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명]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 국회는 즉각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하라.
1. 구의역에서 홀로 스크린 도어를 정비하다 사망한 김 모 군의 사망으로부터 4년이 지났다. 2년 전에는 김용균이 발전소에서 홀로 일하다 사망했다. 이를 계기로 올해부터 김용균법이 시행되었다. 그러나 다시 한 노동자가 홀로 안전장치 없는 근로현장에서 일하다 사망했다. 26세 청년 김재순씨다.
2. 지난 22일 오전 김재순은 쉴 새 없이 돌아가는 파쇄기 옆에서 혼자 근무하다, 거대한 파쇄기 안으로 빨려 들어가 사망했다. 위험한 작업이었기에 2인 1조로 근무해야했지만 10인 규모의 영세사업장이라는 이유로 원칙은 지켜지지 않았다. 파쇄기에 난간이나 추락방지시설은 없었고, 경고표시판도 없었다. 김재순은 파쇄기 안으로 빨려 들어간 후 30분이나 지나서야 병원으로 이송되었지만, 이미 사망한 후였다.
3. 김재순은 중증지적장애가 있는 장애인이었다. 회사 측도 김 씨의 몸이 불편하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윤 앞에 장애에 대한 고려도, 최소한의 안전배려조치도 없었다. 김재순이 근무하던 (주)조선우드에서는 2014년에도 같은 사망사고가 있었다. 6년이 지났지만 나아진 것은 없었다. 노동자가 사망해도 기계는 돌아가고, 회사는 유지되기 때문이었다.
4. 하루에 6명의 노동자가 사망하고 있다. 한 해, 2천명 이상이 산재로 유명을 달리하고 있다. 안전한 일터를 만드는 것은 코로나 19 방역만큼이나 생명과 직결된 문제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아직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가?
5. 현장에서 노동자를 보호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보호할 수 없다. 기업 자체와 경영 책임자에 대한 중대한 책임을 묻지 않으면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 영국은 2008년부터 법인 과실치사법을 시행하면서, 벌금 때문에 회사가 파산하더라도 “피할 수 없고, 필연적“이라고 한 바 있다. 이윤보다 생명이 중요하다는 원칙 때문이었다. 그 후 영국은 10만 명당 0.7명이었던 사망 산재 비율이 10년 만에 절반으로 떨어졌다. 방법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6. 기업이 재해에 경각심을 갖지 않으면 해결은 없다. 현행법은 중대재해 발생 시, 노동자, 하급 관리자만 처벌이 가능하다. 노동자가 사망하면 최고 경영자도, 실질적 소유주도, 기업 그 자체도 책임을 지도록 바뀌어야 한다. 처벌의 종류도, 제재의 정도도 강화되어야 한다. 노동자가 죽으면 기업의 미래도 없다, 는 정도의 제재가 없이는 현 상황의 개선은 불가능하다. 산업재해 발생 시 검찰의 수사 및 기소여부에 대한 판단, 재판과정에서의 법원의 판단에 맡겨져 있는 책임자에 대한 처벌여부를, 법률 자체에서 그 범위를 기업의 경영책임자 및 법인으로 정하고 구체적인 처벌의 내용을 사법기관에 맡길 수 있도록 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이다.
7.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후보 당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공약으로 세운 바 있다. 20대 국회에서도 같은 내용의 법안이 발의된 바 있으나, 국회가 식물국회와 동물국회를 오가는 혼수상태를 거치며 자동 폐기되었다.
8. 소설가 김훈이 말했듯, 고관대작과 부자의 자녀가 해마다 사망하는 일이 생겼다면 우리 사회는 벌써 이 문제를 해결했을 것이다. 김재순의 아버지도 산재사고를 당했다. 가난과 기회가 대물림되는 것도 모자라 산재도 대물림된 것이다. 노동자의 생존의 문제 앞에 더 이상 망설임은 없어야한다. 이제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 국회는 즉각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하라.
2020. 6. 1.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 김 도 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