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대 운동장이 시원하게 보이는 ‘법무법인 서상’에 방문하였습니다. 20여년 전, 서울시 건축상 동상을 수상했다는, 예쁘게 지어진 건물 2층에서 자전거로 막 출근하신 김종우 변호사님을 만나 뵈었습니다. 얼마 전 있었던 일본 경제보복 관련 민변 회원 집담회에서 발제하시는 것을 듣고, 인터뷰 요청을 드렸지요.
변호사님 안녕하세요? 간단히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김종우 변호사라고 합니다. 지금 국제통상위원회 소속으로 위원장 대행을 맡고 있습니다.
잠깐 검색을 해 보았는데 유학 경험이 있으시더라고요.
네. YLP(Young Leader Program)라고, 일본 문부과학성이 주관하고 대한변협이 추천기관으로 있는 국비 장학 연수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일본 문부성 장학금으로 운영되는 1년 코스의 석사과정이었습니다.
국제법에 관심이 있는 변호사들에게는 유익한 프로그램입니다. 교육비와 생활비가 다 나오기도 하고요. 국제거래나 통상쪽으로 특화된 것은 아니지만, 국제법 전반에 관하여 공부할 수 있습니다. 지식재산권, 국제형사법 등 수업 과목은 다양합니다. 수업은 영어로 진행되어서 일본어를 전혀 몰라도 가능합니다. 단지 토플 점수가 필요하긴 합니다. 제가 지원했을 때에는 경쟁률이 1:1 정도 였는데, 지금은 지원자가 훨씬 많아져서 선발되기 더 어려워졌다고 들었습니다. 선배님 중에 차규근 변호사님께서도 이 코스를 다녀오셨습니다. 후배님들도 많이 다녀오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중학생이었던 아이와 둘이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공부도 공부지만, 매일같이 아이 도시락을 준비하는 것이 생각보다 많이 힘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웃음)
민변에 어떻게 가입하게 되셨나요.
한양대 로스쿨에서 공익인권법 연구회라는 모임에 참여했습니다. 로스쿨에 가보니 인권변호사 하려고 왔다는 친구들이 굉장히 많더라고요. 처음으로 인권법학회 연합회가 만들어지는 시기이기도 했고요. 같이 공익인권법 연구회 활동을 했고, 그 대부분이 민변에 특별회원으로 가입하는 데에 의견이 모아져서, 저도 같이 특별회원으로 가입을 했습니다. 민변에서도 우리 기수(변시 1회)가 가장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민변의 중흥기라고 할까요?(웃음)
변호사님의 1년차 생활은 어땠습니까.
로스쿨 3학년 졸업할 즈음, 당시 ‘법무법인 정평’에서 신입변호사를 모집했는데, 민변을 통해서 공고가 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지원했고, 심재환 변호사님께서 저를 채용하셨어요. 생각해보면 아직 결과 발표가 나기 전이라 시험합격이 확실하지도 않은 때였죠. 물론 탈락자가 많지는 않은 때였으니까 크게 걱정한 것은 아니었지만요.
채용되자마자 곧바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처음 맡은 사건이 재심사건이었습니다. 70년대 고국에서 유학공부를 하겠다고 들어왔던 재일교포유학생들에 대한 간첩조작사건이었지요. 기록이 엄청 많았어요. 국가기록원에서 찾은 옛날 판결문과 소송기록들이 쌓여 있더라고요. 당시 기록은 수기잖아요. 세로쓰기에다 한자도 많았습니다. 옥편을 찾아가면서 기록을 검토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후 몇 년 후에 무죄 판결이 났습니다. 재심판결 당시에는 제가 직접 관여할 수는 없었지만요.
그 다음 사건은 아파트 분양가 산정을 다투는 사건이었어요. 분양가격을 책정할 때 원가를 기준으로 분양가를 정하는데, 원가를 구성하는 건축비가 제대로 산정이 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이었습니다. 과연 건축비 내역이 맞을까, 부풀리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이 들잖아요. 자료를 수집하고 원가를 계산해서 적법한 분양가를 산정했고, 결국 세대별로 일정금액을 돌려받았습니다. 당시 원고가 1,200명이 넘었고, 아르바이트생들과 함께 등기부, 분양계약서 등 원고 관련 자료 10박스 정도를 방에 늘어놓고 일일이 검토했던 기억이 납니다.
아직 변호사 자격도 없는 상태에서 진짜 열심히 일했던 기억이 납니다.
민변에서의 적응은 어땠나요.
태국에서 열린, 민변을 대표해서 참여해야 하는 국제연대위 사업(HRBA2J)이 있었는데, 당시 발표하러 갈 사람이 없어서 참석자를 모집했습니다. 1년차인 제가 손들고 지원을 했지요. 파타야에 가서 다른 나라의 활동가들 사이에서 민변의 현황과 미래에 대해서 발표했습니다. 그때 저는 민변이 ‘잘 나간다’고 느꼈습니다. 로스쿨 제도 도입 이후 민변 회원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것이었지요. 회원수 1000명이 임박했으니까요. 자기 일을 하면서 공익활동을 병행한다는 것도 멋있고요.
강정마을, 과거사 사건 등 공익소송의 성공사례에 관하여 발표했습니다. 단체소송 등에서 정의를 회복하는 의미와 함께, 법리적으로 신의칙의 제약을 뛰어넘어서 손해배상을 이끌어내는 과정을 발제했고, 공익활동을 통하여 사무실 운영비 충당도 도모할 수 있다는, 그런 내용으로 기억합니다. 그때 1년차였어요. 겁이 없으니까 그런 일들이 가능했지요.
1년차에 활동을 적극적으로 할 수 있었던 것에는, 동기들이 민변에 많았다는 사실이 힘이 되었나요.
민변의 활동이라는 것이 밖에서 보면 민변 전체로서 하는 일이지만 실제로는 위원회별로, 또 각자가 하는 것이잖아요. 이슈에 따라 결합할 수는 있지만요. 사실 특별히 영향이 있던 것은 아니었다고 봅니다.
변호사님께서는가입 당시부터 국제통상위원회 활동에 마음이 있으셨던 거에요?
특별회원으로 가입 원서를 낼 때, 관심 있는 위원회에 체크를 하잖아요. 그때에 국제통상위는 없었습니다. 준비모임이 있었지요. 저는 통상 전문 변호사가 되고 싶었고, 늘 관심을 가져왔던 터라 당연히 준비모임에 가입을 했지요. 송기호 변호사님께서 준비위원장이셨습니다. 당시 광우병 문제를 비롯하여 FTA 관련 이슈들이 많았고, 열정적으로 많이 활동하셨던 선배님들이, 위원회를 만들어서 이 고민과 역할을 계속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던 것 같아요. 앞으로 통상 이슈가 많아지고 보다 조직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으셨지요.
준비위라고 하니, 뭘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막연하지는 않았습니까. 사실 통상위라고 하면 실무에서 얼마나 쓸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있습니다.
당시에는 시기별로 터져나오던 대응할 사안들에 따라(각종 FTA, 론스타 ISDS 등) 대응활동을 주로 했고요. 지금 통상위의 모임은 이슈별로 담당자를 정해서 연구하고 발제하고 토의하는 일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공부 위주로 하고 있어서 개별 주제에 관하여 내부에서 의견을 교환하는 식으로 운영됩니다. 당장 중요한 이슈는, 곧 론스타 판정이 나오게 될 텐데 어떻게 대응해야 하느냐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미리 준비를 해두어야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습니다.
다른 법률과 달리 통상법을 공부한다 하여도 통상법을 가지고 직접 사건을 수행할 경험은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인데, 우리 법원에서 이러한 이슈에 신경을 쓰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주로 정보공개청구를 하는 방식이지요. 다야니 사건 아시잖아요. 우리나라가 최초로 패소한 투자자-국가분쟁해결절차(ISDS) 판정인데요, 현재 영국 하이코트에 중재판정 취소신청중입니다. 그 패소 판정문을 공개해 달라고 청구를 했습니다. 판정문이 나온 이상 구체적 사실 관계가 어떠한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어 우리 법원에 공개청구 한 것이지요. 이런 식으로 우리 법원이 통상 이슈를 고민하게 만드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지 않으면 아무도 안 합니다. 그런 사명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참고: [보도자료] 민변, 대한민국 정부가 ISDS에서 패한 첫 사건, 다야니가(家) 6인에게 730억원을 지급하라는 중재판정문의 공개를 청구하는 정보공개소송 제기)
통상의 영역은, 사실 우리 변호사들이 제대로 다룰 일이 적습니다. 실제로 통상에 관해서 사건을 담당할 기회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준비를 지금까지도 계속 하고 있는 것입니다.
통상의 영역은 전문가의 영역이라고 봅니다. 여기서 전문가라 함은 통상담당 공무원, 몇 안 되는 대형로펌의 통상팀 변호사, 대학원의 연구자 정도이지요. 연구자도 실무경험을 쌓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영역의 특수성에 비추어, 통상법을 공부하더라도 실무적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영역인 것은 아니지요. .
저희가 준비를 하는 것은, 통상 이슈에 대한 일종의 패러다임 전환이라고 할까요. 준비모임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한미 FTA에 관하여 신자유주의 반대/반세계화/반미/건강권 수호 등의 여러 관점에서 한미FTA 체결에 반대하는 명확한 입장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꼭 그렇게 하나의 찬반관점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패러다임이 바뀌는 것이지요.
저는 개인적으로 최근 일본 무역규제 이슈와 관련해서 통상법적 관점을 정리하는 작업들을 하고 있는데, 그 결과 말하고 다니는 것이, 국제법적인 요소를 너무 겁내지 말자는 것입니다. 통상 이슈를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에게 물어보면, 위험성이 있으니 신중하자고 이야기를 합니다. WTO에 제소될 수 있고, ISDS 문제가 될 수도 있다고 하는거죠. 그런데 단지 그 정도의 추상적인 설명이라면 실질적인 의미가 없지 않느냐 하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아는 국제법에 대한 이미지가 있지요. 실효성이 약하다는. 통상법도 마찬가지입니다. 잘 모르기 때문에 조심하는 것을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필요한 정책을 수행함에 있어서 무서워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실효성이 약하니 위반해도 된다고까지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요. 통상법, 국제법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우리가 필요한 정책을 집행하는데 걸림돌로 작용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설령 국제법 위반이 되더라도 우리 입장에서 해야 할 말, 필요한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러한 변화의 중심에서 위원장이 되시는 거네요?
어떻게 보면 세대교체입니다. 송기호 변호사님으로 상징되는, 한미 FTA, 쇠고기 수입 이슈에서 치열하게 고민했던 1세대에서 지금의 젊은 세대로 넘어가는…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통상법 이슈라고 해서 반대만 할 수가 없습니다. 민변 회원들의 스펙트럼도 다양하고, 통상법을 전공하신 미국 변호사님들도 가입하시잖아요. 그분들께도 많이 배우고 있기도 하고요.. 실제로 우리 기업들이 통상 쟁점을 가지고 미국에 가서 소송을 진행할 경우까지 생각한다면, 자유무역을 반대하는 하나의 단순한 입장만을 견지하기 보다는 자유무역의 현실을 직시하고 그 안에서 쟁점을 논의할 수 있는 수준이 되어야 하고, 그러한 정도까지 변호사들의 인식이 변화했다고 봅니다.
최근의 일본의 경제보복과 관련하여 간단히 이야기 해주신다면요.
다들 잘 아시잖아요. 기본적으로 대부분이 이해하시는 바가 맞죠. 일본이 먼저 시작을 한 거고, 잘못된 행동을 한 것이지요. 경제침략이라는 현상에 대해선요. 그렇다면 우리는 일본이 잘못했으니까 그 잘못을 지적하고 아울러 우리가 할 수 있는 여러 극복방안을 제시하면 된다고 봅니다. 화이트리스트 배제가 어떠한 명확한 규범력 있는 규정을 위반한 것은 아니기에, 일본으로서 할 수 없는 일을 한 것은 아니지만, 소위 ‘치사’하게 나온 것은 맞으니까요.
여기에 대하여 우리가 우리의 입장을 관철하는 방법으로 WTO에 제소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과까지 약 3년은 걸리기 때문에, 실효성에 의문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부분은 일본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제소하고 결과까지 시간이 걸리는 것은, 일본이 제소했을 경우도 마찬가지라는 거죠. 그래서 너무 국제법의 규정에 위축될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는 우리대로 하면 되는거죠.
최종 판결 이전에 정치적으로 해소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 위축될 필요 없다고 이해하면 될까요.
네. 안 좋은 사례이지만 우리나라도 ILO권고 무시하면서 큰 문제없이 잘 살잖아요. 너무 겁낼 필요는 없습니다. 물론 최종 판정에서 진다면 큰 일이지요. 일본 수산물 수입금지 관련 우리나라가 WTO 최종 판정에서 뒤집어서 이겼는데,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일본에 정말 정말 큰 일이 난 것은 또 아니거든요. 결국 판정문이 나오더라도 협상으로 해결을 모색할 수 있을 거라 봐요.
노동이나 민생 관련 이슈는 민변 말고도 선도적으로 활동하는 단체들이 많은데 통상위는 그런 단체의 도움을 받기 어려울 것 같아요. 어떠신지요?
네, 그렇습니다. 어떤 단체와 연대할 수 있을지 항상 고민입니다. 지금은 참여연대에만 관련 사업의 담당자가 있는 것으로 알아요. 예전에는 각 시민사회단체에 국제통상/연대 담당자들이 있었는데… 다른 선도적인 시민단체가 있다면 관련된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어서 좋을 것 같은데 아쉽습니다. TPP(환태평양 경제 동반자 협정) 이슈가 있었을 때 일본에서 일본 변호사님들과 의견을 나눈 적이 있습니다. 다른 나라에도 관련 문제를 다루고 고민하는 변호사님들이 계신 것으로 아는데, 국제적으로 연대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루틴하게 진행되는 각종 민변 사업에 통상이슈로 참여하기가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매년 민변명의로 개혁입법과제를 제출하는데, 통상법은 ‘제도를 개선해라’는 요구를 할 부분이 많지는 않습니다. 굳이 말하자면 통상조약체결절차법이 있는데, 통상조약 체결 절차에서 국회가 적극적으로 개입할 근거를 두도록 촉구하는 정도입니다. 그런 아쉬움이 있긴 하네요.
최근 일본 이슈에 관해서 박영선 장관 주재 간담회 기사를 보았는데, 참석한 변호사 세분이 다 민변 통상위 활동하는 분이셨더라고요.
그건 ‘중소벤처기업부’에서 주관한 자문위원 간담회라… 아마 산업통상자원부에서 했다면 다를 수 있었겠지요.(웃음) 아까 말씀드린 전문가 집단 중에서 정부관계자가 자문위원이 될 수는 없는 거고, 대형 로펌 변호사님들과 교수님들 말고는 (통상이슈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사실상 우리 민변 회원뿐이죠.
지금 변호사님 연차에 위원장을 하게 된다면, 임기가 오래 갈 것이라는 불안감은 없으신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내부적으로 동료위원 변호사님들과 잘 이야기가 되어 있어요. 차명심 변호사님, 김종보 변호사님, 임영환 변호사님, 노주희 변호사님 준비되어 있습니다.(웃음)
후배 변호사들에게, 선배로서 해주실 말씀이 있으시다면요.
몇해 전 로스쿨 인권법연구회 후배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저는 어떤 변호사가 되어야 하느냐는 질문에, ‘먼저 변호사가 되라’고 답을 했습니다. 그게 제일 힘들다고 이야기를 했어요.. 변호사 일을 잘 할 수 있는 변호사가 되고나서 공익, 인권 활동을 어떻게 할지 고민하는 것이 순서라고요.
그 다음에는 어떤 변호사가 될지 생각을 잘 하고, 어떻게 그 트랙에 오를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합니다. 혼자 있으면 길을 잃기가 쉬워요. 민변에 로스쿨 1기 친구들 많지만 아쉬운 친구들, 얼굴 보기 힘든 친구들도 많습니다. 얼마 전에도 동기들이 모여서 다들 안부를 물었는데, 최용근, 이정환, 이동준 변호사처럼 훌륭한 동기들이 많지만, 민변에서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고 탈회를 한 친구도 있습니다.
민변에서 어떤 점들을 지원할 수 있을지 민변에서도 고민을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공익활동을 하고 인권변호사가 되고 싶은 후배들을 선배들이 도와줘야 합니다. 예전에는 선배님들께서 이런 사명감으로 무리해서 채용도 많이 했지만 현재는 이미 포화상태여서 그것도 쉽지 않지요.
김종보 변호사님이 좋은 예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먹고 사는 일을 잘 해결하면서 공익활동도 열심히 하는 좋은 예로요.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씀은… 이게 참 어렵습니다. 어떻게 지속가능한 공익활동 변호사로 자생력을 가질 수 있는지.
민변에서 활동하는 공익변호사라는 고양감이 시들해지는 시기가 분명 있지 않습니까.
맞아요. 권태기라고 할까요. 그런 시기가 있습니다. 저는 변호사 일을 한 기간이 너무 짧아서 권태라고 하면 좀 그렇고, 조로라고 할까요?(웃음) 민변 회원을 사명감으로 할 필욘 없죠. 의미가 없으면 탈회를 못할 것도 아니죠. 그렇긴 하지요.
민변은 좀 다른 시민단체와 다르게 특이한 단체입니다. 내가 낸 회비로 내가 활동하는, 내가 일을 만들어 내가 해야 하는 독특한 자율적인 조직입니다. 그래서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활동할 일거리를 잘 만들어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선배는, 회비 많이 내시는 분들을 의미합니다.
범위를 좁혀보자면 통상위 회원들이 잘 나오다가 어느 순간 왜 참석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이 있습니다. 결론은 작은 일이나마 각자 회원들이 책임질 수 있는 역할을 줘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잘 되는 다른 위원회의 성공비결이 뭘까 살펴보니, 위원들 각자가 맡은 임무들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각자 그리는 변호사로서의 자신의 모습에 관하여 깊이 고민하시고, 길을 잃지 않도록 민변이라는 컨베이어벨트에 계속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민변 탈회하면 안 됩니다. 정말 길을 잃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