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기고] 2020연극전태일 “네 이름은 무엇이냐” 관람기

2020-11-30 63

본 기고에 등장하는 행사는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 격상 전 진행된 행사이며, 방역지침을 준수하여 진행된 행사임을 알려드립니다.

 

2020연극전태일 “네 이름은 무엇이냐” 관람기

– 작성: 이유진 회원

10월의 마지막 날, 민변에서 주최하는 회원월례회에서 연극 전태일을 관람했습니다. 변호사가 된 지 4년이 되어서야 민변에 가입했는데, 연초에 가입한 직후 코로나로 행사도 줄어든 데다가 회사가 멀어 주중 행사는 참석할 엄두가 쉽게 나지 않아 어떻게 참여해야 하나 고민하던 차에 열린 주말 행사라 참 반가웠습니다.

 

극에 대한 감상

극은, 전태일 기념관에서 개최하는 <동아시아 민중 연극제>의 폐막작이었습니다. 연극제나 영화제의 개막작, 폐막작은 주의 깊게 보려고 합니다. 출품작 모두 그러하겠으나 특히 개막작과 폐막작은 여러 사람이 모여, 논의를 통해 근거로 결정했으리라는 믿음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럴까요? 연극은 훌륭했습니다. 작은 야외무대에서 무대와 관객석 사이의 공간을 전부 활용하면서 공간과 소품, 장치를 다채롭게 활용해 연출했습니다. 노래 – 심지어 라이브 연주와 함께 – 와 춤, 독백을 섞어 표현하면서 극을 진행해, 이렇게 공들여 준비한 공연을 이렇게 잘 모르고 봐도 되나? 싶을 정도로요.

<허리를 펼 수 없는 골방을 표현한 무대 소품>

 

허리를 펼 수 없는 골방에서 일하는 여공들의 모습을 한 칸의 조형물 속에 표현한 것도, 청계천 헌책방 거리와 생소한 근로기준법 책을 찾아가는 장면 – 을 통해 나타내는 ‘식자들의 배타성’ -, 어머니와 얘기를 나누던 고향 집 전봇대 뒤에 어른거리던 하얀 괴물로 표현된 죽음의 그림자도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시다들을 재우는 장면의 훈훈함도, 바보회를 모집하는 장면에서의 익살도, 근로조사관들이 서로 조사를 미루는 장면에서의 블랙 코미디도 모두 적절히 섞여 진지하고 비판적이면서도 유쾌한 극이었습니다.

 

<청계천 헌책방 장면>

 

특히 좋았던 것은 전태일의 모습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같은 옷을 입은 여러 배우 – 대략 10명쯤 – 가 분신으로 등장해서, 독백을 나누어서 했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모두 전태일이다, 우리는 모두 노동자다’, 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 같았습니다. 구석구석 색과 공간, 빛과 그림자로 은유 해놓은 표현들이 더 있을 것 같은데, 아마도 소양의 부족으로 다 이해하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뒤늦게 대본집을 사볼 걸 하고 후회가 되네요. (자세한 극 설명은 좋은 기사가 있어 인용합니다: https://bit.ly/35rsj3x. 찾다 보니 극 준비와 관련된 내용도 흥미로워서 같이 공유하여 드립니다. http://omn.kr/1ncjs)

<10명의 전태일*>

* 2020 동아시아 민중 연극제 유튜브 공식 홍보 영상에서 캡처

 

단편적인 상념들

일전에 캄보디아 노동법 관련 규정을 검토하다가, 직물 산업만 콕 집어 미성년자의 야간근무와 8시간 초과 근무를 금지해서 의아했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그만큼 직물 산업에서 미성년자의 야간근무와 초과근무가 비일비재했던 것은 아닐지요. 독재자 치하에서 경공업 중심으로 산업 발전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반복되는 과정인 걸까? 역사는 어디에서건 그 시기와 장소 또는 형태를 바꾸어가며 계속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캄보디아의 노동법은 지켜지고 있을까? 그곳의 누군가도 전태일처럼 근로조사관들에게 문전박대를 당하지는 않았을까? 그런 고민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습니다. 법의 적용과 집행에서 그 수호자 – 극에서는 근로조사관으로 표현되지만, 널리 나아가서는 변호사를 포함한 사회 모든 구성원 – 들이 역할을 다하지 않을 때, 비극이 시작됩니다. 그 역할을 확정하고, 인도하는 것이 ‘법-매뉴얼’과 ‘직업윤리’일 것입니다. 그들이 소임을 다하는 과정에서 외압이 있다면 – 독재정권 하에서 – 이를 이겨내라고 하는 것이, 그들에게도 잔인한 요구일 수 있지만요. 그래도, 100%가 아닐지라도, 방향성과 고민을 잃지 않았으면 하는데, 어떻게 사회와 사람들이 방향성을 잃지 않도록 할 수 있을까요? 그 방향성을 위해서 법이 있고, 법을 만들어가고, 법의 정신을 설득하는 사람들이 있는 게 아닐까요. 사실관계와 법의 교차점에서 방향성과 선을 만들어가는 데에 일조하는 것이 변호사의 역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학생 친구 하나만 있었으면 좋겠다던, 눈알도 줄 수 있다던 – 아마도 극 중 과장이겠지만 – 벽보를 붙이고 다니던 장면도 인상 깊었습니다. 인터넷과 모바일 환경의 발달로 알고 싶지 않은 정보도 알 수 있는 현재인데, 그 어느 때보다도 서로 연결된 현재, 우리와 우리를 둘러싼 현실은 그보다 얼마나 다를까요? 오히려 거짓을 포함한 정보의 홍수 속에서 올곧은 목소리가 희석되어 더욱 희미해진 것은 아닐까요.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이 안온하게 – 자신의 삶이 안온하다기보다는 문제의식으로부터 안온한 – 머무를 수 있는, 무책임한 중립 지대만을 넓힌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빠르게 변화하고 빠르게 전달되는 시대에, 질식하지 않기 위해 스위치를 끄고 눈을 돌리게 된 것 일지도요. 그 당시 전태일의 노동운동도 일간지(동아일보, 경향신문)에 게재되었으나, 현실을 바꾸지 못했으니, 다를 바 없으려나요. 혹은 누군가 고의로 눈을 돌리게 하려고 정보를 희석하고 홍수를 범람하게 한 것일까요? 3S 정책처럼요. 그렇다기보단 모두 일하고 삶을 살고 트랙 위를 걸어가느라 아래, 위, 옆을 둘러보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그 모든 것이 어쩌면 현실과 인간의 싸움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연극 내내 사장은 미싱사와 시다들에게 재촉합니다. ‘연휴 전에 한몫 잡아서 고향 가야지!’ 어쩌면 그도 연휴 전에 최대한 한몫 벌어야 한다는 비인간성을 구조로부터 재촉 받고 있는 걸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현실은 누가 만드는 것일까요?

거시적인 구조와 인간의 담론을 걷어내면, 남는 것은 인간입니다. 그 많던 미싱사와 여공과 시다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그때의 일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그 당시에 노동운동을 하던 여성들은 똥물을 뒤집어쓰기도 했다지. 사과는 받았을까? 지금은 그땐 그랬었지, 하며 웃고 지낼 수 있는 기억일까? 아니면 마음이 힘들어 돌아 보기도 힘든 지옥 같은 시간으로 남았을까? 그들이 벌어서 고향에 부친 돈은 어디에 쓰였을까. 마음과 몸 모두 건강히 살아 있을까. 그들은 왜 그렇게 일해야만 했을까. 우리는 왜 일하는가. 일이란 무엇인가. 그런 궁금증들이 또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왜 이렇게 고민만 많을까 하다가도, 이런 고민이 쌓여서 – 물론 개인적으로 고민을 놓지 않고 이어가야겠지만 – 행동을 만들고, 그게 미시적이든 거시적이든 변화의 시작이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저 보았을 뿐인데 이런 고민을 불러일으키다니, 그게 문화와 예술의 힘이지 싶기도 하고요.

 

<바보회 재단사들의 시위 장면>

 

민변에 감사 드립니다.

가족들과 함께 참여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문화 예술 행사이기 때문에 두서 없는 생각들일지라도, 혹은 그렇기 때문에 더욱, 보고 느낀 점을 나눌 사람이 꼭 필요한데, 가장 가까운 사람과 그 과정을 함께 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각성제 ‘타이밍’을 먹이는 장면에서 그게 약이라는 것도, 잠을 깨기 위해 먹였다는 것도, 고향 집 전봇대 뒤에서 아른거리던 하얀 괴물은 죽음이라는 것도 모두 어머니를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연극을 보러 가기 전엔 워낙 제가 아는 사람이 없어서 어머니와 민망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막상 가니 어머니께서 아시는 분이 제가 아는 분보다 많아서 신기하고, 놀랍기도 했습니다. 처음 뵈었는데도 반겨주신 민변 분들께도 감사 드립니다.

민변에 처음 가입할 때에 역사가 있는 민변이기 때문에 주변 어른들에게 ‘이번에 민변 가입했다’고 한마디씩 안부 인사를 전할 수 있는 것이 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세대 간의 벽이 걱정되는 부분도 있었는데, 가족과 함께 볼 수 있어서 세대 간의 벽도 쉽게 허물어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상치 못하게 득템한 첫 민변 굿즈(담요)도 세심한 깜짝 선물이었습니다. 오랜만에 뵈어서 반가운 분들도 좋았고, 처음 뵙는 분들도 모두 웃는 낯으로 반겨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가족 나들이를 나온 변호사님들의 아이들과 가족들을 볼 수 있어서 그 또한 아주 많이! 훈훈했습니다. 준비하느라 애써주신 여러 분께 다시 한 번 감사 드립니다. 다 인사 드리지는 못했지만, 또 자주 뵙고 인사 드리겠습니다.

 

덧)

참고로, 2020 동아시아민중연극제 유튜브 계정에서 공연 영상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jv3_Wrkhf98)

또, 연극팀이 앞으로도 전국 순회공연을 이어간다고 합니다. 페이스북 “2020연극전태일” 그룹(https://www.facebook.com/groups/182290129720873/)에서 전국 공연 일정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많은 분들께서 함께 보시면 더욱 좋을 것 같습니다. :)!

-편집: 허진선

첨부파일

[회원기고] 2020연극전태일 “네 이름은 무엇이냐” 관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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