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위] 제23회 민변 노동위원회·오사카노동자변호단 정기교류회 후기

2022-03-02 101

<제23회 민변 노동위원회·오사카노동자변호단 정기교류회 후기>


일본 노동변호사들과 나눈, ‘플랫폼 종사자’의 노동자성에 대한 고민

이종훈 변호사(법무법인 시민, 민변 노동위원회)

 

민변 노동위원회는 매년, 일본 오사카 지역에서 활동하는 노동변호사들의 모임인 ‘오사카노동자변호단’과 교류 행사를 가진다. 1990년대부터 시작된 이 행사는 2018년에 20주년을 맞이하였는데, 격년으로 양국을 오가며 직접 만나 세미나도 진행하고, 노동변호사로 활동하는 경험과 마음을 공유하며 술잔을 기울이기도 하는 행사이다. 개인적으로는 민변 활동을 하며 가장 기다려지는 행사 중 하나인데, 전염병이 전 세계를 강타한 뒤에는 아쉽게도 온라인으로만 진행되고 있다.

2021년 양국의 노동현안과 노동법 이슈에 대해 논의하고 함께 고민하기 위해 지난 1월 말 제23회 정기교류회가 온라인(ZOOM) 웨비나로 진행되었다. 민변 측에서는 2021년 주요 노동입법 동향과 노동판례, 택배기사 원청 사업주(CJ대한통운)의 단체교섭 의무를 인정한 중앙노동위원회의 부당노동행위 구제 결정에 대해 발제를 하였고, 오사카노변단은 ‘텔레워크’(재택근무)의 문제점 및 일본의 <프리랜서 가이드라인>에 관해 발제하였다. 발제에 이어 양측의 토론과 이에 대한 답변이 오갔고, 온라인 진행으로 인한 현실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깊이 있는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자리였다.

가장 열띤 토론 주제는 ‘플랫폼 노동’, ‘프리랜서 노동’ 등으로 불리는 새로워 보이는 노동영역에 대한 법적 규율의 문제였다. 온라인 플랫폼 기술의 발전과 이로 인한 노동 매개 방식의 변화는 가히 전 세계적인 현상일 테다. 한국에서는 <플랫폼 종사자 보호 및 지원 등에 관한 법률안>이라는 특별법 제정안이 국회에서 발의되는 등 ‘플랫폼 종사자’를 전혀 새로운 법적 대상으로 규율하려는 시도가 있으며, 일본 역시 정부 부처에서 <프리랜서 가이드라인>을 책정하여 배포하는 등 이 새로워 보이는 노동방식으로 일하는 자에 대한 법적 보호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의 <플랫폼 종사자 보호 및 지원 등에 관한 법률안>에 대해서는, 보수 산정의 기준이 되는 알고리즘 등 지휘・감독 수단의 투명화를 요구해온 현장의 목소리가 충분히 반영되지 않은 점, 단체교섭 거부 금지나 해고의 제한 등 기본적인 노동법에 준하는 보호 장치가 없는 점 등의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일본 정부의 <프리랜서 가이드라인>은 프리랜서에 대해 기본적으로 독점금지법, 하도급법 등 경제법이 적용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실질상 노동자에 해당할 경우에만 노동관계법이 적용된다는 식이어서, 역시 충분한 보호책으로 볼 수 없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플랫폼 종사자’, ‘프리랜서’ 등과 같은 용어 자체가 종속적 노동의 본질을 흐리는 효과를 발생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온라인 플랫폼 및 노동 매개 구조와 관련한 기술적・사회적 변화를 틈타, 타인에게 종속적 노동을 부과하고 그 결과를 수취하면서도 ‘사용자’로서의 노동법적 책임은 회피하려고 하는 자가 많아지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을 외면하고 ‘플랫폼 종사자’ 혹은 ‘프리랜서’ 등을 그 자체로 ‘근로자’와 구분되는 별개의 법적 대상인 것처럼 인가해버리면, 단지 지휘・명령의 구체적 방식만 다를 뿐 사용・종속의 존재 자체는 통상의 근로관계와 동일한 법적 관계에 대해 노동법적 규율을 담보하지 못할 우려가 매우 커진다. 종래 법적인 개념으로 인정되지 않던 ‘비정규직’을 기간제법과 파견법의 제정으로 인가해버리면서,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열악한 근로환경과 고용불안에 처하게 되었던가.

물론 ‘플랫폼 종사자’, ‘프리랜서’라고 불리는 사람들 중에서는, 정말로 ‘종속적 근로자’와 다르게 자유롭게 자신의 업무시간과 업무수행 방식을 조절하며 자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진정으로 자유로운 이러한 자들과, 단지 그 종속성이 은폐되기만 했을 뿐인 ‘종속적 근로자’들은 엄연히 구분되어야 한다. ‘플랫폼 노동’, ‘프리랜서 노동’에 대한 법적 규율을 논하면서, 이러한 점을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장철민 의원이 대표발의한 <플랫폼 종사자 보호 및 지원 등에 관한 법률안>에 대해, 최근 발족한 ‘플랫폼노동 희망찾기’가 “멀쩡한 노동자까지도 플랫폼종사자법 적용대상인 프리랜서・자영업자로 둔갑시킬 것”이라고 반대 의견을 표명한 것이나, 국가인권위원회가 “ILO가 플랫폼 종사자에 대하여 노동관계법에 의한 보호를 권고하고 있음”을 들어 위 법률안에 대해 “근로자 추정제도 도입이 필요하다”는 등의 의견을 밝힌 것 역시, 궤를 같이하는 비판일 것이다.

‘오사카노동자변호단’과의 다음 교류회 행사는, 코로나19로 인한 방역 상황이 해소되거나 최소한 완화되어, 부디 기존처럼 더욱 진한 고민과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대면 모임이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양국의 ‘플랫폼 노동자’가 원칙적으로 노동관계 법규의 적용을 받는다는 법적 원칙이 정립되었다는, 들뜬 소식을 서로 전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민변 노동위원회-오사카 노동자변호단 제23회 정기교류회 후기>

범유경 변호사(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공익법률센터, 민변 노동위원회)

 

코로나바이러스19로 전 세계가 술렁이게 된 지 벌써 꼬박 두 해가 지났습니다. 마스크를 쓰지 않은 얼굴이 낯설어질 만큼 변해버린 풍경 속에서 많은 것들이 변했습니다. 재택·원격근무제 근로자는 100만 명을 넘어섰고,[1] 협의의 플랫폼 노동자는 66만 명에 이르게 되었으며[2] 온라인을 통한 비접촉식 교류가 활성화되었습니다(비대면이라기엔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고, 대면이라기엔 얇은 모니터만큼의 벽이 있는 오늘날의 교류를 어찌 불러야 할지 저는 아직도 고민입니다).

이처럼 바뀌어버린 세상은 민변 노동위원회와 오사카노동자변호단 사이 정기교류회에 두 가지로 영향을 미쳤습니다. 하나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교류회가 온라인으로 진행되었다는 점입니다. 다른 하나는 교류회에서 다루어진 주제 자체에 관한 것입니다.

오사카 노동자변호단의 발제는 텔레워크(재택근무)와 프리랜서를 주제로 구성되었습니다. 첫 번째 발제문에 따르면 코로나바이러스19 이후 텔레워크(재택근무) 실시비율은 5.3%(2020. 2.)에서 48.1%(2020. 5.)로 크게 증가했으며 그 과정에서 사적 영역의 침해 등 문제점이 대두되었습니다. 프리랜서들에게 노동보호법이나 사회보험·노동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현실이 일거에 표면화된 계기가 코로나바이러스19의 확산이었다는 두 번째 발제의 평가도 주목할 만합니다.

민변 노동위원회의 첫 번째 발제에서도 플랫폼 노동자의 오분류 문제가 다루어졌으며, 그러한 오분류를 해결하기 위한 여러 개정안 논의가 다루어졌습니다. 저 역시 토론자 중 한 명으로서 프리랜서 노동 관련 법체계, 그리고 <플랫폼 종사자법> 도입 시도와 전개에 대해서 부족하게나마 생각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민변 노동위원회의 두 번째 발제인 전국택배노조와 CJ대한통운 사이 단체교섭 문제는 코로나바이러스19로 인해 촉발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택배노동자들의 열악한 근로조건이 코로나바이러스19의 확산으로 인해 더욱 악화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사용자성 은폐가 프리랜서나 플랫폼 노동자들을 괴롭게 하는 공통 문제라는 점에서 그리 멀리 떨어진 이슈는 아닐 것입니다.

노동의 풍경은 ‘코로나바이러스19 긴급사태’라는 이름 아래, 혹은 ‘4차 산업혁명’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 아래 몹시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기치야 새롭습니다만 변화의 방향은 늘 그러했듯 낡아 있습니다. 노동의 불안정화, 사용자성의 은폐, 노동환경의 악화라는, 낡고도 익숙한 방향이 우리를 한숨짓게 합니다.

불안정하고 열악해지는 노동, 제도를 뒤틀어 숨어버리는 사용자들은 오래된 문제이거니와, 우리만의 문제도 아니라는 점을 저는 이번 교류회에서 다시금 느꼈습니다. 과거에 우리를 괴롭게 했던 문제들이 여전히 우리를 떠나지 않고 있고, 또 다른 법제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들 역시 속 시원한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언뜻 좌절감이 들게 합니다. 그러나 저는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던 반짝이는 눈동자, 진지한 얼굴로 고민을 나누던 목소리들이 있는 한 우리는 또한 영원히 싸워나갈 힘을 얻으리라고 그렇게 믿습니다.

풍부한 논의가 오가는 과정에서 많이 배웠고, 유쾌한 대화 사이에서 힘을 얻었습니다. 즐겁고 뜻깊은 자리에 머무를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준비해주신 분들께 깊은 감사 말씀 드립니다.


<같은 마음, 같은 방향>

진근태 변호사(민변 노동위원회)

 

민변 노동위원회와 오사카노동자변호단의 제23회 정기교류회는 2022. 1. 22. 토요일에 Zoom을 통하여 올해도 비대면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국경을 넘는 교류 행사에 신입회원으로서 흥미가 들어 내용과 무관하게 참여하고 싶었으나, 신입으로서 왠지 모르게 큰 행사에 참여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며 참여 여부를 고심하고 있던 차에, 마침 노동위 간사님께서 권해주셔서 교류회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후기 요청을 받고, 발제문을 다시 한 번 읽어보아야 할지 아니면 민변 아카이브에 혹시 교류회 녹화본이 올라와 있는지 확인하고 다시 한 번 보아야 하나 고민을 하던 중 우연한 계기로 펠릭스 곤잘레즈 토레스(Felix Gonzalez-Torres)의 <무제(완벽한 연인)>이라는 작품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교류회 말미의 정리 발언 중 한 마디가 떠올랐습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이번 교류회 역시 우리가 서로 ‘같은 마음’을 가지고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는 자리였다.”

Felix Gonzalez-Torres – “Untitled (Perfect Lovers)”, 1991, clocks, paint on wall, overall 35.6 x 71.2 x 7 cm, photo: MoMA

위 작품의 구조만 간단히 설명하자면 같은 모양의 시계나 비슷한 모양의 시계와 새 건전지를 넣고, 전시하는 국가의 시간에 맞게 시, 분, 초침을 동일하게 하고 서로 맞붙여 놓은 작품입니다. 구조상 처음에는 두 시계의 초침까지도 일치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두 시계는 초침 그리고 분침까지도 조금씩 다르게 흐르게 됩니다. 민변 노동위와 오사카노동자변호사단도 같은 시간을 공유하며 나란히 맞붙어 있는 형국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마음을 가지고 같은 방향으로 가는 그 연대는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할 것입니다.

왜 이 작품의 부제가 완벽한 연인(Perfect Lovers)인지 정확하게 판단할 수는 없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완벽한 연인도 조금씩은 어긋날 수 있고, 그 어긋남이 오히려 서로의 완벽함을 만들어 낸다는 뜻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신입이라는 미명 하에 별다른 준비 없이 교류회에 참관하였고, 당연하게도 구체적인 후기를 남길 만큼 열정적으로 참여하지 못 했습니다. 이런 제 마음 때문인지 몰라도, 이번 교류회는 오사카 변호사님들이 조금 더 앞서 시간을 당겨가는 듯했습니다. 제23회 중 처음으로 참여한 교류회이니만큼 이렇게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조금 더 완벽한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교류회뿐만 아니라 법과 제도 그리고 판결도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노력을 보태고 있는 선배님들과, 그 시간을 견뎌내고 있는 당사자분께 감사하고 송구한 마음입니다. 부디 내년 교류회에서는 각국에서 노동자 친화적인 입법적, 법해석적 진전이 있다는 사실을 서로 얼굴을 맞대고 나눌 수 있기를 ‘같은 마음’으로 바라봅니다.

 


[1] 김정환, “[단독] 재택근무 사상 첫 100만명 돌파…펜데믹후 2년새 12배 폭증”, 매일경제, 2021. 10. 26.

[2] 김준영 외, “2021년 플랫폼 종사자 규모와 근무실태”. 고용동향브리프, 2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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