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민변공부모임을 돌아보며
-좌세준 회원
공부는 계속되고 있다!
지난 2007년 3월 시작된 ‘민변공부모임’이 올해를 넘기면서 7년 넘게 계속되고 있다. 지난 7년 여 동안 격주로 한 두 권의 책을 읽고 서로 만나 자유로운 토론을 계속해왔다. 그동안 쌓인 사연도 많고 읽은 책도 많다.
올해 2014년도 헤아려보니 스무 번의 모임을 통해 30여 권의 책을 읽었다. 이 글을 쓰는 목적은 두 가지인데, 우선 올 한해 읽은 책과 사연들을 되돌아보기 위한 것이고, 사실 그보다 더 큰 목적이 있다면, 이 글을 읽는 많은 회원들에게 내년 민변공부모임에 새로 합류하기를 권하기 위함이다.
민변공부모임에서 읽을 책들을 선정하는데 일정한 기준은 없다. 때로는 모임이 이루어지는 시점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시사적인 책을 읽기도 하고, 때로는 자타가 공인하는 고전을 읽기도 하고, 쉬어가는 의미에서 가벼운 책을 선택하기도 한다.
올 한해 민변공부모임에서 읽은 책 중 역사 분야의 책으로는, 『정약용, 조선의 정의를 말하다』(김호), 『프랑스 혁명에서 파리코뮌까지』(노명식), 『동경대생에게 들려준 한국사』 등이 있다. KBS-TV에서 방영되어 오랜만에 사극 열풍을 일으키기도 했던 <정도전>이 방영될 무렵에는 조유식의 『정도전을 위한 변명』을 함께 읽기도 했다.
민변공부모임에 참석하는 ‘고정 멤버’ 중 한 분이 김선수 변호사다. 그런데 올 한해 김선수 변호사께서는 공부모임 출석률이 저조했다. 이유가 무엇일까? 눈치 채신 분도 있겠지만, 올 한해 통합진보당 위헌정당 해산심판청구 사건의 주심을 맡으시면서 매주 월요일 저녁에 하는 공부모임에 자주 나오지 못하셨다. 헌법재판소가 하필 격주 화요일로 심문기일을 잡는 바람에, 격주 월요일로 ‘공부기일’을 잡은 우리 민변공부모임에 ‘막대한’ 피해를 입힌 셈이다. 공부모임에 오셔서 그냥 앉아계시기만 해도 든든한 분인데, 그래도 뒤풀이 호프집에는 항상 오셔서 모임의 의미를 지켜주셨다. 고마울 따름이다. 지난 10월 말에는 『노동을 변호하다』(오월의봄)라는 책을 내셨는데, 민변공무모임 참석자들에게 직접 서명하신 책을 주셨다. 민변공부모임에 참석하면 이런 ‘혜택’을 누릴 수도 있다.
공부모임에서는 임미리씨가 쓴 『경기동부』라는 책과 1971년 8월 광주대단지 사건을 모티브로 한 윤흥길의 소설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를 읽으면서, 21세기 개명천지 하에서 벌어지고 있는 ‘위헌정당’ 논란과 우리 현대사의 슬픈 과거 속으로 되돌아가는 지적 여행을 하기도 했다.
굳이 ‘문사철’(文史哲)을 따지고 책을 읽은 것은 아닌데, 되돌아보니 ‘문(文)’ 쪽으로는 오에 겐자부로의 『만엔원년의 풋볼』,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 에드거 앨런 포의 단편 전집 『우울과 몽상』을, ‘철(哲)’ 쪽으로는 윌 듀런트의 고전적 저작 『철학이야기』를 읽었다. 피터 싱어의 책 『다윈주의 좌파(변하지 않는 인간의 본성은 있는가)』, 『이렇게 살아가도 괜찮은가』도 윤리학의 범주에 속하는 책이므로 ‘철(哲)’쪽의 책으로 분류할 수 있을 듯하다.
올해 민변공부모임에서 가장 긴 시간을 두고 샅샅이 읽은 책이 1권 있다. ‘피케티 열풍’을 몰고 왔던 『21세기 자본』이다. 두 번의 강독 모임 발제는 유신혜, 김종환, 김병필, 김행선 변호사와 이승범 원장(의사이면서도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어온 분으로 민변공부모임의 모범적 참석자이다.)이 맡아주었다. 강독 모임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모임은 충남대 류동민 교수를 초청하여 특강과 함께 『21세기 자본』이 한국 사회에서 갖는 의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민변공부모임은 재충전을 위한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이 있다. 매년 7월 중순부터 8월 중순까지 모임을 쉬는 ‘여름방학’ 기간에는 격주 모임으로는 읽을 수 없는 조금 두꺼운 책을 몰아서 읽는데, 올해 여름방학 때 읽은 책은 나카자와 신이치가 쓴 『카이에 소바주 (Cahier Sauvage)』 시리즈(전 5권)였다. 신화학, 경제학, 인류학을 망라하는 책으로 새로운 사고의 영역을 더듬어가며 염천의 여름을 보낸 기억이 새롭다.
2014년 민변공부모임은 12월 15일 송년회를 끝으로 마무리되고, 2015년 새해 1월 12일 첫 모임까지 겨울방학을 맞는다. 이 글을 읽는 회원분들에 대한 ‘초대’의 의미에서 새해 첫 모임에서 읽을 책을 소개하는 것으로 이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새해 첫 모임에서 읽을 책은 안도현 시인이 낸 『백석 평전』이다. 지난 11월 민변 월례회 때 ‘시적인 것에 대하여’라는 주제로 민변 회원들과 만났던 안도현 시인은 자신의 시작 활동을 ‘백석을 베낀 시간들’이라 표현하고 있다.
자! 유난히 눈이 많이 내릴 것 같은 올 12월과 새해를 맞으며,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푹푹 눈이 나리는,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 같은 겨울밤을 백석 시인의 시와 삶을 읽으며 보내는 것은 어떨까? 슬픈 한 해를 보내며 지나친 호사를 부린다고 생각지는 말자. 백석 시인은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게 쌔김질”하고,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시인이었다.(남신의주유동박시봉방)
다가오는 새해를 맞으며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를 가슴에 담아둘 수 있는 분들 모두를 새해 첫 민변공부모임에 초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