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변 아동위][성명] 코로나-19 시대, 어린이의 인권을 다시 묻습니다.
[성 명]
코로나-19 시대, 어린이의 인권을 다시 묻습니다.
98회 어린이날을 맞는 우리 사회는 최근에 어린이 인권에 있어서 몇 가지 의미 있는 진전을 일구어냈습니다. 만18세까지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공직선거법]이 개정되어, 53만 여 명의 청소년이 지난 4월15일 국회의원 선거에서 처음으로 소중한 한 표를 행사했습니다. 조주빈과 공범자들의 디지털 성착취 범죄에 전 사회가 공분한 결과 불법적인 성착취 영상물의 ‘소지’ 행위를 처벌할 수 있게 되었고 관련 범죄의 형량이 대폭 상향되었습니다. 더불어 성매매 피해 청소년들을 범죄자로 취급하며 처벌과 교화의 대상으로 삼았던 [청소년성보호법]상의 ‘대상’청소년 규정이 삭제되었습니다. 또한 미성년자 의제강간 연령이 만 13세에서 만16세로 상향되어 성인에 의해 유인·성착취 피해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폭행과 협박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합의에 의한 관계로 치부되었던 불합리한 관행에도 제동이 걸렸습니다.
하지만 이런 변화에 찬물을 끼얹는 구태도 여전합니다. 청소년에게 투표권은 부여되었지만, 청소년의 정치활동에 대한 제약은 여전합니다. 청소년들의 모의투표, 정당 활동, 자치활동 차원의 후보 간담회 등은 법 명문에 의하거나 해석에 의해 부정당하고 있습니다. 한편 스쿨 미투를 통해 어렵게 가해 교사의 성폭행 사실을 공론화했으나 피해 학생은 학교를 떠나고 가해 교사는 학교로 돌아오는 부당한 결과를 낳았습니다. 최근에 제작된 교육부의 성평등 교육자료는 남성과 여성의 뇌구조가 체계적, 논리적/ 감성적, 공감적으로 서로 다르게 발달한다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고정적인 성별 이분법적 논리는 지난 수 십 년간 여성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해온 편견입니다. 변화된 시대에 부합하는 새로운 성평등 교육 방향을 제시해야할 교육부가 앞장서 구 시대적 편견을 확산시켰습니다. 또한 아동에 대한 입양 절차를 민간에게 일임해두지 말고 상담부터 양부모 심사와 교육, 결연, 입양 전 위탁 보호, 전 과정에 정부가 나서서 제대로 챙겨야한다는 입양특례법 전부 개정안은 20대 국회 임기 만료와 함께 자동 폐기를 앞두고 있습니다. 나아가 이주아동을 포함한 모든 아동에게 출생신고될 권리를 보장하자는 제안에 대해서는 외국인에 대한 혐오의 댓글이 넘칩니다.
일부 청소년들의 잔혹한 범죄에 대한 우리 사회의 엄벌주의적인 반응도 우려스럽습니다. 청소년 범죄가 언론에서 보도될 때마다 형사미성년자의 연령을 낮추고 강력하게 형사처벌 해야한다는 목소리가 강조됩니다. 우리나라의 현행 소년사법 정책은 범행을 저지른 청소년에게 결코 우호적이지 않습니다. 보호와 교화를 위해 마련되어 있는 현행 소년사법제도는 인력과 예산의 부족으로 형사 구금과 다름없이 운영되는 실정입니다. 강력한 처벌만을 앞세우기 전에 청소년들이 범행에 이르게 된 경위는 어떠한지,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사회 정책적인 수단은 없는지, 제대로 된 교화의 기회는 제공되고 있는지 근본적이고 종합적인 접근이 필요합니다.
코로나-19 시대에 맞이하는 어린이날은 더욱 아프게 다가옵니다. 기성세대의 잘못으로 창궐한 바이러스로 인해 학교와 유치원, 어린이집이 긴 휴학, 휴원에 들어갔습니다. 온라인 개학을 하면서는 컴퓨터 앞에 오랜 시간 앉아 수업을 들어야 하는 상황이 찾아왔습니다. 어른들에게도 힘든 일을 어린이들에게 감내하도록 하면서 어린이들이 맞닥뜨리고 있는 어려움에 대해 충분히 귀 기울이고 있는지 의문입니다. 개학시기와 방법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당사자인 학생 의견보다는 보호자인 학부모의 고민에 더 주목하진 않았는지 짚어봐야 합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교육의 목적과 역할은 무엇이어야 할지, 뛰어 놀고 휴식할 권리는 제대로 충분히 보장되고 있는지 사회적인 숙의가 필요합니다. 코로나-19의 시대가 우리에게 가르쳐준 잔혹한 진실은 질병이라는 재난이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빈곤 취약계층 자녀, 시설 보호 아동, 청소년 성소수자, 학교 밖 청소년, 이주아동, 소년원 등 보호 청소년, 수용자 자녀 등과 같이 돌봄의 사각지대에 있는 어린이들의 인권은 지금과 같은 유행병의 시기에 더욱 관심 밖으로 밀려납니다. 우리 모임은 코로나 19라는 재난 사태에서 어린이의 인권이 소외되고 있지는 않은지 지속적으로 모니터링 하겠습니다. 코로나 이후로도 계속해서 어린이에 대한 차별과 인권 침해를 감시하고 이에 맞서 어린이들 편에서 함께 목소리를 낼 것입니다.
우리 모임은 제98회 어린이날을 맞아 소파 방정환 선생이 ‘어린이들을 내려다보지 마시고 치어다 보아주시고, 어린이들을 가까이 하시어 자주 이야기를 하고 또 들어주시오.’ 라고 당부했던 말씀을 떠올립니다. 부디 정부와 21대 국회는 2019년 9월 UN 아동권리위원회가 한국 정부의 아동권리협약 이행 보고서에 대해 발표한 최종견해를 이행할 방안을 구체적으로 마련하고 실천에 나서길 촉구합니다. 그 과정에 무엇보다도 어린이들 당사자의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조치를 취할 것을 더불어 요구합니다. 우리는 항상 새겨야 합니다. 모든 어린이의 인권은 우리 모두의 인권이라는 진실을.
2020년 5월 6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아동인권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