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을 배우다
제4회 노동법 실무교육 수료생 이경재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함을 사명으로 한다.
그 사명에 따라 성실히 직무를 수행하고 사회질서 유지와 법률제도 개선에 노력하여야 한다.‘
언제 들어도 두근거리는 변호사법 제1조.
어렸을 때 농담처럼 말한 ‘정의사회 구현의 꿈’을 사명이라 공식적으로 선언하는 직업이 얼마나 있으랴. 그런데 작년 모 일간지는 “ ‘대한민국 법과 경찰을 능멸한 민변의 조국을 묻는다’ 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변호사법 제1조를 인용하면서, 과거 인권과 법치주의 신장에 기여하였던 민변이 변하였으며 ‘민변 변호사들의 행위가 대한민국 법과 질서, 공권력을 능멸하는 지탄받을 행위라 하였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사회질서를 능멸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에서 주관하는 노동법 실무교육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 하는 호기심이 발동하게 되었다. 평소 알고 지낸 민변소속 변호사는 누구보다도 ’순수‘하던데, 내가 속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에서 ’나의 민변 노동법 실무 교육‘은 시작되었다.
요즘 시쳇말로 핫한 인물 ‘혜리’와 ‘임시완’.
알바업체 광고모델이었던 혜리가 최저시급이 얼마인지 알려주었고, 미생을 살아가는 장그래(임시완)가 대한민국에서 비정규직으로 산다는 것이 어떠한지를 그 어떤 캠페인보다 효과적으로 보여주지 않았던가. 시간당 5,580원을 받는 알바와 남들은 스팸을 받는데 나는 식용유로 만족해야 하는 비정규직의 문제는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오늘 아침 엘리베이터 안에 경비아저씨가 붙인 계약종료로 인한 퇴직인사 유인물을 읽고 집을 나섰더니, 우연히 만난 여동생은 출산휴가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고, 점심식사를 같이한 후배는 징계위원회에 회부되어 마음고생이 심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간만에 통화한 당구장을 하는 군대 동기는 알바생 임금문제로 골머리를 썩고 있다고 했다.
이 모든 것이 ‘노동법 실무교육’에서 다루어진 법적 쟁점이다.
노동법은 시민법에 대한 수정으로 출현했다. 시민법은 소유권의 보장, 계약의 자유, 과실책임주의를 그 기본원리로 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시민법 원리에 기초한 근대 사법은 ‘법적 몽상’임이 증명되었으며, 이를 보완하기 위한 수단으로 태생된 사회법은 민사법과 다른 모습- 강한 규범적 효력 등-을 가질 수밖에 없고 이런 법적 특성 때문에 노동관계법은 초심변호사에게 어렵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민변 노동법 실무교육’은 이런 노동법적 특성을 실무가 입장에서 접근할 수 있도록 마련된 교육이었다고 피교육생 입장에서 감히 평가해본다. 특히 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의뢰인에게 필요한 관련쟁점들을 짚고 넘어간 것은 개인적으로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좋은 계기였다.
노동관계소송에 있어서 단순히 법원에서만 행해지는 절차뿐만 아니라 의뢰인을 위하여 근로복지공단과 노동위원회 등과의 관계에서 취할 수 있는 조치들을 설명하는 시간, 실제 작성된 경비노동자 근로계약서의 문제점을 검토해보고 다투어 볼 수 있는 법적 쟁점에 대하여 이야기해보는 시간 등은 ‘민변 실무교육’에서만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육내용도 알찼지만, 무엇보다도 좋았던 것은 ‘무시무시한 대한민국의 사회질서를 능멸한’ 변호사님들을 직접 뵐 수 있었다는 점이다.
‘여러분이 내게 가라고 하지 않는 한 먼저 떠나지 않겠습니다’라는 명언을 남긴 모 변호사님의 수줍은 미소-이것이 ‘종북좌파’로 비난받던 사람의 미소인가!-에 놀랐고, 소년같은 미소를 가진 법률원장님과 위원장님 그리고 회장님의 동안에 또 한 번 놀랐다. 아울러 수업 후의 질문과 뒷풀이 장소에서의 대화는 후배변호사들에게 현장의 실천하는 자세를 알려주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대한민국의 민주질서를 위해서 해체되어야 한다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제4회 노동법 실무교육은 끝이 났다.
그렇다면 민변 해체 주장에 대한 나의 결론은?
맞다. 민변은 해체되어야 하는 것이 맞다.
다만, 대한민국이 민주사회로 완성된 시점에서 해체되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의 대립은 보수와 진보와의 싸움이 아닌 비상식과 상식의 대치가 아닐까 싶다. 그러기에 민변은 더욱 활성화되어야 하고, 이런 교육과 모임은 더욱 빈번하게 벌어져야 한다고 조심스럽게 생각해보았다.
‘더 절실한 사람들에게 열려있지 않은 노조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여기 남으시면 더 고생할 겁니다. 고생한 사람에 대한 보상은 없습니다.
우리가 성공하면 모두가 성공할 것이고
실패하면 아마도 우리만 실패할 겁니다.
(중략)
부대가 퇴각해도 누군가는 전선에 남아야조
안 그러면 전멸합니다.
여러분 모두 퇴각하고 최소한의 안전이 보장될 때까지
저는 여기 있을 겁니다.‘
‘마지막까지 남아 있을 이들’에게 교육 받는 기회를 마련해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