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노동조합과 노동자들의 노동3권을 침해하는 원청의 손해배상·가압류 소송 제기를 규탄한다!
-대우조선해양과 하이트진로의 손해배상/가압류 소송 제기에 부쳐-
최근 대우조선해양이 민주노총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집행부 개인을 상대로 약 500억 원 상당의 손해배상청구 소송 제기를 준비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하청노조가 지난 5년간 삭감된 임금(30%)의 원상 회복 등 원청이 실질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사항들과 관련하여 근로조건의 개선을 요구하며 선박에서 쟁의행위를 한 것에 대해, 파업기간 조업중단 및 지연에 따른 매출손실과 고정비 지출 등으로 인한 손해의 배상을 청구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앞서 하이트진로 역시, 하청업체 수양물류(하이트진로가 100% 지분을 가진 하이트진로의 계열사)의 화물기사들이 과거 인하된 운송료를 정상화할 것을 요구하며 원청 하이트진로를 상대로 파업을 한 것에 대해, 화물연대 조합원 11명을 상대로 5억 8,000만 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였다가 청구액을 27억 8,000만 원으로 확장하였던 바 있다. 하이트진로는 본안 손해배상청구와 더불어 부동산과 화물차 등에 대해 가압류 신청까지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민변 노동위원회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원청 사용자들의 하청노동자들에 대한 위와 같은 손해배상청구 및 가압류 신청을 노동조합와 노동자들의 노동3권에 대한 침해로 규정하고, 이를 강력히 규탄한다.
첫째, 노동조합과 노동자들의 파업과 쟁의행위는 헌법 제33조 제1항이 기본권으로 보장하고 있는 단체행동권의 실현이다. 국제노동기구(ILO) ‘결사의 자유 위원회’는 “파업권은 (한국도 작년에 비준한) ILO 핵심협약 제87호(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 협약)에 의해 보호되는 단결권으로부터 당연히 파생되는 본질적 권리”이고, “직장점거는 파업의 수단으로 인정된다”고 밝히고 있다. ILO ‘전문가 위원회’ 역시 ‘파업할 권리에는 회사 부지를 점거하여 사용자를 압박하는 것도 포함된다.’고 한다. 법체계상 최고규범성을 가진 헌법이 명시적으로 보장하고 있는 기본권을 실현하기 위해 수십, 수백억 원의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인가.
둘째, 파업과 쟁의행위에 대해 손해배상청구와 가압류 신청이 빈발하면,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노동조합과 노동자들의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은 유명무실해질 수밖에 없다. 단체교섭의 의무를 부담하고 있는 사용자가 성실하게 단체교섭에 응하지 않으면, 특히 하청노동자들의 노동조건에 대해 지배력을 행사하는 원청이 하청 뒤에 숨어 수수방관하면, 노동자들은 조업을 거부하는 방법으로 협상력을 제고할 수밖에 없다.
노동조합법(제2조 제6호)이 ‘쟁의행위’를 “파업ㆍ태업ㆍ직장폐쇄 기타 노동관계 당사자가 그 주장을 관철할 목적으로 행하는 행위와 이에 대항하는 행위로서 업무의 정상적인 운영을 저해하는 행위”라고 명시적으로 정의하고 있는 것 역시 노동쟁의 국면에서 노동자들의 조업 거부 자체가 규범적으로 정당하다는 입법자의 의사를 반영한 것이다. 이에 대해 수십, 수백억 원의 손해배상의무를 부담시킨다면 헌법과 노동조합법이 보장하고 있는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파업권)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다.
셋째, 하청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원청 사용자가 단체교섭 등 법적으로 부과된 의무는 외면하면서 단체교섭을 요구하며 쟁의행위를 하는 노동자들을 상대로 경제적 손해는 기필코 전보 받겠다는 것은 권리와 의무의 균형에도 맞지 않는다. 사용자의 경제적 이익만을 위하여 노동자들의 임금과 운임료를 삭감하면 그 손해는 고스란히 노동자들의 극단적인 생계불안으로 이어지는데, 이러한 결정이 사용자의 방만한 경영에 의한 것일 때에도 노동자들은 그 손해를 전보 받을 방법이 없다.
그런데 노동자들의 근로조건 향상 요구에 대해 그 협상 테이블을 차리는 것(단체교섭) 자체를 사용자가 거부하여 노동자들이 이에 대응해 법이 보장하고 있는 파업을 하면, 노동자들더러 사용자의 손해를 전보하라고 한다. 이것이 공평한가. 대법원은 하청노동조합의 원청 사업장에서의 쟁의행위에 대하여 “(원청 사용자는) 하청 근로자가 제공하는 근로에 의하여 일정한 이익을 누리고 그러한 이익을 향수하기 위해 하청 소속 근로자에게 사업장을 근로의 장소로 제공하였으므로 그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쟁의행위로 인하여 일정 부분 법익이 침해되더라도 사회통념상 이를 용인하여야 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는 법리를 토대로 그 정당성을 인정한 바 있는데(대법원 2020. 9. 3. 선고 2015도1927 판결 등), 사용자의 민사적 손해에 대해서도 이러한 법리가 적용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넷째, 원청 사용자들의 손해배상액 산정 역시 매우 부당하다. 고정비와 매출손실을 중복해서 손해배상액으로 인정하는 것이 타당한지는 차치하더라도(애초에 ‘순수익 = 매출액 – 고정비’이므로), 상당수 기업들이 기계 고장 등 각종 변수에 대비해 재고를 마련하거나 잔업‧특근 등으로 대응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쟁의행위가 있었다 하더라도 그러한 사정만으로 손해를 방지할 수 없는 것이 결코 아니다. 특히 조선업 같은 수주산업은 계약상 인도 일정에 맞춰 선박을 선주에게 넘기기만 하면 매출이 정상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데, 파업 이후에도 손해의 확산을 얼마든지 방지할 수 있는 것이다. 사용자들의 수십, 수백억 원 손해배상액 산정은, 손해의 발생을 방지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하지 않은 사용자가 노동조합의 쟁의행위를 옥죌 요량으로 소권을 남용하는 것이다.
다섯째, 대우조선해양이 노동조합이 아닌 조합원 개인들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를 하는 것은 그 목적이 손해의 보전이 아니라 조합원들의 노동3권 행사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고자 함에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 불순한 의도를 명확히 확인할 수 있다.
이와 같이 헌법상 노동3권을 무력화하는 사용자들의 손해배상‧가압류 시도에 제동을 걸기 위하여, 19대 국회, 20대 국회에 이어 이번 21대 국회에도 이른바 ‘노란봉투법’(폭력·파괴행위 이외의 노동3권 행사에 대한 손해배상·가압류의 금지, 노동조합이 아닌 개별 조합원에 대한 손해배상 금지 등)이 복수로 발의되어 있다. 또한 원청의 사용자 책임을 명확히 하는 노조법 개정안도 발의되어 있다. 이제 헌법상 노동3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고 법해석의 논란을 종식시키기 위해 노조법 개정이 시급한 상황이다.
이미 사용자들의 무분별한 손해배상청구와 가압류 신청에 대한 제동의 필요성 및 권한과 이익을 누리는 원청에 대한 사용자로서의 책임 강화의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이제 국회가 사회적 논의를 거쳐 불균형한 노사관계를 정상화할 수 있도록 이번 정기국회를 통해 노동조합법을 반드시 개정해야 할 것이다.
2022년 8월 24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
위원장 이 용 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