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변 공부모임 ‘8년’의 기억들

2015-03-11 28

민변공부모임 ‘8년’의 기억들

 

글_ 좌세준 회원

 

2015년 3월, 민변공부모임이 시작된 지 ‘8년’을 맞습니다. 3월 9일 공부모임을 마치고 조촐한 ‘자축’ 뒤풀이를 했습니다. 첫 모임 이후 격주로 180여 회의 모임을 가졌고 읽은 책의 수를 헤아려보면 230여 권 남짓이 됩니다. 여기 민변 회원들과 함께 한 공부모임 ‘8년’의 기억들을 생각나는 대로 적어 봅니다.

민변공부모임은 2007년 3월 5일 저녁 <오늘의 세계적 가치>(브라이언 파머, 문예출판사)를 함께 읽는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민변 홈페이지 게시물 등을 찾아보면, 첫 모임에는 백승헌, 유남영, 박주민, 송호창 변호사 등이 참석했던 것으로 확인됩니다. 첫 모임에 앞서 2월 27일 발송된 ‘이제 다시 꿈을 꾸자’라는 제목의 회원 공지는 ‘민변공부모임’ 제안의 취지를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습니다. 조금 길지만 그대로 옮겨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공부모임을 제안합니다. 선배님들은 1988년 창립 직후 민변 변호사들의 왕성한 활동력이 당시에 있었던 토론모임인 ‘금요모임’에서 나왔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여러 가지 주제에 대한 집중적인 토론과 공부를 통해 권위주의 시대를 헤쳐 나갈 꿈을 가꾸어 왔고, 민변의 활동은 그 꿈을 하나씩 실현하는 과정이었다고들 합니다. 20년이 지난 지금, 민변의 역할과 사회적 기대는 창립 초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습니다. 그러나 회원들은 각자의 바쁜 일상과 쏟아지는 현안대응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이러다 갑자기 ‘내가 지금 어디 있는 거지?’하며 벼랑 끝에 선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회원 각자는 자기 능력 개발의 기회를 잃게 되었고, 변호사를 처음 시작할 때와 달리 단순한 ‘법 기술자’가 되어가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중략>

이럴 때 일수록 민변과 회원들은 더욱 자기 스스로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을 겁니다. 그래서 자기성찰의 장을 만들기 위해 ‘공부모임’을 제안합니다. <중략> 사회적 현안을 집중적으로 공부하는 모임도 좋고, 원론적인 주제, 인문학적인 주제를 다루는 모임도 좋을 것입니다. 어떤 모임이든 강연과 토론 등을 통해 자기를 성찰할 수 있는 자리라면 무엇이든 좋을 것입니다. 그렇게 다시 ‘꿈’을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각자의 꿈이 하나 둘 모여 앞으로 10년 동안 열정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유용한 기반이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어떻습니까. 창립 20주년을 앞두고 있던 당시 민변의 모습과 회원들의 고민에 공감하시는지요. 저는 최근 몇 해 동안 민변의 새로운 ‘회원’이 되신 후배님들에게 위 제안문의 행간을 찬찬히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그동안 민변에 대한 시민들의 뜨거운 ‘찬사’와 ‘격려’도 있었지만, 요즈음 민변에 대한 근거 없는 ‘비방’과 ‘흠집 내기’가 난무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8년 전 받아보았던 위 제안문에 담긴 선배 회원들의 ‘자기 성찰’의 의미를 되새겨 보곤 합니다.

 이렇게 시작된 2007년 공부모임 첫 해에 읽었던 책 중 기억나는 책으로는 저자 이진경을 초청해서 함께 읽었던 <철학과 굴뚝 청소부>(이진경, 그린비)와 <88만원 세대>(우석훈, 레디앙)가 있습니다. <88만원 세대>를 읽는 모임에는 경기도에 있는 대안학교 학생들이 함께 와서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그 학생들은 이제는 모두 20대의 청년들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8주년을 맞는 지난 3월 9일 공부모임에서 읽었던 책이 요즘 20대들의 ‘무한경쟁’ 세태를 보여주는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오찬호, 개마고원)였습니다. <88만원 세대>에 담겨 있던 20대들의 고민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것 같습니다. <88만원 세대>의 부제이기도 한 ‘절망의 시대’에 쓰는 ‘희망의 경제학’은 언제쯤 실현되는 것일까요.

2008년에는 6월 18일과 7월 1일, 두 차례 모임이 연기되어야 했습니다. 그해 5월초에 켜진 광장의 ‘촛불’은 민변 회원들을 ‘거리의 변호사’가 되게 하였고, 공부모임 참여자들 또한 잠시 책을 놓고 ‘인권침해감시단’이 되기도 했고 시민들과 함께 거리를 행진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와중에서도 <얼굴 없는 공포, 광우병 그리고 숨겨진 치매>(콤 켈러허, 고려원북스)를 읽고 발제까지 해주셨던 최병모 변호사님의 ‘열정’은 민변공부모임의 ‘역사’로 기억될 것입니다.

2009년 첫 모임은 <민주화 20년 지식인의 죽음>, <민주화 20년의 열망과 절망>(경향신문 특별취재팀, 후마니타스)이라는 두 권의 책을 읽는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해 5월 <남미인권기행>(하영식. 레디앙)이라는 책을 함께 읽고 난 어느 토요일 아침 우리는 뜻밖의 애통한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 그해 가을 민변공부모임은 노 대통령이 마지막까지 손에 들고 있었다는 <유러피언 드림>(제레미 리프킨, 민음사>을 함께 읽었습니다. 그리고 2차례에 나누어 꼼꼼한 발제와 토론을 하며 함께 읽었던 <거대한 전환>(칼 폴라니, 도서출판 길)은 자유로운 토론 형식으로 진행되던 모임에 변화를 주었던 ‘인상적인’ 책으로 기억합니다.

2010년에는 새해 첫 모임에서 <만물은 서로 돕는다>(P. A. 크로포트킨, 르네상스>를 함께 읽었고, 이어서 <삼성을 생각한다>(김용철, 사회평론)와 <길은 복잡하지 않다>(이갑용, 철수와영희)를 나란히 함께 읽었습니다. <길은 복잡하지 않다>를 읽는 모임은 저자인 이갑용 전 민주노총 위원장을 초청해서 함께 했는데, 이날 뒤풀이는 제가 기억하기에 민변공부모임 뒤풀이 중 ‘가장 길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통상 민변공부모임의 뒤풀이는 한 시간 남짓이 보통인데 이날 뒤풀이는 새벽까지 계속되었으니까요. 공부모임을 하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여럿이 함께 책을 읽으면 ‘장점’이 참 많습니다. 장점 중 하나만 들자면 숨겨져 있는 보물같은 책들을 추천해주는 참여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걸쭉한 넉살, 삐딱한 불온함, 끝내 가슴 뭉클한 프랑스대혁명 이야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혁명만세>(마크 스틸, 바람구두) 같은 책입니다. 이 책은 황희석 변호사가 추천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저자가 영국의 ‘좌파 코미디언’인 마크 스틸입니다. 진보 정당 후보로 런던 시의원에 출마하기도 했다는 마크 스틸이 쓴 이 책을 읽으며, 저는 우리에게도 이런 ‘좌파 코미디언’ 한 명쯤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2011년 1월 첫 모임에서 읽은 책은 <리영희 평전>(김삼웅, 책보세)이었습니다. 2010년 12월 5일 돌아가신 ‘시대를 밝힌 사상의 은사’ 리영희 선생의 삶을 되돌아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이 해 읽었던 책 중 회원들의 반응이 좋았던 책으로는 <급진주의자를 위한 규칙>(사울 알린스키, 아르케),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강신주, 동녘) 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해 여름 공부모임 참여자들 모두가 휴가기간을 통해 시간을 길게 잡고 읽었던 <열하일기(완역본 3권)>(박지원. 리상호 역. 보리)는 한 여름의 무더위를 잊게 해줄만한 고전의 청량함을 보여준 책이었습니다.

2012년에 함께 읽었던 책 <아름다운 집>(손석춘, 들녘)의 주인공 이진선이 우리 공부모임 회원들의 가슴에 남겨 놓은 뜨거운 감동은 오래 기억될 것 같습니다. <피로사회>(현병철, 문학과지성사)와 함께 읽었던 <필경사 바틀비>(허먼 멜빌, 창비)는 소설의 ‘참맛’을 보여주었던 작품이었습니다. 12월 대선을 앞두고 모든 후보들의 공약이 되었던 주제인 경제민주화에 대한 공부를 위해 함께 읽었던 책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김상봉, 꾸리에), <경제민주주의에 관하여>(로버트 달, 후마니타스>는 더 많은 대안과 제도에 대한 공부와 고민이 필요하다는 과제를 남겨주었던 책으로 기억합니다.

2013년 저자 하수정씨를 초청해서 함께 읽었던 <올로프 팔메(스웨덴이 사랑한 정치인)>(하수정, 폴리테이아), 2014년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청구 사건 진행 중에 함께 읽었던 <경기동부>(임미리, 이매진), 2014년 말 2차례의 강독 모임과 유동민 교수 초청 강의로 진행했던 <21세기 자본>(토마 피케티, 글항아리), 올해 첫 모임에서 읽었던 <백석 평전>(안도현, 다산책방)은 문사철을 넘나드는 우리 민변공부모임의 자유로움을 보여주는 현재진행형 공부목록들입니다.

공부는 해도 해도 끝이 없다지만, 우리 민변공부모임이 지향하는 책 읽기나 공부는 ‘공부를 위한 공부’나 ‘자기만족형 책 읽기’는 결코 아닙니다. 저는 오늘 지난 8년 동안의 공부모임을 되돌아보며 8년 전 공부모임의 시작을 알린 제안문에 나오는 것처럼 민변공부모임이 “각자의 꿈이 하나 둘 모여 열정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유용한 기반이 될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8년 전 회원 여러분들에게 발송되었던 제안문 ‘이제 다시 꿈을 꾸자’에 공감하시는 분들이라면 민변공부모임에 언제든지 오셔서 함께하실 수 있습니다.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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