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폐권력 한국마사회의 개혁을 위한 싸움,
다시 시작입니다.
하태승 회원(민변 노동위원회, 민주노총 법률원)
2020년 2월 27일. 종로구청은 행정대집행의 명목으로 광화문 서울정부청사 인근에 설치된 문중원 열사 시민분향소를 철거했습니다. 분향소가 철거된 당일, 광화문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의 현장이었습니다. 좁은 도로에 집결한 200명의 용역직원들, 12개 중대의 경찰 병력은 말 그대로 유가족들과 연대 활동가들을 짓밟았습니다. 분향소 철거를 운운하기에 앞서 문중원 열사가 자결하게 된 진상을 규명해달라는 유가족들의 절규에도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부산경남경마공원 기수들을 죽음의 레이스로 몰아넣은 주범, 한국마사회가 각성해야 한다는 활동가들의 호소는 대답 없는 메아리가 되었습니다. 수백명이 넘는 구청직원들, 용역직원들, 경찰병력의 폭력적인 철거로 인해 시민 분향소 철막은 맥없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무너지던 시민분향소 천막을 바라보며, 행정대집행이 끝난 이후 오열하던 유가족을 바라보며 참담하기 그지없는 심정이었습니다. 현장에서 스크럼을 짜고 저항했던 다른 활동가들, 유가족들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참담하다, 분노한다. 이 외에 당시 현장에서 연대했던 사람들의 심경을 표현할 수 있는 다른 적절한 표현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감염법 예방법에 따른 코로나19의 예방, 도로법에 따른 도로관리의 필요성 등 허울 좋은 공익을 논하기에 앞서 문중원 열사의 죽음에 대해 진상을 규명해야 했습니다. 마사회 – 조교사 – 기수 사이에 이뤄지는 복잡한 계약관계에서 발생하는 죽음의 갑질구조를 청산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했습니다. 유가족들의 절규에 수백명을 동원해 분향소를 강제철거한 문재인 정부가 주장하는 노동존중이 도대체 무엇인지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100일. 문중원 열사가 자결한 뒤, 장례식을 치르게 된 날까지 걸린 시간이었습니다. 문중원 열사는 부산경남경마공원에서 기수로 근무하던 중 2019년 11월 29일 한국마사회가 만들어놓은 반인간적인 노동환경을 폭로하며 자결하였습니다. 고인께서 근무하셨던 부산경남경마공원에서는 2005년 개설 이후 7명이 자결했고, 문재인 정권에서만 4명이 사망하였습니다. 동일한 사업장에서 지속적으로 자살이 증가하는 것은 결국 사업장에 존재하는 구조적인 문제점을 방증하는 것입니다. 이에 2019년 12월 27일 결성된 시민사회대책위원회는 조사보고서를 발표해 ▲ 기수들 생계(임금)의 불안정성, ▲ 기수들의 높은 재해율(2018년 기준 72.7%), ▲ 기수들에 대한 인권 침해, ▲ 한국마사회에 집중된 권한(기수 면허, 수입, 징계)과 영향력 등을 밝혔고, 열악한 기수들의 노동조건, 노동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한국마사회 뿐만 아니라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유가족들과 시민사회대책위원회는 진상규명과 제도개선을 외치며 지속적으로 투쟁해왔습니다. 이에 고인께서 자결하신 뒤 99일 만에 한국마사회는 “부산경남경마공원 사망사고 재발 방지를 위한 합의서”에 서명하게 되었습니다. 합의서에 의할 경우 한국마사회는 재발방지를 위해 ▲ 경마관계자들의 계약관계와 업무환경에 관한 연구용역을 시행하고 ▲ 문중원 열사의 사망사고에 대한 책임자를 조사해 징계하고 ▲ 기수들의 근로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일정 수준의 월 평균 소득 보장·재해위로기금 증액·조교사의 부당지시 금지 등의 근로조건 제도 개선안을 마련할 것을 약정했습니다.
한국마사회가 유가족들과의 합의서를 통해 약정한 내용은 어쩌면 당연한 내용입니다. 공공기관은 그 누구보다 모범적인 사용자가 되어야 합니다. 공공기관은 그러라고 설립된 곳입니다. 한 사업장에서 7명의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했을 때, 정상적인 공공기관이라면 오히려 먼저 발 벗고 나서서 재발방지 대책을 수립하고, 인간다운 근로조건을 조성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당연한 조치를 도출하기 위해 유가족들이 거리에서 100일 간 절규해야 했던 현 상황을, 수많은 기수들을 죽음으로 몰아가면서도 경쟁 중심의 임금체계를 유지한 무려 “선진 경마제도”를 버릴 수 없다고 고집한 한국마사회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3월 9일, 마침내 문중원 열사의 장례식이 치러졌습니다. 그런데 한국마사회는 고인의 영결식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합의서에 서명한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공증하기로 한 약속을 파기하고 추후 있을 마사회 투쟁을 포기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한국마사회가 작성한 합의안을 믿고 100일을 넘겨서야 고인을 보내려고 했던 유가족은 영결식 직전 또 한 번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일방적 파기 하루 만에 공증이 완료되었지만 영결식장에 걸린 그 흔한 표현 – “적폐권력 마사회” 라는 문구가 마음에 안 들어 진상조사도, 제도개선도 할 수 없다고 외치는 한국마사회는 스스로가 진정 적폐권력임을 자인하였습니다. 한국마사회의 완강한 거부로 인해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과제로 남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제대로 된 공공기관 한국마사회를 만들기 위한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이고, 이 글을 읽는 많은 회원님들께서도 관심을 놓지 않고 연대와 지지의 마음으로 함께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