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송년회 후기
– 김묘희 변호사
송년회 하루 전, ‘민변’이라고 이름을 붙인 카톡방에 글이 올라왔다.
“일정에 급변동이 생겼네요. 우선 1년차 분들 헌재정당해산결정에 대한 긴급토론회에 참석하시고 토론회 장소에서 7시경 잠시 따로 만나 송년회 공연 준비를 같이 하고 송년회로 이동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하하호호 웃음과 덕담이 오가야 하는 송년회 직전 헌재정당해산결정에 대한 긴급토론회를 할 수밖에 없는 민변의 상황에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설마 설마했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정말이었던 그날의 당혹스러움이 생각나면서.
그러나 다음 날에는 더 큰 고민이 생겼다. 조영관 변호사의 두 번째 지령 때문이었다. “오늘 오시는 분들은 2분 30초짜리 간단한 율동 저랑 같이 연습해서 하시면 됩니다.”
설마 설마했는데 율동이라니.
일찍 가려고는 했으나, 급히 처리할 일들 때문에 긴급토론회가 끝날 무렵에야 송년회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도착하자마자 율동을 익히기 위해 밖에 나가 있어서 아쉽게도 송년회 앞부분에 있었던 선배 회원들의 송년회 인사말은 듣지를 못했다. 꽁꽁 얼어붙은 한해를 보낸 소회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을 내자는 덕담이 오가지 않았을까.
율동 준비를 마치고 행사장 안으로 들어오니 스크린에 2014 한해의 민변 활동영상이 흐르고 있었다. 사진에 담기지 못한 순간들도 많았겠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활동한 회원들의 모습이 담겨져 있었다. ‘내년에는 나도 더 많은 사진에 남아보리라’ 다짐을 할 즈음 영상이 끝나버리고, 사회를 맡으신 조수진, 김성진 변호사님의 소개로 1년차 변호사들의 공연이 시작되었다. 급조된 공연이 어떠했을지는 상상에 맡기며, 이 자리를 빌려 단조롭게 반복되는 어설픈 율동을 보고도 많은 환호를 보내주신 선배 회원님들께 감사를 전하고 싶다.
아쉽게도 달랑 네 사람만 참여하게 되어 선배 회원들에게 무척이나 송구했는데, 그에 대한 변명도 전하고 싶다. 많은 1년차 변호사들이 아직 스스로 제 일정을 통제하지 못하는데다가 당장 납기(!)가 다가온 서면에 아직은 서툰 손으로 ‘한땀한땀’ 글자를 박아 넣느라 불가피하게 참석하지 못했을 터이니, 하해와 같은 이해를 구해본다.
이후 많은 회원들의 송년인사가 이어졌다. 모두의 인사말을 다 전할 수는 없지만,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징계 청구를 당하고도, ‘훌륭한 일을 하는 변호사님들과 같은 반열에 놓아주어 고맙다’는 감상을 들으며, 과연 민변 회원들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에 대한 의문이 풀리기도 했다. 누군가의 앞선 발걸음, 그에 대한 존경심, 서로에 대한 믿음, 뭐 그런 것들이 아닐까. 너무나 상투적인 단어들이지만, 어쩐지 이 단어가 아니면 설명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송년회가 끝나갈 무렵, 참석 회원들은 포츈쿠키를 하나씩 받아들었다. 포츈쿠키 속에서 ‘당첨’을 뽑은 회원들은 천 원짜리 지폐가 두둑하게 든 돈 봉투를 선물로 받고 이를 아낌없이 주변에 나눠주었고, ‘행운의 글귀’를 뽑은 회원들은 각자 받은 글귀가 이러저러하다는 말을 나눴다. 나는 “새해에는 성실해야 합니다. 만약 당신이 오늘 노력을 게을리 한다면 내일의 짐이 더 무거워질 것입니다”라는 글귀를 받았다. 내가 1년차 변호사인 줄 알고 주신 글귀일까. 흑흑.
그리고 우리는 다함께 어깨를 걸고 노래를 불렀다. 분명 2014년이었는데도, 이상하리만치 우리가 부른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의 가사 하나하나가 우리에게 필요한 말들이었다. 조금 무거웠던 송년회는 그렇게 끝이 났고, 그 다음부터는 자리를 옮겨 흥겨운 2차, 3차로 이어졌다. 2015 송년회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흥겨운 일만 있기를. 지금은 더 꽁꽁 얼어붙은 것 같은 겨울이 끝나지 않아, ‘과연’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래도 한번 희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