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 기고] 수요시위와 역사부정주의

2022-05-27 55

수요시위와 역사부정주의

-작성: 양성우 회원

‘잊힌 역사’가 될 뻔했던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1991년 8월 15일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으로 되살아났다.

김학순 할머니의 도쿄 증언 내용 중 발췌

“나는 부끄럽지 않습니다. 이 순간을 내 평생 기다려왔습니다. 나 같은 사람이 멀쩡히 살아있는데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제는 바로 잡아야 합니다.”

이날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세상에 알려졌고, 그동안 증거가 없다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존재를 부정해 온 일본의 만행도 드러났다. 김 할머니의 증언 이후, 문옥주, 강순애 등 다른 피해자들 역시 고통스럽게 자신의 아픔을 꺼내놓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92년 일본 정부의 사과와 법적 책임 등의 조치를 요구하는 수요시위가 시작됐다. 지금까지, 1995년 고베 대지진 당시 피해자 추모를 위해 한 번 거른 것을 제외하곤 30년 동안 매수 수요일 빠짐없이 열렸다. 횟수로 1,545차다.

30년을 이어온 수요시위는 최근 일본군 ‘위안부’ 존재를 부정하는 극우 역사부정세력의 집회 방해로 인해 큰 몸살을 앓고 있다. 극우단체들은 수요시위의 상징적 집회 장소인 종로 ‘평화의 소녀상’ 앞 ‘평화로’에 집회 신고를 미리 해 자리를 선점하는가 하면, 수요시위 집회 장소를 인근의 다른 곳으로 옮기면 해당 장소까지 다시 선점하여 일종의 알박기 집회를 계속하고 있다. 이들은 수요시위 집회 장소를 뺏기 위해 집회 신고가 가능한 30일 전 집회 신고를 받는 종로경찰서 대기장소에서 숙식하며 밤을 샌다고 한다.

이들의 만행은 수요시위가 진행되는 때 보다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일본군 ‘위안부’ 역사 왜곡 발언과 피해자들에 대한 명예훼손, 모욕적 발언을 이어간다. 특히, 할머니들 이름을 특정하면서 ‘가짜 위안부다’, ‘강제동원과 성노예제는 없었다’는 일본 극우인사들이나 할 법한 이야기를 남발하기까지 한다.

이렇듯 평화, 인권의 상징이었던 시위의 현장이 어느새 험구가 난무하는 곳으로 변해가고 있다. 이쯤되니 <나는 부정한다>라는 영화가 떠오른다. 이 영화는 홀로코스트 부정론을 둘러싼 재판을 소재로 하는데, 홀로코스트를 부인하는 세력에 맞서 홀로코스트가 엄연히 역사적 사실임을 밝혀 진실을 지키고 드러내려는 한 역사학자와 그를 돕는 변호사들이 겪는 소송과정을 그려낸 영화다. ‘수용소 가스실이 대량 학살에 사용됐다는 증명은 불가능하다’거나 ‘지금껏 제시된 홀로코스트의 증거들이 모두 조작되었다’라는 홀로코스트 부정론자의 주장은 ‘위안부는 사기다. 성노예제는 없었다’는 일본군 ‘위안부’의 존재를 부인하는 세력의 주장과 참 많이 닮아있다.

문제는 이러한 역사부정세력의 왜곡된 주장이 잘못된 사실을 실재의 역사적 사실인 양 믿게 만든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일본 우익은 위안부 문제가 한, 일 양국 간 해결과제로 떠오른 1990년대 이후 줄곧 역사부정 3종 세트(‘강제연행은 없었다’, ‘성노예가 아니다’, ‘위안부 20만 명은 근거 없다’는 주장이다)를 되뇌어 왔는데, 당시에는 그러한 주장이 일본 사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나, 2006년 1차 아베 내각 출범 이후부터는 점차 일본 정부입장으로 공식화돼 갔다. 그리고 2010년대 들어 일본 우익은 국내에서 ‘위안부’ 부정이 받아들여졌다고 생각하고 국제사회에 전파활동을 넓혀갔으며, 일본 정부도 이에 편승해 고노 담화를 통해 인정했던 사실을 전면 철회하고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에서 일본군 ‘위안부’를 부정하는 취지의 입장을 천명했다. 역사부정세력의 거짓 주장이 역사적 사실로 둔갑하는 상황이다.

독일의 경우 홀로코스트 범죄를 부인하는 것은 물론 찬양하거나 경시한 경우에 모두 처벌하도록 입법화했다. 물론 처벌이 능사는 아니지만, 적어도 표현의 자유를 빙자해 다른 사람의 집회를 방해하고 역사를 왜곡하려는 역사부정세력에 대한 경계와 적절한 대응이 필요한 때인 것은 분명하다. 구체적으로 특정 집회를 방해할 목적으로 하는 반대 집회의 집회 신고가 있을 시, 집시법 제8조 제2항에서 정한 시간과 공간 분리가 엄격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또 집회 방해를 목적으로 다른 집회 참가자에 대한 고성이나 모욕·명예훼손적 언행 등에 대해 적절히 경고하거나 현장대응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법령 정비 등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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