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기고] 유성기업 노조투쟁 역사와 성과, 그리고 과제

2021-02-08 75

<유성기업 노조투쟁 역사와 성과, 그리고 과제>

 

김차곤 회원 (법률사무소 새날)

2019년 8월 22일 유성기업 노동자들이 오체투지를 진행하며 청와대로 향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2019년 8월 22일 유성기업 노동자들이 오체투지를 진행하며 청와대로 향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 출처 : 참여와혁신(http://www.laborplus.co.kr)

 

유성기업의 노조파괴공작과 이에 맞선 민주노조사수투쟁

전국금속노동조합(이하 ‘금속노조’라 한다) 유성지회(아산지회와 영동지회, 이하 아산지회와 영동지회를 통칭할 경우 ‘유성지회’라 한다)가 2011년 1월부터 ‘주간연속 2교대제 도입’과 관련한 특별교섭을 요구하자 유성기업 주식회사(이하 ‘유성기업’이라 한다)는 노조파괴 전문 노무법인인 창조컨설팅의 자문을 받으면서 노조파괴시나리오를 가동시켰다.

유성지회가 2011년 5월 18일 조합원 찬반투표를 거쳐 파업을 결의하자, 유성기업은 같은 날 아산공장에 대하여, 같은 달 23일 영동공장에 대하여 각 직장폐쇄를 단행하였다. 유성지회 조합원들은 2011년 5월 19일부터 같은 달 24일까지 아산공장에서 점거농성을 진행하였고 공권력 투입으로 아산공장에서 밀려난 2011년 5월 25일부터는 이웃 농민이 마련해준 비닐하우스에 체류하며 투쟁을 이어갔다. 직장폐쇄 이후 유성기업은 선별적·단계적 업무복귀만을 주장하며 유성지회 및 조합원들의 업무복귀 요구를 거부한 채 2011년 8월 21일까지 직장폐쇄를 지속하였다.

2011. 7. 1.부터 법률상 복수노조가 허용됨에 따라 유성기업은 어용노조인 유성기업(주)노동조합(이하 ‘제2노조’라 한다)을 설립하고 제2노조가 과반수의 조합원을 확보하여 교섭대표 노동조합이 되게 함으로써 유성지회를 무력화시키거나 와해시킬 방법을 기획하였다. 유성기업은 2011. 7. 제2노조 출범과 관련하여 제2노조의 규약, 노조설립신고서, 창립총회 의사록의 초안을 작성하여 주는 등 제2노조의 설립에 개입하였다. 직장폐쇄가 철회된 이후 유성기업은 유성지회 조합원들에게 연장근로 및 휴일특근 기회를 부여하지 아니하는 방법으로 임금상의 불이익을 가하였다.

유성기업은 2011년 10월 18일과 같은 해 11월 1일 유성지회 조합원 27명을 단체협약을 위반하며 해고하였는데, 해고자들은 유성지회 간부이거나 노동조합 활동에 적극적이던 조합원이었다. 제2노조를 육성하여 과반수 노조로 만들기 위하여 유성기업은 각 팀별로 팀장 등 관리직원들을 전방위적으로 동원하였다. 팀장 등 관리직원들은 유성지회 조합원들을 개별적으로 접촉하여 유성지회에서 탈퇴하고 제2노조에 가입할 것을 권유하거나 종용하였다. 위와 같은 조치에도 불구하고 2012년 임단협을 앞두고 제2노조가 과반수의 조합원을 확보하지 못하자 유성기업은 관리직 사원들의 노조가입을 추진하였다. 유성기업은 2012년 1월 9일부터 같은 달 26일까지 그 동안 한 번도 노동조합에 가입한 적이 없던 관리직 사원 49명을 제2노조에 가입하게 함으로써 제2노조가 2012년 임단협에서 교섭대표노조가 되게 하였다.

유성기업은 과반수노조로서 교섭대표노조인 제2노조와 2012년 임단협 교섭을 진행하여 해고요건을 약화시키는 등 노동자에게 불리하게 단체협약을 개악하였다. 이후 유성기업은 유성지회 조합원들에 대하여 해고 등 징계 남발, 차별, 무차별적인 고소·고발, 거액의 손해배상청구, 비밀녹음, 몰래카메라까지 동원한 감시·통제, 임금체불 및 교섭해태 등 10년 가까운 기간 동안 노동자 괴롭히기와 부당노동행위를 계속하였다. 이에 굴하지 않고 유성지회와 조합원들은 제2노조 설립무효확인청구소송, 부당노동행위 고소, 해고무효확인소송 등 법률투쟁과 전면파업, 부분파업, 집회, 점거농성, 삼보일배 현장순회, 출근피케팅 등 현장투쟁을 이어 갔고 마침내 2021년 1월 18일 임단협 및 현안에 대한 노사합의가 성사됨으로써 10년간의 민주노조사수투쟁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하였다.

 

투쟁의 성과

유성기업의 노조파괴공작에 맞선 유성지회의 민주노조사수투쟁의 성과는 첫째, 노조파괴공작의 결과물인 제2노조의 설립이 무효라고 판정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제2노조가 그 설립 및 운영에 있어 사용자인 유성기업에 대한 관계에서 자주성 및 독립성을 확보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제2노조의 설립이 무효라고 판결했고, 서울고등법원은 제2노조의 항소를 기각했으며, 현재 대법원 2017다51610호로 상고심 계속중이고 선고가 임박한 상태다. 제2노조 설립무효 소송은 부당노동행위로 고통받고 있던 유성지회 조합원들의 절박함을 담아내고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소송을 고민하다가 고안해낸 소송이었다. 승소 판결로 조합원들이 자신감을 가지고 투쟁을 이어 나갈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둘째, 노조파괴 범죄자들인 유성기업의 대표이사, 공장장 등이 형사처벌을 받았다. 대표이사는 노조파괴 혐의에 대하여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위반(부당노동행위)죄로 징역 1년 2월을 선고받았고(2017도13781), 창조컨설팅 노조파괴자문료와 변호사 선임료를 회사돈으로 지불한 혐의에 대하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배임)죄와 업무상횡령죄로 징역 1년 4월을 선고받아(2020도1281) 두차례에 걸쳐 실형을 선고받았다. 앞 판결의 경우 부당노동행위 인정에 소극적이던 관행에서 벗어나 법원이 광범위한 범죄사실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유죄를 인정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고, 뒷 사건의 경우 노조파괴라는 불법한 행위를 위해 회사돈을 지급하는 행위에 대하여 최초로 배임죄의 성립을 인정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셋째, 유성기업의 노조파괴에 개입한 창조컨설팅 관계자에 대하여 유죄가 선고되었다. 창조컨설팅의 대표노무사와 전무노무사에게 부당노동행위 방조의 죄책이 인정되어 각 징역 1년 2월의 실형이 선고된 것이다(2019도4481).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에 가담한 전문가들을 기소하거나 처벌하지 않던 관행을 깨고 법률전문가들도 부당노동행위에 개입하면 형사처벌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넷째, 원청인 현대자동차 임직원들에 대한 형사처벌이 이루어졌다. 유성지회를 무력화시키기 위하여 기간별로 제2노조 목표가입인원을 정해주고 점검회의를 개최하는 등 노조파괴에 가담한 현대자동차의 임직원들에게 6월부터 1년까지 징역형의 집행유예가 선고되었다(대전지법 2019노2706, 확정). 부품사의 노사관계에 개입한 원청에게 부당노동행위를 인정한 첫 사례로 보인다.

다섯째, 유성지회는 어용노조를 만들고 과반수노조로 육성하여 유성지회를 무력화시키려는 유성기업의 시도를 저지시켰다. 아산지회와 조합원들은 노조파괴공작을 극복하고 다수노조의 지위를 회복하였다. 2012년 임단협에서 소수노조로 전락하였지만 2013년부터 다시 과반수노조가 된 것이다. 유성지회 노동자들의 지칠 줄 모르는 투쟁과 연대투쟁이 없었다면 불가능하였을 것이다. 조직력의 회복이라는 성과야말로 무엇보다 중요한 성과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과제

유성기업 노조파괴 사태에서 우리가 반드시 주목해야 할 지점이 있다. 유성기업의 노조파괴에 국정원 등 국가기관이 개입하였다는 사실이다. 창조컨설팅이 작성한 ‘노사관계안정화 컨설팅 제안서’와 ‘전략회의’ 문건에서 창조컨설팅은 ‘노동부, 노동위원회, 국정원, 경찰, 검찰 등 유관기관 대응전략’을 수립할 것을 제안하였다. 창조컨설팅이 작성한 이메일주소록에는 청와대 국장 류○○, 국정원 처장 정○○, 경찰청 사장 김○○, 노동부 사무관 정○○, 경총 전무 이○○, ○○신문 국장 윤○○ 등의 이메일주소가 수록되어 있었다.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의 조사결과 창조컨설팅이 작성한 문건이 실제로 청와대에 전달된 사실과 당시 대통령 이명박의 월례연설과 한국경제 관련기사가 창조컨설팅이 작성하여 청와대로 보낸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추가 조사나 수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수사기관과 법원의 책임이 크다는 사실 또한 간과되어서는 안된다. 경찰, 노동부, 검찰은 유성기업측이 노동자를 고소한 경우 신속하게 수사하고 송치, 기소하였다. 반대로 유성지회 노동자가 노조파괴 책임자를 고소했을 때는 수사는 지연되었고 대부분 무혐의 처분을 하였다. 객관성 있는 증거도 무용지물이었다. 일례로 천안검찰은 현대자동차가 노조파괴를 직접 지시한 이메일 등 증거를 2012년 11월에 이미 확보하고도 공소시효만료 3일전에 기소할 때까지 4년 넘게 현대자동차와 그 임직원들을 봐주었다. 법원도 책임이 크다.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은 유성기업의 직장폐쇄가 정당하다고 판결하였다. 또 천안지원은 유성기업이 노조간부 등 11명의 노동자를 해고한 것이 정당하다고 판결하였다. 천안지원의 위 판결은 조합원들에 대한 유성기업의 무차별적 징계로 이어졌고, 한광호 열사가 자결하는 사태를 초래했다. 대전고등법원에서 위 판결들이 파기되긴 하였지만 노동자들이 당한 고통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이었다.

경찰, 노동부, 검찰, 법원이 공평하게 사건을 처리하였다면 유성기업의 노조파괴는 조기에 종식되었을 것이고 노동자들의 삶은 달랐을 것이다. 유성기업의 노조파괴는 수사기관과 법원의 묵인과 방조가 이를 가능하게 하였다. 유성기업 노조파괴에 국정원 등 국가기관들의 개입한 진상이 규명되고, 경찰, 노동부, 검찰, 법원의 직무유기와 직권남용이 낱낱이 밝혀져야 한다. 그래야만 노조파괴공작이 사업장에서 발을 붙이지 못하게 될 것이다.

 

-편집: 허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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