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긴급조치변호단] 긴급조치 피해자 구제를 위한 대법원의 적극적인 결단을 촉구한다.
긴급조치 피해자 구제를 위한 대법원의 적극적인 결단을 촉구한다.
– 장준하 선생 유족들에 대한 하급심의 전향적인 판결을 환영하며
- 서울중앙지방법원(제20민사부)은 2020. 5. 8. 긴급조치 제1호 사건의 첫 번째 피해자인 고 장준하 선생의 유족들이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건에서, 대통령의 긴급조치 제1호 발령행위는 대통령의 헌법수호의무를 위반한 것으로서 그 내용이 헌법의 문언에 명백히 위반됨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당해 국가긴급권을 행사한 것과 같은 특수한 경우에 해당할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하여 헌법상 보장되는 국민의 기본권이 직접적이고 중대하게 침해된다는 사정을 잘 알면서도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행하여진 것이고, 단순히 발령행위에 그친 것이 아니라 이에 따른 수사와 재판 및 형의 집행을 통하여 국민 개개인에 대하여 실제로 구체적 피해를 발생시킨 경우이므로 그 피해를 입은 국민 개개인에 대하여 민사상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판결하였다.(서울중앙지법 2020. 5. 8. 선고 2013가합540797 판결)
- 위 판결은 위헌·무효인 긴급조치 제1호 발령행위, 이에 기한 망 장준하에 대한 수사, 재판 및 징역형의 집행이 모두 헌법에 반하는 위법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것인바, 이는 종래 대법원의 판례, 즉 ‘유신헌법에 근거한 대통령의 긴급조치권 행사는 고도의 정치성을 띤 국가행위이므로 원칙적으로 국민 전체에 대한 관계에서 정치적 책임을 질 뿐 국민 개개인에 대하여 법적 의무를 지는 것은 아니므로 민사상 불법행위를 구성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판결태도(대법원 2015. 3. 26. 선고 2012다48824 판결)를 비판적으로 극복한 것으로 평가하며, 우리는 긴급조치 피해자의 사법적 구제를 위한 전향적 판결로서 이를 적극 환영하는 바이다.
- 대통령의 긴급조치 발령행위는 그 위반행위에 대한 수사, 재판, 형의 집행을 당연히 예정하고 있는바, 그 점에서 종래 대법원이 긴급조치 발령행위와 개개의 수사, 재판, 형의 집행행위를 기계적으로 분리하여 발령행위는 헌법과 법령에 위반되나 정치적 책임만을 지고, 개개의 수사, 재판, 형의 집행행위는 당해 공무원의 고의·과실이 인정되지 않는 경우, 대통령이 위헌·무효인 긴급조치를 고의·과실로 발령하고 이에 따라 실제로 피해가 발생하더라도 불법행위 책임이 없다는 취지로 판결함으로써(대법원 2014. 10. 27. 선고 2013다217962 판결) 긴급조치 피해자들의 구제를 외면한 것은 정의관념에 반하여 부당하다는 집중적인 비판을 받아왔다. 더욱이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긴급조치 피해자들의 국가배상 사건이 상고법원 설치를 위해 청와대와 거래한 사법농단의 대상이 되었음을 국민들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서울중앙지법의 최근 판결이 형법상 간접정범 이론을 원용하여, 긴조 위반행위에 대한 수사, 재판 등 절차에 공무원의 고의·과실이 인정되지 않더라도 대통령이 고의로 위헌·무효인 긴급조치를 발령하고 처벌되지 않는 수사기관과 법원을 이용하여 위법행위를 한 경우에 당해 피해 국민에 대한 국가의 배상책임을 인정한 법리 전개는, 긴급조치와 같은 과거사 사건에서 피해자의 권리구제를 위한 사법부의 정도를 보여주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만하다.
- 사법적폐로 지탄받고 있는 긴급조치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판례 변경은 사법정의와 역사적 양심의 요청이다. 긴급조치가 위헌·무효이지만 불법행위가 아니라는 대법원의 자가당착적 태도로 인하여 수많은 피해자들이 형사재심에서 무죄를 확정받고도 민사청구가 좌절되는 아픔을 겪었고, 현재도 하급심의 판결이 극에서 극으로 엇갈리며 10여개의 사건이 대법원 상고심의 전향적 판단을 기다리며 계류 중에 있다.
오늘은 유신시대 1,000여명의 구속자를 낳은 긴급조치 제9호가 선포된지 정확히 45주년이 되는 날이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유신정권의 긴급조치가 국민 기본권을 훼손한 중대한 인권침해로서 그 피해자들에게 전면적인 구제방안을 마련하라고 권고한지 이미 10년이 넘어가고 있다.
유신 헌법에 근거한 긴급조치가 ‘이른바 유신체제에 대한 국민적 저항을 탄압’하기 위한 것으로 그 목적상 한계와 발동 요건을 갖추지 못한 채 발동되었고, 그 내용면에 있어서도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 등을 침해하여 위헌․·무효라는 취지의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있은 지도 벌써 7년을 경과하고 있다. 지연된 정의는 더 이상 정의가 아닐 수 있다.
- 따라서 우리는 서울중앙지방법원(제20민사부)의 이번 판결을 계기로 대법원이 ‘긴급조치가 정치적 행위로서 법적인 책임이 없다’고 판단한 종전 판결을 스스로 시정하여 긴급조치 피해자 구제를 위한 적극적인 결단을 내려줄 것을 촉구한다. 이것이 대법원이 결자해지(結者解之)의 차원에서 과거 사법농단으로 초래한 사법부의 불신을 청산하고 국민의 신뢰를 되찾는 계기를 마련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아가, 대한민국 정부는 이번 사법부의 판결을 존중하여 스스로 항소를 포기하라. 그것이 긴급조치 피해자에 대한 국가 행정기관으로서의 최소한의 도리다.
2020. 5. 13.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긴급조치 변호단 (단장 이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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