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명]
윤석열 대통령은 헌법과 법치, 자유를 입에 올리지 말라!
–화물연대에 대한 위헌적 업무개시명령에 부쳐–
윤석열 대통령은 29일 국무회의에서 화물연대에 대한 사상 첫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하였다.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조치에 경악할 금할 수 없다. 모임은 이번 조치를 윤 대통령이 늘상 말하는 헌법과 법치, 자유에 정면으로 역행하는 위헌적인 공권력의 행사로 규정하면서 다음과 같은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첫째, 이번 조치는 정부와 여당의 무능과 무책임, 적반하장식 태도를 여실히 보여준다. 지난 6월 정부는 화물연대와 올해 말 일몰 예정인 화물운송종사자에 대한 안전운임제의 일몰제를 연장하고 품목 확대를 논의한다는 등의 내용에 합의한 바 있다. 그런데 정부와 여당은 지난 5개월 동안 일몰제 연장을 위한 법개정도, 품목 확대를 위한 적극적인 논의도 철저히 외면했다. 스스로 합의한 사항조차 지키지 못하고, 국정운영 책임자이자 집권여당으로서 최소한의 역할도 하지 못한 정부·여당이 대화를 촉구하는 화물연대를 향해 적반하장식으로 ‘불법’을 강변하면서 업무개시명령을 발령한 것이다. 정부는 스스로의 무능과 무책임, 불법을 돌아볼 일이다.
둘째, 이번 조치는 헌법과 법치에도 정면으로 반한다. 오늘날의 법치주의는 국민의 권리·의무에 관한 사항을 법률로써 정해야 한다는 형식적 법치주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법률의 목적과 내용 또한 기본권 보장의 헌법 이념에 부합해야 한다는 실질적 법치주의를 의미한다(헌법재판소 1992. 2. 25. 선고 90헌가69 결정 등). 실질적 법치주의는 바이마르헌법에서 나치의 발호가 말하여 주듯이 형식적 법에 의한 지배원리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효과적으로 보장하는 법원리가 될 수 없었다는 비판에 따라 대두되었다.
그런데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의 업무개시명령은 강제노역 금지(헌법 제12조 제1항)와 강제근로 금지(근로기준법 제7조)에 반하고, 화물운수종사자의 헌법상 기본권(직업의 자유, 일반적 행동자유권, 행복추구권)을 심각하게 침해한다. 또한 이는 올해 4월 20일 국내법적 효력을 가지게 된 ILO(국제노동기구)의 결사의 자유, 단결권, 단체교섭권에 관한 제87호 및 98호 협약은 물론 강제근로 금지에 관한 제25호 협약에도 반한다. 이러한 위헌, 위법적인 법집행은 실질적 법치주의가 아닌 법을 이용한 독재에 불과하다. 과연 이 정부가 헌법과 법치를 입에 담을 자격이 있는가?
셋째, 대법원은 전교조 법외노조통보처분 취소 사건에 관한 전원합의체 판결(대법원 2020. 9. 3. 선고 2016두32992 판결)에서 헌법상 노동3권은 법률의 제정이라는 국가의 개입을 통하여 비로소 실현될 수 있는 권리가 아니라 법률이 없더라도 헌법의 규정만으로 직접 법규범으로서 효력을 발휘할 수 있는 구체적 권리라고 선언하였다.
또한 헌법상 노동3권은 필요한 경우 법률로써만 제한할 수 있고,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 이에 따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은 공중의 일상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거나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큰 사업을 “공익사업”으로, 공익사업 중 그 업무의 정지 또는 폐지가 공중의 일상생활을 현저히 위태롭게 하거나 국민경제를 현저히 저해하고 그 업무의 대체가 용이하지 않은 사업을 “필수공익사업”으로 규정하고, 필수유지업무를 유지·운영하면서 쟁의행위를 하도록 제한하고 있다. 그러나 화물운송사업은 필수공익사업이 아니고 화물운송노동자들의 업무는 필수유지업무가 아니다. 결국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상 ‘업무개시명령’은 헌법 제37조 제2항에 위반되고, 화물운송노동자들의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하는 위헌적인 공권력 행사에 불과하다.
넷째, 이번 업무개시명령은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에 반한다. 형사처벌이 예정돼 있음에도 업무개시명령의 요건은 불확정적이고 추상적인 개념들로 가득차 있다. “정당한 사유”, “커다란 지장”, “심각한 위기”, “상당한 이유” 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명령을 내리는 자의에 따라 그때마다 임의적으로 판단될 우려가 농후한 반면, 명령을 받는 당사자는 그 명령이 과연 법의 요건을 충족한 것인지, 어떠한 사정이 명령에 불응할 수 있는“정당한 사유”인지를 도무지 알기 어려운 상태에서 형사처벌의 위험으로 내몰리게 되고 만다.
지난 29일 윤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하면서, “제 임기 중에 노사 법치주의를 확고하게 세울 것이며, 불법과는 절대 타협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우리는 윤 대통령의 발언에서 위헌적인 업무개시명령을 법치라고 하는 독재, 노동3권 행사에 대한 국가 공권력의 무지막지한 개입을 노사 법치주의라고 하는 무지, 이 두 가지를 읽을 수 있을 뿐이다. 지금 정부는 업무개시명령으로 화물운송노동자들을 겁박할 것이 아니라 합의 주체이자 책임 당국으로서 대화와 교섭을 통해 이번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모임은 이미 19년 전 업무개시명령 제도 도입 당시 “지입차주들에게 아무런 권리가 없는 상태에서 그들에게 자신의 의사에 반하여 노동을 하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 그것은 전체주의 국가에서나 가능한 사고이고, 국제노동기구의 협약에도 명백히 배치되는 언동이다. 우리는 대한민국이 오로지 ‘경제’라는 목표에 종속하는 전체주의 국가가 되기를 희망하지 않는다”라고 소리 높여 외쳤던 바 있다(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성명, 2003. 8. 30.). 19년이 지난 오늘 국민의 목소리를 강제노동으로 다스리려 하는 정부가 과연 민주주의 국가의 정부인지를 재차 물을 수밖에 없다. 정부는 기본권을 침해하는 위헌적 업무개시명령을 즉각 철회하고, 화물연대와의 대화와 교섭에 성실히 임하라.
2022. 11. 30.(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 조 영 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