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새내기 변호사들을 위한 민변 설명회 후기
글_ 송아람 변호사
1. 인턴에서 민변신입회원까지
정확히 3년 하고도 반년 전 쯤 나는 학부 마지막 학기의 대학생이자 로스쿨 지망생, 그리고 민변 노동위원회의 인턴이었다. 노동자와 인권을 생각하는 변호사가 되고싶다고 생각했지만 단지 생각 뿐, 노동위 수요모임에서 바로 내 옆에 앉아 맛있게 중국요리를 드시는 변호사님들과 나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무엇인가가 존재하는 듯 했다. ‘민변에서 활동하는 변호사가 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라는 질문을 자주 스스로에게, 가끔씩 친한 변호사님들에게 던지곤 했지만 그때마다 나는 술이 달다고 말씀하시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는 꼬마아이의 심정을 느끼곤 했다. 어쨌든 그때 나는 변호사도 민변회원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3년이 지나고 우여곡절 끝에 나는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로스쿨에 있을 때는 그렇게도 놀러가고 싶던 민변 사무실이었는데 막상 자격증을 따고나니 사무실을 방문하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그때 마침 공지사항 하나가 내 시선을 멈추게 했다. 새내기 변호사들을 위한 민변 설명회, 그야말로 놀러가기 좋은 멍석을 사무처에서 깔아준 것이 아닌가. 뜻이 통하는 동료들과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얼굴들을 볼 수 있다는 기대로 신정빌딩 5층을 향하는 내 발걸음은 가벼웠다.
2. 민변, 그린라이트? – 새내기 변호사를 위한 민변 설명회
대회의실에서
3년만에 다시 찾은 민변 사무처는 예전과 달라짐이 없었다. 대회의실을 가득 메운 삼십 여명의 변호사들이 두 눈에 민변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을 담고 연사들의 발언을 경청하고 있었다. 민변 사무차장이신 정병욱 변호사님의 사회로 시작한 설명회는 먼저 김도형 사무총장님께서 환영인사를 해주신데 이어 박주민 사무차장님의 민변의 공익활동에 대한 간단하지만 무서운(?) 소개로 이어졌다. 박주민 사무차장님의 설명을 들으면서 민변이 국정원 간첩조작 사건에 대한 변호부터 최근의 세월호 참사에 관한 법률적 지원까지, 진보적 법률전문가단체라는 그 정체성에 걸맞는 역할을 신속·정확하게 해내고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두 분 변호사님의 민변에 대한 개략적인 안내 이후, 새내기 변호사들의 눈높이에 맞춘 본격적인 설명회가 시작되었다. 먼저 2년차 변호사인 류하경·신윤경 변호사님이 민변 회원으로 보낸 지난 1년 동안의 경험담을 말씀해주셨다. 일반적으로 새내기 변호사들이 개업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것과는 다르게 두 분은 독립적으로 자신의 생계와 공익활동을 모두 만족시키고 있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두 분 모두 민변의 새내기 회원으로서 2013년을 알차게 보내셨음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특히 법무법인 해우에서 의무연수기간을 보낸 류하경 변호사님은 국정원 간첩조작사건 등 굵직한 시국사건에 많은 참여를 했다고 밝혀 새내기 변호사들의 부러움을 자아내기도 했다.
이어서 김경민, 김수영, 조영관, 탁선호 변호사님의 ‘민변, 그린라이트!’라는 제목의 대담이 진행되었다. 이번 설명회의 부제와 같은 제목이 붙은 이번 코너는 그 이름만 봐도 사무처의 상근자분들과 대담을 준비하신 변호사님들이 공들여 준비한 대목임을 알 수 있었다. 새내기 변호사들이 민변과 관련하여 고민할 법한 대목들을 몇 가지 주제로 압축하여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자리로 민변의 상근변호사이신 김종보 변호사님께서 멋진 목소리 연기로 대담의 흥을 돋구어 주셨다. 대담을 진행하신 변호사님들이 민변에 가입하려는 새내기 변호사들이 가질 법한 고민점을 잘 짚어 주셨고, 특히 새내기 변호사들이 민변에 가입하고 나서 느낄 수 있는 초기의 어색함과 약간의 소외감 등을 빨리 극복하고 민변에 소속감을 가질 수 있도록 선배 변호사님들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발언에는 참석한 새내기 변호사 모두가 동의의 눈길을 보내왔다.
뒷풀이에서
민변이 주최하는 행사에 뒷풀이가 빠질 리 없다. 예정된 설명회 종료시각이 다가오자 참석자들의 눈에는 뒷풀이에 대한 기대감이 가득했다. 사무처 근처의 한 술집에서 열린 뒷풀이에는 스무 명 가까운 새내기 변호사들이 뒷풀이에 참석하여 동료로서의 우정을 다지는 시간을 가졌다. 한쪽 구석에서는 진지한 대화가 오가고 다른 쪽 구석에서는 이름외우기 게임을 하며 서로를 알아갔다. 즐거운 뒷풀이 중에도 정병욱 사무차장님은 새내기 변호사들에게 민변에 원하는 교육 등이 있는지를 일일이 물어보고 기록하시는 열정적인 모습을 보여주셨다. 이동화 간사님은 아직 민변에 회원으로 가입하지 않은 새내기 변호사들에게 음주와 민변 회원가입을 열정적으로 권하시는 모범적인 회원팀의 자세를 보여주셨다.
이미 자정을 넘어버린 시각이었지만 뒷풀이는 근처 감자탕집에서 한번 더 이루어졌다. 감자탕집에서의 뒷풀이는 뒤늦게 합류하신 김도형 사무총장님의 적극적인 재정후원으로 그 열기를 더했다. 열명이 조금 넘는 인원이 모여 봄비와 민변, 대한민국 사회를 안주 삼아 보다 심도있는 대화를 나누었다. 술을 마시지 않아도 분위기에 취해 즐거운 밤이었다. 한시 반이 넘어서야 남아있던 사람들은 못다 나눈 이야기에 대한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다음 만남을 기약하였다.
3. 그린라이트는 켜졌다.
새내기 변호사들을 향한 그린라이트
오늘의 설명회는 민변이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적극적인 신입 회원 모집을 통한 지속적인 변화, 그로 인한 발전적인 혁신을 꿈꾸고 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기존의 설명회 방식을 버리고 철저하게 새내기 변호사들의 눈높이에 맞춘 이번 설명회는 실제로 대부분의 연사도 로스쿨 2기, 연수원 42기 등 최근에 법조계에 입문한 젊은 변호사들로 구성되었으며 변호사와 민변 회원이라는 두 가지 정체성에 대한 설레임과 두려움이 교차할 새내기 변호사들의 궁금증과 걱정을 해소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설명회에 참석했던 새내기 변호사들 중 민변에 가입하지 않았던 많은 변호사들이 설명회가 끝난 후 민변에 가입했다는 사실만 보아도 이번 설명회는 성공적인 설명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민변이 민변을 향한 새내기 변호사들의 니즈를 만족시키고 왕성한 활동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주는 것과 새내기 변호사들이 스스로 민변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각자의 노력으로 채워나가야 할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민주주의의 보편적 가치를 향한 그린라이트
설명회 도중 노신사 한 분께서 대회의실에 들어오셨다. 알고 봤더니 그 분은 사법연수원 43기를 수료하신 오세범 변호사님. 엄혹하던 시절 국가권력에 의하여 부당한 피해를 입으셨던 분이 민변의 도움을 받고 수십 년이 지난 지금 민변의 신입회원이자 새내기 변호사로서 설명회에 오신 것이다. 그 분의 자기소개를 들으면서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변호사들에게 보호를 받았던 한 사람이 수십 년이 지난 후 그 분이 받았던 것처럼 다른 사람들을 보호해 주는 변호사가 되는 것 – 권위주의에 저항하고 인권을 개선하는 민주주의의 보편적 가치를 이룩하는 것을 지고의 목표로 삼아온 민변과 같은 단체가 아니면 보기 어려운 장면이었다. 그 분의 자기소개를 들으면서 나는 변호사가 된다는 것은 어떤 것인지, 민변의 변호사가 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인지 어렴풋하게나마 알게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선선하던 서울의 한낮도 어느덧 뜨거워지고 2014년의 봄은 그 끝자락을 이미 여름에게 양보한 듯 하다. 하지만 봄과 여름의 생기를 누려야 할 사람들은 지금 차디찬 서해에 잠겨있다. 애도의 노란 리본을 달았다는 이유만으로 불심검문을 당해야 하는 2014년 5월, 민변의 변호사가 해야 할 일들은 결코 적지 않아 보인다. 그린라이트가 켜져도 그 길을 걷지 않는다면 그린라이트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민변과 함께, 뜻을 같이 하는 모든 이들과 함께 민주주의의 보편적 가치를 옹호하는 소중한 한 걸음을 같이 걷는 새내기 변호사들이 많아지기를 같은 새내기 변호사로서 소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