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변 2월 월례회 – 영화 ‘귀향’ 관람 후기

2016-03-14 20

민변 2월 월례회 – 영화 ‘귀향’ 관람 후기

– 윤지영 변호사(연41기)

귀향을 보러가기로 했다. 솔직히 내키지 않았다. 나는 즐거운 영화를 보는 것을 좋아하고, 기왕이면 액션 영화가 제일 좋다. 슬픈 영화는 사절이다. 지지고 볶고 마음 졸이는 것은 일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게다가 감정이입을 세상에서 제일 잘하는 편이다. 보고 나면 며칠 아프던지 울던지 할 것이 뻔했다. 하지만 그래도 보러가기로 했고 그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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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적인, 기억에 남을 것 같던 장면들이 많았지만 지금 내 머리 속에 가장 남아 있는 장면은 귀향굿과 함께 먼 타지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하얀 나비의 행렬이다. 일본군에게 가혹행위를 당하던 소녀들의 모습보다, 참혹한 처형장면보다, 산천을 뒤덮으며 고향으로 돌아가던 나비-할머님들의 영혼-의 귀향이 내게는 가장 의미있었던 장면이었나보다. 어쩌면 그 장면이, 이 영화를 보신 할머님들의 마음을 가장 위로해드릴 수 있는 장면이 아니었을까, 라고 감히 생각한다.

 

그 장면이 왜 유난히도 기억이 남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 할머님들이 오셨어야 하는 이 나라가 할머님들을 포근히 안아드릴 수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그걸 자기가 신고하는 미친 사람이 있겠어.’라고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사람들이 많은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 안타까운 넋들을 위한 투쟁을 이어가지 않고 단돈 100억엔에 ‘쇼부’본 정부가 있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그것을 저지하기 위해 아무런 노력을 하지 못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그래, 내가 그렇게 울었던 것은 슬프기도 했지만 근본적으로는 부끄러워서였다.

 

영화관람을 마친 뒤, 조정래 감독님은 ‘일본군들이 굿을 바라보고 있던 장면이 있었는데, 왜 일본군들을 그 장면에 등장시켰냐’는 나의 질문에,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은 문제이고 우리가 풀어가야 하는 문제임을 상기시키고 싶다.’는 취지로 답을 하셨다. 그 질문을 할 때만 해도, 나라면 저 장면에서 일본군을 등장시키기보다 전쟁터에서 죽은 소녀들의 모습을 등장시켜, 매맞은 상처입은 모습에서 고운 모습으로 변하며 하얀 나비로 변해 귀향길에 나서는, 그런 모습으로 연출을 하지 않을까, 그러면 더 ‘귀향’이라는 제목에 맞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소녀들은 귀향하지 못했고, 이 문제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다. 그래서 나와는 달랐던 감독님의 생각이 보다 더 이 영화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쩌면 ‘할머님들을 위로함’과 동시에 ‘할머님들을 기억할 것’이 이 영화의 메시지가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맞다. 그런데 벌써부터 초등학교 교과서에는 할머님들에 대한 언급이 사라지고 있다. 일본은 지난 합의 이후로 강제 연행의 증거가 없다는 둥 발뺌을 하고 있고, 정부에서는 피해자들의 의사를 최대한 반영한 합의였다고 주장한다. 마치 없던 일로 하고 싶은 것처럼. 할머님들이 참혹한 행위를 당하셨어야 했던 것이,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로 지배되었었다는 사실은 수치스러운 것이 절대 아니다. 그것을 잊으려고 하는 것, 그것을 없던 일로 만들려는 것이 수치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그런 부끄러운 짓들이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다. 더이상 수치스러운 1인이 되고 싶지 않다. 하얀 나비들이 편안하게 ‘귀향’할 수 있게 해드리고 싶다. 그렇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기억해야 한다.

 

영화를 다시 볼 엄두는 나지 않는다. 다만 감사하게도 영화는 벌써 200만 관객수를 넘어서고 있고, 이것이 우리나라의 변혁의 어떤 씨앗이 되기를 희망한다. 우선 나부터 그간의 나태함을 반성하고 영화를 보며 느꼈던 부끄러움을 계속 기억하며 살고자 한다. 내 자식의 교과서에는 할머님들의 이야기가 없을지라도, 그러한 소녀들이 있었노라고, 그러한 분들이 계셨고 너무나 아프셨노라고, 이 문제는 아직도 우리가 풀어가야 할 숙제이니 너희도 기억하라고 이야기해 줄 것이다.

 

계속, 기억할 것이다. 그것이 할머님들을 위로하는 방법이라고 감히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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