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헌법재판회의 제3차 총회 기념 NGO 학술 심포지엄 후기
– 사법위원회 12기 자원활동가 오혜지
지난 9월 28일 국회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통합진보당 해산청구 베니스위원회 기준에 비춰본다”를 주제로 한 세계헌법재판회의 제3차 총회 기념 NGO 학술심포지엄이 열렸다.
이번 학술 심포지엄은 오는 9월 28일부터 10월 1일까지 3박 4일간 헌법재판소 주최로 열리는 세계헌법재판회의 제3차 총회(주제 : 헌법재판과 사회통합)를 맞아, 한국 사회 내 주요 헌법 현안이라 할 수 있는 정당해산 문제를 총회 참석자들에게 알리고 함께 논의하기 위한 NGO차원의 행사라고 한다.
세계헌법재판회의는 베니스위원회의 주도로 시작된, 각국 헌법재판기관을 회원으로 하는 헌법재판 분야의 회의체로서, 이번 제3차 총회는 전 세계적으로 심화되는 양극화와 사회갈등의 근본적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 개최됐다.
민변 등 3개 단체로 구성된 준비위원회가 총회 개최 의의에 공감하면서, 이를 한국 사회에도 적용해 우리 사회의 통합을 저해하는 가장 큰 요인 중 하나인 민주주의 억압양상과 통합진보당 해산과 관련해 논의의 장을 마련한 것이다.
심포지엄은 두 가지 세션으로 나누어서 진행되었는데, 제1세션은 한국 민주주의 위기와 정당 해산, 2세션은 베니스 위원회 기준과 통합 진보당 해산 청구 사건에 대하여 총 네 분이 나오셔서 두 분의 교수님이 발제를 하시고 나머지 두 분이 토론을 하시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제1세션의 처음 발제자인 한상희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님은 ‘통치술로서의 정치의 사법화 : 통합진보당 사건으로 본 87년 체제의 한계와 전망’을 주제로 말씀하셨는데, 해외출장 중이던 대통령이 전자결제를 통해 우리 헌법 초유의 위헌정당해산심판사건을 제기하였고, 국가정보원 등의 선거개입 문제로 정당성이 위협받던 정부가 위기 국면을 헤쳐 가는 과정에서 정치의 문제를 법의 영역으로 전이시키는 것, 즉 ‘정치의 사법화’ 문제를 제기했다. 정부가 정치의 문제를 법원을 이용해 해결하려는 것은 탈정치화를 도모해 국민들을 개인으로 쪼개서 집단적인 요구를 막고 민주화를 막겠다는 것으로 보인다는 말씀이 가장 공감되었다.
다음으로, 이호중 서강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님께서 ‘종북 매카시즘과 통합진보당 해산 청구’라는 주제로, 종북 매카시즘이 어떻게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있는지에 대해 말씀하셨다. 정치권력이 대중이 갖고 있는 실존적 불안감을 끊임없이 위장하고 적을 만들어서, 그 적이 없어지면 안전한 사회가 된다는 식의 정치담론을 펴고 있다는 말씀이 가장 인상 깊었고, 앞서 발제하신 한상희 교수님과 의견이 많이 일치하는 부분이 있었다.
토론을 맡으신 오동석 아주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님은 헌법의 이름으로 민주주의 파괴 활동이 나타나고 있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많은 분들이 공감하시는 것 같았다.
김칠준 법무법인 다산 대표 변호사님은 ‘종북 매카시즘’은 점차 무력화되고 있다고 하시며 낙관적인 전망을 제시하셨다. 이번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사건의 주된 배경은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사건이기 때문에, 내란음모 사건이 무죄로 최종 확정된다면 정당해산도 힘들 것이라고 하셨다.
이렇게 1세션이 끝났고, 쉬는 시간 동안 여러 국회의원님들과 교수님들, 여러 단체장님들께서 오랜만에 만나셨는지 다과를 드시며 이야기를 즐겁게 나누셨다.
제2세션에서는 처음 발제자로 김종서 배재대학교 법학과 교수님이 ‘정당해산 등 규제에 관한 베니스위원회 지침의 헌법적 함의’를 주제로, 베니스 위원회의 지침을 분석하고 현 사건에 적용하였을 때의 결과에 대해 말씀하셨다. 베니스위원회가 상정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원칙은 정당의 금지나 해산이 원칙적으로 발동되어서는 안 되는 장치이고 예외적으로 적용할 때 ‘합법성’과 ‘비례성’의 원칙 등이 강조된다고 하셨다. 그러나 현 상황은 이러한 원칙이 잘 지켜졌다고 보기 어려우며, 헌법재판소가 베니스위원회 지침이나 의견을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다면 기각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하셨다.
다음으로 송기춘 전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님(현 민주주의법학연구회 회장)이 ‘통합진보당 해산심판청구 사건에 대한 비판적 분석’을 주제로 현재 이 청구가 기각되어야함을 주장하셨다. 또한 이 사건은 정당의 목적과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는지를 판단해야 하는 헌법재판 사건이므로, 정부는 일부 당원들의 국보법 위반 경력 등을 근거로 삼는 것이 아니라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된다는 점을 찾아 근거로 제시해야 한다며, 국가보안법 사건과 정당해산심판청구는 같지 않음을 말씀하셨다. 발제 중간 중간에 이러한 사태가 발생한 것에 대한 황당한 마음을 표출하셔서 많은 분들이 공감하시며 웃으셨다. 자칫 무겁게만 느껴질 수 있는 이 심포지엄 분위기를 이렇게 유머로 환기시켜주신 점이 인상 깊었다.
토론을 맡으신 이헌환 아주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님(현 법과사회이론학회 회장)은 정부의 진보당 해산심판 청구가 권력의 ‘의지과잉’으로 인해 발생한 정치현상이라고 지적하셨다.
김인회 인하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님은 마지막 토론을 맡으셔서 시간이 부족한 것과 이미 장시간 말씀을 들으신 참석자분들의 집중도에 대한 우려를 조금 표하시며 토론을 시작하셨다. 김인회 교수님은 헌법과 국보법이 구분돼야하고 앞서 송기춘 교수님이 말씀하신 것과 같이 국가보안법위반과 통합진보당 해산청구와는 관련이 없는 것을 주장하셨다. 그러나 국보법이 폐지되지 않는 한 정권이 바뀌어도 이러한 논리에서 정부가 쉽게 벗어나진 못할 것이라는 점에서 회의적인 태도를 취하셨다.
1세션의 초반 발제가 길어져서 후반 발제 및 토론이 시간에 쫓기는 형태로 빠르게 진행된 것이 조금 아쉬웠으나, 주요한 내용은 나누어주신 책자에 나와 있고 발제 및 토론을 하신 교수님들께서 핵심을 위주로 말씀하셔서 오히려 집중이 더 잘 됐다.
마지막에 Q&A시간을 통해 참석자분들이 본인의 의견을 표출하셨고, 2세션 사회를 맡으신 김종철 교수님께서 최종적으로 오늘 심포지엄의 주요 부분들을 최종적으로 정리해주셔서 내용을 이해하는 데에 훨씬 도움이 됐다.
많은 것을 보고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된 심포지엄이었고, 점점 대중에게 잊혀져가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이 사태에 대해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지고 참석하셔서 자리를 빛내는 모습이 인상 깊었으며, 많은 헌법학자들이 입 모아서 얘기하는 지극히 당연한 결과가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모여서 연구하고 얘기를 하고 고군분투할 수밖에 없는 실상이 안타까웠다.
인터넷에서 음모론의 형태로 떠돌던 가벼운 이야기들이 이렇게 체계적으로 작성되어 공론화하는 것 자체에 큰 의의가 있다고 생각하고, 헌법재판소의 앞으로의 추이와 정부의 움직임이 궁금해지는 심포지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