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2015년 1월 24일, 「민변 2015 눈꽃산행 + 강릉투어」에 참가한 특별회원 엄수연입니다.
급하게, 갑자기 쓰게 되어 부족함 많은 후기이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 눈꽃산행 출발!
작년에는 참가자가 적어 행사가 취소되었다고 하셔서 혹시나 올해도 취소되진 않을까 염려되어, 눈꽃산행 공지메일을 받자마자 바로 참가신청하고 참가비도 입금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산행일이 점점 다가올수록 성실하게 입금까지 해버린 과거의 제가 원망스러운 것이었습니다. 당일 아침 6시 50분에 서울지방검찰청 정문 근처에서 집결이었는데, 전날 밤에는 너무 피곤해서 참가비는 그냥 민변에 기부한다고 생각하고 푹 잠들어 버렸습니다. 그렇게 알람도 맞추지 않고 잠들었는데, 새벽 5시 반에 눈이 번쩍 떠진 걸 보면 아무래도 산행을 가게 될 운명이었나 봅니다. 그리고 도착해서 버스에 탑승한 순간, 안 왔으면 큰일 날 뻔했다는 생각에 아찔했습니다. 45명 정원 버스에 45명 만석, 신청자 전원이 출석한 것입니다. 아무래도 모두들 작년 산행이 취소되는 바람에 2년 만에 진행된 눈꽃산행을 기다렸던 것 같습니다.
# 상고대를 아시나요?
버스가 출발하고 자기소개 시간에 변호사님 몇 분께서 이번 산행에서 ‘상고대’를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중 한 분은 상고대를 보신 적이 있는데, 아름답기가 말로 다할 수가 없다고, 다시 볼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사실 저는 상고대라는 말을 처음 들어본지라 바로 검색을 해보았는데, 무척이나 아름다운 설경 사진을 볼 수 있었습니다. 상고대는 영하의 온도에서도 액체 상태로 있던 물방울이 나무 등과 만나 생기는데, 밤새 서린 서리가 하얗게 나무에 얼어붙어 눈꽃처럼 피어있는 것을 말한다고 합니다. 어떤 한자를 쓰는지도 궁금해서 찾아봤는데, 순수한 우리말이라고 하여 놀라웠습니다. 상고대는 산악인들이 부르는 통칭인데, 상고대중 나무서리는 해가 뜨면 바로 녹아 없어지기에 부지런한 산악인이 아니면 볼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번 산행에서는 상고대를 볼 수 없었습니다. 며칠 전 눈이 많이 내리긴 했지만, 날씨가 따뜻해서 이번에는 상고대를 만날 기회가 없었습니다. 내년 눈꽃산행에서는 상고대를 만날 수 있길 기대해봅니다.
# 평창에서 강릉까지!
놀랍게도 분명히 올라갈 때는 평창이었는데, 내려오고 나니 강릉이었습니다. 전체 구간이 10.3km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코스였던 것입니다. 이 정도면 산행준비도 철저히 하고, 마음도 단단히 먹고 임했어야 했는데, 지난 가을 성곽길 걷기 행사에 참가했던 느낌으로 가볍게 임했던 것이 문제였습니다. 분명히 메일에 눈꽃산행 코스 <대관령 – 선자령 – 나즈막 – 보현사>라고 공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한 번을 지도로 확인해보지 않았던 것이 그 첫 번째, 산행팀은 [아이젠, 스패츠 필수, 스틱 권장, 등산용 의자, 깔개 권장, 따뜻한 음료 권장]이라고 공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젠만 달랑 챙겨간 것이 그 두 번째 실수였습니다.
사실 처음 산에 오를 때만 해도 등산객이 워낙 많아 한 줄 서기로 바로 앞 사람의 등만 보며 올라갔기에 전혀 힘든 줄을 몰랐습니다. 그리고 한참을 올라 넓게 펼쳐진 초원에 커다란 바람개비가 듬성듬성 들어 앉아 있는 아름다운 경치를 즐기다보니 어느새 선자령 정상에 도달해있었습니다.
문제는 내려가는 길이었습니다. 나즈막에서 보현사로 내려가는 길이 해발 800미터가 넘는 높이를 약 3킬로미터의 거리로 내려가야 하는 엄청난 급경사였던 것입니다. 눈이 수북이 쌓인 급경사를 내려가다 보니 아이젠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해 눈길에 수없이 미끄러졌습니다.
등산 좋아하는 어른들도 무척이나 힘들었던 코스인데, 하주희 변호사님이 데려오신 딸 9살 민하가 정말 대견하게도 김선수 변호사님 손을 잡고 무사히 산행을 마쳤습니다. 민하가 내려오길 기다리면서 회장님과 사무총장님과 함께 눈밭에 대자로 누워 대자연을 느껴보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생각처럼 포근한 느낌은 아니었지만,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 시산제
정상에서 시산제를 지내기 위해 비교적 바람이 덜 부는 곳에 공간을 잡고 소박한 제단을 마련했습니다. 그리고 조영선 사무총장님이 준비해 오신 장문의 축문을 읽으면서 시산제가 시작되었습니다. 어려운 시기를 만나 2015년에도 선자령 정상에 부는 바람만큼이나 매서운 바람이 불겠지만 묵묵히 함께 이겨나갈 수 있길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
# 눈꽃도 식후경
이번 눈꽃산행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단언컨대 “발열도시락”입니다. 말로만 들어본 발열도시락을 실제로 먹게 되다니 설렜습니다. 종이 박스 뚜껑을 열고, 줄을 잡아당기자 연기가 모락모락 나기 시작합니다. 조리시간이 생각보다 길어서 다들 급한 마음에 자리를 잡기도 전에 미리 줄을 당기고 말았습니다. 연기 나는 도시락 박스를 들고 자리를 찾아다니는 모습이 흡사 도시락 폭탄을 든 독립투사들 같았습니다. 생각할수록 재밌는 상황이라 도시락 폭탄 농담을 하며, 즐거운 식사 시간을 가졌습니다.
# 소돌항의 밤바다와 겨울 밤하늘
강릉 산행 끝에 화룡점정으로, 소돌항에서 파도가 바위에 하얀 거품으로 부딪히는 바다 절경까지 즐길 수 있었습니다. 저녁 메뉴는 자연산회와 매운탕이었습니다. 김진 변호사님이, 과연 강릉을 대표하는 3명의 여인 중 한 분답게 강릉 최고의 맛집으로 안내해주셨습니다. 살살 녹는 세꼬시회와 진한 국물의 매운탕, 그리고 소주 한 잔으로 산행의 피로를 잊을 수 있었습니다.
서울로 올라가기 전 강릉의 밤바다를 바라보니, 밤바다와 밤하늘이 경계가 없이 칠흑 같습니다. 그 고요함 속에서 앞으로 나아갈 방향성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문득 고개를 들어 보니 밤하늘에 별들이 총총히 박혀 있습니다. 오랜만에 보는 별이 가득한 밤하늘이었습니다. 저 수많은 별들 중에서도 길잡이별이 있기에 우리는 나아갈 방향과 길을 정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나아갈 길을 함께 할 분들을 만나 더없이 마음이 따뜻해진 하루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