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민변 월례회 ‘어린이라는 세계’ 북토크 참가 후기
작성: 김지림 회원
작년 연말, 종종 들르는 책방의 사장님이 ‘올해 본 책 중 최고’라며 조심스레 이 책을 추천해 주셨습니다. 사실 ‘어린이’라는 주제는 평소 저의 관심 분야와는 거리가 멀었기에 선뜻 손이 가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몇 달이 지나지 않아 민변에서 바로 그 책의 작가님을 모시고 북토크를 진행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책방사장님이 추천하셨던 기억이 나 기대를 품고 책을 읽어 내려갔습니다.
어린이책 편집자로 일하다 지금은 독서교실을 운영하고 있는 저자는 직접 아이들과 만나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에서 ‘어린이라는 세계’를 새롭게 발견한 경험을 독자와 나누고 있습니다.
1부 ‘곁에 있는 어린이’에서는 어른들이 미처 보지 못하거나 혹은 보아도 깨닫지 못하는 아이들의 생각과 관점을 소개하고, 2부 ‘어린이와 나’에서는 저자의 어린 시절 혹은 현재 진행형의 경험들과 아이들의 행동, 반응을 엮어 소개합니다. 이즈음 저자의 깨달음은 곧 독자의 깨달음이 됩니다. 3부 ‘세상 속의 어린이’에서 저자는 (저자가 내내 강조하는) 어른으로서의 책임을 지고, 독자가 어린이를 위해 준비해야 하는 세상의 모습을 단호하게 그립니다. 여기서 독자는 자연스럽게 ‘선생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어린이라는 세계를 알게 해준 작가를 만난다는 생각에 기대를 품고 참가한 북토크는 민변 아동인권위원회 위원장인 김영주 변호사님과 작가님의 솔직한 문답으로 유쾌하게 진행되었습니다. 오고 간 질문과 대답 중 기억에 남는 부분을 몇 가지 골라봅니다.
‘요리초보자’를 ‘요린이’, ‘주식초보자’를 ‘주린이’라고 하는 등 어떤 분야의 초보자 혹은 입문자를 가리킬 때 ‘어린이’라는 단어를 합성하여 쓰는 현상과 관련하여, 작가님은 이러한 용어는 어린이를 아직 완성되지 않은 미숙한 존재로 바라보는 것으로서 어린이를 존중하지 않는 용어로 보았습니다. ‘어린이’라는 용어 자체가 일제 강점기 학대받고 착취당하는 아이들을 가시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기에 지금과 같은 쓰임은 오히려 그 의도에 반하는 것이라는 설명이 곁들여 졌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책 속에 이런 문구가 있습니다.
“(5세 아이의 사망사건과 관련하여) 기사에 달린 댓글에는 어린이가 ‘피어 보지도 못했다’는 표현이 있었다…중략…나는 틀린 비유라고 생각한다. 내가 아는 삶은 그런 게 아니다. 삶의 순간순간은 새싹이 나고 봉우리가 맺히고 꽃이 피고 시드는 식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지나고 보면 그런 단계를 가졌을지 몰라도, 살아 있는 한 모든 순간은 똑같은 가치를 가진다. 내 말은 다섯 살 어린이도 나와 같은 한 명의 인간이라는 것이다.” (163면)
그리고 끊임없이 발생하는 아동학대 사건들과 변하지 않는 구조적 문제들 속에서 냉소적인 시각을 갖게 되었다가 이 책을 읽고 반성(!)하게 되었다는 김영주 변호사님의 코멘트에 대해 작가님은 본인도 매번 절망하지만, 그래도 포기하면 가장 먼저 희생될 것은 어린이와 같은 약자들이라는 생각으로 이겨내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관련하여 책 속에 이런 문구가 있습니다.
“절망적인 소식들이 쏟아질 때면 자연히 포기하는 쪽으로 몸과 마음이 기운다. 분노와 무력감 사이를 오가다 보면 이 나라를 외면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내가 버리는 짐을 결국 어린이가 떠안을 것이다…중략…(어린이라는 세계에) 냉소주의는 감히 얼씬도 못한다.” (255면)
본 후기를 쓰기 위해 다시 책을 읽다보니 북토크의 내용이 좀 더 선명하게 다가왔습니다. 아직 이 책을 읽지 않았거나 민변의 북토크에 참가하지 못한 분들께 이 책을 추천합니다. 나의 관심 분야가 아니라고, 나와 관련이 없다고 외면하는 순간 좁아지는 것은 결국 나의 세계입니다.
어린이에게만 선생님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이미 자기만의 고정관념에 갇힌 어른에게도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선생님이 필요합니다. 어린이와 관련된 가슴 아픈 소식이 매일같이 들려오는 지금, 바로 지금이 우리 모두가 김소영 선생님과 만날 시간입니다.
시의적절한 주제 선정, 예상을 뛰어 넘는 섭외력, 그리고 유쾌하면서도 공감 가는 멘트로 진행된 북토크, 모든 것이 좋았던 시간이었습니다. 민변의 회원행사는 항상 큰 즐거움과 함께 묵직한 고민거리를 남깁니다. 마지막으로 책 중 저의 마음을 움직인 한 문장을 공유하며 글을 마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약자에게 안전한 세상은 결국 모두에게 안전한 세상이다. 우리 중 누가 언제 약자가 될지 모른다. 우리는 힘을 합쳐야 한다. 나는 그것이 결국 개인을 지키는 일이라고 믿는다.” (21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