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 기고]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의 영원한 벗, 임보라 목사님을 추모하며
2023. 3. 3.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의 영원한 벗,
임보라 목사님을 추모하며
-장서연 회원
2014년이었다. 서울퀴어문화축제 퍼레이드 행진이 개신교인들의 물리적 방해로 막힌 해였다. 교회 사람들이 도로를 점거하고 행진 경로를 막았다. 2000년 서울퀴어문화축제를 시작한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성소수자에 대한 저주의 말들을 쏟아내며 ‘동성애 반대’ 피켓을 들고 있던 사람들의 얼굴이 지금도 또렷이 기억난다. 그들이 20대의 젊은 사람들이라는 것에 놀랐고, 퀴어문화축제에 참가한 사람들과 구별이 되지 않을 만큼 평범해 보인다는 사실에 또 놀랐다. 어느 교회의 청년부 교인들이었다.
그 해였다. 임보라 목사님은 퀴어퍼레이드 행진의 선두에 있었다. 개신교인들의 혐오와 저주의 얼굴들을 마주하며, 성소수자들을 위한 축복 기도를 하고 있었다. 한국에서 성소수자 집단을 핍박하고 박해하는 대표적인 집단인 개신교 안에서, 임보라 목사님은 그 존재만으로 많은 성소수자들에게 위로와 지지가 되어주는 존재였다.
임보라 목사님은 1995년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2003년 향린교회 부목사를 거쳐, 2010년 ‘차별 없는 세상을 위한 기독교연대’ 공동대표, 2013년 섬돌향린교회가 분립하면서 담임 목회자를 맡았다. 섬돌향린교회는 자신의 존재와 교리 사이에서 괴리를 느끼고 상처받은 성소수자들이 찾아갈 수 있는 교회였다. 성소수자 친화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정의와 평화를 지향하는 향린공동체의 정신에 따라, 임보라 목사님은 사회적 약자가 있는 저항의 현장에 늘 함께 했다. 그가 손잡은 사람들과 연대 현장들을 나열할 수 없을 정도로, 예수의 정신을 실천한 목회자였다. 그의 부재가 애통하고 슬픈 이유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슬퍼하고,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하여 평생을 바친 임보라 목사님을 기리며, 생전에 미처 하지 못했던 말을 꺼내본다.
“당신이 너무 그립습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