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분단에 맞선 사람들, 재일동포와의 동행” 2022 재일동포 초청행사 후기

2022-11-04 126

“분단에 맞선 사람들, 재일동포와의 동행” 2022 재일동포 초청행사 후기

 

이상렬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사람들 몽당연필 회원)

 

안녕하세요, 저는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사람들 몽당연필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상렬이라고 합니다. 이번 행사에서 3박 4일간 재일동포 선생님들을 밀착수행하는 의전팀으로 활동했습니다. 몽당연필은 재일조선학교를 응원하고 한국사회에 조선학교의 존재를 알려 나가는 일뿐만 아니라 평화와 통일 그리고 인권을 위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

지난 10월 25일(화) ~ 28일(금) 4일간 재일동포 초청행사 <분단에 맞선 사람들, 재일동포와의 동행>이 개최되었습니다. 이번 행사는 재일동포들과 오랫동안 연대하고 교류해온 단체들이 모여서 재일동포 인권침해의 역사를 살피고 성과와 과제를 확인하는 동시에, 동포들과 연대단체들간의 뜨거운 친교의 시간을 갖고자 마련되었습니다.

공동주최로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하 민변), 지구촌동포연대KIN, 포럼 진실과정의, 민족문제연구소,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사람들 몽당연필(이하 몽당연필) 이상 5개 단체가 참여하였으며, 재일동포 방문단은 재일한국양심수동우회에서 총 7분이 참석하였습니다.

저희 몽당연필은 고국으로 먼 길 여행 오시는 재일동포 선생님들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환영과 의전을 준비하자고 뜻을 하나로 모았습니다. 인천공항 입국장에서부터, 아침에 호텔에서 나와 호텔로 들어가실 때까지 토론회, 집담회, 뒷풀이까지 모든 일정을 함께하기로 하고, 의전 조를 편성하고 의전차량을 섭외하였습니다.

그리고 방문단 선생님들에 대해 자세히 공부하고자, 재일동포 간첩 조작사건을 다룬 KBS 다큐멘터리 “스파이”를 비롯한 다큐멘터리와 학습자료를 통해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 조작사건과 한통련, 재일한국양심수동우회의 역사에 대해 사전학습 하였습니다. 선생님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면서, 입국일이 다가오기 전에 가슴은 이미 무언가 가득 찬 느낌이었습니다.

‘슈퍼스타♥이철’, ‘너만보여♥김창오’, ‘자체발광 최성일’

 

인천공항 입국장에서 커다란 현수막을 펼치고 ‘아이돌 손피켓’까지 흔들고 있으니, 지나가던 사람들도 ‘연예인이 오는 것인가?’하며 궁금했는지 환영문구를 유심히 보며 관심을 보였습니다. 이철 선생님께서는 공항까지 이렇게 많은 사람이 나올 줄 몰랐다며 반가워하셨고, “안 그래도 버스를 타야 하나 전철을 타야 하나 고민했었는데 이렇게까지 준비하실 줄 몰랐다.”고 하시니 내심 흐믓했습니다.

입국장을 빠져나온 우리가 첫 번째로 향한 곳은 명동성당 맞은 편에 위치한 국가인권위원회였습니다. 송두환 위원장을 비롯한 다수관계자들이 참석하여 재일동포 인권에 대한 다양한 질문과 대화를 주고 받았습니다.

첫째 날의 빠듯한 일정을 끝내고 우리는 인사동으로 이동하여 환영만찬을 가졌습니다. 이 자리에는 2021년 광복절 기획 KBS 다큐멘터리 “스파이”의 원작 도서 <조국이 버린 사람들: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 사건의 기록>의 저자 김효순 한겨레신문 대기자가 참석하여 더욱 뜻 깊었습니다. 재일한국양심수동우회 이철, 강종헌, 이동석 선생님은 모두 ‘1975년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 조작사건’의 피해자로서 이철, 강종헌 선생님은 1심, 2심, 3심 모두 사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 여러 차례 감형되어 각각 13년을 복역한 후 출소했으며, 이동석 선생님은 5년 형을 선고받아 복역했습니다. 세 분 모두 2015년 재심에서 무죄를 확정받았습니다.

 

둘째 날, 첫 일정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원회) 방문이었습니다. 그동안 진실화해위원회의 조사활동이 재일동포 간첩 조작사건 피해자들이 재심청구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고, 현재까지 40여명이 재심청구를 통해 무죄판결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자 중 약 40명은 연락이 되지 않거나 연락을 거부한다고 합니다. 그분들에게 국가는 여전히 믿을 수 없는 대상이고, 진실화해위원회에 대해 아무리 설명해도 믿으려 하지 않고 한국 정부와는 어떻게든 엮이지 않으려고 한답니다. 억울한 죄를 뒤집어쓰고 평생을 불이익을 겪으며 살아오셨을텐데 그것을 시정하는 것조차 거부할 만큼, 국가는 과연 그분들에 어떤 존재였던 것일까요?

둘째 날 두 번째 일정은 민변 대회의실에서 열린 집담회였습니다. <재일동포와의 동행, 우리는 무엇을 함께 할 것인가?>라는 주제 아래 ‘세션1. 재일동포간첩조작사건이 우리에게 남긴 과제’, ‘세션2. 차별과 혐오에 맞선 한통련의 역사와 한국사회의 민주화’ 2개의 세션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재일본대한민국민단(이하 민단)내 민주화 세력은 당시 일본에 체류중이던 김대중씨와 함께 박정희 독재정권에 반대하는 해외동포조직을 결성하고자 합의하고 1973년 8월 15일 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이하 한민통)을 결성하였던 바(초대의장 김대중), 이후 1977년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조작사건’을 받던 김정사 재일동포학생에 대한 검찰의 공소장에 김정사씨의 배후세력으로 한민통을 지목하고 아무런 증거나 근거 없이 한민통을 반국가단체로 표현하여 1심, 2심, 3심에서 반국가단체로 판결받았습니다. 이때 한민통에게 내려진 반국가단체 규정은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에서 사형판결을 받는 근거가 되는데, 그가 반국가단체 결성 수괴, 즉 한민통 초대의장이라는 이유에서였습니다. 김정사 사건은 2013년 재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으나 한민통(現한통련)은 여전히 반국가단체로 남게 되었습니다. {※한민통은 1989년 한통련(재일한국민주통일연합)으로 조직개편 및 명칭변경되었다.}

한통련 회원들은 한국 국적임에도 불구하고 여권발급이 거부되거나 유효 기간이 제한되는 등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으며, 여권발급 신청시 영사관은 신원진술서를 요구하는바 △재일본조선일총련합회(총련) 활동경력 △방북경력 △조선선박에의 승선관계 등을 묻고 있으며 한통련을 탈퇴할 의지가 있는지 질문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합니다. 회원중에는 국내 부모의 장례식에 갈 수 없거나 미국, 영국 등 장기간 연수, 유학이 제한되는 등 생활상의 다양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합니다.

여권이 없는 혹은 제한되는 삶을 저는 상상할 수가 없었습니다. 세계 어디를 가던지 시간과 돈이 문제가 되었지 여권발급이 제한된다는 경우의 수를 생각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제가 얼마 전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에 방문했을 때, 임시정부가 발급했던 여권을 보며 크게 감동을 받았던 적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일제 식민지 시절에도 조선총독부가 아닌 우리나라 임시정부가 발급한 여권으로 세계를 여행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우리 독립운동의 역사를 더욱 자랑스럽게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탄생한 대한민국 정부가 재일동포들의 여권발급을 제한하는 모습은 자랑스러움과는 거리가 먼일인 것 같습니다.

이준일 한통련 총무부장은 ‘재일동포의 대부분은 식민지 지배로 강제, 반강제적으로 일본으로 옮겨 살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과 그 자손이다. 그런 재일동포에게서 조국으로 돌아갈 권리를 빼앗는다는 것은 일본이 저지른 식민지 지배라는 죄를 한국정부가 해결은 커녕 계승하여 재일동포에 대한 차별과 억압에 가담’하는 뜻이 된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재일동포들의 한국 입국은 ‘자국으로 돌아갈 권리’라는 것입니다. 다른 한국인이 국내를 여행할 때 여권이나 허락이 필요하지 않듯 재일동포가 자국으로 돌아갈 권리를 정부가 제한해서는 안 된다고도 했습니다. 해방 당시 조선인 출신지 통계에 따르면 재일조선인 88%가 경상도, 전라도, 제주도 등 한반도 남쪽 출신입니다.

김창오 한통련 사무장의 어린 시절 소회를 통해 재일동포들이 겪는 차별을 가슴에 와닿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김창오 사무장은 대부분의 재일동포가 그랬듯 가족이 모두 일본이름으로 살아왔고 본인은 소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모두 일본학교를 다녔다고 합니다. 중학교 시절 지하철 화장실에서 ‘조선놈은 돌아가라’는 낙서를 보고 너무 무서웠고 여러 경험을 통해서 한국 사람인 것을 숨기고 살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답니다.

그러던 중 대학교 1학년 때 한통련의 산하단체인 한청(재일한국청년동맹)을 알게 되고, 한청에서 처음으로 우리말과 우리역사를 배우게 되었으며, 특히 4.19혁명에 깊은 감동을 받아서 조국의 민주화와 통일을 위하여 한평생 살아가자고 결심했다고 합니다. ‘열심히 공부하면 할수록 조국을 사랑하게 되었’으나 역설적이게도 ‘열심히 활동하면 할수록 조국은 나에게서 멀어져갔다.’고 합니다. 한청 활동으로 인해 여권발급이 거부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가슴 아픈 부조리가 곧 재일동포의 역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셋째 날 첫 번째 일정은 국회 토론회였습니다. <재일동포 인권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위한 국회토론회>라는 제목으로 이재정, 홍익표, 민형배 세 국회의원이 주최하였고, 우리 5개 단체는 주관으로 하여 열렸습니다. 주최자는 아니지만 한통련과 오랫동안 함께 활동해온 윤미향 의원도 참석했습니다. 토론회에서는 우토로 방화사건, 조선고교 무상화 배제 등 재일동포에 대한 혐오범죄와 차별, 국가보안법에 의한 재일동포 정치범 문제, 한통련에 대한 탄압문제 등을 주제로 재일동포 인권상황을 살펴보고 그 법적 쟁점을 토론하였습니다.

언론에서 비춰지는 국회의원들이라고 하면 우리와는 동떨어진 그들만의 리그처럼 느껴졌는데, 우리의 목소리를 제도에 반영하는데 있어서 국회의원 한 명의 존재가 참으로 소중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재일동포들은 일본사회에서 일하고 세금을 납부하며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책임을 다하는데도 불구하고, 일본-북한 간의 정치, 외교적인 이유로 당연히 누려야 할 교육의 권리로부터 배제되는 문제를 하루빨리 시정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2009년 조선학교에 대한 습격사건 이후 2021년 나라현 한국학교 방화사건, 아이치현 민단사무실, 한국학교 방화사건, 2022년 오사카 토요나카시 코리아국제학원 방화사건 등 재일한국인 전체로 혐오범죄가 확산되고 있다고 하니 문제의 심각성과 문제해결의 시급함을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셋째 날 두 번째 일정은 용산구 청파로에 위치한 민족문제연구소와 식민지역사박물관 방문이었습니다. 어디에서도 듣도 보도 못했던 귀하고 알찬 사료들이 훌륭하게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애써 주신 분들의 노고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행사의 마지막인 넷째 날 일정은 강화도 기행이었습니다. 연일 빼곡한 일정으로 지치셨을 선생님들을 모시고 편한 마음으로 우리 국토를 둘러보자는 취지로 기획된 여행이었습니다. 선생님들이 강화도에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북녁어린이영양빵공장 사업본부 회원들이 달려왔습니다. 사업본부 회원으로부터 강화도의 역사에 대해 개괄적인 설명을 듣고 전등사, 광성보, 연미정을 차례로 방문하였습니다.

연미정에 오르니 눈앞에 임진강이 흐르고 강 건너에는 북녘땅이 보였습니다.

 

‘임진강 맑은 물은 흘러 흘러내리고 뭇새들 자유로이 넘나들며 날건만’

KBS 관현악단 한충은씨의 <임진강> 대금 연주를 듣고 있자니 분단의 서글픔이 내 가슴속에도 유유히 흘러가는 것 같았습니다. 한충은씨 공연에 이어서 몽당연필 의전팀이 준비한 <좋은 나라>를 모두 어깨동무하고 함께 부르는데 눈이 마주치면 울음을 터트릴 것 같아서 모두 시선을 외면하며 노래를 불렀지만, 이내 곳곳에서 울음이 터져나오고 말았습니다.

이번 3박 4일간의 재일동포 초청행사는 몰랐던 역사를 마주하게 된 시간이었습니다. 1980년 김대중씨의 사형선고 근거가 그가 한민통 의장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고, 한민통이라의 존재와 그 민주화 투쟁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군사독재시절에 국내 민주화 투쟁의 조건이 엄혹하던 시기에 해외민주화운동의 전진기지로서 투쟁하셨던 재일동포들의 존재를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를 위해 애써주셨던 분들이 얼마나 많았을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재일동포들의 활동을 이제야 알게 된 것에 죄송함이 들었고, 지금도 앞으로도 내가 받은 모든 은혜의 크기는 헤아릴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자 절로 겸손해지게 되었습니다. 그 은혜를 갚기 위해 아주 작은 실천이나마 지속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김창오 선생님이 민변 집담회에서 하신 얘기로 글을 끝내고자 합니다.

 

‘개인이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조국의 운명과 개인의 운명은 깊게 연관되어 있다. 소극적으로 생각한다면 조국의 운명이 개인의 운명을 좌우하는 것이고, 적극적으로 생각한다면 개인의 실천으로서 조국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것이다.‘

 

앞으로도 훌륭한 조국, 훌륭한 개인이 되기 위해서 함께 힘써나갔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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