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 기고] 어둠 속의 희망 – 「2022 대선을 통해 본 여성 주권자의 위치와 향후과제」 강연 후기

2022-04-01 111

‘어둠 속의 희망’

-2022. 3. 17. 「2022 대선을 통해 본 여성 주권자의 위치와 향후과제」 강연 후기-

 

전다운 변호사(법무법인 지향)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라며 여성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당당히 옹호하던 후보가 이에 동조하는 일군의 차별주의자들의 표를 얻어 대통령에 당선됐다. 당선인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통해 ‘시대적 소명을 다한’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겠다는 계획을 구체화하고 있다. 새 정부 조각 때에도 여성할당제(불과 30%)를 적용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여성분과를 폐지하였고 인수위 구성원 27명 중 23명을 남성으로 채웠는데, 한국 사회의 권력이 여전히 얼마나 남성에게 집중되어 있는지를 스스로 입증했다. 한편, 2022. 3. 17. 강연에 나선 시사인 정치부 김다은 기자는 2012년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던 62.2%의 20대 남성이, 2022년에는 36.3%만이 이재명 후보를 지지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세대 간 격차 확대를 설명했다. 그러나 반페미니즘과 소수자혐오를 노골적으로 내세우며 정치 전면에 등장한 ‘2030 남성’의 세력화를 지적하는 것만으로 이번 선거 결과를 진단하기에 충분한 것일까. 대한민국이 각종 지표에서 전세계 최하위의 성평등지수와 최대의 성별임금격차를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까지 굳이 언급하지 않고서도, ‘성차별’이 찬반토론의 대상이 아니라 극복해야 할 현존하는 사실이며,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것은 ‘보편적인 평등’이라는 당위를 어떻게 지켜나갈 수 있을까.

지난 수 년간 전세계 여성들이 자신의 성폭행 범죄 피해를 더 이상 숨기지 않겠다는 듯 공론장에 나섰고, 그러한 피해자에게 연대하고 지지하는 미투(me too) 운동이 새로운 페미니즘 물결을 일으켰다. 남성중심적 사회에서 벗어나 성평등한 사회를 지향하는 이러한 ‘페미니즘’ 운동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마치 페미니즘이 남성을 역차별한다거나, 남성을 혐오하는 운동이라는 식으로 왜곡되었고 이를 새로운 ‘불온사상’으로 낙인 찍는 ‘반페미니즘’이 순식간에 여론장을 장악하였다. 그러나 여성의 상황이 조금이라도 개선되려고 할 때마다 일부 남성들에게서 나타나는 이러한 ‘과잉 반응’은 특별한 현상은 아니라고 학자들은 말한다.

 

“항상 특권을 누려온 사람들에게는 평등이 억압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If you’ve always been privileged, equality begins to look like oppression.)

– 미국의 역사학자 캐럴 앤더슨

돌이켜 보면, 여성의 참정권 투쟁은 거의 75년이 걸렸다. 수천 년 간 지속된 사회제도를 뒤엎으려는 기획이 몇십 년 사이에 최종적 승리를 거두어야 한다는 듯, 또는 그 기획이 중단되기라도 했다는 듯, 그에 이르기까지 한동안 많은 사람들은 페미니즘이 실패했다고 선언하길 좋아했다. 이후 1980년대에 접어들자 미국에서 여성의 진보화와 남성의 보수화가 두드러졌는데, 남성들은 얼마 되지도 않는 여성의 권리를 크고 완전한 것이라고 믿는 반면, 여성들의 투쟁은 이제 막 시작이라고 생각했다. 페미니스트 재단의 설립자 엘리너 스밀(Eleanor Smeal)은 이와 같이 ‘과잉 반응’하는 남성들은 미국 여성운동이 기회만 주어지면 무시무시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인데, 단지 여성들 스스로만 그 힘을 자각하지 못했던 것이라고 당시를 논평했다.

미국 부시 정권의 이라크 전쟁으로 절망이 만연해있던 때에 사회비평가이자 여권운동가인 리베카 솔닛(Rebecca Solnit)은 「어둠 속의 희망」(창비, 2016)이라는 책에서 ‘희망’이 무엇인지에 대해 정의한다. ‘희망은 모든 것이 과거에도 좋았고 현재에도 좋고 미래에도 좋을 것이라는 믿음이 아니다. 희망이란 구체적 가능성과 결합된 넓은 전망이고, 우리에게 행동하라고 권유하거나 요청하는 전망이다. 낙관론자는 자신의 개입 없이도 모든 것이 잘 되리라고 생각하고, 비관론자는 정반대 입장을 취하므로, 양쪽 다 행동하지 않아도 될 구실을 얻는데, 희망은 낙관론과 비관론 모두에 대한 대안이 되어야 한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희망은 행동의 기초일 따름이지 행동을 대체할 수 없으므로, 결국에는 완주하기 위해서는 노력과 행동으로 옮길 것을 독려한다. 1970년대 페미니즘 투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온 수전 그리핀(Susan Griffin) 역시도 “나는 절망은 자멸적일 뿐더러 비현실적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알기에 충분할 만큼 많은 변화를 인생에서 겪었다.”라고 말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어떻게, 언제 일어날지 우린 알지 못하고, 그 불확실성이야말로 희망의 공간이다. 아무리 압도적이어 보이는 권력이 사람들의 도덕적 열의와 결단, 단합, 끈기 앞에 취약하다는 사실은 역사적으로 거듭 또 거듭 입증됐다. 안일한 냉소나 절망에 저항하고 직접 행동으로 옮길 때 희망은 횃불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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