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 보도자료]
“무작정 가두어 두는 것은 방역이 아니다”
요양병원, 장애인시설, 아동복지시설의 코로나19 대응에 관한
인권침해 국가인권위원회 진정 등
○ 장애인, 노인, 아동 관련 9개 시민단체가 2021. 7. 21. (수) 11:30, 국가인권위원회에 요양병원, 아동복지시설, 장애인거주시설의 코로나-19 방역 관련 시설 격리에 따른 인권침해에 대한 진정서 및 직권조사 요청서를 제출했습니다.
○ 참여 단체 : 경기장애인차별철폐연대, 경북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아동인권위원회, (사)경기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사단법인 두루, (사)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사)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정치하는엄마들
– 모든 보도에 당사자 이름, 나이, 소속, 시설명 노출되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써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보도문>
Ⅰ. 시민단체 입장문 : 무슨 근거로, 누구를 위해 가두는 것인가요?
가장 외면받는 집단을 봉쇄하고 사회로부터 격리하는 것은 감염병 대응으로는 최후의 수단이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요양시설, 장애인시설, 아동시설에는 이송체계와 의료설비가 갖추어지기도 전에 사회로부터의 격리조치가 먼저 시행되었습니다. 환자, 노인, 장애인, 아동 등은 가족들을 볼 수 없었고, 일상을 송두리째 포기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조치는 ‘지침’ 또는 ‘행정명령’과 같은 형태로 이루어졌습니다. 그 근거법령이 명시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는 근본적으로 시민의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는 방식이 아닙니다. 『감염병예방및관리에관한법률』을 비롯한 어느 법령도 이런 방식으로 시민의 기본권을 포괄적, 상시적으로 제한할 수 있는 근거를 두고 있지 않습니다.
법적인 근거가 있더라도, 시민의 권리를 제한하려면 그 목적과의 비례적인 수준의 최소한의 것이어야 합니다. 위급한 환자들이 가족을 만나지 못하고, 장애인들이 시설에 갇혀 사회와 차단되고, 아동의 교육권과 사회참여권이 제한되기 위해서는 그에 비례하는 수준의 필요성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합니다. 외식을 몇 명이 몇 시까지 할 수 있는지보다 훨씬 더 깊은 논의가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시설에 대한 지침 수립에 그러한 과정을 거쳤는지 의문입니다. 최우선적으로 이루어졌어야 할 당사자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과정마저 자연스럽게 생략되었습니다.
대부분의 시설에서는 종사자들의 출입, 심지어 물건의 배송과 사무적인 방문까지도 가능했습니다. 오직 가장 취약한 당사자들의 출입만이 철저히 막혔습니다. 요양병원의 간병인은 단순히 종사자가 아니라는 사실만으로 출입이 막혀 출퇴근도 없이 일해야 했습니다. 이것이 진정으로 방역에 대한 깊은 고려에서 온 차이인지 의문입니다. 오히려 가장 편의적인 방식으로 보이지 않는 사람들만을 가둬두고 안심한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감염병 유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아마 이번이 마지막도 아닐 것입니다. 방역은 시민을 장기말로 바이러스와의 전쟁을 치루는 것이 아닙니다. 방역은 결국 사람을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지난 일년 반을 고통 속에서 버텨온 시설들의 사례에서 우리는 교훈을 얻었어야 합니다. 당사자들과 시민사회단체, 변호사단체들은 이 상황을 알리기 위해, 그리고 더 이상의 반복을 막기 위해 함께 진정을 제기하고, 직권조사를 촉구합니다.
Ⅱ. 진정 등의 개요
– 1. 요양병원의 격리에 따른 인권침해 진정 (5. 21. 진정 제기, 7. 21. 보충서면 제출)
ü 진정인: 요양병원 환자 및 보호자
ü 진정 대리인: 사단법인 두루 이주언, 이한재, 최초록 변호사
ü 진정요지: 요양병원에는 각 지역별 지침, 의료법상 행정명령, 보건복지부의 지침 등 코로나19 대응에 관한 지침이 중첩 적용되고 있으며, 각각이 모두 일관되게 공개되고 있지 않아 어떤 병원에 현재 어떤 지침이 적용되고 있는 것인지 알기조차 어렵다. 게다가 이 지침들의 법적 근거가 무엇인지, 법적 성격이 무엇인지가 모두 모호하여 현장에서는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그 내용상으로도 지나치게 부실하고 단순한 봉쇄를 위주로 하고 있다. 면회, 외출, 외박을 모두 금지하여 환자와 보호자의 접촉을 모두 차단하며, 간병인에 대해서도 예외규정이 없어 간병인의 출퇴근이 불가능하다. 이는 기본권 침해가 과도한 데에 비해 현실적인 방역상의 효과는 의심스러운 방식이다.
– 2. 장애인거주시설의 격리에 따른 인권침해 직권조사 요청
ü 요청 단체 : 경기장애인차별철폐연대, 경북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 (사)경기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사)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사)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사단법인 두루
ü 요청 요지 : 장애인거주시설의 외출, 외박, 면회가 일년 이상 금지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나 실태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다. 이는 기본권의 침해일 뿐만 아니라 장애인차별금지법상 차별행위이기도 하다. 또한 장애인 거주시설에 대해 자행되고 있는 ‘예방적 코호트 격리’ 조치는 법적인 근거가 없으며, 타당한 조치인지조차 의심스럽다. 이는 최후의 수단으로만 엄격한 요건을 갖추어 시행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문제의 반복을 막기 위해 철저한 직권조사와 정책권고를 요청한다.
– 3. 아동복지시설의 격리에 따른 인권침해 진정
ü 진정인: 아동복지시설 보호종료아동 및 정치하는 엄마들
ü 대리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아동인권위원회 김영주, 소라미, 신수경, 이현서, 조민지 변호사 및 사단법인 두루 강정은, 마한얼 변호사
ü 진정요지: 아동복지시설 거주아동의 외출, 외박, 면회를 금지한 보건복지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유행대비 아동복지시설 대응지침”은 아동의 행복추구권, 면접교섭권, 의견청취권을 침해하고, 시설에 거주하는 아동을 시설 밖의 아동이나 시설 종사자와 비교해 차별적으로 대우한다.
이에 국가인권위원회에 위 대응지침을 개정하고, 재발을 방지하며, 인권침해 상황을 파악하도록 권고할 것을 요구한다. |
Ⅲ. 방역을 이유로 한 기약 없는 격리조치와 인권침해
- 기약없이 갇힌 환자 A씨, 면회마저 무작정 거절당하는 보호자 B씨
A씨는 몸을 움직이거나, 먹거나, 배변, 혈압조절, 호흡을 모두 스스로 할 수 없는 중증 루게릭 환자입니다. A씨의 가족들에게는 지금 흘러가는 매 순간이 중요하지만, 코로나19 확산 이후 1년 반은 요양병원의 격리상태에서 흘러갔습니다. 전국의 요양병원은 사태가 시작된 2020년 초부터 격리되었습니다. 요양병원의 삶에 필수적인 체계가 만들어지기 전에 가장 단호하고 빠르게 이루어진 조치는 이송체계 구축이 아니라 ‘봉쇄’였습니다. 단 7글자, “외부인 출입통제”라는 문구만으로 요양병원에 출입하는 모든 사람의 출입을 막는 행정명령이 내려졌습니다.
B씨는 A씨의 아들입니다. 면회를 위해 병원, 지자체, 보건복지부 등에 여러 번 문의를 했지만, 해당 병원에 적용되는 지침이 무엇인지, 이 지침의 성격이 무엇인지, 무슨 근거로 보호자의 출입을 막는다는 것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당국은 길고 긴 봉쇄 끝에 시혜적으로 ‘비접촉 면회 가능’, ‘접촉 면회 일부 허용’ 같은 내용을 발표했지만, ‘1주일에 한 번 20분’과 같은 제한을 받았습니다. 그마저도 거리두기 단계가 상향되면 할 수 없었습니다.
감염병 와중에도 생계와 일상이 유지되고, 병원 종사자들은 자유로이 출퇴근을 했습니다. 매 순간이 소중한 환자와 그 가족들은 서로를 만날 수 없지만, 물건 배송, 행정처리, 각종 사무적인 방문은 지속됐습니다. 모든 종사자들과 대부분의 환자들이 백신 접종을 받은 이후에도, 환자와 보호자의 접촉만은 철저히 차단되었습니다. 실질적으로는 병원의 업무 일부를 분담하고 있는 간병인들은 병원 소속 직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출퇴근을 금지당하고 병원에 상주해야 했습니다. 과연 요양병원의 격리 지침이 ‘방역 뒤의 사람’을 충분히 고려한 것인지 의문입니다. |
- 코로나로 인한 격리 현황과 상태조차 파악되지 않는 장애인거주시설
경기도는 2020. 3. 6.부터 3. 29.까지 장애인ㆍ노인등이 입소한 의료ㆍ거주시설 1,824개소에 대해 예방적 코호트를 실시하였다고 밝혔는데, 경기도에 정보공개청구를 하였을 때 예방적 코호트 격리 시행기관은 “수원시 소재 기관 등 14개소”라고 답변하였습니다. 경북은 2020. 3. 9.부터 3. 22.까지 사회복지시설 564개소를 대상으로 “특단의 대책의 일환으로” 예방적 코호트를 실시하였다고 발표하면서, “집단감염 차단 해법제시 및 그 효과가 완벽히 입증되었다”라고 자화자찬했습니다. 이러한 예방적코호트는 별도의 지침 없이 이루어졌고, 시설종사자에게만 위로금이 지급되었습니다.
왜 이러한 “특단의 조치”는 가장 취약한 사람들에게 가장 가혹한 방식으로, 그리고 선제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일까요?
요청인들이 알기로는 예방적 코호트 이후에도 거주인들의 외출, 외박, 면회는 허용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이 전국의 모든 장애인거주시설의 상황인지, 일부 거주시설의 상황인지는 알 수 없으나, 최소한 경기도에 위치하거나 대구시가 관할하는 장애인거주시설에서는 거주인들의 외출, 외박, 면회가 일년 이상 금지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거주인들의 가족들도 거주인들의 건강상태를 직접 확인하지 못한 채로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백신 도입에 기대를 걸었으나, 확진자가 급증하고, 수도권의 사회적거리두기가 4단계로 강화된 요즘 경기도 거주시설은 외출, 외박, 면회이 여전히 허용되지 않고 있습니다.
장애인을 거주시설에 맡기고 있는 가족들은 혹여나 장애인에게 불이익이 가는 것이 두려워 이름을 걸고 진정을 할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알음알음 시설들의 상황을 들을 수 있을 뿐, 지역별로 전체적인 시설의 인권 침해 상황을 파악하는 것조차 어려운 상황입니다. |
- 아동양육시설에 갇혀 지낸 C씨
아동양육시설에서 생활하던 C씨는 2020년 보호종료를 앞두고 있었습니다. C씨는 꿈을 이루기 위해 인턴십을 통해 지역 사회에서 직업훈련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2월 말 갑자기 아동양육시설에서 면회, 외출, 외박을 전면 금지하였고, 인턴십도 그만두어야 했습니다. 좁은 공간에 오래 ‘갇혀’ 지낸 동료들과 다툼도 늘었습니다. 게임이라도 좋아했다면 하루 종일 휴대전화로 게임을 했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너무나 긴 하루를 보내야 했습니다. 시설 밖의 멘토와 대면 만남이 금지되어 밤새 휴대전화 건너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안도했습니다.
가정에서 생활하는 아동이었다면 정부의 방역지침을 자발적으로 준수하며 친구를 만나거나, 공원에서 산책하거나, 가족과 외식을 가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동양육시설에서는 방역이 의무였습니다. 지금은 아동양육시설에서 퇴소한 C씨는 “방역이 권리”라고 강조했습니다. 정확한 정보를 제공받아 어떻게 스스로를 코로나-19로부터 지키는지 교육받는다면 아동양육시설에 사는 아동들은 충분히 자발적으로 지침을 지킬 수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대중교통을 타며 식당과 술집에서 다른 사람들과 만나는 어른들보다 아동이 더 잘 지킬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해외의 아동양육시설에 관한 지침들은 코로나-19 시기에 아동이 안전하게 외출할 수 있는 방법, 원가족과 안전하게 대면 접촉을 유지하는 방법, 코로나-19 상황을 이해하고 스스로 대응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방역이 권리를 포기한 대가가 아니라, 권리 그 자체라는 것을 아동양육시설에서 생활하는 아동들은 언제쯤 체감할 수 있을까요. |
2021년 7월 21일
경기장애인차별철폐연대, 경북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아동인권위원회, (사)경기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사단법인 두루, (사)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사)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정치하는엄마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