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변호사를 위한 변론
이석범 변호사
2014년 10월 20일 오후 2시 서울중앙지방법원 519호 형사법정에서는 노동운동가와 인권변호사로 노동자의 곁을 항상 지켜 왔던 권영국 변호사가 집시법위반과 특수공무집행방해죄로 기소된 후 첫 공판기일이 있었다. 검찰의 기소요지 진술과 변호인들과 권변호사의 모두진술을 듣는 내내 참담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유신시대인 1974년 7월 9일 저녁 민청학련사건을 변론하던 강신옥 변호사가 법정구속된 이후 인권변호사가 재판받는 것은 공교롭게도 ‘독재자 박정희’의 딸 박근혜 정부하의 검찰이라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역사는 이렇듯 한번은 비극으로, 한번은 희극으로 되풀이되는 것인가?
위대한 법철학자이자 독일 바이마르공화국 당시 법무장관을 역임한 구스타프 라드부르흐는 그의 탁월한 저서 『법학원론』에서 법의 이념을 논하면서 그 첫 번째 순위에 ‘법적 안정성’을 두번째로 ‘구체적 타당성’ 마지막으로 ‘정의’를 두었다. 그러나 그는 히틀러의 반문명적인 나찌 치하를 경험한 후 통렬한 반성을 통하여 자신의 법이론이 잘못되었다면서 2차 대전 이후 개정판에서는 그 첫 번째로 ‘정의’를, 마지막으로 ‘법적 안정성’으로 그 순위를 바꾸어 버렸다.
수백만의 유대인을 아우슈비츠 가스실로 보냈던 ‘유대인의 백정’이라 불리던 희대의 전범 아이히만이 끌려 와 재판받는 예루살렘법정을 꼬박 꼬박 참관하고 난 다음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란 명저를 낸 한나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을 설파하면서, 당시 세계 최고의 과학기술과 철학수준을 자랑하던 독일 민족이 어떻게 그런 반인륜적인 범죄에 간담하였는가를 논증하였다.
라드부르흐와 한나 아렌트는 나찌 시대의 광풍이 가능했던 주된 원인은 단지 실정법에 따랐을 뿐이라는 당시의 법률가, 특히 검찰과 법원의 이른바 ‘법실증주의’와 ‘형식적 법치주의’ 법이론이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인권과 민주주의 지표는 이미 유신시대로 회귀해버렸다는 국제사회의 따가운 비판이 더 이상 특별한 게 아니다. 유엔인권이사회의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의 보고에 의하면, 현재 한국 사회는 집회와 시위 및 표현의 자유 영역에서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다고 한다.
법정에서 권변호사는, 자신은 기본적 인권과 사회정의를 옹호해야 하는 변호사로서의 양심과 민주시민의 의무감에서 고통받는 쌍용자동차 노조원들과 연대하였을 뿐이고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인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침탈하는 경찰권의 남용에 저항하였을 뿐이라고 항변하였다. 그러한 자신의 정당한 행위가 왜 범죄시되고 법정에 서서 재판을 받아야 하는지를 조용한 목소리로 크게 외치고 있었다. 그러면서 오늘 자신의 이 재판이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와 인권의 보호에 큰 의미를 남길 것이란 취지로 모두 진술을 마무리 하였다.
검사윤리강령(법무부 훈령 제581호)에 의하면, 검사는 「법의 지배」를 통하여 인간의 존엄과 권리를 보장함으로써 민주사회를 구현할 책임이 있고, 공익의 대표자로서 국법질서를 확립하고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며 정의를 실현함을 사명으로 한다. 따라서 검사는 그 직무를 수행할 때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서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며 주어진 권한을 남용하여서는 아니 되고, 제1심 판결 선고 전까지 검사는 공소를 취소할 수 있다.(형사소송법 제255조)
검사는 변호인들이 모두진술에서 주장한 우리 대법원과 행정법원의 판결들, 미 연방대법원의 판례들 및 법률적 주장을 경청함으로써 과연 권변호사에 대한 법령적용의 타당성과 공소유지의 필요성을 면밀히 검토하여 지금이라도 공소를 취소해야 한다.
만약 경찰과 검찰이 일생을 우리 사회의 사회경제적 약자인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하여 헌신하여 온 ‘거리의 변호사’ 권영국 변호사를 공권력에 도전한다는 이유로 기소한 것이라면, 「법의 지배」라는 허울 뒤에 숨은 치졸한 정치보복에 다름이 아니라고 이미 국민들은 잘 알고 있음을 경찰과 검찰은 맹성할 필요가 있다.
더 많은 민주주의, 더 많은 자유와 평등, 더 많은 인권과 노동과 복지를 갈망하는 민주시민들의 열망이 한데 모아져,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고 반법치적인 검찰이 혁파돼 국민의 검찰로 바로 서는 그날이 오면, 우리는 오늘 권변호사의 법정에서 우리가 기록하고, 우리가 기억하는 것들을 정정당당히 증언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