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변 국제통상위 활동소식
– 김솔아
지난 6월 7일 대한민국이 이란기업 엔텍합에 730억원을 지급해야 한다는 국제중재 패소 판결을 받은 소식을 모두 들으셨으리라 생각합니다. 론스타, 하노칼, 엔텍합, 엘리엇 등 외국인투자자들이 한국에 잇달아 국제중재를 제기하거나 또는 제기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일반대중에게도 제법 알려진 ISDS(Investor-State Dispute Settlement, 투자자-국가 분쟁해결제도)에서 한국이 최초의 패소 판정을 받은 것이지요.
저희 국제통상위는 그간 위 ISDS 사건들에 대하여 중재의향서 등 정보공개청구를 하고, 언론매체와의 인터뷰, 기고 등을 통해 ISDS 사건의 실상과 제도적 문제점을 알리는 등 다방면으로 활동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국제통상위의 중요 관심 분야인 ISDS가 신입회원인 저처럼 아직 생소하신 분들이 꽤 있는 것 같아 이번 뉴스레터에서는 ISDS를 간략히 소개해 보고자 합니다.
ISDS란?
ISDS란 외국인투자자가 대한민국을 상대로 직접 국제중재를 제기할 수 있는 제도입니다. 원래 외국인투자자가 대한민국을 상대로 다투려면 대한민국 법원 등 관할법원에 소송을 제기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ISDS는 외국인투자자가 ‘법원이 아니라’ 민간 중재인(주로 변호사나 교수가 많이 합니다) 3명 또는 1명에게 국제중재를 의뢰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제도입니다. 언론에서는 ISDS가 국제 소송쯤으로 취급되고 있지만, 사실 소송이 아니라는 점이 ISDS의 가장 큰 특징인 것이죠.
ISDS는 대한민국이 외국과 체결한 양자간 투자협정(BIT)나 자유무역협정(FTA)에 삽입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인데요, 일반적으로 대한민국이 투자협정상 또는 자유무역협정상 투자자 보호 조항을 어겼다고 투자자가 판단하는 경우 ICSID(세계은행 국제투자분쟁중재센터)나 UNCITRAL(국제연합 국제상거래법 위원회)과 같은 중재기관을 통해 ISDS를 제기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습니다. ICSID나 UNCITRAL는 국제 법원이 아니라 ISDS 절차가 진행될 수 있도록 기본적인 규칙을 제공하고 관련 편의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외국인 투자자 보호를 위해 마련되었다는 이 ISDS에 무슨 문제가 있다는 것일까요?
ISDS의 문제점
ISDS의 문제점 중 우리 법률가들이 가장 크게 관심을 가지는 부분은 아무래도 국가의 사법주권을 침해한다는 점에 있을 것입니다. 위 엔텍합 사건의 경우를 보면, 한국이 ISDS에서 패소한 원인은 캠코가 2010년 엔텍합에 대우일렉트로닉스 지분을 팔기로 하고 받은 계약금 578억원을 계약 해제 후에도 돌려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 법원은 이미 관련 소송에서 캠코의 계약 해제가 정당하다고 판단한 사실이 있습니다. 따라서 만약 엔텍합이 ISDS가 아니라 한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면 한국 법원은 캠코의 계약 해제가 정당하다는 전제 하에 계약금 몰취 조항이 부당하다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이상 엔텍합에 패소 판결을 내렸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나 엔텍합은 한국 법원을 피해 ISDS를 제기할 수 있었기 때문에 수백억대의 배상판정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죠. 이처럼 ISDS는 법원 판결들 간의 조화를 통한 법적 안정성을 저해한다는 점에서 국가의 사법주권 침해와 직결되어 있습니다.
이밖에도 ISDS는 정책주권의 침해 문제, 중재 절차의 불투명성, 소송과 ISDS의 중복 제기, ISDS 포럼 쇼핑, 광범위한 보호 규정에 따른 지나친 외국인투자자 보호, 내국인과 외국인의 차별, 국가 재정 부담의 문제 등 광범위한 문제점을 안고 있습니다. 가까운 나라 일본과 호주는 ISDS를 거부하고 있고, EU에서는 ISDS의 구조적 개혁 문제가 구체적으로 논의되고 있으며, 한국도 한미 FTA 개정협상에서 ISDS 조항을 개정한다는 기본원칙을 세운 배경에는 바로 이와 같은 ISDS의 광범위한 문제점이 있는 것입니다.
한국의 ISDS 사건들
ISDS가 한국에서 처음 주목을 받은 것은 한미 FTA 협상 때인데요. 당시 우리 민변에서도 ISDS 문제의 공론화를 주도하면서 ISDS가 그나마 한국에 조금이나마 유리한 내용이 될 수 있도록 협정문 문구를 수정하는데 크게 기여했었죠.
그러나 우리가 ISDS의 가공할 만한 위험을 몸소 느끼게 된 계기는 모두 잘 아시는 론스타 사건입니다. 미국계 사모펀드인 론스타가 2007년 HSBC와의 사이에서 2003년 매입한 외환은행 지분을 약 4조5,000억 원의 차익을 남겨 팔기로 계약했지만, 한국정부가 이 계약에 대한 승인을 미루는 사이에 세계금융위기가 왔고 결국 HSBC와의 계약이 무산되어, 2012년에서야 하나금융지주에 외환은행 지분을 넘기게 되었는데요. 론스타는 정부가 이와 같이 계약 승인을 지연한 것 때문에 차익 손실을 입었다고 주장하면서 2012년 한-벨기에 BIT에 기하여 한국에 5조5,000억원대의 ISDS를 제기했던 것입니다. 현재 이 사건은 2016년 변론이 종결되어 판정만을 남겨둔 상태인데요, 우리 국제통상위에서는 이 판정이 언제 어떻게 나올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답니다.
또 최근에 불거진 엘리엇 사건은, 역시 미국계 사모펀드인 엘리엇이 한미 FTA에 기하여 한국을 상대로 ISDS를 제기하겠다고 중재의향서를 보내온 상태입니다. 이 사건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과정에 한국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하여 주주인 엘리엇에게 금전적 손해를 끼쳤는지 여부가 쟁점입니다. 얼마 전 엘리엇과 한국 정부가 화상회의를 통해 ISDS 제기 전에 필수로 밟아야 할 협의절차를 밟았다고 하는데요, 협의가 잘 진행된 것 같지는 않습니다.
민변 국제통상위원회에서는……
이처럼 ISDS 사건은 사법주권의 문제와 결부되어 있고 막대한 국가재정 문제와도 직결되어 있습니다. 이에 국제통상위는 한편으로는 정부에 투명한 정보공개를 요청하고, 전 국민적인 관심을 환기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ISDS 제도를 개혁하는 데 있어 법률전문가로서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또한 머지않아 론스타 ISDS 판정문이 나오고, 엘리엇도 곧 ISDS를 제기할 것으로 예상되는 등 현안이 산적해 있기 때문에, 우리 국제통상위는 각 개별사건에 대해서도 이를 구체적으로 분석해서 그 내용을 공유할 계획입니다. 이처럼 할 일이 많으므로 관심 있는 기존회원뿐만 아니라 신입회원들도 저희와 함께 참여하면 좋을 것 같네요! 관련하여 궁금한 내용이 있거나 함께 하고 싶으신 모든 분들 언제든지 우리 국제통상위로 문의주시기 바랍니다.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