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음을 바라며 – 민변 10월 월례회 후기
맑음을 바라며 – 민변 월례회 후기
– 최경아 회원
미세먼지가 이어지던 가운데, 유난히 맑아 다행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골목을 만나고 왔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중간고사가 끝나고 바로 다음날이었네요. 끝난 게 끝이 아니라지만 그 해방감이 도드라지는 날이었습니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분들 중 중간고사라는 단어를 오래간만에 듣는 분들이 많으실 것 같네요.
그렇게 맑은 날에 모여서는, 걸었습니다. 정성어린 간식 봉다리와 민변 에코백을 받아들고 세 시간 가량 부암동을 걸었습니다. 골목길 해설사 선생님들은 그 공간의 이야기를 들려주시고 공간은 그 이야기를 증명이라도 하듯 오랜 기운을 내어줍니다.
설명을 들으면 들을수록, 그리고 그 가운데를 걸어나갈수록 매력적인 공간입니다. 소위 개발이 본격적으로 진행되지 않아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오갑니다. 한편으론 걱정도 슬며시 드는 것이 근래 “ㅇㅇ길”이라는 호명과 발길이 이어지면 젠트리피케이션이 따라오기 마련인지라 이 공간은 부디 더 버텨주었으면, 하는 걱정과 감탄이 듭니다.
오신 분들 소개를 들어보니 가족 혹은 가족예정(!)이신 분들이 그득하셨습니다. 가족예정인 분들에게는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좋은 추억이 되실 것 같네요. 이 동네에서 살고 싶다는 이야기가 나올수록, “사는 것”이 아닌 “사는 곳”으로서의 공간에 대해서도 생각해봅니다.
하늘과 땅을 구획 짓는 경계가 건물의 마천루가 아니어서 너른 시야가 펼쳐진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서울에도 이런 곳이 있었느냐는 소감들이 괜히 나온 게 아닌 듯합니다. 곳곳에 빠알갛게 익은 감이 달린 감나무도 많고요. 하수구라고 생각한 철망 아래, 하수가 아닌 맑은 물이 흘러서 놀랐습니다. 물소리에 놀라 보니 물이 갇혀있는 양.
빡빡한 도시와 빡빡한 삶 속에서 이런 맑음이 좀 더 가득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산책과 식사와 이야기를 나누는 하루였습니다. 함께 골목을 걷자는 월례회 안내 문자를 받고도 참 맑아졌었습니다. 수줍게 저도 가도 될지 여쭈는 답장에 환하게 답장을 주시고 또 이런 만남을 준비해주신 회원팀 분들에게 큰 감사를 드리며, 파란 하늘 아래 청자켓이 멋드러져 인상 깊은 어느 분의 사진을 동봉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