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왕산 답사기
지난 8월 14일 민생경제위원회 조세재정팀에서 최재홍 변호사님, 이동우 변호사님, 그리고 녹색연합 임태영 활동가님과 함께 가리왕산을 다녀왔습니다. 아시다시피 가리왕산 중봉은 2018년 평창올림픽에 사용할 알파인 경기장을 설치하기로 예정되어 있는 곳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우리나라의 마지막 원시림이라고 하는 500년이 넘은 숲이 있는 곳입니다. 답사의 목적은, 원시림을 비롯한 자연환경을 파괴하고 예산을 낭비하는 활강경기장 설치를 막기 위하여 주민감사청구 및 다른 대책을 마련하기 위하여 사전에 현장을 둘러보는 것이었습니다.
저희는 먼저 원주지방산림청에 신고를 하고 열쇠를 받아 자동차로 임도(林道)를 통하여 산 중턱까지 올라간 후 실제 활강장이 설치되기로 한 곳을 도보로 둘러보았습니다. 활동가님 말씀으로는 그곳은 원래 우리나라 최고의 원시림이 보존된 곳으로 유전자보호구역이어서 출입이 통제되어 있었지만 경기장 설치를 위하여 보호구역이 해제되었다고 합니다. 그 덕분에 저희의 몸과 마음이 호사를 누렸습니다.
이곳의 흙이 얼마나 유기물이 많고 풍족한지 한 발짝 한 발짝 걸을 때마다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푹신함이라니, 한 삽 떠오고 싶은 흙이었습니다. 비가 오니 여기저기 솟아오른 수많은 버섯들이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휴대전화 사진기로 한 장 찍어보았으나 도저히 그 색감을 담을 수 없다는 사실에 좌절하고 더 이상의 촬영은 포기하였습니다. 살짝 그친 비 사이로 처음 듣는 아름다운 새 소리가 들려오고, 어디를 둘러봐도 울창한 나무들이 가득한 곳. 정말 오랜만의 산행이었는데 굉장히 만족스러웠습니다.
올라가는 길마다 줄이 쳐져 있었고 군데군데 색깔과 번호가 적힌 말뚝이 박혀 있었습니다. 바로 활강장 설치를 위하여 베어질 나무들을 표시한 것이겠지요. 일부 자그마한 나무나 야생화들에는 <이식대상수목>이라는 팻말이 붙어있었습니다. 이 수천수만 그루의 나무들 중 채 100그루가 안 되는 나무들만이 활강장 바로 옆으로 이식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이식할 자리들은 이미 사전공사로 벌목이 자행되어 있었습니다. 8월 22일에도 사후 복원계획에 대한 강원도와 원주지방환경청의 사전이행조치 협의내용을 이행한 바 없이 불법 벌목공사가 자행되었다가 녹색연합 활동가들의 제지를 받고 긴급 중단되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가리왕산 활강장 설치는 예산낭비라는 점에서도, 500년이 넘은 원시림을 파괴한다는 점에서도 반드시 재고해야 합니다.
새로운 경기장을 설치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예산이 소요됩니다. 그러나 단 2주간의 올림픽, 그 중에서도 약 3일 정도의 경기를 위하여 새로운 경기장을 만드는 것이 과연 필요할까요. 더욱이 이 경기장은 일반 스키애호가들이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닌, 오로지 활강선수들만이 사용할 수 있는 경기장에 불과합니다. 결국 올림픽이 끝나면 흉물로 전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에 대해 강원도는 이곳에 경기장을 만든 후 올림픽이 끝나면 경기장을 철거하고 원시림을 ‘복구’하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직 그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세워진 바 없다고 합니다. 원시림은 인위적으로 ‘복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닐뿐더러 과연 그 구체적인 계획이나 가능성에 대한 과학적 검토라도 한 바 있는 것인지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잠시 사용하고 철거할 것이라면 꼭 만들어야 하는 것인가 역시 의문입니다.
지난 8월 5일 최문순 도지사는 환경단체들과의 면담에서 “활강 경기장을 가리왕산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보다 도지사를 그만두는 것이 낫겠다”, “정선군민의 반발이 심하다”, “이미 많이 진행되어서 지금 결정을 번복하기에는 늦었다”는 말만 계속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과연 이곳에 활강경기장이 생겨난다고 하여 정선군의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목표가 달성될 수 있을까요. 수많은 올림픽개최 국가 및 도시들이 올림픽의 경제효과를 과대평가하여 예산을 쏟아 부은 후 오히려 적자에 허덕이며 시설물들의 사후관리조차 되지 않는 상황인데도 말입니다.
결국 활강장 설치에 관한 주요 쟁점은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할 수 있는가>일 것입니다. 활동가님께 전해들은 강원도의 입장은 ‘국제스키연맹의 기준에 맞추어야 하므로 현재로서는 대체할 시설이 없고 부득이 그 조건이 갖추어진 가리왕산 중봉에 활강경기장을 설치하여야 한다’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활강경기장 규격에 관하여는 예외규정이 있다고 합니다. 이 규정에 대하여 자세히 검토를 하고 주민감사청구 내지 다른 행정소송으로 다투는 것, 그리고 지역주민 및 다른 단체들과의 협력을 통하여 가리왕산 활강장 설치를 막는 것이 저희의 목표이자 바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