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남북기본합의서의 의미와 6․15, 10․4선언과의 관계1)
글_이석범 변호사2)
Ⅰ.남북기본합의서의 의미
1. 채택 배경
‘남북기본합의서’의 의미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남북관계의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1) 먼저 시대적 배경으로는 첫째, 국제적인 측면에서 냉전질서의 붕괴를 들 수 있다. 1980년대 말 구소련이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하고 동구 공산권이 몰락하면서 제2차 대전 이후 동서의 국제냉전질서가 종식되면서 화해와 협력, 개방과 세계화, 정보화의 새로운 국제질서가 전개되었다. 이 결과 남북분단의 현실을 인정하고 평화를 유지해야 한다는 정책으로 나타나 남한은 중․러와 관계개선을 통하여 국교를 수립하였고 남북한만 냉전적 대립과 체제경쟁에 안주할 수 없는 국제환경이 조성되었다. 둘째, 한반도 내의 상황으로서 민족통합의 과제를 들 수 있다. 국제적 해빙의 분위기는 남북간의 평화공존 내지 평화통일의 길을 모색하도록 강요한 외부요인이었지만, 동시에 민족 내부적으로 불신과 긴장을 해소하고 민족통합을 이루고자 하는 열망을 분출시켰다. 국내의 탈군부독재 민주화의 이행과정에서 취약한 정권적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또한 통일운동의 압력에 대응하여 일정한 정책적 성과가 필요했던 노태우정부는 ‘북방정책’에 대응하여 북한도 정치․군사문제 해결을 위해 남한과의 대화에 나서게 되었다.
(2) 한편, 남북기본합의서가 채택된 배경에는 분단 이후 계속된 남북관계의 진전이라는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분단 이후 1970년대 초까지 남북한은 국제냉전질서의 확산에 따라 한반도에서의 긴장을 고조시켰으나 1970년대 초에 접어들면서 닉슨독트린의 발표로 긴장완화와 평화공존의 분위기가 도래하였다. 1970년 8월15일 박정희 대통령이 제25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남북통일에 관한 8․15선언’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분단 26년만에 최초의 남북대화가 개시되어 남북간 최초의 ‘공식적 합의문서’라 할수 있는 ‘7․4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되었다. 1982년 1월 22일 전두환대통령이 국정연설을 통하여 ‘민족화합 민주통일방안’을 발표하는 등 적극적인 대북정책을 전개하였는데 1984년 11월 15일 남북경제회담을 필두로 적십자회담, 국회회담, 체육회담 등의 연속적으로 개최되었다. 1988년 12월 28일 남한의 강영훈총리가 남북고위급회담을 제의하자 북의 연형묵총리가 1989년 1월16일 남북고위 정치․군사회담을 수정제의하는 형식으로 수락하여 남북고위급회담을 성사시켰다.
2. 남·북한 헌법의 개정에 반영된 ‘평화통일’의 최고규범성
(1) 남한 헌법에 반영된 ‘평화통일’의 최고규범성
우리 헌법상 통일은 남북한의 국내 또는 국제법적인 통합을 통하여 한반도에서 한민족 전체국가(Gesamtstaat)를 회복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남북이 평화통일을 이룩해야 할 헌법상의 의무는 헌법 전문과 제4조에 근거하고 구체화되기 때문에 모든 국가기관은 통일을 위한 노력을 다하여 추구하고, 통일을 국가정책의 목표로 삼아 그들의 정책수행이 이 목표에 적합하도록 할 법적 의무가 파생된다. 이에 따라 우리 헌법상 통일조항은 적극적으로 대통령을 포함하여 모든 국가기관에게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이룩할 법적 의무를 강제하고, 소극적으로 국가기관이 통일을 법적으로 저해하거나 사실상 불가능하게 하는 조치를 취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행 헌법 제4조의 “대한민국이 통일을 지향한다.”는 것은 현재 대한민국의 국가영역인 한반도와 부속도서가 통일되어 있지 않다는 즉, 분단되어 있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분단을 극복하여 통일을 이룩하겠다는 강력한 통일의지를 천명한 것이다. 대한민국은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할 의무가 있다.”는 것은 정부가 통일정책의 수립 및 추진의무를 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노태우정부는 1988년 7월 7일 대통령특별선언을 발표하여 대북문호개방과 교류를 허용하였으며, 1989년 9월 11일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발표하였던 것이다. 남북교류를 활성화하기 위하여 남북교류협력에 간한 법률을 1990년 8월 1일 통과시켰고 마침내 1991년 12월 13일 “남북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를 채택하였다.
(2) 북한 헌법에 반영된 ‘평화통일’의 최고규범성
1992년 북한의 1972년 사회주의헌법의 개정은 대외적으로 구소련 및 동구사회주의국가들의 변혁에 다른 사회주의체제의 붕괴, 독일과 예멘의 통일, 특히 동독의 사회주의체제의 몰락에 의한 서독의 통일(1990. 10. 3.) 등 국제정세의 큰 변화가 있었고, 또한 남북간에 UN동시가입(1991. 9. 18.) 남북고위급회담 개최와 남북기본합의서의 채택발효 등의 사태진전 후에 이루어졌다. 북한의 통일정책은 의미있는 변화를 시도하고 있으며 이는 헌법과 당규약의 개정을 통하여 반영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먼저, 남북한 UN 동시가입과 남북기본합의서 발효 이후 개정된 헌법 제9조에서 1972년 헌법 제5조의 ‘전국적 범위’라는 대목을 삭제한 것은 사회주의혁명과 건설을 북한에 한정시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남북의 공존을 강조하였다. 둘째, 김일성주석은 1991년 신년사에서 종래의 연방정부성격의 완성형연방제를 국가연합성격의 잠정적·단계적 연방제로 수정하였다. 셋째, 북한은 1993년 4월 7일 최고인민회의 제9기 제5차회의에서 채택한 ‘전민족 대단결 10대 강령’ 제3항에서 ‘공존·공영·공리’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는데 이는 ‘하나의 조선’론과 달리 두 개의 정부와 체제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그리고 이와 함께 1980년 노동당 규약 전문에서 “조선로동당의 최종목적은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와 공산주의사회를 건설하는데 있다.”고 규정하였으나 2010년 이를 개정하여 “최종목적은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하여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완전히 실현하는데 있다.”고 개정하였다.
3. 남북기본합의서의 헌법규범적 의미
(1) 기본합의서는 통일을 한민족의 공동번영을 위한 과정으로 전제, 남북관계개선과 평화통일을 향한 ‘기본틀’을 제시하고 있다는데 무엇보다 그 의의가 있다. 이에 따라 기본합의서는 서문에서 현재의 남북한관계를 통일과정의 “잠정적 특수관계“ 라고 규정함으로써 남북한이 당장 통일을 이룩할 수 없는 현실을 감안하여 서로 상대방의 체제를 인정하고, 군사적으로 침범하거나 파괴․전복하지 않으며 교류․협력해 나가야 한다는 약속을 내외에 천명하였다. 바꾸어 말하면 기본합의서가 발효됨으로써 남북한은 이제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에서 밝히고 있는「남북연합」을 이룩하기 위한 준비단계인 ”화해․협력단계“로 진입하게 된 것이라고 하고 있다.
(2) 기본합의서는 제3자의 개입 없이 남북간의 공개적인 협의를 거쳐 채택·발효된 최초의 공식 문서라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즉 기본합의서는 쌍방 총리를 수석대표로 하는 책임있는 당국간의 회담을 통해 현 분단 상황을 우리 민족 스스로 해결해 나간다는 의지와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아울러 기본합의서는 그 형식과 절차, 내용면에서 7․4 남북공동성명과는 달리 공개적인 협의절차를 거쳤고, 남북간의 정식국호와 서명자의 직함을 명시하였으며 실천에 필요한 구체적인 절차와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크다. 특히 “남과 북은 의견 대립과 분쟁 문제들을 대화와 협상을 통하여 평화적으로 해결한다.”고 규정(제10조)하고 있는 바, 이는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해결원칙을 천명한 것이다.
(3) 기본합의서는 서문에서 남북관계를 민족내부 특수관계라고 인정하고 제1조에서 상호 상대방의 체제를 인정․존중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서명란에서는 남북한의 정식국호를 사용하고 있다. 이와 같이 남북한이 상호 체제인정․존중을 약속하였다는 사실은 상대방을 국제법상 완전한 “국가”로 인정함을 의미하지는 않으나, 남북한이 각기 상대방의「실체성」을 인정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 한다. 북한이 대내외 정책상의 전술적 변화필요성에 따라 기본합의서의 채택에 응하였다 하더라도 상호 체제의 인정․존중, 내부문제 불간섭, 비방․중상 중지 및 파괴․전복행위 금지를 성실히 이행한다면 기존의 대남혁명노선을 부분적으로나마 수정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와 함께 기본합의서에는 남북간의 인적․물적 교류와 협력이 강조됨으로써 정치․군사 문제해결 우선론을 고집하여 온 북한의 입장이 상대적으로 약화되고 민족내부의 교류협력을 통하여 궁극적으로 북한사회의 개방과 변화를 유도할 수 있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Ⅱ. 남북기본합의서의 적용
1. 6·15 선언과 10·4 선언의 의의와 내용
(1) 6·15 선언
1) 6·15 선언의 의의
첫째, 분단 55년만에 처음으로 남북정상이 직접 만나 상호입장과 생각을 명확히 교환한 바탕위에서 평화와 화해·협력에 대한 의지를 확인하고 구체적 실천사항에 합의함으로써, 향후 남북관계를 규율하는 규범력을 갖게 되었다. 한반도 평화와 남북간 협력 및 통일 문제는 그 주인인 남북한이 당사자가 되어 대화와 협상을 통해 풀어나가지 않으면 안 될 문제이고 국제사회는 이제까지 당사자 해결원칙을 지지해 왔으며, 이러한 원칙은 남북기본합의서에서도 이미 확인되었다. 둘째, 현실에 바탕을 둔 남북관계 정상화와 통일문제 협의의 계기를 마련하였다. 남북정상이 7·4남북공동성명과 남북기본합의서 등 원칙과 방법에 이미 합의한 만큼, 이제는 이러한 정신에 따라 실천이 필요하며, 한 가지라도 실천할 수 있는 것을 합의하여 실천해 나감으로써 단계적으로 남북관계를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데 합의하였다. 셋째, 이산가족문제는 인도적 차원에서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는 데에 남북 최고당국자의 인식이 일치하였다. 남북은 상호 입장을 감안하여 이산가족문제를 단계적으로 해결해 나가되, 일회성이 아닌 제도화의 수준으로 나아가 궁극적으로는 모든 이산가족들의 비원을 해결할 수 있도록 하였다. 넷째, 남북정상은 제반 분야에서 남북간 교류협력을 증진해 나가는 것이 민족전체의 발전과 이익에 부합된다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향후 당국간 대화를 개최하여 구체적 협력사업을 협의·추진하면서 경제 교류․협력제도를 마련함으로써 민간부문의 경제교류협력을 촉진해 나갈 것이다. 또한 민족의 동질성 회복과 신뢰구축을 위해 사회·문화·체육·보건·환경 등 제반분야에서 교류와 협력을 확대시켜 나가기로 하였다. 다섯째, 남북 정상이 상호 방문하는 것은 남북관계 개선과 신뢰구축에 크게 기여하고, 합의사항의 이행을 보장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남북정상회담에서 두 정상은 상호 침략할 의사가 없음을 확인하고 상대방을 위협하는 행위를 자제하기로 함으로써 한반도의 불안정에 대한 세계인의 우려를 해소하는데 기여하였고, 남북간 협력을 통해 신뢰를 구축하고 공동이익의 범위를 확대해 나가게 됨으로써 한반도 평화를 실질적으로 증진하였다.
2) 남북의 통일방안 합의
한편, 6·15선언의 정치적 해석과 더불어 민족사적 의미와는 별개로 법규범적으로 주목해야 할 것은 남북한의 두 정상이 통일방안을 합의한데 있다는 점이다. 즉 그동안 남과 북은 통일을 지향하면서도 통일방향에 있어서는 서로 다른 내용을 제시해 왔는데 남의 통일방안은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이고, 북의 통일방안은 ‘고려민주연방공화국방안’이었다.
그런데 1차 정상회담에서 김대중 대통령의 연합제안 설명에 대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그 현실성을 인정하고, 남북이 현존하는 2체제 2정부를 유지하면서 상호·협력하여 단계적으로 통일을 지향한다는 것으로서 그 유사성을 인정하였다. 남의 ‘연합제’안과 북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의 공통점에 관하여 다음과 같다. 첫째, 두 가지 방안 다 통일의 형태를 말하는 게 아니라 통일의 전 단계, 준비과정의 형태를 말한다. 즉, 통일의 모습이 아니라 통일과 통합을 준비해 나가는 접근방법을 의미한다.둘째, 2체제 2정부를 유지하면서 두 정부간에 협력체제를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즉, 남북정부가 정치·군사·외교권을 각각 갖고 협력기구를 운영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셋째, 먼저 민간 교류·협력과 정치·군사·경제·사회 등 분야별 대화를 통해 통일의 기반을 넓혀간다는 측면에서 단계적 점진적 접근방식을 취하고 있다. 넷째, 남북 양측이 전제조건을 붙이지 않고 있는데, 특히 북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은 과거 연방제 진입조건으로 주장했던 국가보안법폐지, 주한미군철수 등의 전제조건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2) 10·4 선언
1) 10·4 선언의 의의
첫째, 남북관계에서 평화번영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2007 남북정상선언」은 6.15공동선언 이후 7년간의 남북관계 성과를 토대로 한 차원 높은 미래 비전을 포괄적 제시하였다. 한반도의 전쟁상태 종식과 평화정착을 위한 남북 주도의 협력과 노력은「2007 정상회담」을 통해 기존의 남북관계에서 뒷전에 있던 군사문제, 평화체제 문제논의를 가능하게 하였다. 그리고 ‘서해 평화협력특별지대’를 통해 평화와 번영이 상호 결합되고 선순환되는 구조를 창출하였다.
둘째, 한반도 평화와 비핵화를 위한 남북정상의 의지를 재확인하고 이의 실천을 위해 공동노력하기로 하였다. 6자회담의 진전에 발맞추어 남북관계 발전을 가속화하는 발판을 마련함으로써 북핵문제 해결 및 한반도 평화의 제도화를 선순환시키고, 서해상 평화정착과 남북간 군사적 신뢰구축 방안 마련을 위해 11월중 남북 국방장관회담을 개최키로 합의하였다. 또한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시키기 위해 실질 당사자인 남북이 주도하여 관련 당사국간 협의를 시작하고, 종전선언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기로 합의하였다. 한편, 대한민국 국가원수로서 분단 이후 처음으로 군사분계선을 도보로 통과한 것은 큰 역사적 의의가 있다. 셋째, 다방면의 경제협력을 통해 남북이 공동번영하는「경제공동체」건설을 앞당기기로 하였다. 통행·통신·통관 문제 해결 및 경협의 군사적 보장 등에 긴밀히 협력함으로써 그간의 경협 장애요인을 해소해 나가기로 합의하였다. 이는 남측에게는 새로운 투자의 기회, 북측에게는 경제발전에 기여하는 새로운 차원의 경제협력 추진방향에 대해 합의한 것이다. 넷째, 남북연합을 지향하는 남북관계 제도화의 길을 열었다.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 남북정상이 수시로 만나 현안문제를 해결하기로 합의하였고, ‘2007 남북정상선언’을 이행하기 위한 총리급 회담을 11월중 개최하기로 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동안 장관급으로 운영되어 온 남북대화 총괄 창구를 총리급으로 격상시키고 산하에 부총리급 경제협력공동위를 비롯 분야별로 장관급 또는 차관급 공동위원회를 구성하여 상시적인 남북간 협의틀을 만들기로 합의하였다.
2) 10·4 선언의 주요 내용
첫째, 남과 북은 6.15 공동선언을 고수하고 적극 구현해 나간다. 둘째, 남과 북은 사상과 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남북관계를 상호존중과 신뢰 관계로 확고히 전환시켜 나가기로 하였다. 셋째, 남과 북은 군사적 적대관계를 종식시키고 한반도에서 긴장완화와 평화를 보장하기 위해 긴밀히 협력하기로 하였다. 넷째, 남과 북은 현 정전체제를 종식시키고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직접 관련된 3자 또는 4자 정상들이 한반도지역에서 만나 종전을 선언하는 문제를 추진하기 위해 협력해 나가기로 하였다. 다섯째, 남과 북은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과 공동의 번영을 위해 경제협력사업을 공리공영과 유무상통의 원칙에서 적극 활성화하고 지속적으로 확대 발전시켜 나가기로 하였다. 여섯째, 남과 북은 민족의 유구한 역사와 우수한 문화를 빛내기 위해 역사, 언어, 교육, 과학기술, 문화예술, 체육 등 사회문화 분야의 교류와 협력을 발전시켜 나가기로 하였다. 일곱째, 남과 북은 인도주의 협력사업을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하였다. 여덟째, 남과 북은 국제무대에서 민족의 이익과 해외 동포들의 권리와 이익을 위한 협력을 강화해 나가기로 하였다. 마지막으로 남과 북은 이 선언의 이행을 위하여 남북총리회담을 개최하기로 하고, 제 1차 회의를 금년 11월중 서울에서 갖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 정상들이 수시로 만나 현안 문제들을 협의하기로 하였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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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글은 박정원․이석범, “남북기본합의서의 규범적 의미와 그 적용에 관한 일고찰”,『법학논총』통권제42호(2012. 10), 국민대학교 법학연구소를 요약한 것으로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NLL포기여부“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것입니다.
2) 민변 통일위원회 회원(법무법인 한샘)