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이른바“왕재산”사건 변호인단
조선일보 3. 20.자 양상훈 칼럼에 답한다!
1. 프롤로그
답이 늦었다. 조선일보에 이런 칼럼이 실렸다는 것을 늦게 알았다. 문제의 칼럼을 요약하면 두 가지다. 첫째, 사실에 대한 교묘한 짜깁기를 통하여 민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저하시키는 내용이다. 둘째, 민변의 선배세대와 후배세대를 이간질시켜 민변의 내부를 교란시키고자 하고 있다. 이를 통해 이번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사건을 비호하고 물타기 하고자 하는 의도가 노골적으로 배어 있었다.
정확한 사실관계에 기한 비판과 조언은 참으로 고맙고 감사한 일이다. 그러나 사실관계를 교묘히 왜곡하여 마치 민변이 법률가의 마땅한 도리를 져버리고 국가안보에 저해되는 활동을 하는 변호사들의 집단인 것처럼, 더구나 과거의 자랑스런 선배들의 법치주의적 전통마저 배신하는 집단으로 묘사하고 있으니 영문을 모르는 독자들이 혼란스러우시겠다. 그 분들을 위하여 답을 하겠다. 답변의 골자는 두 가지다.
2. 첫째, 사실에 대한 교묘한 짜깁기 부분
문제의 양상훈 칼럼은 “간첩 혐의자도 변호사의 조력을 받아 법적 방어 수단을 모두 사용할 권리를 갖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변호사가 피고인을 법률적으로 돕는 것과 자유민주체제의 형사소송 절차를 이용해 운동권 용어로 ‘합법 투쟁’을 벌이는 것은 구별돼야만 한다. 불행히도 지금의 민변은 후자(後者) 쪽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주로 이른바 “왕재산” 사건을 예로 들어 민변에 대한 이념공세를 가하고 있다. “왕재산” 사건에서 양상훈은 ① 법정 증인 조모 교수에 대한 묵비권 행사를 권유한 부분, ② 피고인들에 관하여 변호인이 준항고를 낸 부분, ③ 담당 변호인 중 한명이 방북 신청을 하여 통일부가 거부하여 재판을 한 일, ④ 담당 변호인 중 한 명이 독일에서 열린 학술세미나에 참여한 일 등을 문제 삼았다.
그런데 위 칼럼이 문제 삼은 부분은 대체로 사실관계부터 틀렸다.
① 조선일보는 당시 조모 교수가 법정증언한 때부터 지금까지 시종일관 증거인멸 차원에서 묵비권 행사를 권유한 것처럼 오도하고 있다. 그러나 당시 이른바 “왕재산” 사건의 변호인은 문제의 조모 교수가 증인으로 나온다는 전제하에 묵비권 행사를 권유한 것이 아니다.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의 수괴인 김일성 주석을 만나 접견교시를 받았다는 것은 오랜 기간 감옥을 살아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당시 변호인이 조모 교수를 만난 시점은 조모 교수가 법정에 증인으로 나오는 시점이 아니라 수사초기 시점이었다. 변호인은 조모 교수가 참고인이 아닌 피의자로서 조사받는다는 것을 전제하면서 조모 교수가 수사를 받게 되면 변호인으로서 자신을 선임해달라고 하였고 다른 피의자들은 수사단계에서 진술을 거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 준 것이 전부이다. 당시 변호인과 조모가 만난 장소에는 조모 교수의 친구라고 하면서 사실은 국정원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도 동석한 상태였으므로 변호인이 증인으로 출석할 사람에게 진술거부를 행사하도록 말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음은 분명하다. 2012. 1. 9.자 “‘왕재산(北 지령으로 남한에 만든 지하당)’ 밝히려 증언대 선 교수… 총책은 반박 못했다” 라는 제하 조선일보의 기사를 보라! “나중에 문제가 되면 나를 변호인으로 선임해달라고 얘기“했다는 대목이 나올 것이다. 이것을 두고 양상훈은 “(변호인이 조모 교수에게) 진실을 숨겨 달라는 것이었다. 피고인의 법적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간첩의 증거를 인멸하려 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이것은 변호가 아니라 투쟁이다.”라고 적었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신문의 당시 기사나 정확하게 보고 글을 쓸 일이다.
② 피고인들에 관하여 변호인이 준항고를 낸 부분을 문제 삼는 것도 사실관계 왜곡이다. 당시 국정원은 단식하면서 진술을 거부하던 피고인들 앞에 피자를 시켜놓고 진술을 강요하기도 하였다. 그 치졸한 조치에 대하여는 왜 말이 없는가? 게다가 피고인들이 진술을 거부하고 국정원 출석을 거부하고 있는 이상, 준항고를 통하여 피고인들의 강제인치 조치의 위법성을 다투는 것은 변호인의 의무이자 권리이다.
③ 담당 변호인 중 한명이 방북 신청을 하여 통일부가 거부하여 재판을 한 일도 교묘한 사실관계 왜곡이다. 당시 방북을 신청한 변호인은 마침 민변의 집행간부였다. 당시에 진행된 북한에 대한 인도적 대북지원 사업(밀가루 지원사업)에 민변도 참여를 했는데, 밀가루 배분 과정을 모니터링 해야 한다고 하여 담당 집행간부의 지위에서 방북을 신청한 것이다. 방북지역도 개성이었고, 기간도 하루에 불과했다. 이것을 “간첩 혐의자의 변호사가 간첩 본부인 북한에 가겠다”는 것으로 표현하니 실소를 참기 어렵다.
④ 담당 변호인 중 한 명이 독일에서 열린 학술세미나에 참여한 일을 가지고 시비를 건 것도 사실과 전혀 다른 거짓이다. 양상훈은 “그 자리엔 북한 통일전선부 산하기관 인물들도 앉아 있었다.”고 했는데, 정확하게는 “조국통일연구원” 박영철 부원장과 정기풍 교수 등이 참여했다. 더구나 이들은 여기서 대한민국 정부를 비방하는 내용의 말은 전혀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고, 한국측 참석자들은 이들 북한 인사의 참석 사실 자체를 알지 못하였다.
사실왜곡을 말한 김에 조선일보가 지금도 민변 공격용 소재로 사용하는 이른바 “왕재산” 사건에 관해 몇 가지 덧붙여 둔다.
첫째, 조모 교수의 증언문제는 당시 비공개 재판으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나서 오직 조선일보에만 그 증언이 보도되었다. 비공개 재판의 증언내용을 어떻게 입수하였는가? 실정법 위반의 여지가 다분하다.
둘째, 당시 국정원은 “왕재산”이 반국가단체라고 대대적으로 발표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반국가단체 왕재산의 혐의는 무죄를 확정했다. 조선일보는 왜 이런 사실에는 침묵하면서 아직도 “왕재산” 운운하는가?
셋째, 간첩사건의 피고인들과 변호인들은 국정원의 수사에 무조건 협조하여야 하는가? 헌법과 형사소송법에 정해진 피고인과 변호인들의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합법적 투쟁”인가? 그런 잣대라면 국정원의 대선개입에 관한 원세훈 사건, 김용판 사건처럼 대한민국의 헌법의 근간을 흔든 국기문란 사건의 변호인들의 법정 투쟁에 관하여 조선일보는 왜 침묵을 지키는가? (우리는 원세훈, 김용판의 변호인들이 헌법과 형사소송법을 벗어나지 않는 한 그들의 변론에 관하여 아무런 이의가 없다!)
3. 둘째, 민변의 선배세대와 후배세대를 이간질!
양상훈은 위 칼럼에서 “군사정권 시절 민주 인사들을 변호하던 인권 변호사들이 1988년 민변을 창립했다. 당시의 민변은 독재에 눌려 있던 국민에게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방패처럼 받아들여졌다. 조영래·홍성우 변호사 같은 인물은 법치주의의 성채와도 같이 우뚝했다. 그들이 없었다면 김근태 고문 사건, 권인숙 성 고문 사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등은 우리 역사를 바꾸지 못하고 그냥 묻혔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극찬하면서 “그러나 초창기 선배 인권 변호사들이 걸었던 그 길을 지금의 민변이 그대로 따라 걷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라고 지금의 민변을 질타한다. 한마디로 가소로운 작태라고 아니할 수 없다.
이 칼럼이 가소로운 이유는 이런 것이다. 민변의 변호사들이 김근태 고문 사건, 권인숙 성 고문 사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등의 진실을 찾아 정권과 사투를 벌이는 동안 조선일보는 과연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말이다. 진실의 동조자였는가? 아니다. 당시 조선일보가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의 나팔수였던 것은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이다. 양상훈은 조선일보의 신문보관창고에 가서 그 시절 조선일보부터 들여다보는 것이 좋겠다.
이번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이 과거의 김근태 고문 사건, 권인숙 성 고문 사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다른가? 전혀 다르지 않다. 유우성이 북한에서 자유를 찾아 한국으로 탈북하였다는 점에서 자유와 인권의 가치를 위하여 군사독재정권에 항거했던 김근태, 권인숙, 박종철과 본질에서 다르지 않다. 김근태, 권인숙, 박종철을 고문한 것과 마찬가지로 국정원은 유우성의 동생 유가려를 고문하여 오빠가 간첩이라고 허위자백하게 만들었다. 다만, 과거 군부독재정권은 그래도 외국의 공문서를 조작할 생각까지는 못하였는데, 지금 국정원은 그런 짓마저도 서슴지 않는다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일 것이다.
분단상황에서 정치적으로,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북한을 정치적 이득을 위하여 악용하는 본질은 과거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거기에 무고한 사람이 간첩으로 낙인찍혀 고문당하는 것도 똑같다. 조선일보는 그러한 악용을 비호하고 조장해 왔다. 민변은 그러한 악용에 맞서 싸웠고, 지금도 싸우고 있다. 그래서 조선일보는 전두환 때도 지금도 민변을 비난하고 공격한다. 다만, 과거 5공 때는 자신들도 조영래·홍성우 변호사 같은 법치주의의 성채와 한편이었다는 듯이 구는 양상훈의 양두구육이 생뚱맞을 뿐이다.
4. 에필로그
언론은 언론의 길을, 민변은 민변의 길을 가면 된다. 언론은 사회적 현안에 대하여 사실보도를 하면서 사실에 기하여 의제를 설정하고 공론의 장을 운영하는 것이 소임이다. 조선일보가 정상적인 언론이라면 문제된 국정원의 간첩조작을 민변이 밝혀내기 전에 조선일보가 밝혀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피고인들의 의뢰에 따라 피고인들이 무죄를 다투는 한 변호인은 피고인의 무죄를 다투는 것이 소임이다. 피의자로서 수사를 받을 지도 모르는 사람에 대하여 헌법상 보장된 피의자의 권리를 설명해 주고 변호인으로 자신을 선임해달라고 권유한 것은 따라서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문제된 국정원의 간첩조작을 밝혀내지도 못하면서 오늘의 국정원의 간첩조작이라는 불법을 은폐하고 물타기하기 위하여 민변 변호사들이 수행한 과거 사건을 가지고 민변을 비난하는 기관지 나팔수 같은 작태를 선보이고 있다.
진실로 조선일보가 자신을 정상적인 언론으로 규정짓고 있다면 지금 조선일보에 필요한 것은 민변에 대한 근거 없는 공격이 아니라 국정원의 일탈을 사전에 제어하지 못한데 대한 절절한 반성일 것이다. 더구나 그 신문의 논설주간을 맡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 반성은 더 깊고 절절해야 하지 않을까? 양상훈의 분발을 촉구한다.
2014. 4. 9
이른바 “왕재산” 사건 변호인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