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자인권위원회 2014년 송년회 후기
소수자인권위원회 2014년 송년회 후기
– 소수자인권위원회 김주경 변호사
2014년 12월 9일. 소수자위원회 송년회에 참석하기 위해 미리부터 달력에 표시를 해두고 기다리고 있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지난 몇 번의 회의에 불참하였던 탓에 죄송한 마음으로 송년회만큼은 꼭 참석해야겠다고 다짐하고 있었다. 애초 송년회는 광화문 장애등급제 · 부양의무제 농성장을 방문한 후 대학로에서 연극 ‘염쟁이 유씨’를 관람하는 일정이었다. 예전 대학로에서 보았던 ‘염쟁이 유씨’를 6~7년이 지나 다시 보게 된다는 설렘도 있었다. 당시 연극을 관람하다 큰며느리 역할로 잠깐 무대 위로 불려갔었던 기억도 났다.
대학로에서 맛있는 저녁을 먹고 따뜻한 연극 한 편을 볼 수 있겠다는 나의 소박한 송년회 바람은 12월 1일 박원순 서울시장과 한국장로교총연합회 임원과의 간담회로 삐걱거리기 시작하였다. 서울시는 시민위원회가 민주적 절차에 의하여 제정한 서울시민 인권헌장을 일방적으로 폐기하였으며, 위 간담회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은 “동성애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발언까지 하였다. 이에 성소수자 인권 단체와 여러 시민사회단체는 서울시민 인권헌장 선포 촉구 및 성소수자 발언에 대한 사과와 해명, 면담을 요구하였지만 상황은 소수자위원회의 송년회 날인 12월 9일까지도 전혀 진전이 없었다. 결국 송년회 일정은 광화문 장애등급제 · 부양의무제 농성장 방문과 서울시청 무지개농성단 문화제 참가로 변경되었다.
송년회 당일인 12월 9일은 무척이나 추웠다. 광화문 장애등급제 · 부양의무제 농성장부터 방문하였다. 2012년 8월 21일부터 투쟁을 시작하셨다고 한다. 하루하루가 지나갈 때마다 채워놓은 달력은 벌써 한 가득이었다. 800일 넘게 하루도 빠짐없이 광화문 지하보도 낡은 천막과 함께 하다 보니 천막 안에는 이러 저러한 집기들이 한 가득이었다. 장애로 고통 받는 사람, 장애를 이용하는 사람, 제도를 바꾸려는 사람, 제도에 편승하는 사람 등등 무수히 많은 계층 구조와 거미줄처럼 얽힌 관계 구조가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200개가 넘는 단체가 함께 하고 있었지만 막상 광화문 지하보도를 지나는 사람 중 이분들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궁금하였다.
무거운 마음으로 농성장을 나서 서울시청으로 향했다. 무지개농성단 문화제에 참여하기 위해 서울시청에 모인 사람들은 꽤 많았다. 문화제 시작 전 천지선 변호사님께서 지지발언을 하셨다. 정확한 표현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우리 그대로 사랑하게 해주세요.”라는 내용으로 기억한다. 맛있는 도시락을 먹고 우리 집보다도 더 따뜻했던 서울시청 바닥에 앉아 노래도 듣고 공연도 보고 지지발언도 들었다. 성소수자의 인권이 무너지면 그 다음은 누구이겠느냐는 한 성공회 신부님의 말씀도 인상적이었다.
장애등급제 · 부양의무제 농성장과 무지개농성단 문화제를 모두 다녀와서 든 아쉬움이 있다면 어느 농성장이나 마찬가지이겠지만 안과 밖이 격리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광화문 지하보도를 지나는 저 사람들 중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를 아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또 서울시청 밖을 지나다니는 사람들 중 무지개농성단이 농성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고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모금처럼 농성도 당위가 아닌 스토리로 더 많은 사람들의 호응과 관심을 받을 수는 없을까, 혼자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보았다. 차별을 논하지 않아도 괜찮은, 더 이상 농성이 필요 없는, 그런 사회는 아직까지도 요원해 보였다. 마음이 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