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변의 활동]진솔한 이야기와 함께 한 평화와 치유의 시간_조아라 변호사

2014-05-22 613

진솔한 이야기와 함께 한 평화와 치유의 시간

-여성인권위원회 엠티 후기 –

 

글_조아라 변호사

 

여성위 엠티 후기를 요청받고 컴퓨터 앞에 앉았는데 막막함이 밀려온다. 언젠가부터 이렇게 주어진 형식도 없고 솔직하게 감상을 써 내려가는 글을 쓰는 일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 되어 버렸다. 그렇다고 “여성인권위원회 엠티를 다녀왔다. 음식도 맛있고 재미있었다. 끝.” 이런 그림일기 수준의 글을 쓸 수도 없는 노릇. 그냥 기억을 정리하는 기분으로 차분하게 시간 순으로 써내려가려고 한다.

 

4월 18일 금요일 저녁 여성인권위원회 엠티가 있었다. 무려 ‘신입회원 환영’엠티. 신입회원들 많이 데려오라는 선배 변호사님들의 당부도 있었고 나 역시 같이 가고 싶은 사람들도 있어 이래저래 연락을 해보았지만, 주말까지 계속되는 야근과 부활절 예배 등의 이유로 모두 거절당하고 후발대로 간신히 한 명을 섭외하는 데 그쳤다. 결국 차에 신입회원을 가득 채워가려던 목표는 달성하지 못하고, 대신 백포도주 한 병과 파인애플 한 상자를 싣고 안성으로 향했다.

 

불과 며칠 전 세월호 사고가 발생한 탓에 금요일 늦은 오후임에도 도로는 한산했고 한 시간 정도 만에 안성에 도착했다. 여기저기 복사꽃이 만발한 한적한 시골길을 따라 한참을 더 가다 보니 정말 아늑한 곳에 ‘평화와 치유의 집’이 있었다. 그곳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의 쉼터로, 현대중공업에서 기부하였다고 들었다. 이왕이면 숙박비를 단체에 기부하자는 취지로 서울에서 조금 멀지만 이곳으로 정했다고 하는데, 그냥 장소가 좋아서 골랐다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여기서 잠시 이곳 자랑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도착하자마자 ‘와~ 아름답다’고 한 마디씩 하지 않을 수 없는 그곳은, 공간 곳곳에 배려의 마음과 손길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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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건물은 할머니들이 내려와 숙소로 이용하실 수 있도록 전체가 하나의 집이면서 동시에 별도의 출입문을 갖춘 독채로 이용될 수 있게 구성되어 있었다. 방마다 조그만 화장실이나 주방이 갖춰져 있었고, 수십 명은 족히 건사할만한 이부자리와 그릇도 구비되어 있었다. 2층으로 올라가면 아늑한 서재와 밖을 내다볼 수 있는 테라스, 그리고 큼지막한 다락방이 있었다(그곳은 조숙현 변호사님의 따님의 전용공간이 되었다). 정원에는 계곡에서 끌어온 물로 만들어진 작지만 깨끗한 연못과 바로 옆에 마련된 정자가 있었다. 봄꽃이 피어 아름다웠고 잔디와 나무들 역시 깔끔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그 이름에 걸맞게 관리되고 있는 그곳에서 모두들 마음의 평화를 얻고 충전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것 같다.

 

숙소 도착과 동시에 여성위 남자1호이신 셰프님(으로 통하는 이한본 변호사님)은 이미 요리를 준비하고 계셨다. 속속 선발대들이 도착하고 상이 차려지기 시작했다. 첫 번째 요리는 삼겹살구이. 양파와 소시지는 물론 채식인들을 위해 두부와 연어통조림도 구웠다. 조숙현 변호사님이 가져오신 김치도 맛있었고, 김수정 변호사님이 준비하신 포도주도 훌륭했다. 정말 고기를 배터지게 먹어서 ‘아아, 더는 못 먹겠어!’ 이런 순간, 오늘의 하이라이트 요리인 셰프님의 야끼소바가 준비되었다. 분명 배가 불렀는데 어느 샌가 또 먹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잠시 놀라기는 했으나 야끼소바는 진짜 맛있었다.

 

한참을 먹고 나서 모두 각자의 잔을 들고 2차를 하러 숙소 마당에 위치한 정자로 모였다. 옹기종기 모여앉아 이야기꽃을 피우니, 그저 좋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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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후발대들이 도착하기 시작해서 우리는 후발대의 식사를 보장하기 위해 다시 안으로 들어가 두 번째 잔치를 벌였다. 어느 순간 후발대와 함께 먹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또 잠시 놀랐지만, 맛있는 건 맛있는 것이다.

 

드디어 그렇게 후발대의 식사가 끝나고 마지막 한 명까지 도착하고 나서 거의 밤 12시가 되어서야 엠티의 핵심 순서인, 이름 하여 ‘토크박스’가 시작되었다. 삐뚤빼뚤한 글씨로 식상한 주제들이 적힌, 거기다 정확한 정육면체도 아닌 토크박스를 던져서 나온 주제로 이야기를 하는 시간이었다. 김수정 위원장님이 첫 번째로 토크박스를 던졌는데 거기서 나온 주제는 다름 아닌 ‘박근혜와 나.’ 난감하지만 그나마도 참신한 주제는 그것뿐이었고, ‘민변과 나’, ‘여성위와 나’, ‘나에 대해 아무거나’ 등이 써져 있는 토크박스를 주거니 받거니 던져가며, 다들 서로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또 들어주었다. 재미있는 점은 거의 대부분의 토크는 ‘믿을 수 없지만 ○년차 변호사’로 시작했다는 점이다. (저는 믿을 수 없으시겠지만 신입입니다.)

 

원래는 불후의 명곡 컨셉으로 재미와 감동을 채점기준으로 신입우대 가산점을 더하여 1위가 계속 바뀌는 진행을 하려 했으나, 서로 이야기에 집중하다보니 집계는 중도에 포기하고 말았다. 결국 준비위원장 이 셰프 님의 결정으로 가장 감동적인 이야기를 들려주신 최고참 박순덕 변호사님이 영예의 1위를 차지하시면서 연극 ‘상처꽃’ 초대권을 상품으로 받으셨다.

 

그렇게 토크박스를 마치고 우리는 아예 이불까지 싸들고 정자에 나가 깔고 덮고 앉아 또 이야기를 나눴다. 연못으로 떨어지는 계곡 물소리와 바람소리를 들으며 그렇게 새벽까지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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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시간 잔 것 같지도 않은데 어디선가 들려오는 이야기 소리에 잠을 깨니 이미 변호사님들이 일어나서 라면까지 끓여 드시고 담소를 나누고 계신 것이 아닌가. 역시 법조인은 체력이 좋아야 하는 건가라는 생각에 주섬주섬 일어나 라면을 먹고 짐정리를 했다. 밖으로 나오니 밤과는 또 다른 상쾌함이 정원에 내려앉아 있었다. 우리는 다 같이 숙소 바로 위에 있는 절에 가서 서로의 방식으로 세월호 실종자들의 구조와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숙소 앞에 만발한 복사꽃 아래에서 단체사진을 찍으며 내년 엠티를 기약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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