상황, 동종 상황에 대한 국내의 일반적 상황, 취업규칙 변경에 따라 발생할 회사의 경쟁력 강화 등 근로자가 사전에 정확하게 판단할 수 없는 사항들로 결정되어 왔고, 그로 인해 심급에 따라 사회통념상 합리성 판단이 바뀌는 등 많은 혼란이 야기되어 왔다.
사회통념상 합리성 법리의 폐기에 대한 주장이 지속되어 왔음에도 최근까지도 하급심에서는 사회통념상 합리성 법리를 근거로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의 유효성을 인정하여 왔다. 대법원은 다만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는 경우에는 그 동의를 받도록 한 근로기준법을 사실상 배제하는 것이므로 제한적으로 엄격하게 해석하여야 한다는 한계를 제시하여 왔을 뿐이다.
이번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이러한 비판에 조응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앞으로 사회통념상 합리성이라는 불명확한 개념을 방패삼아 정부가 노동정책을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것에도 제동을 걸 수 있게 되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사회통념상 합리성 법리가 강행규정인 근로기준법 제94조 제1항 단서의 명문규정에 반하고, 근로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한다는 헌법 제32조 제3항 및 근로조건의 노사대등결정 원칙을 규정한 근로기준법 제4조를 명시하여 근로자가 근로조건을 자유의사에 따라 결정할 권리는 헌법과 법률이 보장하는 원칙을 실현하는 중요한 절차적 권리임을 천명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그러나 대법원은 취업규칙을 변경할 필요성이 객관적으로 명백히 인정되고, 근로자의 집단적 동의를 구하고자 하는 사용자의 진지한 설득과 노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근로자 측이 합리적 근거나 이유 제시 없이 취업규칙의 변경에 반대하였다는 등의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동의가 없는 취업규칙의 불이익변경이 유효한 것으로 바뀐다는 법리를 새로이 설시했다. 대법원의 이러한 집단적 동의권의 남용 이론에 대해 다음과 같은 우려를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에 대해 근로자의 반대 의사표시와 상관 없이 집단적 동의권의 남용이라고 보아 취업규칙의 불이익 변경이 유효하다고 보게 된다면, 근로기준법의 강행적 효력을 사실상 잠탈할 위험이 있다. 즉 동의권 남용이라 해석하는 과정에서 권리남용의 법리가 남용될 우려가 남아있다.
둘째, 대법원의 이번 동의권 남용 이론은 단체협약에 ‘해고에 대하여 노동조합과 사전 합의한다’는 취지의 규정을 둔 경우 노조의 거부가 있음에도 노조가 동의권을 남용하였다고 보아 해고가 유효하다고 보는 판례 법리를 상기시킨다. 대법원은 ‘징계사유의 객관적 명백성’, ‘사용자의 합의를 위한 성실하고 진지한 노력’에 대한 ‘노조의 합리적 근거나 이유 제시 없는 반대’를 동의권 남용의 근거로 판단하고 있다(대법원 2007. 9. 6. 선고 2005두8788 판결 등).
그러나 위 동의권 남용 법리는 단체협약상 합의 조항을 무력화시킨다는 수많은 비판이 있었다. 그럼에도 대법원은 위 동의권의 남용 이론을 다시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에 차용하였다. 그러나 강행규정으로 근로자의 동의권을 보장하고 있는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에 위 이론을 그대로 차용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셋째, 집단적 동의권을 남용한 경우의 판단 기준으로서 대법원이 제시한 ‘취업규칙을 변경할 객관적으로 명백한 필요성’은 여전히 개념적으로 모호하고, 법원이 사회통념상 합리성 이론에서와 같이 근로자가 사전에 알 수 없는 사정들을 들어 취업규칙 변경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것이 심히 우려된다.
넷째, 대법원이 제시한 사용자의 외형적 협의를 위한 노력만으로 근로자의 반대의사표시에도 불구하고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을 유효하다고 보아 동의권을 무력화하는 것이 타당한지 의심스럽다. 민법상 권리남용의 법리는 주관적으로 그 권리행사의 목적이 오직 상대방에 고통을 주고 손해를 입히려는 데 있을 뿐 행사하는 사람에게 아무런 이익이 없는 경우이어야 하는데, 단순히 사용자의 성실한 노력이 있었고 근로자 측의 합리적 근거나 이유 제시가 없다는 사정만으로 근로자 측이 위와 같은 권리남용의 주관적 요건을 갖추었다고 볼 수 없다. 노사 양측이 성실히 노력하였음에도 합의가 안 될 수 있는데, 그 경우에는 근로자 측이 사용자를 괴롭히려는 목적이 없었던 이상, 합의 없음의 책임을 근로자 측에 전가할 수 없다고 해석해야 한다.
다섯째, 노동법 체계에서의 근로자는 민사법에서와 달리 자유로운 개인이 아닌 종속적 지위에 놓여 있고, 그와 같은 종속적인 지위로 인해 동의권 행사가 사실상 제한되고 동의권을 남용하는 경우 자체를 상정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권리남용의 법리를 도입하는데 좀 더 신중을 기했어야 한다.
대법원도 이번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근로기준법 제94조 제1항 단서의 입법 취지와 절차적 권리로서 집단적 동의권이 갖는 중요성을 고려할 때, 집단적 동의권 남용 여부를 엄격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분명히 설시하였다. 집단적 동의권의 남용 이론의 한계점과 문제점이 상당한바, 이러한 판시를 폐기하는 것이 타당하고 그 전까지는 적어도 집단적 동의권의 남용은 극히 예외적으로 인정하여 근로자의 집단적 동의권을 무력화시키고 근로기준법을 잠탈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2023. 5. 15.(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
위원장 이 용 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