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안기부와의 변론전쟁 – 체포하여 48시간은 수사기관 맘대로 가둬놓을 수 있다는 ‘미신’을 깨다(2) -안상운 변호사

2014-01-20 1,302

칼럼5

<이전 호에 이어 계속>

 

미국 드라마에서나 보던 장면을 이제 한국에서도 …

 

1963년 3월 13일, 21살의 멕시코계 미국인인 에르네스토 미란다(Ernesto Miranda)가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시 경찰에 18세 여자 납치·강간 혐의로 체포됐다. 경찰서로 연행된 미란다는 처음에는 무죄를 주장했으나 변호사가 선임되지 않은 상태에서 2시간 가량 조사를 받은 후에 범행을 자백하였다.

미란다 사진2

[에르네스토 미란다](Ernesto Miranda, 22)

 

그러나 재판이 시작되자 미란다는 자백을 번복하고, 자백 진술서를 증거로 인정하는 것에 이의를 제기했으나 애리조나 주법원은 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최저 20년, 최고 30년의 중형을 선고했다. 그는 연방대법원에 미국 수정헌법 제5조에 보장된 불리한 증언을 하지 않아도 될 권리와 제6조에 보장된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침해당했다고 주장하며 상고를 신청했다.

 

연방대법원은 1966년, 5대 4의 표결로 미란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그가 진술거부권, 변호인선임권 등의 권리를 고지(告知)받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23) 24) 이른바 미란다원칙(Miranda rule)이 탄생한 것이다.

 

이로써 경찰이나 검찰이 범죄피의자를 체포할 때 혐의사실의 요지와 체포이유, 변호인을 선임할 수 있는 권리, 진술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 등이 있음을 미리 알려 주어야 한다는 현대 형사법의 대원칙이 서게 된 것이다.

 

미란다 판결 이후 미국의 수사기관에서는 미리 미란다 경고문을 만들어 수사관들이 피의자를 체포하거나 신문할 때는 이 경고문을 미리 읽어 주고 있다.

Miranda warning

이 판결 이후 미국의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범인을 체포할 때,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가 있습니다.”라는 대사를 응당 듣게 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아주 먼, 먼 나라 이야기였고, 그야말로 미국의 드라마에 불과했다. 미란다 원칙을 주장하면 마치 죄가 있는 것을 감추기 위한 것인 양 매도당하기 일쑤였고 ‘사치스럽다’는 반응이 많았다.

 

물론 1948년 제헌헌법에서부터 모든 국민은 신체의 자유를 가지며, 체포, 구금, 수색에는 법관의 영장이 있어야 하며 특히 누구든지 체포, 구금을 받은 때에는 즉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와 그 당부의 심사를 법원에 청구할 권리가 보장된다고 규정하고 있기는 하였다(제9조). 그러나 ‘장식용’에 불과했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개정된 헌법에는 “누구든지 체포 또는 구속의 이유와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있음을 고지받지 아니하고는 체포 또는 구속을 당하지 아니한다. 체포 또는 구속을 당한 자의 가족 등 법률이 정하는 자에게는 그 이유와 일시·장소가 지체없이 통지되어야 한다.”는 조항이 신설되었다(제12조 제5항).

 

그러나 안기부나 검찰․경찰의 유구하고 빛나는 수사 관행이 어디 헌법 조문 하나가 새로 실렸다고 쉽게 바뀔 것인가.

 

필자는 ‘김종식 사건’을 형사변론하기 이전에도 1987년 헌법에서 신설된 위 조항을 들어 인신구금 절차에서 자행되고 있는 절차적 문제점들을 많이 지적하였지만 수사기관은 말할 것도 없고 법원의 재판실무도 ‘실체적 진실발견’이 중요할 뿐 적법절차에는 거의 관심을 두지 않았다. 위법수집증거의 배제원칙이나 독수독과(毒樹毒果)의 이론은 그야말로 교과서에나 있는 ‘이론’일 뿐이었다.

 

‘김종식 원칙’의 탄생

 

필자는 김종식에 대한 형사변론에 한계를 느끼고 민사 소송을 별도로 제기하면서 임의동행 형식을 빙자한 불법구금뿐만 아니라 이미 우리 헌법에 들어와 있는 ‘미란다 원칙’을 판결로서 확인받고 싶었다. 그래서 국가(안기부)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하면서 청구원인으로 안기부 수사관들이 피의자인 원고(김종식)를 체포, 연행하여 긴급구속을 함에 있어 원고에 대하여 그 범죄사실의 요지와 구속의 이유,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에 대한 고지를 하지도 아니한 사실도 추가하였다.

 

앞서 본 바와 같이 법원은 이러한 고지 없이 한 체포, 구금은 불법이라고 판결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변호인의 조력권 고지의무 불이행에 대하여 그것이 불법행위임을 인정한 최초의 판결이 선고된 것이다. 이제 미국의 미란다 원칙이 한국에서는 ‘김종식 원칙’이 된 것이다.

 

한겨레921016[한겨레신문 기사]

 중앙921016(불법수사관행에쐐기)[중앙일보 기사]

이 판결 선고 직후 필자는 우연히 연수원 동기 판사들과 모임이 있었는데 헌법과 형사소송법을 위반하여 수집한 증거는 증거능력을 배제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하자 대부분의 판사들은 불법수사에 대해서 민사적인 책임을 묻는 것은 마땅하지만 그렇다고 뻔히(?) 죄가 있는 것으로 보이는 피고인을 절차위반이라는 이유로 무죄로 풀어주는 것은 국민의 법 감정상으로 볼 때에도 가능하겠느냐며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아마도 당시에는 압수물은 그 압수절차가 위법이라 하더라도 물건 자체의 성질, 형상에 변경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므로 그 형상 등에 관한 증거가치에는 변함이 없다 할 것이므로 증거능력이 있다는 취지로 판시한 대법원 1968. 9. 17. 선고 68도932 판결, 대법원 1987. 6. 23. 선고 87도705 판결 등이 시퍼렇게 살아있던 때라서 대법원판례를 신성시하는 판사들의 태도를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었으나 그들의 ‘인권의식’이 바뀌는 데에는 그다지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6)

김종식의 민사사건에 관해 1993년 11월 23일 대법원 승소판결이 선고되자 경찰 등 수사기관에서는 미국처럼 ‘미란다 경고문’을 알려주고 피의자로부터 확인 서명을 받은 다음 이를 수사기록에 첨부하기 시작했다.

 

별지서식4(진술거부권등확인)

[별지 4호 서식]

현행범을 체포함에 있어서는 체포 당시에 헌법 및 형사소송법에 규정된 바와 같이 피의자에 대하여 범죄사실의 요지, 체포 또는 구속의 이유와 변호인을 선임할 수 있음을 말하고 변명할 기회를 주는 등 적법절차를 준수하여야 함에도 현행범으로 체포한다는 사실조차 고지하지 아니한 채 실력으로 연행하려 하였다면 그 행위는 적법한 공무집행으로 볼 수 없다고 한 판례 27),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하여는 변호인과의 접견교통권의 인정이 당연한 전제가 된다고 할 것이므로, 임의동행의 형식으로 수사기관에 연행된 피의자나 피내사자에게도 변호인 또는 변호인이 되려는 자와의 접견교통권은 당연히 인정된다고 한 판례28), 형사소송법이 아직은 구금된 피의자의 피의자신문에 변호인이 참여할 수 있다는 명문규정을 두고 있지는 아니하지만, 구금된 피의자는 형사소송법의 위 규정을 유추·적용하여 피의자신문을 받음에 있어 변호인의 참여를 요구할 수 있고 그러한 경우 수사기관은 이를 거절할 수 없다고 한 판례29), 형사소송법이 보장하는 피의자의 진술거부권은 헌법이 보장하는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않는 자기부죄거부의 권리에 터 잡은 것이므로, 수사기관이 피의자를 신문함에 있어서 피의자에게 미리 진술거부권을 고지하지 않은 때에는 그 피의자의 진술은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로서 진술의 임의성이 인정되는 경우라도 증거능력이 부인되어야 한다는 판례30)등이 이어졌다.

 

형사소송법의 개정

 

마침내 2007년 형사소송법이 개정되어 진술거부권과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의 고지 방법 및 절차를 실질화하는 입법이 이루어졌다. 31)

 

즉 형사소송법 제243조의2가 신설되어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은 피의자 또는 그 변호인·법정대리인·배우자·직계친족·형제자매의 신청에 따라 변호인을 피의자와 접견하게 하거나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피의자에 대한 신문에 참여하게 하여야 한다며 변호인의 참여권이 보장되었다.

또한 제244조의3이 신설되어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은 피의자를 신문하기 전에 ① 일체의 진술을 하지 아니하거나 개개의 질문에 대하여 진술을 하지 아니할 수 있다는 것, ② 진술을 하지 아니하더라도 불이익을 받지 아니한다는 것, ③ 진술을 거부할 권리를 포기하고 행한 진술은 법정에서 유죄의 증거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 ④ 신문을 받을 때에는 변호인을 참여하게 하는 등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도록 하여 ‘미란다 원칙’이 입법화 되었고, 제308조의2에서는 적법한 절차에 따르지 아니하고 수집한 증거는 증거로 할 수 없다며 위법수집증거의 배제 원칙이 확인되었다.

 

검사의 부당한 재판기록 ‘점거’ 행태를 바로잡다

 

한편 형사재판은 구속기간 만기일을 불과 2일 앞둔 1992년 1월 7일 거의 대부분 유죄의 판결이 선고되었다(김종식은 징역 6년에 자격정지 4년, 허00은 징역 2년 6월, 손00는 징역 4년). 32)

 

2심 재판에서는 보다 치밀하게 논리구성을 하여 싸워보겠다고 다짐하면서 2월 말이나 3월 초에 2심 재판이 열릴 것으로 예상하고 준비를 하고 있었다. 2심의 구속기간은 4개월에 불과하여 구속만료일은 1992년 5월 9일이었다.

 

그런데 2월이 다가도록 항소심 법원으로부터 항소이유서를 제출하라는 통지가 없어 사무장을 시켜 소송기록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보게 하였는데 의외로 그것이 아직 항소심법원에 송부되지도 않고 수사검사 방에서 잠을 자고 있는 것이었다.

 

당시 형사소송법 제361조에 의하면 항소가 제기된 경우 원심(1심)법원은 항소장을 받은 날로부터 14일 이내에 소송기록과 증거물을 그 법원에 대응한 검찰청 검사에게 송부하고 그 검사는 송부를 받은 날로부터 7일 이내에 항소법원에 대응한 검찰청 검사에게 송부해야 하며 그 검사는 그날로부터 5일 이내에 항소법원에 송부하여야 하고 항소법원은 기록의 송부를 받는 즉시 항소인과 상대방에게 그 사유를 통지하여야 하도록 되어 있다. 즉 1심 지방법원 ⇒ 수사를 한 (지방)검찰청 ⇒ 2심 법원에 대응한 (고등)검찰청 ⇒ 2심 (고등)법원으로 순차적으로 형사소송기록이 송부되게 되어 있었다. 반면 민사소송은 1심 법원 ⇒ 2심 법원으로 바로 송부된다. 항소를 한 피고인과 변호인은 이 통지를 받은 날로부터 20일 이내에 항소이유서를 제출하여야 하며 제출된 항소이유서를 법원으로부터 송달받은 상대방은 그에 대한 답변서를 10일 이내에 법원에 제출하면 법원은 그때서야 재판기일을 잡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다른 학생들의 경우에는 1월 말에 소송기록이 항소심법원에 송부되어 2월 말, 3월 초에 재판이 열리기 시작했는데도 유독 김종식에 대하여는 법원으로부터 아무런 통지가 없었다. 결국 2월 28일에야 소송기록이 서울고등법원에 송부되었고 담당 재판부는 이를 3월 7일에야 나에게 통지해주었다. 내가 알아보니 1심 재판장은 법정송부일보다 2일 늦게, 수사검사는 무려 21일이나 늦게 송부하여 그렇게 된 것이었다.

 

그 시점에서 2심 재판 기간을 계산해보니 항소이유서 제출기간 20일(검사도 1심 형량이 적다며 항소했음)과 답변서 제출기간 10일, 그리고 공판일 지정 및 통지기간과 결심한 뒤 판결 선고까지 적어도 2주 내지 3주의 기간을 고려할 때 실제 재판을 할 수 있는 기간은 불과 1주 내지 2주밖에 되지 아니하여 무죄입증을 위해 수십 명의 증인을 신청할 계획이었던 피고인과 필자는 고민하였다.

 

필자는 민사재판이나 행정소송과 달리 유독 형사재판에서 항소할 경우에 왜 수사기록뿐만 아니라 모든 소송기록을 반드시 검사를 거쳐서 항소심법원으로 보내지게 되는지 언뜻 이해할 수 없었다.

 

나중에 헌법소원에 대한 답변서에서 검사는 “우리 형사소송법과 같은 속심주의 항소심 구조하에서는 검사는 실체적 진실 발견과 형벌법규의 공정한 실현을 위하여 항소심에서도 보충수사를 하여 새로운 증거를 신청하는 등 공소유지 한도에서의 수사권자로서의 법적 지위를 보유하고 있어 검사로 하여금 제1심 소송기록을 검토하여 항소심공소 유지를 준비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논리로 검사에게 소송기록을 보내는 것은 적법하다는 취지의 주장을 하였다.

 

그러나 만약 그러한 논리라면 형사사건 중 99% 이상 유죄판결이 선고되어 있는 우리나라 현실에서, 당사자주의를 취하는 우리나라 법제상, 1% 미만의 무죄사건의 보강수사를 하기 위한 검사보다는 오히려 99% 이상의 유죄를 선고받은 피고인이 소송기록을 검토해봐야 형평에 맞다고 생각했다.

 

나는 수사검사가 실정법을 위반하여(비록 그것이 효력규정이 아닌 훈시 규정이라고 하더라도) 그로 인하여 재판이 지연되었다면 그에 따른 불이익은 검사가 감수해야지 오히려 피고인이 이를 져야한다는 것은 국민의 기본권을 무시한 처사라고 판단했다. 통상 형사재판의 순서가 공소사실에 대한 입증책임이 있는 검사의 입증이 끝나면 그때서야 피고인 측에서 증인을 신청할 수 있는데 검사의 입증기간이 길어질 경우 구속된 피고인 신청의 증인에 대하여는 구속기간의 만료가 임박했다는 이유로 증인신청을 기각하고 일방적으로 결심을 해버리는 사례를 너무나 많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이미 채택되어 있는 피고인 신청의 증인에 대하여도 재판부는 직권으로 취소하고 결심하고 선고하는 것이 재판 관행이었다.

 

형사소송법의 원칙대로라면 구속기간 내에 입증되지 못할 경우 구속영장의 효력이 만료되면 석방하여 불구속상태로 재판을 하든가 구속기간 만료 전에 보석을 허가하여 불구속상태로 재판하면 될 것이나 전대협의장을 보석허가해주거나 구속기간 만료에도 불구하고 피고인 신청 증인을 채택해줄 것이라고는 도저히 기대할 수 없었다.

 

필자는 이러한 불합리한 결과를 시정할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검사의 법정송부기간을 준수하지 아니한 행위는 신속한 재판을 받을 피고인의 권리를 침해한 것이고 더 나아가 법원의 소송기록을 검사에게 송부하게 한 형사소송법의 규정 자체가 당사자주의에 반한다는 이유였다.

 

항소심 1차 공판은 1992년 4월 3일에야 열렸다. 항소한 지 약 3개월이 지났고 2심 구속만기일이 불과 1달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라 기껏 해봐야 한두 번의 재판밖에는 하지 못할 형편이었다.

 

나는 재판이 시작되자 재판부에 대하여 소송기록이 늦게 송부된 사유를 검사로 하여금 밝히도록 해줄 것을 요청하였고 아울러 구속만료일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상기시키면서 신속한 재판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어 김종식도 발언권을 얻어 같은 동료들에 대한 재판은 이미 끝났는데 자신의 재판이 이제서야 열리게 된 데 대하여 항의하면서 혹시 3월 24일 실시된 국회의원선거를 의식해 일부러 지연시킨 것이 아니냐면서 현실적으로 재판할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아 재판의 실효성과 공정성을 기대할 수 없다며 재판을 거부하였다. 당시 국가보안법사범들은 남북합의서가 1992년 2월 20일 정식 발효되었는데도 정부당국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자 단식투쟁과 함께 전면적인 재판거부를 결의하고 있었던 때이기도 했다.

 

김종식이 자진 퇴정한 가운데 방청객도 다 빠져나간 적막한 법정에서 나는 김빠진 맥주를 마시는 심정으로 최후변론을 하고 결심하게 되었고, 5월 1일 판결이 선고되었다. 김종식에 대한 형량은 징역 6년에서 4년에 자격정지 3년으로 낮아졌으나 공모공동정범이론, 적법한 증언거부자의 진술조서에 대한 증거능력 유무, 북한의 반국가단체성 등에 대하여 대법원의 마지막 판단을 받아보고 싶어 상고했으나 예상대로 8월 18일 기각되었다. 33)

 

필자는 형사소송에서 항소나 상고시 재판기록을 반드시 검사를 경유하도록 하는 형사소송법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하였다.

 

대법원 1961. 4. 28. 선고 4294형상85 판결이 사건 법률조항 소정의 송부기간은 훈시기간이므로 송부기간경과 후에 소송기록을 송부하더라도 그 기록송부는 유효하고 이 사건 법률조항 위반은 상고이유가 되지 않는다고 판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도 이 조항의 정당성에 대해 시비하지 못하고 있었다.

 

청구인은 1991. 8. 24. 서울형사지방법원에 91고합1357 국가보안법위반죄 등으로 구속기소되어 1992. 1. 7. 징역 6년 및 자격정지 4년의 형을 선고받았는데, 청구인인 피고인과 변호인, 검사가 모두 항소함으로써 같은 해 1.9. 피고인과 검사의 항소장이, 같은 달 13. 변호인의 항소장이 위 법원에 각 접수되었으며, 위 법원은 같은 달 27. 그에 대응한 서울지방검찰청 검사에게, 서울지방검찰청 검사는 같은 해 2. 24. 항소법원에 대응한 서울고등검찰청 검사에게, 서울고등검찰청 검사는 같은 달 28. 항소법원인 서울고등법원에 소송기록과 증거물을 각 송부하였다.

 

청구인은 1992. 3. 5. 검사를 거쳐 소송기록과 증거물을 항소법원에 송부하도록 규정한 형사소송법 제361조 제1항, 제2항은 헌법 제11조의 평등권과 헌법 제27조 제3항의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위헌의 법률이고, 가사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서울지방검찰청 검사가 위 법률조항 소정의 기간보다 21일 늦게 서울고등검찰청 검사에게 소송기록을 송부한 행위는 헌법 제27조 제3항의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와 헌법 제27조 제1항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위헌의 공권력행사라는 이유로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였다.

 

그 이유는 첫째, 형사소송법 제361조에서 항소가 제기된 경우 소송기록과 증거물을 유독 검사에게만 송부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것은 당사자주의적 소송구조를 채택하고 있는 현행 형사소송법 아래에서 피고인을 검사보다 현저히 차별대우하는 것이다. 이 사건 법률조항의 입법취지가 공소유지에 관한 직무와 권한을 가지는 검사로 하여금 항소심 공소유지준비를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면, 피고인에게도 마찬가지로 항소심에서 그의 방어권을 행사하기 위하여 소송기록을 검토하여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고, 더구나 제1심재판에서 거의 모든 공소사실에 대하여 유죄판결이 선고되는 현실에서 검사보다는 피고인에게 그 준비의 필요성이 훨씬 큰 점에 비추어 합리성이 없다. 따라서 이 사건 법률조항은 헌법 제11조의 평등권과 헌법 제27조 제3항의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위헌의 법률이다.

 

둘째, 형사항소심의 구속기간은 최장 4개월로 제한되어 있고, 실무상 항소법원은 구속기간이 만료될 때까지 피고인과 변호인이 충분한 증거를 제출하지 못한 경우 구속된 피고인을 석방하여 계속 심리하기 보다는 오히려 구속기간 만료를 이유로 피고인과 변호인의 증거신청을 기각하거나 이미 채택된 증거신청도 직권으로 취소한 다음 그대로 변론을 종결하여 판결을 선고하고 있다. 이 사건의 경우 수사기록이 수천쪽에 달하고 공소장은 약 100쪽에 달할 정도로 그 내용이 방대하고, 제1심에서의 무죄 주장·입증에도 불구하고 유죄의 판결을 받은 청구인으로서는 항소심재판에서 무죄의 판결을 받기 위하여 주장·입증할 사실이 엄청나게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청구인이 이 사건 법률조항 소정의 송부기간을 무려 21일이나 경과하여 서울고등검찰청 검사에게 소송기록을 송부한 것은 청구인이 항소법원에서 실제로 재판받을 수 있는 기간을 단축시켜 청구인으로 하여금 방어권의 행사를 제대로 할 수 없게 하는 것으로서 헌법 제27조 제3항의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 헌법 제27조 제1항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한 공권력행사라고 주장하였다.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

 

헌법재판소는 3년 8개월 만인 1995. 11. 30.에야 “형사소송법 제361조 제1항, 제2항은 그 입법목적(立法目的)을 달성하기 위하여 형사소송법의 다른 규정만으로 충분한데도 구태여 항소법원에의 기록송부시 검사를 거치도록 함으로써 피고인의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하고 법관의 재판상 독립에도 영향을 주는 것으로 과잉금지의 원칙에 반하여 피고인의 신속·공정한 재판을 받을 기본권을 침해하는 위헌의 법률조항이다.”고 위헌결정을 하였다. 34)

 

이 결정 직후인 1995. 12. 29. 개정된 형사소송법(법률 제5054호) 제361조(소송기록과 증거물의 송부)는 “제360조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원심법원은 항소장을 받은 날부터 14일 이내에 소송기록과 증거물을 항소법원에 송부하여야 한다.”고 개정되었다.

 

1980년대 이래 인권 보호 및 신장을 위한 수사절차와 형사소송 제도의 개선은 민변의 원로․선배 변호사님들을 비롯한 인권에 관심있는 변호사님들의 용기와 헌신에 의하여 조금씩 그러나 획기적으로 이루어져 왔다.

 

홍성우 변호사님은 스스로를 ‘겁이 많은 사람’이라고 평하는 그가 오랫동안 인권변론 활동을 할 용기를 낼 수 있었던 이유는 “인권변호는 겁이 나더라도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었다고 말씀하였다.

 

그렇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면 민변 변호사들이 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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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미란다는 1976년 술집에서 싸움하다 살해되었다.

23) Miranda v. Arizona, 384 U.S. 436 (1966)

24) Miranda v. Arizona, 384 U.S. 436 (1966) 판결에 대해서는 박승옥, 『미란다 원칙』(개정증보판), 법수레, 2010에 원문 및 번역문 전문이 실려 있다.

25) 박승옥 변호사는 이 책을 포함하여 미국 연방대법원 판례시리즈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2008년), 『위법수집 증거배제 원칙』 2권 (2009년), 『적법절차; 자기부죄 금지 특권』(2013), 『적법절차; 자백배제법칙, 배심제도, 이중위험 금지원칙(Due Process of Law; Confession Rule, Jury System, Double Jeopardy Rule)』(2013) 등 총 6권의 미국 연방대법원 판례를 차례로 번역하였고 이를 종합․요약하여 『미국 형사판례 90선』(법수레, 2013)을 출간하였다. 그 놀라운 열정과 헌신에 경의를 표한다.

대부분의 미국 주에서 사용하고 있는 미란다 경고문(Miranda warning)은 다음과 같다.

“You have the right to remain silent. Anything you say can and will be used against you in a court of law. You have the right to be speak to an attorney, and to have an attorney present during any questioning. If you cannot afford a lawyer, one will be provided for you at government expense.”

경찰 신문시(statement)에 사용하고 있는 문구는 다음과 같다.

You have the right to remain silent and refuse to answer questions. Do you understand?

Anything you do say may [can and will] be used against you in a court of law. Do you understand?

You have the right to consult an attorney before speaking to the police and to have an attorney present during questioning now or in the future. Do you understand?

If you cannot afford an attorney, one will be appointed for you before any questioning if you wish. Do you understand?

If you decide to answer questions now without an attorney present you will still have the right to stop answering at any time until you talk to an attorney. Do you understand?

Knowing and understanding your rights as I have explained them to you, are you willing to answer my questions without an attorney present?

26) 대법원 2007. 11. 15. 선고 2007도3061 전원합의체 판결에 의하여 압수절차가 위법하더라도 증거능력이 있다는 취지의 대법원 1968. 9. 17. 선고 68도932 판결, 대법원 1987. 6. 23. 선고 87도705 판결, 대법원 1994. 2. 8. 선고 93도3318 판결, 대법원 1996. 5. 14.자 96초88 결정, 대법원 2002. 11. 26. 선고 2000도1513 판결, 대법원 2006. 7. 27. 선고 2006도3194 판결 등이 변경되었다.

27) 대법원 1994. 10. 25. 선고 94도2283 판결 등.

28) 대법원 1996. 6. 3. 자 96모18 결정 등

29) 대법원 2003. 11. 11. 자 2003모402 결정, 구속된 피의자에 대한 검사의 피의자신문시에 피의자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변호인의 참여를 거부한 검사의 처분이 위법하다는 이유로 이를 취소한 원심결정을 정당하다고 한 사례.

30) 대법원 2009. 8. 20. 선고 2008도8213 판결 등.

31) [시행 2008. 1. 1.] [법률 제8496호, 2007. 6. 1., 일부개정]

32) 서울형사지방법원 91고합1357 판결

33) 대법원 1992. 8. 18. 선고 92도1244 판결, 이 판결은 대법원판결집 40(2)형,749면과 법원공보 1992. 10. 15.자(930호), 2799면에 실려 있다. 허00에 대한 대법원 1992. 8. 14. 선고 92도1211 판결은 법원공보 1992. 10. 1.자(929호), 2711면에 실려 있다.

34) 헌법재판소 1995. 11. 30. 선고 92헌마44 결정, 이 결정에는 검사장 출신인 정경식, 신창언 2명의 재판관이 합헌이라면서 반대의견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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