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년 동안의 휴업을 끝내고 다시 민변으로 돌아온 대전충청지부 장동환 회원의 미국체험기를 소개합니다.
미국에서의 1년
– 대전충청지부 장동환 변호사
1. 초반
2013. 12. 29.경 10시간 여 비행 끝에 LAX공항에 도착했다. 겨울인데 여기는 초여름 같은 날씨. 신록은 좋으나 LA는 아스팔트 열기와 콘크리트로 덮여 있다. 공항 입국 심사대는 국제도시의 위상답게 외국인들이 가득하다. 입국장에서 우연히 같이 들어온 전 일본수상 부부를 만났고, 경호원이 전혀 없어 내 아이에게 소개하니 그 부인이 한국의 김치를 좋아한다며 반겨주었다. 내 아이에게 하나의 추억이 될 수도 있겠지. 마중 나온 지인의 차로 얼바인으로 향하는 405번 고속도로를 타고 가면서 미국의 첫 풍경을 맞는다. 역사가 짧은 신도시, 그러나 도로 옆 정원 같은 수목 공간이 있어 반갑다. 주유소에서 콜라를 마시는데 미국의 첫 음식이다. 차로 1시간 달려 얼바인으로 들어왔는데, 주위의 산들이 사막의 이미지라 답답하다. 여기서 1년을 살 수 있을까. 한국의 오래된 수목과 아늑한 거주공간이 교차된다. 얼바인 시내는 정갈한 공원 같이 잘 꾸며져 있다. 물이 없지만 다른 곳에서 물을 가져와 주택가에 의무적으로 나무를 심은 인공도시 얼바인. LA 인근 도시가 다 그렇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얼바인 시내 곳곳에 한국어 간판이 눈에 들어오고, 식당에 가니 한국 음식과 한국인이 많아 여기가 한국 특구임을 실감한다. 그럼에도 여기는 미국이고, 변형된 한국촌이 아직은 낯설다. 아마 사람들마저 그렇게 변형되었을 것이다. 애들 학교를 알아보고 살림집을 구하고 운전면허를 취득하는 코스가 미국의 첫인상을 결정한다. 영어를 구사할 수 없는 외국임을 실감한다. 현지인들은 언어가 안 되는 외국인에게 특별히 친절할 이유도 없고, 그들의 다년간의 유입 인구에 대한 선입견으로 우리를 대하였을 것이다. 우리는 첫 방문의 외국인에게 마음을 쓰고 있는가 자문한다. 누구에게나 마찬가지로 구한 집은 아늑하다. 살림살이를 채우고 몸을 쉴 수 있는 공간에서 마음을 차분하게 한다. 아이들 학교가 결정되고 하루 일정을 조율하면 정착생활의 시작이다. 아주 가끔 비가 오고 집 주위 나무들이 바람결에 날리면 낭만적이 된다. TV를 트는 것도 미국을 실감하는 한 가지 방법, 그러나 마음의 평화보다 상업성 짙은 방송이 계속되면 반갑지는 않다. 그나마 아침 산책길이 주는 여유가 좋지만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은 여전히 이방인이다. 아는 사람 사귀기 쉽지 않아 우연히 아는 사람을 보면 반갑다. 다시 한국을 생각하면 그래도 고향 같은 사람들 얼굴이 떠오른다. 아이들과 처를 학교에 보내고 집으로 혼자 와서 2달을 어떻게 보내나 생각한다.(나중에 3주 간 일시 귀국했다가 다시 도미하여 체류 기간을 1년 연장하였다) 제국의 작동원리와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을 보고 싶었다. 몇 권의 책에는 미국의 간단한 역사, 캘리포니아의 지리, 이 곳 LA 인근 도시의 역사가 담겨 있다. 현장에 살고 있으니 이해가 쉽다. 지리와 역사가 포개진 과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미국, 그리고 캘리포니아, 얼바인에 나는 살고 있다. 매일 일기를 쓰면서 생각의 편린들을 모으다가 중간에 그만 두었다. 전체적인 느낌이 중요하다는 생각에서였다. 첫 느낌은 얼바인 주택에서 왔다. 20-30년 전에 만든 인공도시 얼바인 대저택과 나중에 지어진 중간 규모의 주택들, 그리고 LA 비버리힐스를 보면서 한 미국특파원이 쓴 주택과 전쟁의 관련을 떠올렸다. 에너지 과용의 나라. 쓰레기 분리수거 같은 것은 없다. 1회용으로 식사마저 해결하는 나라. 대규모 마트에 쌓인 인공음식들을 소비하는 소비의 나라. 문화란 뭔가. 사람들이 오랜 세월을 두고 켜켜히 쌓은 이야기 같은 무엇을 보고 싶지만 지역 박물관에는 개척과 건설의 역사만 남아 있다. 이 나라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그 속에서 이야기를 찾아야 한다. 나중에 한여름에 찾아간 지역 축제 현장은 역시 음식소비가 대세라 비록 변질되었다고 하는 평가가 있지만 인문을 느낄 수 없어 씁쓸한 기억만 남긴다. 이민 1세대처럼 여기서 40년 이상을 산다면 조금 다른 것을 볼 수 있을까. 하여 나중에 만난 이민 2세와의 3시간에 걸친 필사적인 대화 속에서 확인한 건 인문의 부재, 사람살이의 강퍅함, 그런 대화 도중에 느낀 연민의 연대감. 서울특별시 나성구 주민들의 빈한한 이야기가 외진 길가의 한국인 식당에 붙은 이발소 그림처럼 헛헛한데, 누구에게도 변화는 쉽지 않다. 문화가 쉽지 않은 것이다. 얼바인 시장이 한국계라 시청 공간에서 대규모 한국인 행사가 열리는 날, 최근 주목을 모으는 젊은 한류가 무대를 채우는데, 그것은 자존심과는 거리가 있는 표피적 문화가 아닐까. 간혹 한국인을 만난다. 장기 이민자, 소위 기러기 엄마들, 우리 같은 단기 체류자들. 그 옆에는 같은 아시안인 중국인,일본인 들이 항상 섞여 있는데, 서로 친근감은 없다. 자신의 삶의 주인들만이 느끼는 환대를 본 적이 없다면 우리는 거저 같은 공간만 점유하고 있을 뿐이다. 나의 슬픔은 여기서 시작되었다.
2. 도중
미국을 안다는 것이 쉽지 않아 영어를 배우고자 하였다. 그리고 영어가 된다면 나의 미국 이해에 조금 다가갈 것 같은 생각도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단어를 외우고 운전하면서 방송을 듣고, 오전을 영어학원에서 보내고 간혹 티브이를 보다가, 인터넷 영어 전문 강의에 1년을 바쳤다. 귀가 멍멍하도록 이어폰으로 1년을 산 적이 없다. 나중에 10분 정도 청중 앞에서 스피치할 수 있는 영어가 되었지만 생활영어는 쉽지 않다. 2년 정도 집중적인 훈련이 필요한데, 이런저런 핑계로 쉽지 않다. 그런 와중에 보통 미국사람들의 생각과 소득과 생활, 그리고 전문 강좌를 통해서는 미국의 지식 동향을 엿볼 수 있었다. 이방인의 미국이 그들의 미국과 다르겠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개인주의를 주된 코드로 하는 미국식 생활은 익숙하지 않으면 그 속에 들어갈 수 없고, 완전한 미국 시민이 아니라면 개입할 수도 없는 국외자의 삶이다. 20대 후반부터 대학원 과정을 시작하여 대학교수를 하는 지인은 코스모폴리탄을 자부한다. 30년 간 미국의 전문직 생활이 준 생활감각이 준 선물이다. 그는 두 개의 시민 나아가 코스모폴리탄이다. 나도 이론적으로는 코스모폴리탄인데 생활적으로는 언어도 안 되는 사람이다. 그래서 불편하지만 이방인의 눈은 다른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불편함을 보는 것이다. 그 주제를 가지고 현지 시민을 만나 깊은 대화를 하고 싶었지만 쉽지 않았다. 아이들 야구장에서 많은 시간을 같이한 보통의 미국 시민들에게 불편함의 시선으로 얘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얘기조차 할 수 없는 불편함이 나의 지배적 정서가 되었다. 이것은 분명 짜증 같은 열등한 감정이 아니다. 소통의 출발선에 나는 항상 서 있었지만 더 나아갈 수 없는 상황이 1년 간 지속된 것일 뿐이다. 그런 비슷한 얘기는 미국 생활 4,5년 차의 다른 한국인에게서도 들었다. 정이 많은 한국도 비슷한 상황일까. 아니라고 단정하기에는 나는 가진 정보가 없다. 수년간 일본을 방문한 나로서는 일본과도 매우 다른 감정을 가지고 1년을 보냈는데, 그러고 보니 일본은 나에게는 참 대조적으로 친근한 나라가 된 것이다. 그 일본 속에는 내가 친구로 사귄 사람들이 있었고, 아마 비슷한 역사적 정서를 공유하고 있을 것으로 짐작해 본다.
단기 체류자가 할 수 있는 미국 체험은 여행이다. 먼저 내가 사는 곳 남캘피포니아 인근과 샌프란시스코 인근의 북캘리포니아, 인근 아리조나,네바다,유타를 먼저 돌았다. 도심을 벗어나면 사막이다.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곳은 모도 경치가 좋은 명소들이다. 역사가 있는 도심지는 사람 냄새가 나지만 사막으로 들어서면 250년 일천한 개척의 역사가 한 눈에 보이고 간간히 존재하는 인디언 거주지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길을 잃었을 것이다. 한 일본인 여행자가 아시아와 미국의 사막을 여행하고 그 풍경의 차이를 논한 적이 있는데, 아시아의 사막에는 그대로 사람 냄새가 나는데, 미국의 사막에 세워진 맥도날드 광고에서 마음을 잃었다고 썼다. 사람의 손때, 이른바 역사라는 것의 무게이다. 하긴 도심도 그렇게 빗대어 말할 수 있다. 사람 냄새나는 샌프란시스코는 진보적인 도시이다. LA는 보수적이다. 여기서 이주민의 인종적 구성을 논하는 것은 아니고, 다만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왔는가 하는 것이 그 도시의 색깔을 만든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왜 아메리카 대신 유럽이고, 아시아인가 하는 것이다. 김모 시인이 미국을 여행하고 말한 역사와 고통의 결정체 한국과 첨단 기술의 미국을 엮어 새로운 문화로 가자는 설이 그럴듯해 보이는 것이다. 그런 아시아적 역사를 가지고 미국을 대한다면 미국이 나한테도 조금은 오지 않을까 내내 그 생각만 하였다. 그런 생각은 뉴욕의 마천루, 보스톤의 오래된 주택들, 애팔래치아 인근 작은 마을들, 워싱턴 행정타운, 캐나다 로키의 대자연, 멕시코의 작은 마을, 심지어 파리,로마,베네치아,프랑크푸르트에서도 같은 것이었다. 한 번은 자동차로 캘리포니아,아리조나,뉴멕시코,텍사스,루이지애나,미시시피,테네시,아칸소,오클라호마, 다시 텍사스,뉴멕시코,아리조나,캘리포니아 거친 풍경들을 달렸는데, 같은 생각만 하였다. 광대한 영토를 테크놀로지로 정복하고 그 힘이 지구 반대편과 우주로 향하고 있는 지금 그 직선의 과학기술, 경영과 경제가 혼합된 돈의 논리가 성공 스토리와 빈한한 사회를 동시에 만드는 이 풍경이 장대한 인류 역사의 인문과 제대로 만나야 한다. 15세기에 시작된 유럽의 이주의 역사가 아메리카 원주민,남미,아프리카,아시아 사람들을 모아 오늘에 이른 이 만만치 않은 과정이 아직 꽃을 피우지 못하고 그늘막에서 지쳐 있는데, 아직 그 돈의 힘이 얄팍한 인문주의로 포장되어 세계를 유혹하고 있고 그 중 한국인 240만이 살고 있다. 우리에게 비친 미국을 보자. 19세 말 화려한 외관으로 시작하여 이 땅을 접촉한 미국이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아름답고 뛰어난 나라로 각인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영어가 제 삶의 깊은 뿌리가 된 나라에서 오히려 그 영어의 힘으로 다시 미국과 대화를 시작해야 할 것이다. 미국도 그것을 원할 것으로 믿어 본다. 그 전에 물론 이웃나라인 일본이나 중국과도 비슷한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다.
3. 마무리
미국을 자동차로 주유하면 환상적인 큰 나라라는 느낌은 지워진다. 미국의 사이즈로 중국과 유럽을 보면 비슷하게 환상 같은 것은 버릴 수 있다. 미국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일본인이나 중국인은 더 살갑게 다가온다. 우리는 어떤가. 많은 현안 문제가 있지만 오랫동안 같이 살면서 크고 작은 문제를 같이 헤쳐온 그 시간들이 더없이 소중하게 다가온다. 여행은 지구촌을 만든다. 세상이 나에게로 직접 다가왔고, 나도 그 속으로 다가갔다. 일간신문에 실리는 국제면 뉴스들이 남의 일이 아니다. 코스모폴리탄으로 가는 길 위에 있는 자신을 느낀다면 일단 된 것이다. 영어 공부를 계속하는 것은 하나의 기술적 방편일 뿐이다.
2015. 2.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