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범 열사 앞에 드리는 글1)
글_강문대 변호사
당신께 뭐라 할 말이 있겠습니까
당신이 겪은 거친 노동과 배고픔을 미처 헤아리지 못한 우리가
마지막 순간을 결심하고 깊은 고뇌에 빠져 있었을 당신을 끝내 지키지 못한 우리가
지금 이 순간에 무슨 말을 할 게 있겠습니까
굳이 말을 한다면 용서부터 구해야 하겠지요
최종범 열사여, 죄송합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아니 무관심과 안일로 당신과 당신의 노동을 미처 살피지 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용서를 구한 참에 한두 가지만 더 말씀 드리겠습니다.
염치없지만 참회의 호소로 생각하고 부디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먼저, 멀리 떠나신 길, 그 곳에서는 편히 쉬십시오
별이도 염려 마시고, 노조도 염려 마십시오.
이 곳에 남은, 당신의 동료와 동지들이 책임지겠습니다.
며칠 전 별이의 돌잔치를 지켜보셨지요. 그렇게 삼촌, 이모들이 별이를 계속 돌볼 것입니다.
노조는 더 염려마시기 바랍니다. 조합원들과 ‘외부인’들이 굳건히 연대하여 자랑스런 민주노조로 발전시켜 나갈 것입니다.
그렇지만, 멀리 계시더라도 이 한 가지만은 우리를 꼭 좀 도와주십시오.
삼성의 노동착취와 부당한 횡포는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습니다.
정치, 경제, 행정, 언론과 사법까지 삼성의 힘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고, 그 힘은 가히 무소불위입니다.
그래봤자 도덕과 순리 앞에서 곧 무릎을 꿇을 테지만 지금은 기세가 등등합니다.
많은 사람이 삼성을 견제하고 비판하고 질타하면서 힘을 모으고 있지만, 아직 힘이 많이 부족합니다.
그러니 열사여, 부디 우리를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그 곳에서라도 강한 파장과 진동으로 삼성을 뒤흔드시고 우리를 부추겨 주시기 바랍니다. 이미 당신은 또 한 명의 전태일로서 우리를 일깨우셨습니다. 당신이 당신의 몸을 던져 시작하신 일, 이제 우리를 통해 당신이 마무리하시기 바랍니다.
삼성은, 삼성전자 서비스의 협력업체는 자신과는 상관이 없는 회사다, 그래서 교섭에도 응할 수 없고, 당신의 죽음에 대해서도 책임질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이고, 눈가리고 아웅하는 행태입니까? 이거야 말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술수가 아니겠습니까?
열사여, 당신께서 이들의 손바닥을 거두어 주시고, 잠에서 깨게 하시고, 눈을 열게 해 주십시오. 당신의 뜻과 의지는 우리가 전달하겠습니다.
이 곳을 떠났으나 아직 편히 몸을 누이지도 못한 당신에게 너무 많은 말씀을 드렸습니다.
당신에게 드린 말씀은 기실 우리 자신에게 한 말입니다.
여기 모인 우리 법률가들은 법으로든 몸으로든 우리 몫의 책임을 다해 나가겠습니다.
그러니, 열사여, 편히 쉬십시오. 안녕히 가십시오……
1)이 글은 12월 16일, 삼성전자서비스 최종범 열사 문제해결을 촉구하는 노동법률단체 기자회견에서 강문대 변호사가 낭독한 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