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서울시공무원간첩조작사건 변호인단을 만나다.

2014-08-25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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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공무원간첩조작사건 변호인단을 만나다.

 

참석 : 천낙붕, 김용민, 양승봉, 김유정, 김진형 / 김지미, 이유진

 

김지미 : 다섯 분이 다 오실지는 정말 몰랐습니다.

천낙붕 : 이제 거의 일심동체가 되어서 거의 안 빠지는데, 장경욱 변호사님만 다른 일이 있어서 못 왔어요.

김지미 : 개편 뉴스레터에, 예전에 있었지만 중단된 회원인터뷰 코너를 다시 시작 할 예정인데요. 야심차게 준비한 코너! 그 첫 번째 주자가 서울시공무원간첩조작사건 변호인단 여러분입니다. 바쁘신 분들이라 전부 모이시긴 힘들 줄 알았는데, 모두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야기 한다 생각하시고 편하게 말씀해주세요.

 

김지미 : 먼저 서울시공무원간첩조작사건의 변호인단이므로 사건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습니다. 처음에 이 사건이 민변에 공식적으로 변론요청이 들어온 것인가요? 이 사건을 어떻게 처음 접하게 되셨나요?

김용민 : 천주교인권위원회에 처음 접수가 되었던 것을 천주교인권위원회에서 민변 장연희 차장님에게 요청했고, 장연희 차장님이 장경욱 변호사님에게 이야기를 했어요.

김지미 : 장경욱 변호사님이 변호인단을 모집 하신건가요?

천낙붕 : 몇 개월 전에 통일위원회 내에 탈북자인권연구팀이 만들어졌는데, 이 사건이 ‘첫 번째 탈북자인권연구팀 사건이 될 것이다’, ‘팀을 가동하자’ 해서 통일위원회 위원을 중심으로 변호인단이 꾸려졌어요.

김지미 : 변호인단이 모두 통일위원회 소속인가요?

모    두 : 맞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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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미 : 처음부터 유우성씨가 본인은 ‘간첩이 아니다’, ‘조작이다’라는 식의 주장을 했을 것 같은데요, 사건을 처음 맡았을 때 피고인이 무죄주장을 하거나, 특히나 이 사건이 만들어진 것이다, 조작된 사건이다, 이런 주장을 했을 때, 쉽사리 믿을 수 없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사건에 대해 들었을 당시 처음부터 유우성씨의 말이 맞다, 이것은 조작 된 것이라고 생각하고 검찰의 증거에 대한 반대증거를 찾으려고 하셨던 것인가요? 아니면 처음엔 긴가민가했지만 사건을 계속 진행하다보니 유우성씨 말이 맞구나 라고 생각을 하시게 된 것인가요?

천낙붕 : 구성원마다 달라요. 장경욱 변호사님은 첨부터 조작이라 믿었고, 양승봉 변호사님은 긴가민가했어요.

김지미 : 이 사건 접했을 때 어떤 생각으로 이 사건 변론을 맡게 되셨는지 한 분씩 말씀해주세요.

김용민 : 장경욱 변호사님의 전화를 처음 받았는데, 조작된 사건이라고 먼저 말씀하시더라고요. 조금 당황스러웠어요.(웃음) 유우성씨를 만나보고 나서까지도 긴가민가했는데, 증거보전하면서 생각해보니, 여동생이 오빠가 간첩이라고 하는 게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은 아니잖아요. 그런데 증거보전절차에서 여동생의 진술을 들어보니까 신빙성이 많이 떨어지더라고요. 유우성씨 말이 맞는 것 같다고 생각됐고, 그래서 그때부터 이 사건이 조작되었다고 믿게 되었어요.

천낙붕 : 저는 조금 틀린데, 어떤 사건이던 이게 조작이다 사실이다 그런 관념이 사실 없어요.기본적으로 사건의 절차에 문제가 있는지, 국정원에서 수사한 내용이니까 과정상에서 문제가 있었는지, 그걸 먼저 봐서 접근하는 거고, 특히 국정원 사건은 거의 다 절차의 위법이 있으니까 들어가는 사건이에요. 그래서 끝까지도 일단 이 사람이 가짜다 진짜다 탈북자인데 간첩혐의가 있다 없다는 사실상 오랫동안 거의 머릿속에 없었어요. 그냥 생각이 나는 게, 양승봉 변호사님이 가서 이야기 해보니까, ‘정말 이게 문제가 있고, 가짜고 조작된 것입니다’ 라고 해서, 거기다가 진실성까지 있구나라고 생각했어요.

김지미 : 천낙붕 변호사님은 어찌 보면 처음엔 객관적인 시각으로 접근을 하신 거군요?

천낙붕 : 네. 조작이다 아니다 그 관점은 없는 거죠.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처음부터 ‘간첩이냐, 아니냐? 그 문제에 대해서 사실 판단을 해야 하지 않느냐’, ‘간첩이 아닌지도 모른다’, 아니 ‘간첩일지도 모른다는 위험성이 있지 않느냐’고 했어요. 제가 가장 싫어했던 말이 그거에요. 간첩이건 아니건 상관없다, 일단 절차적인 문제가 있으면 들어간다, 거기에 위법성이 있으면 그것부터 따지고 들어가는 거에요. 그것에 대해서 민변의 다른 많은 사람들은 지금 그런 질문자체를 하고 있더라고요. 그런 질문을 싫어했지요.

김지미 : 양승봉 변호사님은 어떠세요?

양승봉 : 저는 2월 중순경에 장경욱 변호사님의 전화를 받았어요. 간첩사건 같이 해보자고 하시더라고요. 이 사건은 조작된 것이고, 다른 사건과 다른 것이 피고인이 계속 부인하고 있다는 거에요. 그래서 싸워볼만하다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소신이나 그런 건 전혀 없었고 그냥 하라고 하니까, 도와 달라 하시니까 변호인단에 들어갔어요. 1월 말경부터 접견을 계속 갔는데 검찰의 공소사실은 계속 북한에 집이 있는 상태에서 왔다갔다하면서 공작을 한 것으로 되어 있었어요. 저는 유우성씨를 믿을 수가 없었고, 왜냐하면 여동생이 오빠를 간첩이라고 진술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유우성씨가 접견하는 중에 뭐라고 하냐면 자기 집은 2년 전에 이사를 나왔는데, 왜 자꾸 북한에 집이 있는 것처럼 북한에서 중국으로 왔다갔다한다고 이야기 하는지 모르겠다, 여동생이 미친 것 같다 이렇게 말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 부분이 저도 굉장히 궁금했었어요. 그러면서 유우성씨 핸드폰이라던지 컴퓨터라던지 조사했고 바깥에 있는 사람들을 계속 접촉했죠. 유우성씨는 구속되어 있으니까 바깥의 지인들과 연락이 안 되잖아요. 바깥의 지인들과 연락을 하면서 접촉해보니까 아니나 다를까 이미 2011년도에 집을 완전히 팔고 이사를 했다고 했어요. 국정원이나 검찰조사의 근간 자체가 흔들어져 버렸어요. 검찰의 기록하고 수사내용하고 여동생의 진술이 완전히 허위사실에 바탕을 둔 것이더라고요. 유우성씨는 억울해 하면서 이미 이사를 나와서 아예 북한에 집이 없는데 왜 자꾸 북한을 왔다갔다한 것으로 되어있는지, 저는 그것을 1차적으로 확인을 했지요. 유우성씨가 구속되어 있어 전혀 연락을 할 수 없는 분들 하고 통화를 하면서. 그 분들도 저를 국정원 직원인 줄 아시고 굉장히 조심스러워 했는데 변호인이라는 것을 밝히고 나서 하나씩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술술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되더라고요. 자기가 2011년도 4월에서 5월경 이미 북한에 있는 유우성씨 집을 사고 언니한테 줬다. 그래서 유우성씨는 집이 북한에 없다. 이미 이사나갔다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거기서부터 처음으로 유우성씨의 말이 맞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그리고 한, 두 분 더 만나면서 그 분들이 했던 진술을 들어보니 완전히 공소사실하고 달라요. 그래서 그때 이미 확신을 했고, 증거보전도 들어가기 전에 확신을 한 상태에서 들어갔었어요. 증거보전하고 나서도 그 날도 많이 확신을 가졌지만, 계속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 들어보면서 확신을 했죠. 이게 완전히 사건조작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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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미 : 아주 기본적인 사실조차도 맞추지 않은 상태에서 조작이 시작이 된 것이네요? 조작이라고 하면 기본적인 것들 맞춰 놓고 해야 하는데 전혀 그런 생각조차도 없었던 거죠?

양승봉 : 지나치게 빨리 기소했다고 하시더라고요. 서둘렀다고 이분들이. 보통은 1년 정도는 준비한다고 하더라구요.

김지미 : 김진형 변호사님은 어떠세요?

김진형 : 이미 변호인단이 꾸려져서 변론시작 이후에 뒤늦게 들어와서 기본적으로 배우는 입장이었어요. 2년차 변호사를 시작한 상황에서 처음에는 변호사님들 변론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아 이게 조작된 사건이겠구나라는 짐작은 어느 정도 하고 있었던 것이고요. 저도 결정적인 것은 증거보전 할 때 같이 했었는데 아까 말씀하신 집이 어디 있느냐의 문제라던가, 또 하나는 설날에 북한에 있었다고 했는데, 중국에서 가족과 설을 보낸 내용들이 있는데, 그게 증거보전 절차에서 유우성씨도 그렇고 변호사님들이 유가려씨에게 물어봐요. 기본적으로 그때도 합동신문센터에 있었기 때문에 검사가 질문하는 허위사실에 대해서도 그렇다라고 긍정을 하는데, 또 한편으로 유우성씨가 사실을 물어보면 그런 것에 대해서는 인정하기도 하고선 또 한편으로는 계속 눈물을 흘리면서 부인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 저 동생이 합동신문센터에서 굉장히 고문이나 가혹행위를 받고 있는 어려운 상황에 있구나. 그런 과정에서 허위자백이 나왔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처음에는 동생이 이야기 했다고 하니까 그게 사실이 아닐까 하는 의심도 들었었거든요. 증거보전 절차 보면서 그 이후에 밝혀진 내용이 동생이 6개월 동안 감금된 상태에서 진술을 강요받는 것이 저 속에서는 정말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처음에는 아니 왜 동생이 오빠를 이렇게 했을까 한편으로는 그 사건이 조작된 사건이란 인식을 갖게 되면서 동생이 왜 그랬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고, 그러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당일 날 진술할 때 정말 힘들고 괴로워하는 걸 보면서 한편으로는 연민도 느껴지고 국가조직이 개인이나 가정에 대해서 폭력을 가하면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에 대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어요. 그날 계기로 사건의 본질을 알게 되었고, 이후에 인신구제절차를 통해나와서 기자회견을 하는데 유가려씨가 눈물을 흘리면서 그때 상황을 솔직하게 이야기 하더라고요. 그러면서 좀 더 본질적인 접근 하게 되었어요.

김유정 : 2013. 4. 26. 유가려씨가 인신구제청구로 합동신문센터에서 처음 나왔을 때 그 날 처음 유가려씨를 봤어요. 첫 느낌이 굉장히 위축되어 있는 느낌이었어요. 밖에 누가 와 있는 거 아니냐 그런 두려움에 떨고 있었고, 되게 가녀린 인상이 남아 있어요. 본인이 허위자백했던, 국정원이 원하던 진술들이 엄청나게 크게 사건화 되어 있다는 걸 그제서야 인식하고는 굉장히 힘들어 하더라고요. 유가려씨를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사실 여동생이 오빠를 간첩 아닌데 간첩이라고 했겠느냐 의문이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실제로 유가려씨를 만나보니까 그 안에서 진술하게 되기까지 과정이 얼마나 혹독했는지 알 수 있었어요. 그리고 합신센터에서 유가려가 작성한 진술서를 보면 굉장히 논리정연하게 쓰여 있는데, 내용을 떠나서 형식이나 이런 것들이 사전에 짜 맞혀진 느낌이 있었어요. 유가려씨 말로는 타이핑해 준 걸 보고 썼다는데 실제 한국식 용어로 써져 있는 걸 나중에 북한말로 고친 것도 있더라고요. 베껴 쓰다가 졸려서 같은 부분을 두 번 옮겨 적은 부분도 있었구요. 이와 비교되게 본인이 정말 썼다고 하는 진술서는 내용이 두서없이 적혀 있었는데 어떤 것이 진짜로 쓴 것인지 알 수 있을 정도로 확연이 드러나 있었지요. 재판에 합류하게 된 이유는 여동생 증인신문을 비공개재판으로 하는데 여동생이 너무 힘들어 한다, 재판중간에 여자변호사의 조력이 필요하다 해서 합류하게 되었어요. 재판정에서 유가려씨 진술을 들어보니까 유가려씨가 하는 진술과 실제 나와 있는 내용이 일치했고, 합신센터에서 이 진술서가 어떻게 해서 나오게 된거다, 또 그 시기별로 어떤 일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진술이 나왔다하는 그런 것들에 대한 진술이 다 맞아 떨어지는 거에요. 그래서 이게 정말 국정원 합신센터 안에서 만들어진 사건이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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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미 : 지금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까 증거보전이라는 것이 유가려씨 진술에 대한 증거보전을 말씀 하시는 거죠? 증거보전에서 조작이라는 마음이 굳어졌다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전에 유가려씨가 합동신문센터에서 6개월 간 있으면서 우리가 흔히 고문이라고 말하는 것들이 있었다는 주장이 있는데, 판결문이나 재판과정에서 그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 같거든요?

김용민 : 맞아요. 항소심에서도 명확하게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어요.

김지미 : 폭행, 협박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재판부 입장이 인정할 수 없다는 건가요?

김용민 : 1심은 인정할 수 없다고 하고, 항소심에서는 판단하지 않았어요. 대신에 나머지 가혹행위라고 볼 수 있는 것들과 강제적인 구금 혹은 사실상 구금이다, 국정원의 재량 남용이다 이런 것들을 쭉 설시는 했죠. 폭행 협박만 빼고 나머지 것들 회유라던가 이런 것들은 다 들어갔죠.

김지미 : 고문이라는 것이 신체적으로 물리력행사까지는 아니지만 달력을 주지 않는다던가 무서운 소음보내는 식의 고문이 있었다?

김용민 : 새로 진화된 고문을 했죠.

김지미 : 유가려씨가 그렇게 주장을 했는데 그것을 입증할 방법은 없나요?

김용민 : 아니요. 그것은 인정이 되었어요. 달력을 주지 않았던 것과 문이 외부에 잠금장치가 있어서 자기 방에서 나갈 수 없는 것들, 그리고 외부와의 연락이 단절되어 고립되어 있던 것들은 다 인정이 되었거든요. 그것을 항소심에서는 고문이라고 평가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구금이라고 평가해줬던 부분이었고요. 우리는 그것을 고문이라고 주장했던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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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미 : 그렇게 1심 진행을 하게 되었고, 결국은 1심에서 무죄나왔죠. 지금 우리는 국가보안법의 점만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어쨌든 간첩에 대해서만은 무죄가 나왔잖아요. 그런데 항소심까지 끝나고 현재 시점에서는 사실 출입경기록이 위조라는게 엄청난 이슈가 되고 있고, 그런데 1심에서는 그 이야기가 안 나왔죠?

김용민 : 그렇죠. 위조가 안됐었죠.

김지미 : 1심에서 무죄를 받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유가려씨의 진술이 신빙성이 없다는 것 때문인가요?

김용민 : 그런 것도 있고요, 증거보전 3월 4일에 했었고, 3월 27일인가에 여동생의 말이 좀 이상하니까 확인하기 위해 중국에 갔어요. 중국에 가서 확인을 했더니 유우성씨의 말이 대부분 맞고, 유가려씨의 말은 너무 틀린거에요. 본인이 어디에 가서 뭘 했다고 하는데 이게 다 맞질 않는거에요. 집도 틀리고, 완전히 엉망진창인거에요. 예를 들어 집이 701호라고 하는데 7층이 없는 건물 앞에서 사진을 찍는 그런식이죠. 그래서 그런 것들을 확인해서 객관적인 증거들을 많이 확보했죠. 그리고 유우성씨가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었던 것을 국정원은 북한에서 찍은 것이라고 하면서 사진만 출력해서 증거로 냈는데, 저희가 파일 원본을 가지고 확인해 보니까 중국에서 찍은 것으로 GPS상 나왔고, 뭐 이런 것들, 객관적인 증거들이 다수 확보되었거든요. 그리고 USB를 팔지 않았던 사실이라던가, 메신저로 파일을 넘겼다고 했는데 파일을 받았다고 한 시기 이후에 메신저에 가입을 했던 사실, 뭐 이런 것들을 객관적 증거로 확보해서 1심 법원에 제출했고, 이것이 일반적인 사건이라면 무죄가 나올 수 밖에 없다 정도까지 갔어요. 왜냐하면 제일 중요한 증거인 여동생이 진술 번복했고 그거 이외에 객관적인 증거들을 수집해서 냈고. 그래서 무죄가 나올 수 밖에 없다 이렇게 생각은 했는데, 그래도 국가보안법 사건이니까 조금 조심스럽긴했지요. 무죄는 사실 그런 것 때문에 나온 것 같아요.

김지미 : 국정원의 검찰 측의 증거를 탄핵하기 위해서 중국에까지 출장을 가신건데, 국가보안법 사건을 이렇게까지 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었던 것 같고, 하기도 쉽지 않았을 텐데요.

김용민 : 1심에서 3번 갔고, 항소심 1번 갔어요.

김지미 : 중국에 가면서까지 이 사건을 무죄를 받아야겠다고 한 것은, 그 시점에서는 이 사건이 정말 조작이기 때문에 밝혀내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라는 사명감 내지는 소명 같은 것도 있었기 때문인가요?

천낙붕 : 명확함을 찾을 것이 있어야, 사진첩이라던가 확인해 보고 싶은 것이 있어서 간거에요. 가기만 하면 찾을 수 있으니까요. 그 쪽에 사진첩이라던가 요청을 했는데 못 보내줬어요. 중국에 갈 수 밖에 없는 필수적인 이유가 있었지요.

김용민 : 또 가족들을 만나면 이야기들을 많이 들을 수 있을 것 같고…

천낙붕 : 가도 별 이야기 없을 거다 라면 가기가 쉽지 않았겠지요.

김지미 : 그 시점에서는 이미 유우성씨의 말이 100% 진실이다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갈 수 있었던 것이네요?

양승봉 : 유우성씨의 말 대부분이 진실이라서 간 것이지요. 중국가게 된 이유가 무엇이냐 하면 검찰은 유우성씨가 2006년에 포섭이 되었다고 말을 하는데 친척이라던지 아버지라던지 2006년도 기억을 공유하고 있는 분들의이야기를 가공되지 않은 상태에서 들어보고 싶었고, 결정적으로 사진첩이 중국집에 있다고 해서 그것도 보고 싶었죠. 처음에 갔을 때에는 아버지가 저희를 국정원직원인 줄 알고 사진첩을 안 보여 주려고 했어요. 안방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걸 다 숨겨버렸어요. 처음에 중국에 출장가자고 한 사람이 장경욱 변호사님이거든요, 중국에 가서 몇 가지 확인해야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당시엔 약간 의구심이 들었어요. 여기서의 일도 많은데 중국까지 가는 것이 과연 뭔 의미가 있긴 있겠지만 생각을 못 한거죠. 발상을 못했던 거죠.

천낙붕 : 중국가본 것이 처음이었지요.

김지미 : 중국을 가본 것이 처음인데, 그것이 증거 수집하러?(웃음) 변호사들이 몸으로 움직여 증거를 수집하고 하는 것이 쉽지 않은데, 장경욱 변호사님은 열린 사고의 소유자시군요.

양승봉 : 나름대로 확실한 촉이 왔던 것 같아요. 국가보안법 관련해서 9개의 공소사실이었잖아요. 보통 9개면 국가보안법은 역시 하나씩 분리해서 판결한다면서요. 3-4개로 분리해서. 일부무죄, 일부유죄 이런 식으로요. 장경욱 변호사님이 그때 아마 잘만 접근하면은 모두 무죄를 받을 수 있겠다고 생각하셨던 모양이에요. 갑자기 어느 날 중국가자고 말씀하셔서 왜 저러시지(웃음) 솔직히 그런 생각했어요. 그러다 따라가게 됐고, 가서 정말 실속 있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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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미 : 보통의 형사사건 같은 경우엔 생각하기 어려운 활동을 하셔서, 국가보안법이 전부무죄가 나왔잖아요.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쉽지 않은 일이거든요. 1심 판결 선고 나던 날 굉장히 감회가 새로웠을 것 같아요. 그동안 고생한 것도 떠오르고 또 한편으로는 항소심에서 뒤집어지지 않을까라는 걱정도 있지 않았을까 싶은데, 1심 판결 났을 때 소회를 짧게 이야기해 주세요.

천낙붕 : 나는 상당히 불만이 많았어요. 왜냐하면 법원에서의 기회주의적인 판결이라고 생각했거든요. 하나는 무죄를 냈고, 또 하나는 국정원에 면죄부를 줬다, 국정원 안에서의 6개월간의 불법감금이었는데, 그것이 불법이 아니라 임의로 자유로운 진술이었다, 유가려씨에게 다른 사람들이 속은 것이라는 식이었어요. 유가려씨가 알아서 거짓말하고 알아서 갖고 놀았다 이런 식이 되잖아요. 판결내용은 그렇고. 그래서 한편으로는 국정원이 겉으로는 무죄라고 해서 불만이 있지만, 속으로는 자기들은 다 적법하게 했다 그런 면죄부를 줬다 이게 1심에 대한 생각이에요.

양승봉 : 저는 좋아 죽을 것 같았어요. 왜냐하면 1,2개 정도 걱정했었어요. 당일 날 새벽까지도요. 요걸 유죄를 주면 어쩌나 하는 게 하나가 있었거든요. 저희들이 봐서는 굉장히 터무니없어 유죄를 줄 수 없는 이야기지만 판사가 일단 유죄로 결정 해놓고 써버리면 쓸 수는 있는 그런 불안한 것이 있었어요. 간첩죄는 당연히 무죄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하나 유죄 줘버리면 일부유죄가 되어 버리니까. 걱정이 많았지요. 그런데 당연했지만 그거까지 무죄가 나와서 만세 부르는데 천낙붕 변호사님이 비겁한 판결이 나왔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웃음) 그런데 저는 마냥 좋았어요.

김지미 : 판결 선고나던 날 집행유예로 풀려 나온 거죠. 그런데 사건이 항소심으로 오면서 출입경기록 위조를 내면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국면으로 가게 되었어요. 항소심이 시작되고 나서 추가증거로 출입경기록을 낸건가요? 처음에 그 기록을 보고 보자마자 이것은 위조된 것이다라는 생각을 하신건가요?

양승봉 : 그랬어요. 출입경기록에 대해서는 1심 할 때도 문제제기 했었어요. 왜냐하면 이상한 출입경기록을 들이밀면서 자꾸 자백강요를 시켰거든요. 국정원에서.

김지미 : 아. 수사기관에서 그것을 가지고 자백을 했던 것을 1심에 내지 않았던 건가요?

양승봉 : 그걸 가지고 수사를 했으면서도 막상 공소제기 후에 그 자료는 안냈어요. 수사기관이 가지고 있었어요. 그러니까 저희들이 상상하기에 몰래 비공식적으로 기록을 확보했는데, 그 비공식기록이 이상하잖아요. 그것을 유가려씨에게도, 유우성씩에게도 계속 보여주면서 조사를 했거든요. 그게 증거목록에 안 나와 있더라고요. 1심에서 그것을 검사와 국정원 직원에게 계속 제기 했었어요. 당신들 그거 수사할 때 보여주면서 자백 강요받지 않았냐. 그런데 그 사람들은 그런 자료는없다고 하더라고요. 국정원사람도 그런 거 없다고 하고. 검사한테도 당신 알지 않느냐 했더니 모른다고 했어요. 다 알고 있는 사람들이 계속 거짓말 했던 거에요. 그래서 저희들끼리 1심 끝나고 우스겟소리로 예상했던 것이 뭐냐 하면, 두 가지 정도 무리수를 둘 것 같다. 고위간부를 하나 데려와서 내가 키운 간첩이 유우성이다라고 하던지, 아니면 1심에서 꺼내지 않았던 출입경기록을 위조해서 낼 수도 있겠다고 예상을 하긴 했는데, 설마 그러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죠. 그게 최악의 수라고 생각했던 거고, 그러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렇게 해버렸어요.

김지미 : 항소심때 중국에 가신 것은 이 출입경기록 때문인가요?

김용민 : 아니요. 다른 것 때문에 갔고요. 출입경기록이 문제된 뒤로는 못 갔어요. 출입경기록은 사실조회해서 받아봤어요.

김지미 : 검찰이 그 증거를 냈을 때 이렇게까지 악수를 두나라는 생각이 들었을 것 같아요. 기소를 좀 빨리 했다고 이야기 하셨잖아요, 검찰이 그렇게 무리를 하면서까지 이 사건을 만들려고 했고 특히 그 시기에 이런 사건을 만들려고 했던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요?

천낙붕 : 맨 처음 사건을 할 때부터 여러 사람이 물어본 것인데, 당시 상황은 국정원 댓글 사건이 주춤한 상태였어요. 쟁점화가 아직 안 된 상태요. 나중에는 신문에서 그걸 이야길 많이 했는데 당시에 제가 생각했던 것은 새 정권이 탄생하기 직전이어서 국정원에 대한 내부개혁이라고 해서 국정원에 대한 인원감축문제가 나오는데요, 국정원 체제정비를 어떻게 할 것인지, 인원을 감축할 것인지 말 것인지 하는 때였기 때문에 국정원에서는 많이 급했어요. 한 건 터뜨려야 자기의 존재를 과시해서 조직을 늘리는데, 사실상 이것을 발표해서 탈북자에 대한 조사를 조금 더 강화해야 되겠다라고 해서 조직이 보강이 된 거에요. 그러니까 효과는 다 봤죠. 실직적인 이유가 나는 거기에 있다고 봤어요. 그런데 언론 같은 곳에 이야기 할 때는 국정원 댓글 사건이 주요했기 때문에 이것을 속이기 위해서 그걸 터뜨린 것이 아닌가라고 했어요. 내부적으로는 두 가지가 다 포함되어 있겠지요. 내가 봤을 때는 두 번째가 눈에 보였고, 국정원 댓글 사건은 아마 잠재했었지만 그것도 주요한 요인이 됐을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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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미 : 기존에도 이런 사건들이 없었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은데요, 이렇게까지 세밀하게 검찰에 대해 증거들을 조목조목 반박하고 중국까지 다녀오시고 이렇게 활동하지 못했기 때문에 조작사건이란 것을 밝혀내지 못했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이 사건을 계기로 앞으로 국가보안법 사건에 대해서 이 정도의 변론활동을 요구하는 기대치가 높아진 것 아닌가.(웃음) 이런 생각도 들거든요. 앞으로 국가보안법 사건을 맡으실지 모르겠지만 그런 것에 대한 부담감은 없으신가요?

김용민 : 오히려 국정원이나 검찰이 사건을 조작을 한다면 더 꼼꼼하게 진화해서 조작을 하겠지요. 이 사건은 저희가 변론을 열심히 한 것도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였는데, 근본적으로 중요했던 것은 유우성씨가 자백하지 않고 끝까지 그 입장을 견지했던 것이 중요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까 무언가를 찾아낼 것도 생기고요. 유우성씨가 똑똑하니까 이 상황에서 무엇이 필요한가를 캐취해서 우리한테 알려주고 또 그렇게 하다보니 신뢰관계가 잘 쌓였어요. 유우성씨가 자백하지 않고 잘 견뎌서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다른 사건 같은 경우에도 피고인 또는 피의자가 자기가 중심 못 잡고 흔들리는 경우가 많은데, 흔들려버리면 앞으로 이런 결과 나올 수 있을 거라고는 장담 못하죠.

천낙붕 : 민변에서 탈북자들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었죠. 통일위원회에서도 마찬가지고요. 탈북자는 인권문제로 보지 않은 거에요. 탈북자 인권이라고 하면은 북한인권을 이야기하는 보수 쪽의 몫이다 생각을 했던 것이 여태까지였지요. 그랬기 때문에 민변이 관여하지 않은 곳에 국정원은 항상 쉽게 쉽게 조작을 해왔다. 틈새죠.(웃음) 유우성씨 건이 계기가 되었지만 그 전에 해놓은 것이 있거든요. 장경욱 변호사님이 지금 그거 잡으러 갔어요.(웃음)

김지미 : 지금 장경욱 변호사님이 상고심에서 진술번복한 여간첩사건을 하고 있는데, 그 사건 같은 경우도 방금 김용민 변호사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중심 못 잡고 1심,2심까지 갔던 것이 패착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그렇다면 유우성씨 사건처럼 1심이 시작되기 전부터 변론에 결합을 할 수 있으면 훨씬 더 쉽게 밝혀낼 수 있겠네요.

천낙붕 : 예전에는 민변 자체가 국가보안법 사건이 전부였어요. 국가보안법 사건을 주로 하고 집시법 조금하고. 이게 민변의 변론사건의 전부였지요. 국가보안법 폐지는 민변의 당론이었어요. 민변에 들어오는 사람은 똑같이 국가보안법 폐지를 다 안고 들어오는 거거든요. 그런데 현 시점에서는 국가보안법이 어렵다는 거에요. 국가보안법 사건이 예전보다 많이 어려워져서 상당히 많은 노력이 필요해졌어요. 예전엔 정상변론 비슷하게 해왔는데 지금은 실체적으로 하나하나 증거능력 검토, 수사기록 검토해서 전체를 우리가 다 파악을 하고 들어가야 하니까, 상당히 많은 노력을 필요로해서 민변 변호사들도 선뜻 같이하기가 쉽지 않아요. 그래서 밥벌이하기 힘든 변호사들이 봉사활동 차원의 많은 시간 투자하기가 쉽지 않지요. 그게 가장 큰 어려움인 것 같아요. 그런데 막상하고 보면 실제로 변론한 사람들은 만족감을 느껴요. 왜냐하면 국가보안법은 민변이 해야 하는 영역이에요. 누군 또 못하는. 그런데 지금 노동사건도 하고 일반민중사건들도 하지만 변호사님들 개인이 할 수 있는 사건이에요. 공안사건은 민변이 아니면 못하는 사건이에요. 그런데 지금은 너무 어려운 사건이에요. 사건 끝나고 나서 계속 변호인단이 이야기 하는 것이 지난번 정기총회에서 양승봉변호사도 이야기 했지만 공안사건에 대한 기금이 필요하다는 것이에요. 최소한 노력은 하는데, 비용이라도 나와야하지 않겠느냐. 비용까지 우리 주머니에서 나가고 있는 형편인데 그래서 비용만이라도 마련해 줄 수 있는 기금이 꼭 필요하다. 이게 요구할 수 있는 최대안의 사항 같아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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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미 : 조금 개인적인 질문 좀 드릴께요. 양승봉 변호사님의 항소심 최후변론을 보면 제 돈과 시간을 써가며 일을 했는데 왜 이렇게 미안한지 모르겠다, 이런 말씀을 하셨고, 지원이 없어서 자기 돈을 써가면서 일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런 이야길 하셨는데, 이렇게 돈을 벌어오지는 못할망정 계속 쓰고 다니는 것에 대해서 가정에서의 문제는 없으신가요. 가정에서 항의를 받거나, 가정이 위태롭다거나.(웃음)

양승봉 : 돈을 잘 벌다가 이 사건하면서 돈을 못벌면 욕을 얻어먹겠지만 계속 못 벌어 왔기 때문에 그런 거는 전혀 문제없어요.(웃음) 실제로 돈을 써가면서 한 건 맞는데, 큰 돈은 안 들었고요. 그래도 민변에 기금이 조성되어 있어서 그 기금으로 비용을 써라 하면 일하기가 참 편하겠지요. 돈이 아까운 마음보다는 이 일로 훨씬 보람이 컸기 때문에 돈이 아깝다는 생각은 전혀 안했는데, 민변의 지원 과정이 좀 체계화 되어 있으면 그만큼 일하는데 있어서 좋을 것 같아요. 이런 부분이 굉장히 아쉬웠고요. 집에서는 좋아하더라고요. 티비나온다고.(웃음)

김지미 : 무죄 판결나오고 사회관심도가 높아지면서 언론도 많이 타고 유명해졌다고 좋아하는 반사적인 효과는 있군요.

김진형 : 저는 KBS뉴스에 한 번 나왔는데 자막이 천낙붕 변호사로 나오더라고요.(웃음) 친척들이 티비에서 닮은 사람 나왔다고 했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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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민 : 제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면 김지미 변호사님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는데, 국선전담을 남부지부에서 같이 했거든요. 민변 가입도 김지미변호사님 추천으로 했어요. 지금 김지미 변호사님이 말씀하신 것이 바로 본인이야기에요.(웃음) 지금 남편이 국가보안법 사건만 하고 다른 사건 별로 안하는 것 같다, 이 이야길 너무 많이 하셔서, 저는 민변에 가면 국가보안법 사건은 하면 안 되나 보다 했어요.(웃음) 그렇게 생각을 하고 왔는데 유우성씨 사건을 맡게 되었어요. 처음에 유우성씨 사건을 하면서 굉장히 운이 좋았던 것이, 개업한지 얼마 안 된 때였는데,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사건을 많이 밀어주더라고요. 시간은 별로 안 걸리는데 돈은 많이 주는 그런 사건들 있잖아요. 이런 것들을 초기에 조금 밀어줘서 처음엔 조금 버텼어요. 그런데 항소심 가고 나서 부터 밀어주는 것도 갑자기 끊기고, 그래서 항소심때가 조금 힘들기는 했지요. 그런데 결과가 좋고 하니까 집에서 응원을 많이 해줬어요. 처음엔 저도 조금 걱정을 했거든요. 집에서도 싫어하고 하면 어떻게 하나 했는데 오히려 집에서 응원을 더 많이 해주셨어요. 다행이죠. 처가댁이 굉장히 보수적인 집안인데 거기서도 응원을 해주시더라고요. 잘했다고. 그래서 보람이 있었죠.

김지미 : 간첩조작사건이다보니, 김유정 변호사님 같이 처음 변호사를 시작하는 여성변호사로서 이런 쪽으로 낙인이 찍힌다던가 너무 강성이미지로 생각되지는 않을까하는 우려는 없었어요?

김유정 : 요즘 하는 고민이에요.(웃음) 제가 지금 있는 사무실에 공안사건을 많이 하시는 분들이 계시고, 이 사건 하기 전에 국가보안법 사건을 하나 받았는데, 신입 변호사로서 국가보안법 사건을 받고 솔직히 겁이 많이 났어요. 공소장을 읽어보면 이 사람은 진짜 간첩인거에요. 이 사람을 어떻게 변론해야 하나 했는데, 국가보안법이란 법 자체가 굉장히 문제가 있다라고 접근하니까 사건을 보는 시각이 달라지더라고요. 그냥 일반적인 형사사건과 다르게 이 사람은 위헌적인 법률의 자의적 적용에 의한 피해자다라고 접근하다보니 누군가는 변호해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사건마다 결이 다 다르잖아요. 그럴 때마다 제가 생각했던 것은 변호사가 사건을 가리면 안된다라는 거였어요. 사실 이런 변호만 하는 사람으로 낙인찍힐까 고민된다는 얘기를 양승봉 변호사님께 한 적이 있었는데, ‘너 이미 그렇게 된 것 같다’라고 하시더라고요.(웃음) 요즘 드는 고민은 국가보안법이 빨리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거에요. 국가적으로 낭비라는 생각이 들어요. 검찰도 만나보면 하기 싫어한다는 느낌을 주는 사람들이 있어요. 너도 알고 나도 알고 다 아는 거예요. 요즘 사실 힘들었던 것은 이렇게 변호를 해도 결국에는 벽에 대고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거예요. 유우성씨 사건처럼 잘 된 경우도 있지만 어떻게 이렇게 판결을 내리지 하는 의문이 들게 만드는 판결도 있죠. 최근에 유우성씨 사건 등을 보면서 그래도 아직 법과 양심은 살아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유우성 사건이 유죄 나왔다면 좌절했을 것 같아요. 그 때 양승봉 변호사님은 이거 유죄 나오면 변호사 그만둔다고까지 이야기 했어요.(웃음)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김지미 : 김유정 변호사님은 전문분야가 국가보안법인 것으로..(웃음)

 

김지미 : 천낙붕 변호사님은 항소심 최후변론에서 검찰에 대해서 쓴 소리를 하셨잖아요. 검사라면 무엇을 할지 잘 알고 있어야 하는데, 같은 법조인으로서 진정성을 갖고 철저하게 검증하라고 권유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왜 검사만 이것을 모르는지 모르겠다, 이런 식으로 하셨는데, 원래 검찰지원을 하셨잖아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실형선고 받은 전력 때문에 탈락되었는데, 본인이 검찰을 지원한 입장에서 검찰에 대한 애정도 어느 정도는 있었을 거라고 보거든요. 이 사건에서 특히나 검찰의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고 다른 사람보단 더 실망감 있지 않았나요?

천낙붕 : 96년에 연수원 수료했는데, 그 전 2년 동안에 검사 갈 친구, 판사 갈 친구들이 팀을 꾸려 같이 공부했어요. 검사 지원팀. 판사 지원팀. 이렇게 해서 조직적으로 가보자, 죽더라도 같이 죽고 살더라도 같이 살자. 그 때 이야기 됐던 것이 무엇이었냐면은 우스겟소리로, 검찰에서 전두환 영장치자, 그때 판사가 밟아라. 우리끼리 재미있게 이야기하고, 검사로 조직적으로 가자고 해서 나중에 상당히 비판을 많이 받았어요. 그렇게 하는 것이 맞느냐. 그랬는데 그때는 나하고 내 전후기수해서 그렇게 가기로 했었어요. 그렇게 공부해서 검사 갈 친구들은 검사 갈 실력이 다 나왔고, 판사 갈 친구들은 판사 갈 실력이 다 나와서 임용이 되었어요. 떨어지고 나서는 굉장히 편했어요. 아, 잘됐구나! 가시밭길인데(웃음), 잘 떨어졌다 생각을 했지요. 그런데 그때는 막상 들어가려고 악착같이 했어요. 왜냐하면 처음에 검사 면접 보는데, 3명이 나란히 앉아서 1명당 5분씩 보거든요. 사실 질문 하나면 면접이 끝나요. 형식적으로 하는 거지요 이게. 그런데 내 이름이 나오니까 나머지 두 사람은 내보내고 1시간 가까이 계속 질문을 하는 거에요. 국가보안법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 과거에 시위했던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 꼭 구속된 사람들만이 구속자의 심정을 아는 것이냐, 뭐 이런 것부터 해서 이것 저것 질문을 다했어요. 그래서 그것에 대해서 1시간 가까이 소위 말하는 사상검증을 당했죠. 사상검증을 했는데, 그때까지도 당시에 YS정권 초중기니까 들어갈 것이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갑자기 그쪽에서 이상한 기운이, 떨어뜨리려고 하는 이야기가 있더라고요.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떨어뜨리더라고요. 그만두려고 했었지요. 그런데 이왕 한번 찔러봤는데, 소송은 해야 하지 않겠냐고 해서 그래서 소송까지 했죠. 판례도 많이 나올꺼에요. 그 때 소송대리인이 지금 민변 회장이신 한택근 변호사님이에요. 검찰에 남다른 애정이 있는 것은 아니고 오랫동안 검찰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은 있어요. DJ정권이나 노무현 정권때도 그나마 있는 사람이 있겠구나. 지금도 의식적으로 간 친구들도 그나마 있을 수도 있어요. 어차피 검찰가면 다 똑같다고 하지만, 그래도 남아있는 친구들을 나중에 쓰려고 하면 그 친구들이 항상 있는 거니까요. 그 친구들이 스스로 변하지 않고 알맞게 있으면 한 역할이 주어질 것이다 하는 이야기고. 지금도 어디를 가나 최후변론 할 때에는 검사에 대한 이야기를 항상 해요. 검찰이 뭘 해야 되는지에 대해서요. 공안사건에서는 특히 사법경찰관 지휘를 해야 할 능력이 안 되더라고요. 사법경찰관이 곧 국정원이니까 국정원 수사관을 지휘하지도 못하고 그들이 가져온 증거에 대해서도 검증도 못하고 그것을 판단할 능력도 안 되더라고요. 이게 대한민국 공안검사의 현주소에요. 그게 검사냐, 하는 것이 항상 하는 말이에요. 내란사건에서도 마찬가지로 똑같은 말을 했듯이, 공안사건에서는 그야말로 검찰이 국정원의 지게꾼인데, 그렇게 하지 말라하지요. 하나는 국정원에 대한 말이지만은 또 하나는 검사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사실은 국정원과의 관계를 이야기 한 거에요.

김지미 : 검찰 입장에서는 인재를 놓쳤네요.(웃음) 천낙붕 변호사님, 이거 뭐죠? 저는 이거 처음 봤는데, 소설 홍두깨? 소설 홍두깨가 ‘천낙붕 변호사님으로 부터 받은 재판 소재와 법률적 조언을 가지고 집필한 소설’이라고 나와 있어요.

천낙붕 : 예. 누가 쓴 게 있어요. 옛날에 경찰관이 뇌물 받은 사건이 있었어요. 그 사건에 대해서 변론했는데, 그 변론은 본 사람이 있어서 기록주고 했더니, 그것을 소설로 썼어요.

김지미 : 천낙붕 변호사님이 담당하셨던 사건이 소설식으로 해서 나온 것이 홍두깨라는 소설이군요. [천변호사는 평소 법정에 설 때마다 일상과는 다르게 벌어지는 법정의 드마틱한 이야기들을 소설로 하여 책으로 출간하면 흥미롭게 시민을 계몽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여왔다.] 이게 그 기사거든요. 평소 그런 생각을 해 오셨나 봐요.(웃음)

천낙붕 : 소설로 재미있게 쓰려고 하다 보니까.(웃음)

김지미 : 이 사건이 그렇게 드라마틱한 요소가 있었나 봐요.

천낙붕 : 일반사건인데 흥미가 있는 사건이긴 했어요. 경찰서 과장이 오락실이나 이런데서 상납받아 기소된 사건이에요.

지미 : 이것도 약간 조작된 것인가요?

천낙붕 : 밑에 있는 수사관이 상관을 물고 들어 간거에요. 물고 들어가서, 자기가 받아서 일부를 줬다. 그런데 무죄를 받았어요. 자기가 받기는 받았는데 과장한테 한 달에 한 번씩 아침에 가서 돈 50만원을 줬다, 그 이야기가 다에요.

 

김지미 : 김용민 변호사님하고 양승봉 변호사님은 각각 35기, 37기인데, 변호사로서 처음 시작하면서 민변에 가입하신 게 아니라 변호사를 하시다가 뒤늦게 가입을 하셨잖아요. 뒤늦게 가입한 이유, 내지는 뒤늦게라도 가입한 이유?

양승봉 : 저는 2012년 1월에 가입했어요. 아무래도 시각이 야성이 좀 강해요. 학교도 나이에 맞게 제대로 갔으면 학생운동이나 사회참여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했을 텐데 대학도 제때 못가고 사법시험도 제때 합격 못하고, 계획이 계속 딜레이가 되더라고요. 변호사가 되면 당연히 민변 가입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마침 개업하고 나서 가입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개인적으로 계속 미끄러지고 미끄러지면서 살다보니까 민변에 선뜻 발을 못 담그겠더라고요. 민변이 약간 나보다는 훨씬 고차원적인 사람들이 있는 곳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조금 있었어요. 당장 발을 못 담고 나중에 실력이라던지 무엇이든이 좀 더 일구고 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돈도 안 벌리고 실력도 안 쌓이고 그래서 일단 발 담그고 보자, 그런 심정으로 가입하게 되었어요. 소극적으로. 가입했을 때 통일위원회가 활성화되어있는 것 같지는 않더라고요. 왜냐하면 젊은 변호사들이 별로 없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시는 일들은 굉장히 많더라고요. 국가보안법 사건 같은 것도 많이 하고 계시고. 그래서 나도 같이 일을 하고 싶은데 주제넘어 보이기도하고 겁나기도 하고 그랬었어요. 지금도 한 건 밖에 안했지만은 장경욱 변호사님 덕분에 민변의 이름을 걸고 진하게 한 번 했던 것 같아요.

김지미 : 몸을 아주 푹 담그셨네요.(웃음)

양승봉 : 후유증이 큽니다. 지금.(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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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민 : 저는 학교 다닐 때는 학생운동 같은 것은 안했었고 오히려 고시공부하면서 시민운동쪽에 관심을 가졌어요. 노사모 활동을 잠깐 했고, 2000년대에 낙선운동 했던 총선시민연대에 활동을 했어요. 그렇게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었어요. 나중에 변호사가 되면은 더 관심을 갖겠다라는 생각을 했는데, 변호사되고 나서 바로 증권회사에 사내변호사로 가고, 그리고 일반로펌에 고용변호사로 있다 보니까 내가 적극적으로 뭘 하겠다라는 생각을 잘 못하겠더라고요. 그러다가 국선전담하면서 김지미 변호사님께 민변 이야기에 물어보고 들어보면서, 생각보다 월회비가 비싸구나. 그래서 조금 망설이기 시작했어요.(웃음) 국선전담은 월급이 얼마 안 되는데, 월회비가 쎄구나! 그래서 망설이다가 개업하면서 나도 이제 본격적으로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자 했어요. 그래서 개업하면서 민변도 가입했고, 천주교인권위원회도 같이 가입해서 같이 활동하고 있어요. 저는 민변 가입하면서 민변이 생각보다 폐쇄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왜냐하면 내부회원의 추천이 있어야 필요하다고 하더라고요. 여기가 생각보다 폐쇄적이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김유정 : 그랬구나. 저는 경험이 많은 선배님들인 줄 알았어요. 얼마 차이 안 나는데요?(웃음)

 

김용민 : 국가보안법 사건은 김유정 변호사님이 더 많이 하셨잖아요.(웃음)

천낙붕 : 지금 멋모르는 사람들이 다 온 거야.(웃음)

김용민 : 멋모르는 사람들이 와가지고 참.(웃음)

 

김지미 : 양승봉 변호사님, 현재 제국의 위안부 사건 맡고 계신 거죠? 이 사건은 어떻게 맡게 되신 거에요?

양승봉 : 이런 말씀 드리기가 뭐하지만 지금 바지사장이거든요.(웃음) 박선아 교수가 민변 회원이기도 한데 학교 후배거든요. 민변 총회가서 오랜만에 봤는데, 그 다음에 연락이 왔더라고요. 바지사장해달라고. 지금은 다른 변호사님들도 몇 분 참여하고 계시고, 한양대학교에서 준비를 한 사건 같더라고요. 한양대 리걸클리닉에서 직접 변론을 진행할 수 없으니까 변호사가 필요했고,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할 시기가 된 것 같아요. 몇 분 더, 이석태 변호사님, 정연순 변호사님이라던지 이상희 변호사님, 박갑주 변호사님, 김수정 변호사님등이 관심을 가지고 다 참석하실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이제 막 시작하게 되었고요, 바지사장으로 처음에 취임했어요.(웃음)

김지미 : 이 사건 하고 나시면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도 깊이 몸담게 되시겠네요.

김지미 : 사건으로 다시 돌아오면, 국가보안법 사건에 대해서는 무죄가 났지만 나머지는 유죄판단이 있었고, 또 나머지 추가기소가 된 부분이 있어 사건이 현재도 진행 중이잖아요. 국가보안법 말고 북한이탈주민보호법 유죄 판결 난 부분에 대해서도 원래는 무죄주장을 하셨지요? 그게 받아들여지지 않은 거고. 지금도 그 부분에 대해서 무죄라는 입장이신건가요?

김용민 : 꼭 그렇지만은 않고요. 우리끼리 하는 이야기지만 북한이탈주민보호법은 법률상으로는 유죄가 나올 확률이 높겠다 싶었어요. 그리고 확정된 대법원 판례가 있어서 판례가 바뀌지 않는 한 유죄가 나올 수밖에 없는 사건이었거든요. 우리는 그 판례가 잘 못 되었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던 거였고요. 북한이탈주민보호법 위반이 유죄가 인정 된 거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거 이외에 여권법 이런 것들은 문제가 있거든요. 왜냐하면 탈북자로 인정받아서 주민등록번호까지 부여받아 사는 사람인데, 자기 이름으로 여권 발급 받아서 해외 나갔다 오는 건 굉장히 당연한 일이잖아요. 그런데 그것을 처벌해야 하느냐, 처벌할 이유가 없지 않느냐, 이 사람이 한국에 와서 한 모든 활동은 위법이고 다 처벌되어야 하는 것이냐, 근본적인 문제점이 있어요. 그래서 지금 추가기소된 것도 결국에는 그 같은 맥락이었거든요. 그래서 ‘네가 탈북자인 것을 속이고 서울시공무원이 됐다’라는 점도 같은 맥락에서 지금 기소가 된 거에요. 그 부분은 지금 국민참여재판을 전제로 재판을 진행하고 있어요. 국민참여재판 배제결정을 안하고 있는 상태라서 진행을 할 것 같아요.

김지미 : 특별히 이 사건을 참여재판으로 해야겠다는 이유가 있나요?

김용민 : 우리가 크게 두 가지를 다투고 있거든요. 우리의 기본적인 관점이 이것은 보복기소고, 자기들의 증거조작이 밝혀지고 나니까 신상털기 해서 보복기소한 것이라는 괴롭히기 위한 것으로 보고 있거든요. 이 관점으로 보면 법률전문가보다는 일반인 시각에서 보는 것이 낫겠다라는 생각이 들었고요. 외국환거래법 위반 부분은 공소권남용을 주장하고 있어요. 공소권남용주장이 법리적 판단이기는 하지만 법리 이전에 상식의 문제이니까, 그래서 국민들의 판단을 받아 보자고 한 거죠. 서울시공무원의 위계에의한공무집행방해 이 부분은 고의가 없다라든가 몇 가지 여러 가지 법리들이 있기는 하지만, 이런 것도 이 사람이 한국에 와서 한 모든 행동이 잘못된 것이냐 판단을 받아보자는 것, 이런 전제에서 시작이 됐고, 만약에 유죄가 인정되더라도 여러 가지 고려할 수 있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양형에서도 한 번 판단 받아보자고 생각을 한 거에요.

김지미 : 어쩌면 유우성씨가 간첩조작의 피해자라는 인식이 어느 정도는 있기 때문에, 그런면에서 참여재판으로 접근해도 유리할 수 있겠다 이런 판단도 있었던 거죠?

김용민 : 양형에서는 그런 부분을 고려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판단했죠.

 

김지미 : 이 사건으로 27차 총회에서 특별상을 받으셨잖아요. 최근 상근간사 채용할 때 면접시에 민변에 대해 평소에 얼마나 알고 있었느냐 질문을 하면 공통적으로 이 사건을 이야기 하더라고요. 그래서 최근에 간첩조작사건 때문에 새삼스럽게 알게 되었다, 혹은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 사건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고 하기도 하고, 김용민 변호사님 이름도 간간히 나와요. 그래서 아! 유명인이구나.(웃음) 어떻게 보면 최근에 민변이라는 이름이 가장 많이 회자되게 했던 사건이고, 거기의 주역들이시잖아요. 민변 입장에서 보면 상을 드리는 것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활약을 많이 하신 것 같고, 지금 이 사건 말고도 다양하게 관여하고 계신 사건도 많으신데, 앞으로도 저희가 뉴스레터에 계속 실어드릴 수 있게끔 왕성한 활동 보여주시기를 마지막으로 부탁드리면서 인터뷰를 마칠까 합니다. 감사합니다.

모    두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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