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젊은 부산민변인들
무더위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니 ‘몹시 찌는 듯 견디기 어려운 더위’라고 합니다. 언젠간 시원한 바람이 살랑거리며 마음속 깊이 들어와 가을을 알리겠지만 지금은 에어컨을 틀자는 큰 딸과 전기요금 폭탄이 두려운 제가 대립각을 세우다가 결국 안방에만, 그것도 잠시만 가동하는 것으로 합의할 정도로 이번 여름은 견디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무더위에도 부산민변 소속 회원들, 특히 젊은 회원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맡은 바 임무를 다하고 있는데, 오늘은 젊은 부산민변인들이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대변하고 있는 병역법위반 사건을 소개할까 합니다. 주심을 맡은 조애진 회원은 근로복지공단에서 근무하던 중 뜻한 바 있어 법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하여 변호사시험에 합격한 후 과감히(?) 사표를 던지고 나와 낮은 곳에서 열심히 봉사하고 있는 부산민변의 젊은 인재입니다.
지난 4. 19. 민주화혁명 기념일에 부산에 살고 있는 한 청년이 평화적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 선언을 하였습니다. 청년 김진만은 세월호 사태를 비롯하여 밀양송전탑 건설 반대투쟁에서의 국가폭력, 지난해 11월 민중총궐기 집회에서의 백남기 농민에 대한 공권력의 폭주를 경험하며 국민을 지키지 않고 탄압하는 국가 권력에 더 이상 가담할 수 없다고 생각하였고, 나아가 사람을 살상하는 무기의 사용방법 등 군대 내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교육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하였습니다.
그간 부산에서는 종교적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 사건 이외에 이처럼 종교와 무관한 평화운동으로서의 병역거부 선언을 하는 경우가 좀처럼 없었기에, 청년 김진만 역시 지역의 시민사회가 자신의 뜻에 공감하고 함께 싸워주기를 간절히 원하였습니다. 그러나 병역거부 선언 기자회견 이후 점점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질 상황에 처하게 되었고, 이때 한 청년의 숭고한 선언이 온전히 개인의 문제로 묻히는 것을 바라지 않았던 조애진 회원이 뛰어들었습니다.
조애진 회원은 정상규 회원, 민변본부 국제연대위와 아시아 인권팀, 베트남전쟁연구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임재성 변호사, 그리고 ‘전쟁없는 세상’의 이용석 활동가와 함께 형사재판을 준비하면서 부산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회가 지급한 실비 100만 원도 ‘청년 김진만 평화적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자 후원회’에 전액 후원할 정도로 열정적으로 임하고 있는데, 지난 6. 28. 첫 공판기일에는 청년 김진만의 대학 내 인문학회 활동과 10여 년간 참여해온 시민사회운동 등을 언급하며 청년 김진만이 정당한 사유 없이 병역을 기피하는 것이 아니라 평화주의적 신념에 따른 삶을 실천하는 방법 중 하나로 병역거부를 택하였다는 사실을 피력하였습니다.
그 뒤 병역거부권을 인정하지 않고 형사처벌로 일관하는 것은 헌법 제10조 등에 반한다는 점과 이미 오래전부터 문제 되어온 양심적 병역거부 사안에 대해 국가가 아무런 조치도 취하고 있지 않는 것은 명백한 의무 방기에 해당하는 점 등을 들어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을 하였고, 두 번째 공판기일 때는 증인신문과 피고인신문이 진행되었는데, 방청석은 청년 김진만의 후원회원들을 비롯하여 평소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는 시민들로 가득 차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이날 청년 김진만의 대학 동아리 선배가 증인으로 나와 청년 김진만은 학회활동을 통해 장애인, 노동자, 농민과 연대하는 과정 속에서 사회적 약자를 잔혹하게 탄압하는 국가폭력을 본 후 평화적 신념을 형성하게 된 것 같다고 증언하였고, 이어진 청년 김진만에 대한 신문에서 검사가 “집시법위반 등의 범죄전력과 그간의 활동으로 보아 피고인이 주장하는 신념은 사회적 반감 정도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냐” “절대적 비폭력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질문하자, 청년 김진만은 신념은 어떠한 척도로 측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양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고 답변하는 등 심도 있는 공방이 오갔습니다.
최근 일부 하급심이 병역법위반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한 경우도 있었는데, 청년 김진만에게 법원은 어떤 판단을 내릴지 의문도 들고 걱정도 앞서는 것이 사실입니다. 고백하건대 한 청년의 신념을 위해 열정을 바치고 있는 젊은 부산민변인들을 보고 있자니 수년 전 병역법위반 사건을 전담하듯이 국선변호를 하면서 계속되는 법원의 미지근한 태도와 검찰의 당연시하는 모습에 그만 지쳐서 혼자서 힘만 빼고 있다는 자괴감으로 처음의 열정과 달리 그 후 건성으로 변론했던 저의 모습이 떠올라 얼굴이 붉어지곤 합니다.
민변 회칙 제3조(목적)는 “모임은 기본적 인권의 옹호와 민주주의의 발전에 기여함을 그 목적으로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지금 부산민변은 그 목적에 부응하기 위해 이 무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싸우고 있습니다. 지난 민변 총회때 선물로 받은 에코백에 쓰여진 민변의 초성을 단박에 맞춘 큰 딸에게 오늘도 민변의 아저씨, 아줌마들은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았다고 말해줄 수 있는 또 하나의 기회를 제공해준 젊은 부산민변인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습니다. 오늘도 무척 덥습니다. 그래도 이 또한 지나가지 않겠습니까? 민변 회원여러분 강녕하십시오.
2016. 8. 25.
간사 윤 재 철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