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의 서울시민 인권헌장 유보 선언에 대한 성명서] “서울시는 즉각 서울시민 인권헌장을 선포하라”

2014-12-07 1,229

[서울시의 서울시민 인권헌장 유보 선언에 대한 성명서]

“서울시는 즉각 서울시민 인권헌장을 선포하라”

 

2014. 11. 28. 서울시민 인권헌장 시민 제정위원회는 최종 6차 전체회의에서 서울시민 인권헌장을 제정하였다. 이는 7월부터 2회의 권역별 토론회, 9회의 인권단체 분야별 토론회, 공청회, 인권콘서트 등을 토론의 장을 통하여 진행된 심의민주주의의 과정에서 나온 소중한 결실이었다.

 

하지만 서울시는 2014. 11. 30 보도자료를 통하여 ‘합의에 실패했다’는 일방적인 발표를 하였고 사실상 서울시민 인권헌장을 폐기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더군다나 박원순 서울 시장은 2014. 12. 1. 기독교 인사들을 만난 간담회에서 도리어 ‘사회적 논란’에 대한 사과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같은 일련의 사태는 민주주의 원칙을 훼손하는 것으로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다.

 

첫째, 서울시는 즉각 서울시민 인권헌장을 선포하여야 한다.

 

서울시민 인권헌장은 사회적 합의를 통하여 제정된 1,200만 서울시민의 자랑스러운 인권문헌이다. 서울시민 인권헌장 제정 시민위원회는 성비와 연령 등으로 안배를 해서 1,570명의 지원자 중 150명을 선발했고, 인권법 전문가 등 각계 전문가 30명의 전문위원까지 포함된 180명으로 구성되었다. 180명의 시민위원들은 제정 과정에서 수많은 숙의 절차를 통하여 결론을 도출하였다. 인권헌장을 제정하는 데 있어서 이보다 더 이상의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가?

 

서울시는 ‘만장일치’라는 원시적으로 불가능한 조건을 내세우고 있다. 만일 서울시의 ‘입맛에 맞지 않는’ 안이 나오지 않자 유보 선언을 한 것이라면 서울시는 ‘참여형 시정’이라는 허울 좋은 미명 하에 그동안 생업을 제치고 열성적으로 이 과정에 참여해왔던 시민위원들을 이용하고 우롱한 것이며 이는 용인될 수 없다.

 

한편, 헌장제정권한을 제정 시민위원회에 위임한 상황에서 서울시에 ‘거부권’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이는 헌장은 시민위원회가 주체가 되어 결정할 사항이라고 반복적으로 답변한 바 있는 서울시의 기존 입장과 배치되는 것이다.

 

「서울특별시 인권기본조례」제12조에서 ‘시장은 인권을 존중하는 가치를 구현하고 지속 가능한 인권도시를 만들기 위해 서울시민 인권헌장을 제정하여 선포한다’고 하고 있다. 만일 서울시가 헌장을 선포하지 않고 폐기한다면 민주주의적 숙의 과정의 결실을 부정하는 한마디로 ‘총체적인 실패’이다.

 

둘째, 찬반과 합의의 대상으로 전락시킨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금지 원칙에 대하여 서울시는 다시 한 번 분명히 천명해야 한다.

 

제정 이후 제정위원회 전문위원 일동과 많은 시민사회단체, 노조, 정당, 공익인권변호사집단 등에서 서울시민 인권헌장의 선포를 촉구하고 있다. 헌장은 우리 헌법과 하위 인권법률, 국제규약의 원칙을 다시 담은 내용이다. 절차적으로도 내용적으로도 문제없는 헌장에 대한 명분도 없는 유보의 이면에는 혹시 성적지향 및 성별정체성 문구를 포함시킬 수 없다는 의도가 포함되어 있는지 서울시는 분명히 밝혀야 한다.

 

「서울특별시 인권기본조례」는 제6조 제1항에서는 “모든 시민은 인권을 존중받으며, 헌법과 국가인권위원회법 등 관계 법령에서 금지하는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라고 하고 있으며, 「국가인권위원회법」상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의 사유로 성적지향이 명시되어 있고, 「서울특별시 학생인권조례」 등 각종 인권조례에서도 차별금지사유로서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을 명시하고 있다.

 

한국은 2014. 9. 26. UN 제27차 인권이사회에서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을 근거로 한 차별과 폭력에 반대하는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인권’ 결의안(A/HRC/27/L.27/Rev.1)에 찬성표를 던졌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은 아시아에서 성소수자 인권을 잘 이해하고 있는 국가로 꼽힌다. 그런데 그 한국의 수도 서울에서 ‘찬반’을 핑계로 한 인권헌장 선포 유보 사태가 일어나버렸다. 국제적인 수치가 아닐 수 없다.

 

셋째, 서울시는 제정 과정에서 벌어진 혐오표현적인 난동과 폭력에 엄중히 대응해야 한다.

 

2014. 11. 20 서울시민 인권헌장 공청회에서는 반동성애 단체들이 혐오표현적인 난동과 폭력으로 의사진행을 방해하여 서울시의 공무를 방해한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였다. 현장에서 서울시는 미온적인 대응을 보이며 입에 담을 수 없는 차별적인 혐오표현에 성소수자 활동가들을 그대로 노출시켰다. 서울시는 이에 대해 “공청회가 시민 의견을 수렴하고자 하는 애초 의도와 달리 동성애 반대 시민의 항의로 파행된 데 대해 매우 유감”이라며 “남은 기간 시민이 주도해 만드는 인권헌장 제정의 본래 취지대로 헌장 제정이 잘 진행되게 하겠다”고 밝혔지만, 이 공무집행행위에 대한 즉각적인 법적 대응을 하지 않았고 결국 헌장 유보 선언을 하면서 혐오를 범죄가 아니라 의견으로 승인한 결과가 되었다.

 

혐오표현(hate speech)는 직접적 대상이 되고 있는 소수자 혹은 그 집단에 대해 지극히 극복하기 어려운 해를 입히지만 그에 머무르지 않고 직접적으로 혐오표현에 참여하지 않는 사회 구성원의 인식과 자존감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민주주의의 적이다. 우리는 일본의 반한단체 ‘재일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 모임’(‘재특회’)의 재일한국인에 대한 차별적인 혐오표현들을 알고 있다. 재특회는 스스로를 ‘행동하는 보수’라 칭하며 조직적으로 가두 ‘혐한 시위’를 하는 집단이다. 일본 교토지방법원은 2013. 10. 7 재특회가 조선학교에서 한 혐한 시위는 학교법인의 업무를 방해한 것이며 원고의 명예를 손상시킨 불법행위라 하여 피고 재특회에게 손해배상을 명하는 판결을 내렸다.

 

서울시가 제정 과정에서 벌어진 혐오표현적인 난동과 폭력에 대응하지 않는 것은 앞으로 우리 사회와 민주주의의 발전에 크나큰 악영향을 주는 선례가 될 것이다.

 

우리는 세계인권선언기념일인 2014. 12. 10 서울시민의 손으로 만들어진 서울시민 인권헌장은 선포되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 원칙이 없는 시정이 어디까지 갈 수 있을 것인가. 시민사회가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2014년 12월 7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 한택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