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사법부의 쉼 없는 과거사 역주행을 규탄한다

2015-01-26 1,237

 

문인간첩단 사건 국가배상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대한 논평

 

 

[논평] 사법부의 쉼 없는 과거사 역주행을 규탄한다

 

 

2015년 1월 22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고영한 대법관)는 김우종 전 경희대 국문과 교수와 소설가 이호철 씨 등 이른바 문인간첩단 사건 관련 피해자 및 그 유가족들이 대한민국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 상고심에서 원심을 파기하고 청구를 각하하였다.

 

원고들은 1974년 1월 유신헌법에 반대하고 개헌을 지지하는 성명 발표에 관여한 뒤 불법 연행돼 가혹행위를 당한 끝에 허위자백하고, 그해 10월 집행유예의 확정 판결을 받았다. 2011년 원고들은 국가보안법·반공법 위반 혐의에 대해 각각 무죄를 선고받고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서울고등법원은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및보상등에관한법률(이하 민주화운동보상법이라 한다) 제18조 제2항에 의해 재판상 화해가 성립된 피해는 적극적·소극적 손해에 그치므로 정신적 손해배상책임(위자료)은 보상금 수령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인정된다고 판시하였다.

 

그러나 대법원 다수의견은 민주화운동을 하다 고문이나 가혹행위를 당한 피해자라도 민주화운동보상법에 의해 생활지원금 등을 받았다면 손해의 유형에 관계없이 모든 손해가 재판상 화해로 소의 이익을 상실하였다면서 원심을 파기하였다. 말하자면 가혹행위로 거짓자백을 하여 유죄의 확정판결을 받았더라도 1,000여 만 원 안팎의 생활지원금을 받았다면 재판상 화해의 효력이 미처 더 이상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반면 소수의견을 낸 5명의 대법관(이상훈·김용덕·고영한·김창석·김소영)은 “‘화해’는 “당사자들이 해당 권리의 존재를 인식하고 이를 행사할 수 있음이 전제가 되어야 하며 사정이 이와 다른 경우에는 재판상 화해가 이루어졌다는 점만으로 화해의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반대의견을 밝혔다. 특히 재심 무죄확정에 따른 명예회복에도 불구하고 배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의 입법취지에도 반한다고 밝혔다.

 

대법원의 다수의견은 합법적인 공권력의 행사임을 전제로 한 ‘보상’과 불법적인 공권력 행사를 전제로 한 ‘배상’은 헌법·법률에서도 준별되어 있고, 화해 당시에 예상할 수 없었던 중대한 사정변경이 생기면 화해의 효력이 그대로 미치지 않는다는 확고한 법 규정 및 해석론을 무시한 것이다. 더구나 서울중앙지방법원이 민주화운동보상법 제18조 제2항에 대해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된다면서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하여 동 조항에 대해 헌법재판소에서 심판 계속 중에 있고 이에 따라 관련사건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기다리며 추정 중에 있다. 이러한 상황이라면 대법원으로서는 마땅히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라 법 해석의 통일을 기하는 판결을 하여야한다. 그럼에도 대법원이 일반적인 법 원칙을 무시하고 관련 법 규정의 위헌 여부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단도 고려하지 않은 채 판결을 서둘러야 했던 이유가 있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한편 지난 1월 16일 서울고등법원 민사 제12부(김기정 부장판사)는 긴급조치 위반으로 유죄판결을 받았던 설훈 의원 등이 제기한 국가배상 청구소송에서 원심을 파기하고 원고들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이는 지난해 10월 대법원이 긴급조치가 위헌결정으로 소급하여 효력을 상실하였더라도 그러한 사정만으로 공무원의 고의 또는 과실에 의한 불법행위에 해당할 수 없다고 판시한 대법원 판결(2013다217962판결)을 하급심에서 적용한 것이다.

 

특히 재판부는 “비록 설훈이 체포된 때로부터 48시간을 초과하여 구속되고 가혹행위를 당하는 등 수사과정에서의 국가기관의 위법행위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국가기관이 수사과정에서 한 위와 같은 위법행위와 이 사건 유죄판결 사이에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어 결국 이 사건 유죄판결에 의한 복역으로 인한 손해를 국가기관의 위법행위로 인한 손해라고 볼 수 없다“고 판시하였다.

 

그러나 위 판결은 당시 공무원인 대통령 박정희가 영구집권을 목적으로 고의로 긴급조치를 발동하는 위법행위를 감행한 점, 검찰 등 수사기관은 그 수족에 불과한 점, 나아가 불법체포 및 불법 구금 하에서 작성된 피의자신문조서 등은 증거능력이 부인되어 유죄의 증거가 될 수 없는 점, 수사기관의 영장 없는 체포, 법률에 의하지 아니한 불법 구금, 그리고 가혹행위와 유죄판결이 상호 인과관계가 있는 점 등을 간과한 ‘영혼 없는 판결’에 다름 아니다.

 

최근 사법부는 국가의 불법행위 책임을 대폭 축소·완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국가의 불법행위로 인한 국가배상책임의 시효를 법률상 근거 없이 6개월로 축소하고, 진화위 등 과거사 결정문의 증명력을 격하시켰다. 이러한 판결은 이용훈 대법원장 시절 전원합의체 판결(2010도5986판결)이 긴급조치는 ‘당시나 현재의 헌법에 의해서도 위헌’이라고 선언한 것을 뒤엎고 유신헌법 및 긴급조치를 부활시키려는 몸부림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우리는 일련의 퇴행적인 과거사 판결을 통해, 과거 유신 긴급조치시대의 망령이 아직도 사법부에 남아있음을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과거 독재정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던 사정은 차치하더라도 이제는 돌아와 국민 앞에서 과거사를 청산하고 새로운 이정표를 세워야하지 않는가. 사법부는 스스로의 판결로써 과거를 반성할 용의는 없는가.

 

사법부의 과거사 역주행을 규탄한다.

 

2015년 1월 26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 한 택 근

[논평] 대법원 전합 판결(문인간첩단)_최종 15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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