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하경(류): 어서오세요
조세현(조): 안녕하세요
류: 저와는 세월호TF에서 같이 활동하면서 자주 보지요?
조 : 네 류변호사님과는 대학 선후배 사이인데 민변에서도 자주 뵈니 좋네요 (웃음)
류: 저는 조변호사님을 잘 알지만, 우리 회원들은 잘 모르는 분들이 계시니 차근차근 한번 여쭤볼게요. 지금 어디서 일하고 계시죠?
조: 법무법인 진성에 있습니다. 올해 1월 입사했어요. 작년에 변호사시험에 합격해서 지난해에는 법무법인 다산에서 실무수습을 했습니다.
류: 조변호사님은 민변에서 위원회 활동을 가장 다양하게 하는 분으로 알려져있는데, 대체 얼마나 많이 활동하고 있나요?
조: 과거사청산위, 노동위, 디정위, 교육위, 문화예술스포츠위, 민생위 활동을 하고 있고요, 사법센터, 세월호 TF, 국정원 프락치사건 TF, 변론센터 재심사건 TF 2개, 궁중족발 사건 대리인단 등에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제가 말하고 보니 많긴 많네요. (웃음)
류: 신인모범회원상을 받았지요? 그럴 자격이 있네요.
조: 민망합니다. 일을 많이 해서라기보다 출석을 잘한 덕분인 것 같습니다. (웃음)
2020. 5. 신인모범회원상 수상 당시 사진
류: 민변 위원회나 팀 활동을 왜 이렇게 여러가지를 하나요?
조: 처음에는 노동위, 과거사위, 사법위에 가입했어요. 사법개혁에 큰 뜻이 있었다기 보다는 사법센터 안에 로스쿨 관련 제도, 법조일원화와 관련하여 고민하는 곳이 있어서 가입했지요. 제가 로스쿨 출신이기도 하고 로스쿨 재학 당시에 법학협(전국 법학전문대학원 학생협의회)에서 활동하면서 법무부 회의에도 참석하는 등 로스쿨 제도 개선활동을 했었어요. 그래서 사법위 활동은 잘 모르지만 로스쿨 제도 개선 관련 활동을 할 수는 있을 것 같아 사법위에도 미리 가입했던 것이고요. 그리고 변호사시험 합격 후 수습기간 동안 시간이 좀 남았을 때 메일, 문자로 받은 활동들에 참여하다 보니 이렇게 활동 범위가 넓어졌네요(웃음), 아무래도 처음 민변에 들어오니까 가입 권유가 많았어요.
조세현 변호사는 지난 과거사위·긴조변호단 워크숍에서 준비팀으로도 활약했다.
류: 대학원도 다닌다는 말이 있던데요?
조: 네. 지금 한양대학교 대학원에서 노동법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로스쿨도 한양대를 나왔습니다. 강성태 교수님께 지도받고 있어요. 노동사건을 보다 더 잘 수행하고 싶어서 진학했습니다.
류; 민변에 가입하게 된 계기는 어떻게 되나요?
조: 2008년도 광우병촛불시위 때 민변이 시민들하고 가깝게 활동을 했었잖아요, 제가 민변의 역사는 잘 모르지만 조영래 변호사님, 김선수 변호사님 등 선배 변호사님들의 활동이나 글들을 보면서 학생 때부터 민변에 어느 정도 관심이 있었어요. 저는 소송을 하는 변호사가 꼭 되고 싶다기보다는 변호사가 할 수 있는 사회적 활동들에 관심이 있었어요. 그것을 가장 많이 수행하고 있는 곳이 민변이었고요. 그래서 변호사가 되면 민변에 꼭 가입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실제로 변호사시험 합격 후 바로 민변에 가입했고요.
류: 학부에서 경영학 전공이시면, 보통 대기업 입사와 같은 주류 쪽 진로로 많이 가는데?
조: 법률 쪽으로는 전혀 관심이 없었죠. 학생운동 하는 선배들을 많이 만났어요(웃음). 학생운동을 했다기 보다는… 그런 운동을 열심히 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가 있었어요. 선배들 따라서 많이 나간 집회가 2007년 당시 상암동 홈에버 비정규직 집회였어요.
류: 저랑 많이 같이 가셨죠.
조: 네(웃음). 07년도부터 09년도까지 가장 열심히 나간 집회였어요. 투쟁의 최종 결과는, 남은 노동자들 고용승계하는 대신 집행부는 고용승계하지 않는 거였어요. 그리고 그 집행부 다섯 분에게 회사가 손해배상청구를 200억 가까이 했었던 것으로 기억해요. 당시 학교 선배들이 이건 너무 부당한 것 같다고 했었죠. 저 분들이 손해배상책임까지 부담하는 것은 납득되지 않았죠. 당시에는 법률과 관련해서는 일자무식이었어요. 그때 법 공부가 좀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다른 연대해야 할 투쟁현장들이 많았는데 어떻게 그분들과 연대할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처음에는 막연하게 활동가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경영학은 여러모로 잘 안 맞아서(웃음), 군대 다녀오고 자퇴를 하든지 하는 생각으로 군대에 갔죠. 군대에서 경향신문에 실린 공익법재단 ‘공감’을 소개하는 칼럼을 읽게 되었어요. 그 당시 칼럼에서 ‘공감’이 하고 있던 이주노동문제를 비롯한 다양한 공익인권 분야 활동 등을 소개하였는데, 수임료를 받지 않는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어요. 저는 막연하게 변호사 하면 돈도 어느 정도 벌고 잘 먹고사는 직업군이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경제적인 부분을 상당히 포기하고 타인을 위해 연대하는 삶을 사는 변호사들이 있다는게 놀라웠고 멋져 보였어요.
류: 07년도에 홈에버 비정규직 투쟁에 연대했던 것을 계기로 학생회장 활동까지 하게 되신 건가요?
조: 처음에는 반회장이었는데, 그 다음해에 단과대 학생회장을 나가게 되었어요. 경영대 학생회장. 당시 이한열 열사 21주기 추모제 추진위원회를 도맡아 했어요. ‘명박산성’, 물대포 직사살수와 같은 반민주적 탄압이 횡행하던 때였어요. 87년 이후에 형식적인 민주주의는 갖추어졌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대통령이 바뀌고 1년도 되지 않아서 그런 사단이 벌어진거죠. 이한열 열사가 지금도 살아있다면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를 기조로 열사 추모제를 준비했어요. 의료민영화, 인청공항민영화 등의 정책 반대, 한미FTA반대 등 현안 쟁점들도 주제로 삼았어요. 그리고 건강권에 대한 우려 즉 광우병 미국소의 무분별한 수입 반대 투쟁까지 포함해서 갑작스런 개방에 대한 시민사회의 두려움과 우려들을 이한열 열사 추모제에 녹여내려고 했어요. 학내에서는 청소 노동자들의 처우문제와 같은 비정규직 쟁점도 알리려 했어요. 형식적 민주화를 넘어선 실질적 민주화, 일상의 민주화와 관련된 주제들이었어요. 당시 이한열 추모 행진은 2-3천명 정도 참여했어요. 경찰이 학교 교문 통과 인원은 100명 미만이어야 한다고 해서 교문을 지나면서 차츰 다른 인원들이 계속 결합하는 방식으로 진행했죠. 영정을 들고 상여를 짊어메고 광화문까지 걸어갔어요. 광장에는 1만여명의 시민들이 이한열 열사와 우리 행진대오를 큰 박수와 함성으로 맞아줬어요. 그때 많은 분들이 눈물을 흘리셨던 기억이 나요. (관련기사: “재협상” 100만 촛불 밝힌다, 2008. 6. 9. 한겨레)
류: 학생시절 했던 활동들이 민변 활동으로 이어지는 건지요?
조: 저는 아직도 이한열 열사 추모제에 매년 나가고 있어요. (이한열 열사) 어머님과도 아직도 연락하고요. (이한열 열사) 어머님께 부끄럽게 살지 않겠다고 말씀드렸는데 사실 그 동안 많이 부족했어요. 이제 변호사 자격이 생겼으니까,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한열이형한테 부끄럽지 않게 삶을 살아야겠다는.
류: 변호사 자격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사회활동이라 함은 송무 이외의 민변 활동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조: 네. 맞습니다.
류: 민변 활동을 열심히 하고 계시는데 밖에서 보던 민변 활동과 실제 경험하신 민변 활동에 차이가 있나요?
조: 네, 있죠(웃음). 예를 들면, 전에 생각했던 민변은 작지만 강하고 선명한 조직의 이미지였어요. 근데 어느 순간부터, 대중들과 가까워지면서 이전에 생각했던 ‘강한 모습’은 약해진 느낌이 들었고 일부 실망했던 부분들도 있었죠. 그러나 민변 활동을 하면서 경험해보니, 내부에서 논평 하나가 나가더라도 많은 회원들과 의견을 교환하고 수정하는 과정들이 필요하다는 점을 알게 되었고, 개개인 회원들이 절충적으로 의견을 낼 수밖에 없는 각 사안들의 정무적인 배경을 알게 되니까 민변이 처신에 신중할 때도 있어야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어요.
류: 민변에서 앞으로 하고 싶은 활동이 더 있다면?(웃음)
조: 제가 하고 있는 TF들 중에 마무리된 게 없어서, 하고 있는 활동들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 같아요. 진실과화해위원회법이 통과된 이후에 조영선 변호사님께서 과거사위원회에 제안해 주신 형제복지원 피해자 지원 변호단 활동에도 참여할 예정이에요. 피해자분들이 진상규명을 신청하실 때 도움을 드릴 수 있는 활동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세월호 TF도 어서 마무리가 되어야죠. 세월호참사의 책임자들을 고소고발 대리하는 과정에서, 수년 동안 책임추궁을 전혀 당하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당신들이 한 행동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인지를 각인시킨 것에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사회적으로도 다시 알려내고 실제로 기소도 되고 있는 점 역시 큰 성과고요. 세월호 고소고발 사건 관련해서 어떻게 사회적 동력을 더 모아낼 수 있을지 고민하는 과정에 있어요. 저도 TF 구성원으로서 아이디어를 내든지 몸으로 뛰든지 최선을 다하려고 해요.
류: 일과가 너무 바쁜데, 여가시간을 어떻게 지내요?
조: 전 여가시간에 민변일을 합니다. (웃음) 등산을 좋아해서 학부 때는 산에 자주 다녔는데 지금은 두 달에 한 번 정도 가요. 여가시간에는 등산을 하거나 지인들과 술자리를 가져요. 독서를 하고 싶은데 여유가 잘 안나서 아쉬워요.
2020 민변 신입회원 설명회 패널로 참여한 조세현 변호사(좌측 두번째)
류: 벌써 마지막 질문이네요. 조세현 변호사에게 민변이란?
조: 닮고 싶은, 내지는 닮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에요. 닮고 싶다는 말은 배우고 싶다는 거지요, 닮은 사람들이라는 것은 제가 얕게나마 고민하고 있고 고민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뜻이고요. 지난 번 신입회원 환영회에서도 이야기했었지만, 저는 제가 재미없는 사람인 걸 잘 알아요(웃음). 웃기려고 하지도 않고 쓸데없이 진지하고요. 그런데 민변은, 제가 진지한 이야기를 해도 이미 그 고민을 해보셨거나 아니면 지금 하고 있는 분들과 재미있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곳이어서 좋아요.
류: 청년변호사 조세현에게 물어볼게요. 지금 한국사회는 형식적 민주주의가 한걸음 더 진보하려는 시대인 것 같아요. 즉 오래된 가치와 새로운 가치가 충돌하고 변화하는 과도기라고 할까요. 이 즈음에 민변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요?
조: 민변이 어떻게 해야 할지 보다는 제가 할 일들을 이야기하고 싶어요. 시대가 변하면서 예전에는 맞았지만 지금은 아닌 부분들이 생기잖아요. 특히 예를 들어서 성인지감수성이나, 혐오표현 관련한 사회적 쟁점들이요. 예전에는 문제없다고 생각했더라도 지금은 맞지 않다는 게 드러난다면? 구성원들 모두 변화해야죠. 다만 공론의 장에서 충분한 토론과정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래야 새로운 가치가 안전하고도 튼튼하게 뿌리 내릴 수 있기 때문이에요. 새로운 가치가 오래된 가치를 무작정 파괴하는 식으로는 갈등만 더 깊어질 것 같아서 걱정이 되기도 해요. 즉, 기존에 존재했던 오래된 관점과 가치들이 당시 사회적 맥락에서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거시적으로 파악해야 사회적 대화가 원활할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선배들의 이전 경험들을 공유하고 교류할 수 있는 대화의 장이 더 많이 이뤄지면 좋겠고요. 그 과정에서 새로운 가치를 설득하는 방법과 과정도 더 현명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조건 빠른 변화와 즉각적 혁신만을 추구하기 보다는 합리적이고 충분한 숙의 민주주의가 필요한 때인 것 같아요. 너무 무리해서 자기 보폭을 넓히거나 너무 무리하게 타인의 보폭을 따르지 않고, 각자 자신의 걸음으로,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앞으로 나아가는 게 이 시대 진보의 숙제인 것 같아요.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걸음의 소중함이랄까요.
-작성: 류하경 / 편집: 허진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